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영상
프프걸스 막내 최지혜가 말했다.
“오늘처럼 엄청난 일은 인생에 딱 한 번 경험해봤으면 많이 한 거지.”
다른 세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예능 방송 나가면 이거 꼭 이야기해야지.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우리가 이긴 건 아닌데?”
“우리 편이 이겼잖아.”
“선생님 이름은 빼고 말해야 할걸? 헬멧 쓰고 싸우셨잖아.”
“당연하지.”
나강인은 그녀들이 정신없이 떠드는 걸 듣다가 신은하가 생각났다. 그녀도 처음에는 총격전에 휘말리는 일이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어지간한 사건은 그냥 그러려니 하는 단계까지 왔다.
나강인이 물었다.
“너희는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여기 계속 있을 건 아니지?”
리더 소지영과 멤버 두 명은 건물 외부 교전에 휘말렸기 때문에 경찰이 참고삼아 물어볼 게 좀 있다. 막내 최지혜는 건물 안에서 두목이 인질로 잡았던 것 때문에 물어볼 말이 더 많다.
하지만 오늘 당장 경찰서에 가서 그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녀들을 공격한 놈들은 이미 모두 체포했다.
게다가 다들 이 유원지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다.
최지혜가 얼른 대답했다.
“우린 이제 치킨 먹으러 갈 거예요!”
“응? 치킨?”
“오늘 같은 날은 회사에서 못 먹게 하면 안 돼요. 실컷 먹을 거예요!”
나강인이 제안했다.
“야외에서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는 건 어때? 아직 많이 남았는데.”
오늘 나강인의 제작 거점 앞마당에서 바비큐 파티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까 실컷 먹고 술까지 마셨지만, 나강인은 와이번 팔 보호대를 만드느라 얼마 먹지도 못했다.
최지혜가 흥분했다.
“와! 맛있겠다! 무슨 고기에요?”
“소고기 돼지고기 다 있다. 취향대로 먹어라.”
“만세…. 어….”
최지혜가 프프걸스 매니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쿡쿡 찌르는 시늉을 했다.
나강인이 프프걸스 매니저에게 말했다.
“애들 데려가서 밥이라도 먹이겠습니다.”
그 매니저는 나강인이 누구인지 안다.
나강인은 SAH 엔터에 종종 들른다. 일이 있어서 가기도 하지만 그냥 구내식당에 밥 먹으러도 간다. 그러다 보니 오다가다 서로 마주칠 때가 가끔 있었다.
프프걸스의 CF 촬영 때는 잠깐이지만 나강인과 같이 움직이기도 했다.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나 감독님. 우리 애들은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이라서요. 엄격한 식단 관리를….”
프프걸스 네 명이 동시에 매니저를 째려보았다.
리더 소지영이 말했다.
“오늘 못 먹게 하면 진짜 SNS에 올릴 거예요! 우리가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겨우 살아남았는데 회사는 밥을 굶긴다고 할 거라고요! 밥 그거 얼마나 한다고!”
매니저가 얼른 말을 바꾸었다.
“어…. 밥을 굶기는 부분만 빼고 SNS에 오늘 일을 올리자. 올리기 전에 홍보팀 검수 꼭 받고. 이번 일을 좋은 쪽으로 살려야지?”
“그럼 우리 바비큐는 콜?”
“너무 많이 먹지는….”
매니저가 눈을 반짝이는 네 사람을 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아니다. 오늘은 실컷 먹어라. 이런 날까지 식단을 관리하는 건 진짜 못하겠다.”
최지혜가 활짝 웃었다.
“넹!”
나강인은 현장을 떠나기 전에 합수부 형사를 만났다. 나강인이 물었다.
“죽은 놈은 없지요?”
“처음에 화살 맞은 놈들을 봤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놈들이 다 죽었으면 총격전 상황인 걸 고려해도 일이 엄청나게 복잡해졌을 테니까요.”
합수부 형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확인해보니까 다행히 죽은 놈은 없습니다. 몸통에 화살이 꽂힌 채로 정신을 차린 놈들도 있더군요. 그 화살은 다 나 사범님이 쏘셨다던데, 어떻게 쏘셨길래 전부 살아있습니까?”
“어…. 살살 쐈습니다. 원래 화살에 살살 맞으면 안 죽습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빗맞은 놈들도 있습니다.
권총을 쏘려는 손을 노리고 활을 쐈는데 화살이 배에 꽂힌 경우처럼 대놓고 빗맞은 것도 있었다.
합수부 형사가 물었다.
“살살이요? 화살이 앞뒤로 관통한 놈도 있던데요?”
“뚫고 지나가진 않았잖습니까?”
“하, 하하. 그렇죠. 와. 그런데 권총을 잘 쏘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활도 진짜 잘 쏘시네요. 올림픽에 나가셔도 되겠습니다.”
“어….”
나강인이 말을 돌렸다.
“저는 가봐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범인은 다 체포했고 목격자도 많습니다. 여기 남아계시면 선생님을 찾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오늘은 가시는 게 낫겠네요.”
