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16화 (316/411)

316. 남현주

최진욱 피디와 도주희 작가는 온라인 투표로 드라마 주연을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최진욱이 배우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물론 세분 다 반대하시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하, 하하."

세 사람은 선호도 투표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할 만큼 유명한 배우다. 다른 드라마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한두 명은 테이블을 엎고 회의실을 나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세 사람 다 이 드라마에 꼭 출연하고 싶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상대를 빠르게 훑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불똥이 튀었다.

이 제안이 없던 일이 되려면 세 명 다 반대해야 한다.

한 명만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남는 사람들은 경쟁률이 낮아진다. 그러면 나간 사람만 손해다.

두 명이 나가면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자동으로 배역을 딴다.

오세나가 제일 먼저 결정했다.

"난 찬성. 우리 중에 내가 제일 유명하니까 어차피 내가 되겠지. 이쯤에서 인기 서열 정리를 한 번쯤 하는 것도 좋잖아?"

오세나는 히트작이 많은 만큼 팬도 많다. 게다가 천만 영화 ‘햇살 좋은 날’이 극장에서 내려간 건 최근이다. 그녀는 그 영화의 여자 주인공이다.

그녀의 수많은 팬이 투표에 참여해주면 그녀가 유리해진다.

신은하도 오세나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말했다.

"서열 정리? 좋네요. 요즘 ‘운명의 창’이 얼마나 떴는지 알죠? 난 그 영화의 히로인이고요. 당연히 내가 제일 많은 표를 받을 걸요?"

팬은 오세나가 신은하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오세나 주연의 ‘햇살 좋은 날’은 이미 극장에서 내려갔고, 신은하도 거기서는 주연급 조연을 맡았다.

그녀가 주연으로 출연한 ‘운명의 창’은 현재 극장에서 대박이 났다. ‘햇살 좋은 날’은 이미 종영했지만, ‘운명의 창’은 지금도 한창 상영 중이다.

그녀는 지금 투표를 하면 최근에 ‘운명의 창’을 본 관객들의 표를 받을 수 있다고 계산했다.

두 명이나 자신 있게 나왔는데 남현주만 반대할 수는 없다. 지금 분위기에서 혼자 반대하면 선호도 조사를 해보기도 전에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다.

싸워보지도 않고 졌다고 하는 건 온라인 투표를 하는 것보다 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게다가 그녀는 평소에 자신이 오세나보다 인기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일 최근 작품의 흥행에서 좀 밀리긴 하지만, 그만큼 회사의 홍보 지원을 더 받지 뭐.’

"좋아요. 나도 찬성. 대신에 우리가 창피하지 않게 시청자 투표의 배경 스토리를 잘 만들어줘요."

가슴을 졸이고 있던 최진욱이 활짝 웃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자연스러운 홍보 이벤트처럼 보이게 이미 시나리오를 짜놨습니다."

도주희도 활짝 웃었다.

"그럼 오늘 당장 인터넷 투표를 시작해서 내일 밤 자정에 결론을 낼게요. 아! 투표 기간을 더 길게 잡으실 거면 며칠 더 연장을…."

세 사람이 손이나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됐어요."

"뭐 좋은 일이라고 그런 걸 오래 해요?"

"짧게 하든 길게 하든 어차피 내가 이길 거니까 괜찮아요."

최진욱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지 않게 결정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하."

그는 이 회의실에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핑계를 댔다.

"당장 국장님을 만나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최진욱과 도주희가 눈빛을 교환했다. 도주희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국장님한테 같이 이야기해야 하니까 먼저 일어날게요."

두 사람은 도망치듯이 회의실을 나갔다.

이제 회의실에는 나강인과 배우 세 명만 남았다.

오세나가 신은하에게 말했다.

"의외다?"

"뭐가요?"

"네가 강인 씨 빽을 안 썼다고 한 말, 솔직히 안 믿었거든? 그런데 진짜였나 보다? 이렇게 나한테 유리하게 결정되는 걸 보면."

신은하도 여유를 부렸다.

"어머. 언니. 난 계속 공정하게 싸우자고 했잖아요. 그리고 결과는 뚜껑 열어봐야 아는 거예요. 난 내가 이길 것 같은데요?"

남현주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둘 다 나는 경쟁상대로도 안 보나 봐?"

오세나가 웃었다.

"어머어. 현주야. 우리는 올해 천만 영화의 여주인공인데, 넌 아니잖아? 시청자 투표에서는 그런 차이가 되게 크다?"

"그래서 이 드라마 다음엔 나도 나 감독님이랑 영화 하려고."

남현주가 나강인을 돌아보았다.

"나 감독님. 저 정말 감독님하고 같이 작품 하고 싶어요. 조금 전에 감독님이 제 스타일이라고 말한 거는요. 팬이라서 농담한 거예요. 아시죠?"

"아. 그렇습니까? 설렐 뻔했는데."

그녀의 눈이 커졌다.

"어머! 진짜요?"

