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14화 (314/411)

314. 빈집

합수부장이 기자들에게 유원지 총격 사건 수사 상황을 설명했다.

합수부가 차 이사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그게 기사화되면, 적에게 그만큼의 정보를 갖다 바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합수부장은 이 작전의 원래 목적인 차 이사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에 유원지에서 거둔 실적을 실컷 자랑했다. 민간인 부상자가 없다는 것이나 현장에서 범인을 모두 체포했다는 것은 자랑하기 좋은 이야기였다.

범인들은 화살을 맞긴 했지만 사망자는 없다. 그 이야기도 적당히 풀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합수부장이 발표한 것 중 상당수는 이미 아는 내용이다.

기자들은 헬멧을 쓰고 나타난 세 사람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각자 용, 곰, 여우 모양 헬멧을 썼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소속이 어디입니까?”

“정보기관에서 키운 비밀요원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이번에는 합수부에 파견 나온 경찰 간부가 앞으로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번 작전은 우리 경찰 요원의 철저한 통제하에 이뤄졌습니다.”

“그럼 그 요원들은 경찰 소속입니까?”

“직접 만나보시죠. 우리 요원을 소개하겠습니다.”

경찰 요원 박순기가 브리핑실로 들어와 간부 옆에 섰다.

간부가 말했다.

“오늘 현장에서 활약한 우리 요원입니다. 사정상 한 명만 이곳에 온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박순기의 신분은 이번 사건이 경찰의 통제하에 해결됐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박순기는 얼굴을 모두 가리고 눈만 나오는 복면을 썼다. 그건 대테러 특수부대에서 작전을 뛸 때 흔히 쓰는 복면이었다. 옷도 일부러 경찰특공대 제복을 입었다.

박순기를 향해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기자들이 질문했다.

“소속과 계급, 이름을 말씀해 주십시오!”

“대외비입니다.”

경찰 간부가 옆에서 설명했다.

“우리 요원의 신분이나 기타 자세한 사항은 대외비입니다. 질문하지 말아 주십시오.”

기자들이 다급히 손을 들었다.

“혹시 어제 날아다니면서 활을 쏘던 그 사람입니까?”

“잠깐만요. 저 사람은 체형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체격이 건장한 걸 보면 곰 요원이겠네요.”

경찰 간부가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요원의 신상은 비공개 정보입니다. 다른 질문을 해주십시오.”

“곰 요원은 여기 있는데 여우 요원은 어디 있습니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드래곤은 누구입니까?”

“그것도 대외비입니다.”

다른 기자가 손을 번쩍 들고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예전에 강남 7층 건물에서 벌어진 국제 용병과의 전투나, 서해 유람선에서 발생한 해적단과의 전투에서 사람들을 구출한 비밀요원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오늘 활약한 드래곤 요원이 맞습니까?”

경찰 간부는 당황했다.

“네? 아니, 갑자기 이번 사건과는 상관 없는 옛날 일을 꺼내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 아닙니까?”

“대외비입니다. 다른 걸 물어보시죠.”

***

이튿날 나강인이 합수부 형사를 카페에서 만났다.

형사가 말했다.

“어제 유원지 사건으로 언론이나 인터넷 모두 난리가 났더군요.”

국제 용병 자칼 사건이나 낙귀 해적단 사건 때도 기사가 많이 나긴 했지만, 이 정도로 관심을 받지는 않았다.

“수습이 잘 안 되나 봅니다?”

“전투 영상 여러 개가 인터넷에 공개되는 바람에 저희가 덮을 방법이 없어졌습니다.”

나강인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차피 얼굴이 공개된 건 없던데 무슨 문제야 있겠습니까?”

“어제 브리핑에는 일부러 순기만 복면을 씌워서 내보냈습니다. 혹시 정보가 샌다 하더라도 순기 선에서 차단할 수 있게요.”

박순기의 정체는 경찰이다. 브리핑 때도 그렇게 발표했다. 그러니 곰 요원이 누군지 알려져도 바뀌는 건 없다.

나강인이 물었다.

“어제 넘겨드린 두목은 어떻게 됐습니까? 뭐가 좀 나왔습니까?”

합수부 형사가 주변을 슬쩍 보았다. 엿듣는 사람은 없었다.

“그놈은 차 이사가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그럼 최측근이겠군요.”

“예. 선생님 예상대로더군요. 그놈은 차 이사의 대포폰을 대신 확인하는 일을 할 정도로 최측근입니다.”

“어제 붙잡은 다른 부하들은 차 이사를 잘 모를 테고요.”

“그것도 맞습니다. 두목은 대포폰을 켜서 확인할 때도 부하들이 안 볼 때 했다더군요.”

“그래서 부하들이 차량 번호판을 가짜로 바꿔치기하는 동안 두목은 한쪽에서 혼자 대포폰을 켠 거군요.”

“예전에는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는데, 요즘은 경찰이 차 이사를 찾는 걸 알고 더 조심했다더군요. 대포폰도 안전히 확실히 보장됐다 싶을 때만 확인하고요.”