형사가 단서를 달았다.
“그런데 사안이 사안이니까, 내일 따로 만나서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평소에 만나던 카페에서 내일 뵙죠. 저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듣고 싶으니까요.”
***
프프걸스 네 명은 사복을 입고 있었다. 공연은 당연히 취소되었다.
나강인은 네 사람을 조용히 빼돌려 그의 차에 태웠다.
막내 최지혜가 뒷좌석에서 물었다.
“우리 이제 고기 먹으러 가요?”
나강인이 차를 몰면서 대답했다.
“당연하지. 여기서 멀지 않아.”
제작 거점까지는 거리도 가깝고 도로도 막히지 않아 도착까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총권도 수련생 다섯 명 중에 셋이 그곳에 있었다.
“앗! 아저씨들!”
경호관 최남수가 손을 들었다.
“병아리들 왔냐? 오늘 고생 많이 했다며?”
막내 최지혜가 자랑했다.
“진짜 전쟁 터진 줄 알았어요. 저도 나쁜 놈하고 막 싸우면서 권총을 발로 막 차고 그랬어요.”
“어? 뭐? 네가 왜 그런 것까지 해?”
“선생님이 시킨 줄 알았거든요.”
최남수가 나강인을 보았다.
“나 사범님?”
“제가 시킨 거 아닙니다. 쟤가 착각하고 갑자기 적의 권총을 걷어차서 저도 당황했습니다.”
소지영은 아까도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녀가 최지혜의 등을 때렸다.
“넌 진짜 위험하게 왜 그랬어!”
“선생님이 막 자연 체조 2단계 이야기도 하고 학다리 이야기도 하니까, 체조에서 배운 동작으로 걷어차라는 줄 알았지.”
나강인이 말했다.
“내가 설마 너한테 그러라고 시키겠냐?”
그 말을 듣자마자 프프걸스 네 명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우리한테 연습시킬 때 보면 당연히 그러실 듯.”
“맞아. 훈련 때는 피도 눈물도 없으시잖아.”
“그래도 우리 체력이 좋아지긴 했잖아?”
“야! 너 누구 편이야! 좋다고 하면 훈련이 더 힘들어진다고!”
“앗! 그러면 안 되는데!”
제작 거점에서 신은하가 나와 두 팔을 벌렸다.
“왔어?”
네 사람이 우르르 달려가 신은하에게 안겼다.
“언니!”
“진짜 무서웠어요!”
“막 총알이 날아오는데 방패가 출렁이고 막!”
“지영이 언니가 방패 들고 앞에서 막아주고 그랬어요!”
나강인이 물었다.
“다른 배우들은?”
“보라네 엄마가 걔 데리러 오셨어.”
이보라의 부모님은 나강인과 같은 동네에 산다. 그곳은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았다.
“아줌마가 오신 김에 다른 애들도 다 데려갔어. 여기서 일을 방해하는 것보다 집에 가는 게 나을 거 같아서 내가 다 보냈지.”
“네가 그 핑계로 다 쫓아낸 건 아니고?”
“어머. 표 나?”
“넌 왜 안 갔는데?”
“에이. 나까지 왜 보내려고 그래? 난 오늘 일이 오래 걸리면 손님들한테 라면이라도 끓여주려고 남았지.”
“어…. 고기를 그렇게 먹었는데?”
“내가 남아서 불만이야?”
“잘했다고. 지금부터 다시 고기 굽자. 얘들이 고기 먹으러 왔어.”
매니저의 차는 좀 늦게 도착했다. 그 차에는 민영희도 타고 있었다.
민영희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순기는 못 와요. 현장에서 처리할 게 많아서요.”
그녀는 아까 빌려준 방탄 방패 두 개도 가져왔다.
“이건 도로 반납하려고 가져왔어요.”
“증거품으로 제출하라고 안 하던가요?”
“어수선할 때 얼른 챙겼죠. 나중에 달라고 하면 알아서 해결하세요.”
매니저도 차에서 내렸다.
“얘들아. 다들 괜찮….”
그의 눈에 그릴에 수북하게 쌓여서 구워지는 고기와 그걸 미친 듯이 흡입하는 프프걸스 네 명이 보였다.
매니저는 당황했다.
“어…. 저기 너희들….”
그중 세 명은 맥주도 마셨다.
“캬아! 고기랑 맥주! 이 맛이지!”
“오늘 고기 너무 맛있어!”
“이런 거 매일매일 실컷 먹고 싶다!”
최지혜만 맥주 대신 사이다를 마셨다. 그러다 매니저를 발견했다.
“앗! 매니저 오빠가 벌써 왔다!”
“여기 와서 같이 먹어요!”
매니저가 한마디 했다.
“너희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많….”
신은하가 다가왔다.
“어머. 우리 회사에서 자주 봤죠?”
“아, 네. 신은하 씨.”
“내가 오늘 같은 일에 경험이 많아서 아는데.”