"저도 농담입니다만?"

"네? 아. 쳇."

***

권도운은 유명한 프로게이머다. 최근에는 바하테크에서 주최한 월간 게임 대회에서 최종 보스팀을 이끌었다.

권도운이 KMTV 방송국 복도를 걸어갔다. 그는 오늘 녹화하는 예능 토크쇼에 게스트로 초대받았다.

같이 걷고 있는 피디는 게임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이 캐슬 대회는 잘 봤습니다. 최종 보스전이 오랜만에 열린다고 해서 챙겨 봤는데, 진짜 멋진 경기더라고요."

"아. 그거요. 저도 국제대회처럼 치열하게 싸울 줄은 몰랐습니다."

"김유찬 씨가 게임을 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중계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비공식 대회라서 그런지 게임 화면만 나와서 아쉬웠죠."

"김유찬 씨가 카메라에 잡혔으면 더 대박이었겠죠."

"그러게 말입니다. 바하테크가 방송을 그렇게 모릅니다. 톱스타가 토너먼트 우승팀에 있으면 최소한 인터넷 스트리밍으로라도 중계방송을 했어야죠."

프로게이머는 혼자 기록경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아니다. 팀 성적도 중요하고 팀의 인기도 중요하다. 팀이 망하면 팬이 떠난다. 프로는 팬이 없으면 굶어야 한다.

이런 방송출연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 개인은 물론이고 팀의 인기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

권도운이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 방송에서 김유찬 씨를 중심으로 게임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효과가 더 좋겠네요?"

"하하하. 꼭 김유찬 씨 이야기만 하실 필요는 없는데, 그 비중을 높게 가져가 주시면 반응이 좋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잘…. 어?"

권도운이 복도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강인과 최진욱 피디가 복도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AI 전지인이 나강인에게 보고했다.

-게임 대회 최종 보스전에서 싸웠던 상대를 발견했습니다.

프로게이머 권도운의 얼굴 옆에 그의 신상정보가 홀로그램으로 떴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수준의 간단한 정보였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날 알아본 것 같지?"

나강인은 대회 당일에 마스크를 썼다.

-반응을 보면 그렇습니다. 상대의 눈썰미가 평균 이상입니다.

"눈이 좋으니까 게임도 잘하나 보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권도운이 먼저 활짝 웃었다.

"이쪽 업계에 계시다더니, 진짜 여기서 만나네요?"

"그러게요. 이렇게 복도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나중에 게임에서 만나시죠. 친추 신청 좀 받아주세요. 우리 팀원들이 다 신청했는데요."

"아. 제가 바빠서 그 대회 이후로는 게임에 접속을 안 해서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거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지나갔다.

최진욱 피디가 나강인에게 물었다.

"아는 분이세요? 배우는 아닌 것 같은데."

"게임을 하다가 만난 분입니다."

"게임 좋아하시나 봐요? 우주전쟁?"

"전설의 레전드요."

"아. 그거 요즘 많이 하죠. 우리 때는 우주전쟁이 대세였는데 말이죠."

"그냥 가끔 하는 정도입니다."

프로게이머 권도운과 같이 있던 피디는 게임을 무척 좋아한다. 그가 물었다.

"권도운 씨. 저분하고 잘 아세요?"

"아니요. 하이 캐슬 게임 대회 최종 보스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네? 거기 저분이 왜 가셨…."

"토너먼트 우승팀의 선수셨어요."

피디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럴 리가…. 닉네임이 뭔데요?"

"전투지원가에잇이요."

피디는 깜짝 놀랐다.

"헉! 에잇이요?"

"네. 왜 그러시는지…."

"아니, 나 감독님이 에잇이었어요?"

이번에는 권도운이 놀랐다.

"네? 저분이 감독님이세요?"

"무술감독님이죠."

"아하. 그래서 손이 빠르신가 보네요."

"아니, 저분은 손만 빠른 게 아니라…."

피디가 손뼉을 쳤다.

"아! 그래서 저분이 김유찬 씨하고 같은 팀으로 싸우신 거구나! 도운 씨. 이따가 방송 시작하면, 김유찬 씨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에잇 이야기도 좀 할까요?"

"네? 이야기라고 해봤자, 개인적으로는 저분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데…."

"저도 아는 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에잇이 게임을 어떻게 했는지는 설명할 수 있잖습니까?"

"어…. 그야 그렇죠."

흥분한 피디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얼른 가시죠. 에잇의 경기 영상을 좀 더 떠놔야겠네요. 우리 녹화는 반쯤 생방송이니까 자료는 미리 준비할수록 좋죠."

***

프로게이머 권도운이 게스트로 출연한 예능 토크쇼는 녹화에 특이한 방식을 사용한다.

진행자는 한 명인데 게스트는 보통 두세 명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특이할 게 없다.

그런데 그 방송은 녹화 현장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다.

시청자는 토크쇼를 녹화하는 모습을 보며 채팅창에 글을 쓸 수 있다.

