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11화 (311/411)

311. 잔당

나강인이 헬멧을 벗고 겉옷도 뒤집어 입었다. 그런 후에 유원지를 돌아다니며 관광객들을 살펴보았다.

“지인아.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은 사람부터 찾자. 주변을 두리번거린다든지,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든지.”

AI 전지인이 시야에 보이는 사람 중 일부의 머리 위에 홀로그램 표식을 띄웠다. 그런데 그 표식은 모두 노란색이었다. 빨간색은 하나도 없었다.

- 전투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영향으로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적 정찰병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대상자를 좀 줄여야겠지?”

- 그러면 분석 효율을 올릴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실내 전투가 벌어졌던 건물 앞에는 여러 기관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패거리를 구출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혼자서라도 탈출하려고 하겠지.”

그런데 이 유원지 주변에는 민가가 없다.

“걸어서 여길 빠져나가는 것도 가능하긴 한데, 혼자만 그러면 너무 눈에 뜨이잖아.”

저 멀리 주차장이 보였다.

“그놈이 도망치려면 일단 주차장으로 가겠지?”

- 타당한 추측입니다.

나강인이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그는 그곳에서 차 트렁크를 열고 접이식 화살을 꺼내 재킷 속 탄띠에 끼웠다. 그러면서 주변을 살폈다.

“수색 범위를 이 주차장으로 한정하고, 여기서 주변을 경계하면서 움직이는 사람을 찾아봐.”

- 상당수의 민간인이 총격전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평범한 관광객이 주변을 경계하며 이곳을 벗어나려 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하긴. 특히 애를 데려온 집이 더 그러겠지. 그럼 그놈을 찾을 좋은 방법이 없냐?”

-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놓치긴 싫은데, 뭔가 방법이….”

그의 눈에 주차장 관리 요원이 보였다.

그가 아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 주차장을 관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직원이 와서 사람들의 출차를 돕고 있었다.

나강인이 그 직원을 보며 말했다.

“지인아. 아까 우리가 공원에서 차 이사 부하들을 찾으러 다닐 때 말이야. 그때도 수상한 놈들은 네가 다 조사하고 있었지?”

- 물론입니다. 그때는 교전이 벌어지기 전이라 사람들의 반응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상 행동을 하는 차 이사의 상대 세력 네 명과 현장에 도착한 경찰팀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적 정찰병 말이야. 그때도 정찰병이 활동하고 있었을 텐데 왜 그놈만 찾아내지 못했지?”

- 요원님이 이 유원지 전체를 돌아다닌 건 아닙니다.

“적 정찰병은 교전 상황을 건물 안에 있던 놈에게 보고했어. 거래가 진행되던 건물 근처에서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단 뜻이지. 그럼 우리도 전투 전에 그놈을 봤을 거라고.”

- 타당한 추론입니다.

“그런데도 네가 발견하지 못했잖아.”

- 인정합니다. 오늘따라 구박이 집요하십니다.

“야. 너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야.”

- 아닙니까?

“그때 그곳에서 주변을 경계하던 사람을 내가 봤거든?”

AI 전지인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당시 모습을 영상으로 띄웠다.

- 행사진행 안전요원이 있었습니다.

“맞아. 안전요원. 우리는 그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았지. 그 사람들은 주변을 경계하는 게 임무니까.”

AI 전지인이 유원지에서 발견한 모든 안전요원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그 건물 앞쪽과 무대 근처에 있던 사람만 남겨봐.”

몇 명은 사라지고 네 명이 남았다. 그런데 그중 세 명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저 세 명은 무대 근처에 있었지. 공연을 지원하러 왔을 거야.”

그들을 제외하면 한 명만 남는다.

나강인이 마지막 안전요원을 보며 말했다.

“잡으러 가자.”

***

현장은 아직도 이번 사건의 관할권을 놓고 싸우고 있었다.

합수부 형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번 건은 처음부터 우리 합수부가 맡아서 진행한 겁니다! 다른 기관에는 협조 요청만 한 거라고요!”

“협조해달라는 거였지 시다바리만 하라는 건 아니었잖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잡으면 우리 거지!”

“잡지도 못했잖습니까!”

“여긴 우리 관할입니다!”

“합수부는 관할구역이 따로 없어요! 전국이 다 관할입니다!”

“같이 좀 먹고 삽시다. 저렇게 많이 잡았으면 한두 명은 나눠줘도 되잖아요!”

나강인이 박순기에게 다가갔다.

“상황이 복잡한가 보네요.”

“아. 나 사범님. 그러게요. 여기서 잡은 놈들은 합수부에 인계했는데, 다른 기관에서 온 분들이 포기를 안 하네요. 좀 나눠주거나, 아니면 같이 조사하자고 난리입니다.”

“그렇게 해도 됩니까?”

“합수부는 원래 여러 기관이 사람을 보내 만든 임시 조직이라서, 업무의 경계가 좀 모호하긴 하죠.”

“그렇다고 저렇게 싸우나. 지금 저럴 때가 아닐 텐데.”

“어차피 잡을 놈은 다 잡았으니까 그러나 봅니다.”