형사가 씩 웃었다.

“그래 봤자 선생님과 우리한테 잡혔지만요.”

나강인이 다른 걸 물었다.

“그놈이 가지고 있던 대포폰이 그거 하나던가요?”

나강인이 찾아낸 건 바하테크와 연결된 대포폰이다. 그 번호를 알아내서 추적하다가 유원지 사건까지 해결했다.

“아니죠. 그놈이 소지하고 있던 대포폰이 하나 더 있었고, 그놈 집을 수색했더니 두 개가 더 나왔습니다. 모두 네 개입니다.”

“그 네 개의 폰으로 각각 누구와 통화했는지 확인하면, 바하테크 사장 같은 기술 도둑놈을 더 찾을 수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기술을 훔치려는 놈은 물론이고 빼내서 넘겨준 놈도 싹 다 잡아야죠.”

합수부 형사가 활짝 웃었다.

“지금 윗분들은 우리 합수부가 대박 실적을 챙기게 됐다면서 축제 분위기입니다.”

“어제 차 이사 패거리와 싸우던 놈들은 조사하셨습니까?”

“그놈들은 차 이사가 빼돌린 기술을 사러 외국에서 입국한 놈들입니다.”

“거래하러 와서 왜 싸웠답니까?”

“건물 밖에서 유원지를 감시하던 놈이 우리 쪽 외부 팀의 움직임을 눈치챘습니다. 그런데 그놈들은 그 팀을 차 이사가 보냈다고 착각했더군요. 차 이사가 자기들을 속였다고 생각하고 바로 빵. 그렇게 된 거죠.”

“음…. 외국에서 누가 보냈는지는 알아내셨고요?”

“아니요. 그건 입을 다물고 있어서 저희가 계속 수사 중입니다.”

나강인이 제일 중요한 문제를 물었다.

“두목이 차 이사의 얼굴을 안답니까?”

합수부 형사가 씩 웃었다.

“흐흐흐. 그놈은 처음에는 모른다고 잡아뗐지요. 대신에 그놈 부하들이 실토했습니다. 차 이사를 직접 만나는 건 두목뿐이라더군요.”

“그놈 반응은요?”

“부하들과 다자대면을 시켰더니 항복하고 지금은 몽타주 작업에 협조하고 있습니다.”

합수부 형사의 눈이 번뜩 빛났다.

“얼굴 몽타주만 나오면 차 이사 그 새끼를 잡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차 이사를 잡는 건 제가 안 도와드려도 되겠군요.”

합수부 형사가 밝게 웃었다.

“방어나 구출 작전도 아니고 찾아서 잡는 일인데, 당연히 저희가 끝장을 봐야죠. 하하하.”

나강인만 이야기를 들으려고 만난 건 아니다. 그는 합수부 형사에게 어제 놈들을 어떻게 찾아내고 잡았는지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형사가 물었다.

“그런데 저기….”

“말씀하시죠.”

“정말 올림픽이나 프로야구 쪽은 안 하십니까? 인터넷에 그 이야기가 워낙 많이 나와서요. 하, 하하.”

“안 합니다.”

“이종격투기 대회에 나가셔도 될 텐데요.”

“그것도 안 합니다.”

형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사용하신 금속 화살은 저희가 현장에서 모두 회수했습니다. 굉장히 정교한 구조의 화살이더군요. 그러니까 그 화살 출처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하, 하하. 접이식 활도 직접 만드시고 거기다 접이식 화살까지…. 이거 참. 그것 자체로는 불법무기는 아닌데, 누가 앙심을 품고 걸면 걸릴 수도 있어서….”

“이번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나 써야죠.”

“활이 없으면 총을 빼앗아 쓰는 분이니까 차라리 활이 낫…. 그래도 다음부터는 남들 몰래 써주십시오. 어? 제가 지금 다음이라고 했습니까? 사건이 또 생기면 안 되는데….”

***

나강인은 합수부 형사와 헤어진 후에 철인기공 이태성 본부장을 만났다.

이태성은 설계팀 차지희와 함께 나강인의 제작 거점으로 찾아왔다.

이태성이 말했다.

“어제 그 유원지에서 싸우는 영상은 잘 봤습니다. 날아다니시던데요.”

“헬멧을 썼는데 그게 저인 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태성이 웃었다.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그렇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또 누가 있다고요. 그런데….”

이태성이 제작 거점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어제 처음 등장한 그 방탄 방패 말입니다. 드래곤 플레이트 기술로 만든 거지요?”

옆에서 차지희가 설명을 보충했다.

“전투 영상을 분석했어요. 무늬 패턴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 특성은 드래곤 플레이트와 유사했어요.”

나강인이 대답했다.

“뭐, 그렇죠.”

이태성이 눈을 반짝였다.

“입는 형태의 드래곤 플레이트는 사람의 체형이 다르면 설계를 다시 해야 하지만, 그 방패는 들고 다니는 장비니까 그럴 필요가 없겠던데요? 누가 쓰든 디자인이 다 똑같을 테니까요.”