신은하는 총격전에 휘말린 경험이 많은 연예인이다.
“그 스트레스를 먹어서 풀 수 있으면 싸게 먹히는 거니까 그냥 놔둬요. 어차피 며칠은 공식 스케줄 못 할 텐데.”
“네? 왜 못 합니까? 내일 당장 스케줄이 있는데요.”
신은하가 피식 웃었다.
“회사 간판 내릴 정도로 욕을 먹고 싶으면 오늘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살아온 애들을 내일 일하라고 등 떠밀어서 내보내든가.”
“아! 그러면 안 되겠네요.”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온 김에 같이 고기 먹어요. 우리 집 고기 맛있어요.”
***
총탄이 빗발치는 곳 한복판에서 목숨 내걸고 촬영하는 건 종군기자에게도 여러운 일이다. 보통 사람은 어지간하면 그러지 않는다.
그런데 전장 한복판이 아니라 그나마 덜 위험한 외곽에 있으면 일반인도 현장을 찍을 수 있다.
사건 현장인 유원지에는 지역 축제가 열려 관광객이 많이 방문했다. 수백 명이나 되는 관광객 중에 당시 상황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람은 세 명이다.
전투 영상은 세 사람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촬영했다.
그중 제일 먼저 촬영한 사람은 나강인이 첫 발을 쏘기 전부터 현장을 찍었다.
그는 원래는 축제 현장의 사람들을 찍으려고 스마트폰의 동영상 촬영 모드를 켰다. 그런데 그때 전투가 벌어지는 바람에 나강인의 첫 공격이 우연히 찍혔다.
그가 촬영한 위치는 나강인의 뒤쪽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렇게 멀리서 찍으면 사람의 모습을 상세하기 구분하긴 어렵다. 게다가 찍힌 건 뒷모습뿐이다.
그래도 나강인이 어떻게 공중으로 점프하며 첫 발을 쏘는지는 확실히 촬영했다.
그는 그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영상 게시물 밑에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 와! 공중으로 점프해서 활을 쐈는데, 저렇게 먼 거리에서 정확히 권총을 맞혔어!
- 활 실력 진짜 쩐다!
- 양궁 선수야?
- 난 다른 게 더 놀라운데요? 팔을 옆으로 휙 뻗으니까 손에서 활이 저절로 생겼어요!
나강인은 오늘 전투에서 접이식 활을 사용했다.
- 저거 마법 활인가?
- 활줄을 손으로 걸잖아요. 마법이 아니라 신기술로 만든 활이겠죠.
두 번째로 동영상을 찍은 사람은 나강인이 단층 건물 옥상으로 이동한 후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첫 번째 촬영자와는 찍는 방향이 달랐다. 게다가 이번에는 나강인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영상 시작 부분에는 적이 건물 옥상으로 사격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다 사격 방향이 바뀌었다. 곧바로 나강인이 접이식 헬멧을 쓴 상태로 단층 건물 옥상에서 위로 높이 점프했다.
아래에서 위로 촬영한 영상에는 마치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였다.
- 난다!
나강인은 하늘을 날면서 활을 쏘았다. 금속으로 만든 화살은 햇빛을 반사하면서 날아갔다. 영상에서는 빛이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 화살이 아니라 레이저냐!
적이 화살을 맞는 순간에는 영상에 모자이크가 들어갔다. 그래서 정확히 어디를 맞았는지는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권총을 쏘던 놈이 그 빛나는 화살에 맞아 고꾸라졌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 나이스 샷!
- 저렇게 높이 점프하면서 쐈는데도 저게 맞네.
- 심지어 상대는 총을 쐈는데 그걸 피하면서 공중에서 쏜 활이 맞았어요.
- 공중 무빙샷 지리네요.
총격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진 후부터 사람들이 도망치는 모습도 보였다. 그 영상은 흔들리다가 끝났다.
사람들은 아쉬워했다.
- 여기서 끊으면 어떻게 하냐고!
-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그러다 새로운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프프걸스가 있던 무대와 가까운 곳에서 찍은 영상이었다. 그건 짧은 영상 몇 개로 나누어져 있었다.
프프걸스의 앞쪽으로 박순기와 민영희가 달려와 방패를 세우는 영상이 제일 먼저 올라왔다. 프프걸스 세 명은 즉시 두 사람의 뒤로 몸을 날려 엎드렸다.
- 몸 날리는 동작 날렵한 거 보소.
- 아이돌인데도 유격 좀 하셨나 봄.
두 번째 영상은 적이 사격하는 부분부터 시작됐다. 총탄이 방탄 방패에 연달아 꽂혔다. 그때마다 방패가 출렁였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당황했다.
- 저 방패 뭐야?
- 방탄 방패?
- 방패가 왜 출렁이는데?
- 평범한 철판이 아닌 거야?
드래곤 플레이트 기술로 만든 그 방패는 총탄이 명중할 때마다 동심원 형태로 흔들리며 충격을 흡수했다.
- 방어막이냐!
- 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