“다 잡기는요. 남은 놈이 있습니다.”

“네? 아. 그 정찰병….”

“그놈 잡으러 갑시다.”

나강인이 먼저 움직였다. 박순기가 나강인을 따라 걸으며 물었다.

“그놈을 찾으셨습니까?”

“유력한 용의자를 찾았는데, 체포하려면 경찰이 동행해야죠. 난 민간인이니까.”

“나 사범님. 이 기회에 우리 경찰에 특채로 들어오시면 그런 놈들을 그냥 체포….”

“공무원은 체질이 아니라서.”

“하긴. 원래 하시는 일이 워낙 많으시니까….”

나강인이 앞쪽을 슬쩍 가리켰다.

“저 사람입니다.”

박순기가 물었다.

“유원지 경비원이요? 되게 젊네요.”

“지역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추가로 임시 경비원을 고용했을 겁니다. 그때 위장취업을 한다면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지 좋죠.”

“그렇겠네요.”

박순기가 경비원에게 다가가 신분을 확인했다.

나강인은 뒤쪽에서 기다렸다. 적이 도망치면 바로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젊은 경비원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네? 전 대학생인데요? 이 일은 알바로….”

“역시 알바였네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대학생인 건 증명할 수 있습니까?”

“하, 학생증이면 될까요?”

“당연히 그거로는 부족하죠. 학생증이야 위조하면 그만인데.”

박순기가 젊은 경비원과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전화도 몇 통 걸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상황이 요원님의 예상과 좀 다릅니다만?

“그러게.”

박순기가 나강인에게 돌아왔다.

“대학생 알바 맞던데요?”

“어….”

“이 지역 주민이기도 하고, 저 학생 아버지가 이 유원지 직원입니다. 다 확인했습니다.”

“유력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군요.”

박순기가 웃었다.

“하하하. 나 사범님이 틀릴 때도 있군요.”

“순기 씨는 너무 활짝 웃는 거 아닙니까? 재미있어 보이네요? 다음 주에는 이번 주에 하려다 만 특훈 추가?”

“사람이 하는 일인데 어떻게 매번 다 적중하겠습니까? 그런 예측이 다 맞으면 사람이 아니라 기계죠. 정말 인간적이십니다.”

“그쵸. 사람 다 되더니 틀리는 게 많네요.”

- 이번엔 제가 아니라 요원님이 예측했습니다만?

박순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

“혼잣말입니다.”

나강인이 원래 있던 곳으로 가려고 뒤로 돌아섰다. 무대가 보였다.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었다.

“어? 잠깐. 그 넷 중에 이 사람이 아니면….”

그가 프프걸스 리더 소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SAH 엔터는 휴대폰 사용 제한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소지영이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오늘 너희 회사에서 경호원을 보냈냐?

- 네? 아뇨?

“무대 근처에 세 명이 있던데?”

- 저희가 아니라 행사를 주최한 관공서에서 경호원분들을 섭외했다고 들었어요.

“아. 그렇구나. 혹시나 했….”

- 근데 세 명이 아니라 두 명 아니에요?

“어? 두 명?”

AI 전지인이 즉시 경호원 세 명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세 명 다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 두 명이 누군지 알아? 파란 넥타이? 검은 넥타이? 줄무늬 넥타이?”

- 잠깐만요. 애들한테도 물어보고요.

잠시 후에 소지영이 대답했다.

- 지혜가 그러는데 파랑이랑 줄무늬 넥타이래요.

“오케이.”

나강인이 통화를 끝낸 후에 박순기에게 말했다.

“이번엔 진짜로 찾았습니다. 가시죠.”

***

정찰병은 이미 현장을 벗어났다.

그는 검은 넥타이는 풀어서 주머니에 넣고 셔츠의 단추도 살짝 풀었다. 양복 재킷은 벗어서 팔에 걸쳤다.

주머니에서 안경도 꺼내서 썼다. 단정하던 머리카락은 조금 헝클었다.

그는 눈의 힘을 풀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그의 인상은 무대 앞에서 경호원처럼 서 있을 때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그가 승용차 손잡이를 잡으며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도대체 오늘 거래를 어떻게 안 거지? 정보가 어디서 샌 거야?”

바로 뒤에서 나강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어떻게 알았을까?”

정찰병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굳었던 표정이 돌아섰을 때는 어느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저를 아시는지….”

나강인이 히죽 웃었다.

“모르지. 이제부터 알아가려고.”

“예? 저를 왜….”

“야. 너 한국말 잘한다?”

“저 한국사람입니다.”

“네 패거리들은 외국어로 떠들던데?”

“왜 자꾸 저한테 이러십….”

“너 무대 앞에서 경호원인 척했더라?”

“오해하셨군요. 옷 색깔이 그분들과 비슷한 것뿐입니다.”

“차 이사하고 거래하니까 어때? 쿨거래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박순기가 다가왔다.

“경찰입니다. 신원조회 협조 부탁드립니다. 한국분이면 우리나라 주민등록이 있겠군요.”

“신원조회 그거 의무는 아니지 않나요?”