“그것도 그렇지요.”

“그럼 그 방패를 저희가 만들고 싶습니다.”

나강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게 팔리겠습니까? 부품을 정밀하게 하나하나 만들어서 조립하려면 제작비는 많이 드는데, 정작 방탄성능은 경찰용 방탄 방패보다 나을 게 없거든요. 오히려 총탄을 여러 발 맞으면 뚫리니까 경찰 방탄 방패보다 내구도는 낮습니다.”

“그걸 방패로 팔려고 하면 망하겠죠. 그런데 그거, 원래는 방탄 승용차에 쓰는 거라면서요?”

“별걸 다 아시네요.”

“저희는 경찰용 장비도 다양하게 만들어서 정부에 납품합니다. 정부기관에서 어젯밤에 문의가 왔습니다. 드래곤 플레이트 기술이 적용된 방탄 승용차용 내장재를 우리 회사에서 만들 수 있냐더군요.”

철인기공은 드래곤 플레이트 방탄복의 생산과 판매를 담당하는 곳이다.

나강인이 머리를 굴려보았다.

“음….”

AI 전지인이 대답했다.

- 가능합니다.

“철인기공이라면 만들 수 있긴 한데….”

이태성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방패의 라이센스를 우리 회사에 주시면 잘 만들어서 팔겠습니다.”

“그런 게 팔릴까요?”

“방탄차가 가벼워지면 기동성이 올라갑니다. 두꺼운 철판 대신에 그 방패를 넣으면 차의 무게가 줄어드는데 당연히 팔리죠.”

“비쌀 텐데….”

“가격 문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방탄 승용차는 원래 주문제작이라서 무척 비쌉니다.”

“철인기공에서 차까지 만드시게요?”

“하하. 아니죠. 당연히 국내 자동차 회사와 협업으로 만들어야죠. 설계만 맡아주시면, 나머지는 저희가 다 해결하겠습니다.”

이태성이 말하는 김이 하나 더 부탁했다.

“자동차 회사와 회의할 때 참석해주시면 일이 더 쉽게 진행될 겁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요원님. 눈먼 돈입니다. 어서 허락하십시오.

“흐음.”

- 요원님. 장난감 회사에서 짝퉁 헬멧이 나올 거라고 아쉬워할 땐 언제고 이런 걸 고민하십니까?

“알겠습니다. 그러시죠.”

이태성이 활짝 웃었다.

“하하하. 저도 이제 방탄차를 타고 다니겠네요. 아. 방탄차는 수출에 주력할 겁니다. 사실 국내 수요는 별로 없습니다. 정부에 납품할 물량 외에는 거의 다 수출용이죠.”

이태성은 제작 거점 밖으로 나간 후에, 회사로 전화를 걸어 프로젝트 진행을 지시했다.

설계팀 차지희가 나강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직책상으로는 나강인이 차지희의 팀장이다. 하지만 나강인은 설계만 하고 팀 운영에 관한 일은 차지희가 거의 다 한다.

나강인은 차지희에게 일을 다 떠넘긴 게 생각나서 조금 뜨끔했다.

“왜 그렇게 봅니까?”

“‘운명의 창’ 잘 봤어요.”

“응? 그 이야기를 왜 굳이 나한테….”

“나 팀장님이 그 영화의 무술감독을 맡으셨다면서요.”

“철인기공이 나한테 관심이 정말 많네요. 그건 또 어디서 들었습니까?”

“본부장님 동생분이 THO 엔터 사장님이시잖아요. 본부장님한테 들었어요.”

THO 엔터는 ‘운명의 창’을 만든 영화사다.

차지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팀장님. 제가 김유찬 님 팬이에요.”

김유찬은 그 영화의 주인공이다.

“싸인은 직접 받아요.”

“쳇.”

그녀가 다른 걸 시도했다.

“그러면요. 고생하는 팀원을 위해서 김유찬 님과 같이 식사 자리라도….”

“어림도 없죠?”

차지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가 물었다.

“팀장님은 다음에는 어떤 작품에 참여하세요?”

“KMTV의 새 드라마? 조만간 촬영 시작하겠네요.”

차지희가 손뼉을 쳤다.

“아! 김유찬 님이 주연을 맡으신 그 드라마!”

“진짜 팬인가 보네.”

“그럼 저 현장 견학, 아니, 엑스트라 자리라도…. 제가 연차 써서라도 갈게요.”

“유찬 씨와 같은 화면에 나와야겠네요? 카페 옆자리에 앉아있는 손님 같은 거?”

그녀가 활짝 웃었다.

“네! 바로 그거예요!”

“근데 난 힘 없어요.”

“아니라던데요? 힘 되게 세다던데요?”

“진짜 별걸 다 들었네.”

***

그날 밤에 나강인이 집으로 돌아갔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요원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도 봤다. 비어 있어야 할 옆집에 불이 켜져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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