다만 모든 시청자가 채팅을 치면 글이 너무 빨리 넘어가서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채팅을 읽는 건 제한이 없지만 쓰는 건 사전에 신청한 사람만 할 수 있다.

사회자와 게스트는 토크쇼를 진행하다가 시청자들이 재미없어하면 바로 주제를 바꾼다. 채팅에 재미있는 질문이 올라오면 현장에서 소재로 삼기도 한다.

소통에 채팅만 사용하는 건 아니다. 미리 선정된 시청자와 영상통화도 자주 한다.

그 방식은 인기가 제법 있었다.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녹화 현장을 보는 시청자도 상당히 많았다.

그 프로그램은 그런 식으로 온라인 소통형 녹화방송을 한 후에, 나중에 재미있는 부분만 편집해서 TV 방송에 내보낸다.

진행자가 질문했다.

"그러니까 그 게임 대회에서 최종 보스전까지 열리는 건 흔한 일은 아니네요?"

권도운이 대답했다.

"그렇죠. 서너 달에 한 번 정도?"

권도운이 채팅창을 슬쩍 보았다.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3차전은 져준 건가요?

"최종 보스전 3차전에서 진 거요? 당연히 아니죠. 저도 당황했습니다. 설마 우리 팀이 일반인 팀한테 질 줄은 몰랐거든요."

다른 사람의 채팅이 바로 올라왔다.

-누가 봐도 져준 건 아니죠. 에잇이 얼마나 쩔었는데요.

"맞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상대 팀의 실력이, 특히 전투지원가에잇이 쩔긴 했습니다."

채팅만 보는 게 아니라 시청자와 영상통화로 대화도 했다. 본방송에는 재미있는 영상통화만 편집해서 나간다.

영상통화 화면 속에서 시청자가 눈을 반짝이며 질문했다.

"저 김유찬 님 팬인데요. 그분이 진짜 게임을 그렇게 잘하세요?"

"네. 김유찬 씨 실력이면, 일반 게이머 세계에서는 기침 좀 하시겠더군요."

"꺄아아!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었어!"

문자 채팅창에는 전투지원가에잇에 관한 질문이 많이 나왔다.

-직접 만나보셨으니까 아실 텐데요. 에잇은 혹시 정체를 숨긴 프로게이머입니까?

"에잇 님이요? 일단 국내에는 그런 연습생이나 프로가 있다는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외국에서 활동하시냐고 물어봤더니 그것도 아니라더군요. 일반인 맞습니다."

-일반인의 실력이 아니던데요?

"그래서 저도 정말 놀랐습니다. 에잇이 만약 프로게이머가 된다면 상대하기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 에잇이 프로 쪽으로 오지 않기를 바라시겠네요?

권도운이 씩 웃었다.

"아니요. 저는 에잇이 프로게이머 세계로 오면 무척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원래 강적이 나타나면 상대도 더 강해지는 법이니까요. 아마 경기가 더 치열하고 흥미진진해질 겁니다."

시청자들이 채팅을 연달아 쳤다.

-에잇은 진짜배기죠.

-전설의 레전드는 팀플레이가 중요해서 개인 랭킹 1위가 프로게이머 최강자인 건 아닙니다.

-에잇의 개인 피지컬은 인정하지만 전술 능력은? 검증된 적이 없잖아요.

-지휘를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할 것 같은데요?

김유찬의 팬이 질문했다.

-그럼 김유찬 님하고 에잇하고 누가 더 잘해요?

권도운이 대답하기도 전에 채팅이 주르륵 올라왔다.

-김유찬은 자기가 더 잘한다고 할 걸요?

-피지컬을 보면 무조건 에잇 승이죠.

-에이. 서로 싸워본 적이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해봐야 알죠.

-해본 적이 없잖아요.

권도운이 말했다.

"두 분이 같이 일하면서 해봤을 것 같은데요."

-네? 김유찬 님하고 에잇하고 아는 사이에요?

"어…. 그게 말이죠. 저도 잘은 모릅니다. 하, 하하."

-어? 표정 보니까 진짜인가 본데?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지? 같이 일한다고 했으니까 배우인가?

-매니저일지도.

-방송국 직원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매니저나 방송국 직원이 에잇처럼 잘한다? 저라면 당장 때려치우고 프로게이머 합니다.

-하긴. 그 실력이면 프로게이머가 낫죠.

-정상급 프로게이머의 연봉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누구? 에잇은 배우라고 봐야죠. 그것도 인기 스타.

-왜요? 감독일 수도 있죠.

-에이. 설마요.

-그럼 누구죠? 게임 잘하는 배우가 몇 명 생각나긴 하는데, 그런 고수가 있었나요? 배우 중에서도 인기 스타라야 하잖아요.

-인기 스타인데 게임을 엄청 잘하는 사람이면…. 남현주?

-네? 남현주요?

-남현주가 게임 고수라는 건 팬들은 다 알아요.

-에잇은 남자 목소리였어요. 그러니까 남현주는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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