“외국 분이 그런 것까지 아시네요. 그런데 당신은 어차피 여기서 못 빠져나가요. 당신 동료들이 싹 다 잡혔는데, 그중 하나만 당신을 지목해도 바로 체포할 거니까.”

“전 무슨 말씀이신지 잘….”

AI 전지인이 갑자기 위험 표시를 띄우며 경고했다.

- 적의 공격에 대비하십시오!

어리둥절하던 표정으로 말하던 남자가 갑자기 양손을 나강인과 박순기의 목을 향해 쭉 뻗었다. 숨겨둔 송곳이 손에서 툭 튀어나왔다.

기습은 갑작스럽고 빨랐지만 상대가 나빴다. 언제 공격할지 알고 있는데 송곳에 맞아줄 리가 없다.

나강인이 적의 왼손을 가볍게 잡아챘다. 그는 박순기를 노리는 적의 오른손도 잡으려고 옆으로 손을 뻗다가 멈췄다.

박순기는 나강인과 실전 같은 대련을 하며 총권도를 배웠다. 그는 그 훈련 때 이것보다 더한 기습 공격을 무수히 당해봤다. 상대편의 공격속도도 훈련 때가 훨씬 더 빨랐다. 게다가 그는 요즘은 그 속도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

박순기가 재빨리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그렇게만 해도 적의 기습 공격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단순히 피하기만 한 게 아니다. 몸을 기울여 피하면서, 왼팔의 와이번 보호대로 적의 팔을 바깥쪽으로 쳐냈다.

적의 오른팔이 옆으로 밀려나 쭉 뻗은 상태가 됐다. 박순기가 그 팔을 재빨리 잡아 꺾었다.

적의 왼쪽 팔은 나강인에게 잡혀 있었다. 오른팔이 한계 이상으로 꺾였다.

적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악!”

나강인이 적의 다리를 툭 찼다. 적의 상체가 주차장 땅바닥에 처박혔다.

박순기가 적의 등 뒤로 팔을 꺾고 손목에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야. 느리잖아. 겨우 그걸 기습이라고 한 거냐?”

AI 전지인이 말했다.

- 그동안 가르친 보람이 있습니다. 신병 치고는 그럭저럭 쓸만합니다.

적이 기습에 사용한 송곳날 두 개는 이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박순기가 그 송곳날을 보며 말했다.

“나한테는 이런 건 안 통…. 어?”

박순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강인이 물었다.

“왜 그럽니까?”

“얼마 전에 회사원이 이런 무기에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범인이 현장에 증가를 남기지 않아 사건이 미궁에 빠졌는데….”

박순기가 수갑을 단단히 채웠다.

“이 새끼, 킬러였네요.”

***

적 정찰병은 박순기가 체포했다.

총격전 신고를 받고 인근 지구대와 경찰서 등에서도 경찰차가 몰려왔다. 인근 군부대에서도 지원을 위해 출동했다.

구급차도 속속 도착했다. 범인 중에 화살을 맞은 놈이 많아서 구급차가 많이 필요했다.

나강인은 정찰병은 박순기에게 맡기고 프프걸스를 찾아갔다.

무대 공연을 위해 주최측이 섭외한 경호원 두 명은 곁에 없었다. 그들은 주최측 사람들을 지키러 갔다.

대신에 네 사람의 곁에는 민영희가 같이 있었다. 이 근처에는 각 기관에서 나온 사람이 많아서 다른 경호원이 굳이 필요하진 않았다.

나강인이 다가가자 네 사람이 동시에 폴더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고마우면 다음 주에는 자연 체조 2단계 특훈을 하자. 오늘 지혜가 하는 거 보니까 수준을 더 높여도 되겠더라.”

“네, 네?”

나강인이 최지혜에게 물었다.

“넌 저 안에서 어떻게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숨어 있었냐?”

최지혜가 웃었다.

“히히. 자연 체조를 배울 때 숨죽이고 숨어 있는 법도 가르쳐주셨잖아요. 그래서 그대로 했죠.”

자연 체조의 원형은 지구연합군이 적지에 고립된 민간인에게 탈출용 체력을 만들어주려는 목적으로 개발됐다. 인터넷에 올린 공개 체조 영상에는 없지만, 네 사람이 따로 배운 원형에는 조용히 움직이는 기술이 포함되어 있다.

“잘 배웠네.”

“제가 좀 잘했죠? 흐흐.”

“그래도 두목의 권총을 발로 걷어찬 건 너무 위험했다. 그러다 발차기가 빗나갔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그러라고 시키신 줄 알았다니까요.”

민영희는 깜짝 놀랐다.

“어머. 나 사범님. 얘한테 그런 걸 시킨 거예요?”

“안 시켰습니다. 지혜가 잘못 알아듣고 일을 저지른 거지.”

리더 소지영이 막내 최지혜에게 잔소리를 했다.

“너는 왜 그런 위험한 짓을…. 앞으로 하지 마!”

“에이. 언니 걱정하지 마. 오늘 같은 일이 설마 또 있겠어?”

“그치? 당연히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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