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17화 (317/411)

317. 경쟁

배우 남현주는 게이머다.

어릴 때는 대포 쏘기 게임부터 물풍선 게임까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건 다 잘했다.

중고등학생 때는 오락실에서 날렸다. 대전 게임도 잘했지만 춤을 추는 리듬 액션 게임을 할 때는 관객이 몰려들었다.

게임은 어른이 되어서도 좋아했다. 휴식기에는 집에서 온종일 게임만 하는 날도 많았다.

특히 전설의 레전드는 그녀 스스로 연예계 최강자라고 자부했다.

"당연히 김유찬보다 내가 더 잘하지. 그 녀석은 단지 대진운이 나보다 좋아서 결승에 간 거…라고 생각했는데."

KMTV 차기 드라마 주연의 온라인 선호도 조사는 내일까지 한다. 그녀는 그때까지는 스케줄 없이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그녀는 지금 프로게이머 권도운이 출연하는 방송의 녹화 생중계 현장을 인터넷으로 보고 있다. 거기서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에잇이 우리 쪽 사람이었어?"

그녀도 바하테크가 주최한 월간 게임 대회에 익명으로 출전했다. 하지만 그녀는 중간에 떨어졌다. 상대 팀에 에잇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지?"

생중계를 본 시청자들은 에잇이 인기 배우라고 추측했다.

그녀는 게임을 좋아하는 인기 배우가 누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나를 제외하면 김유찬이 제일 유력한데 에잇하고 같이 출전했으니까 당연히 아니고…."

게임을 잘하는 인기 연예인이 몇 명 더 떠올랐지만 에잇처럼 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김유찬과 아는 사이다. 나이도 동갑이다.

"그냥 직접 물어봐야겠다."

그녀가 김유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유찬이 실실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누구야? 나랑 같이 주연을 맡을 확률이 33%나 되는 현주잖아.

"놀리냐?"

-흐흐. 내가 너 응원하는 거 알지?

"진짜? 그럼 미리 좀 도와줬어야 할 거 아냐! 너라도 여주인공으로 날 밀었으면 선호도 조사를 하는 사태까지 왔겠냐고!"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난 널 33%만큼 응원하고 있어.

"응? 33?"

"당연히 신은하와 오세나도 33%씩 응원하지."

똑같이 응원한다는 건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야!"

-뭘 기대했냐?

그녀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남는 1%는 누구야? 그거라도 나한테 주지?"

-1%의 응원은 공지현한테 해야지. 걔가 연기 좀 하더라고. 미래가 아주 기대돼.

"아. 그래. 1%는 걔 가지라 그래. 나는 네 1% 따위는 하나도 안 필요하니까."

-전화는 왜 했냐?

"물어볼 게 있어서."

-난 온라인 투표에서 누가 이길지 모른다. 그거 진짜 공정하게 한다더라.

"그거 말고!"

-그럼?

"혹시 에잇이 우리 업계 사람이야?"

김유찬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알았냐?

"어? 진짜야?"

-알려고 하지 마. 다쳐.

"이미 방송에서 다 깠거든?"

남현주가 지금 보고 있는 예능 토크쇼 녹화 도중에 나온 이야기를 알려주었다.

"에잇이 너랑 같이 일했다는 발언이 나와서 댓글 반응이 엄청 뜨거워. 그러니까 본방송에도 그 이야기가 그대로 나갈걸?"

-편집해달라고 요청해야겠네.

"이미 생중계 본 사람 많아. 그래서 누구야? 에잇이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

-알아서 뭐하게?

남현주가 입맛을 다셨다.

"에잇이랑 제대로 한판 하고 싶어서. 나도 그 대회에 나갔는데 하필 에잇을 상대 팀으로 만나서 떨어졌단 말이야."

-그거야 네가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고.

"닥치고 에잇이 누구인지나 말해."

-요즘 접속 안 하던데….

"에잇이 그 경기 이후로 게임에 접속 안 한 건 나도 확인해봐서 알거든? 그냥 순순히 정보나 내놔. 그러면 유혈사태는 없을 테니까."

김유찬이 잠시 조용해졌다가 입을 열었다.

-강인 씨.

"나 감독님이 왜?"

-강인 씨라고.

"그니까 뭐…."

남현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에잇이 나강인 감독님이었어? 어머! 대박!"

-확실히 말하는데 나랑 짜고 친 거 아니다. 난 내 실력으로 우승팀에 들었다.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럼?

남현주가 입맛을 다셨다.

"나처럼 게임 잘하는 남자잖아. 나 유단자인 거 알지? 나처럼 무술 잘하는 것도 그렇고, 진짜 여러 가지로 딱 내 스타일이네."

-김칫국 많이 먹어서 배부르겠다?

"이거 왜 이래? 나 남현주야! 내가 찍으면 안 넘어올 남자가 있을 거 같아?"

-불렀냐?

"너는 빼고!"

-강인 씨는 나보다 더하지. 그런데 말이야.

김유찬이 물었다.

-너 지금 게임이 중요한 상황이 아닐 텐데? 주연 선호도 조사가 더 중요한 거 아냐?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 남자 주인공이야. 핵심 관계자잖아.

그녀가 툴툴댔다.

"내일까지 투표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

-기다려? 너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 하는구나?

"뭔 소리야?"

-오세나가 SNS에 그 드라마 이야기를 슬쩍 띄웠던데?

"메이야? 끊어봐."

남현주가 즉시 오세나의 SNS를 확인했다. 딱 한 줄이 적혀 있었다.

[표 받고 싶다.]

-이 언니. 설마 정치하려는 건 아니겠죠?

-에이. 그럴 리가. 다른 표겠죠.

-공연 티켓 이야기인가?

-언니! 무슨 공연인데요? 내가 사줄게요!

-오세나가 설마 공연 표 한 장 못 구해서 이렇게 올렸겠어요? 다른 이유가 있겠죠.

남현주가 벌떡 일어났다.

"오세나! 역시 네가 사람 되는 것보다 개가 똥을 끊는 게 빠르지! 천만 영화 주연이니 뭐니 실컷 떠들더니 뒤에서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화를 내던 남현주가 얼른 자신의 SNS에 미소 짓는 사진이 포함된 글을 올렸다.

[소중한 한 표. 고맙습니다.]

"손 놓고 당할 순 없지."

***

신은하는 오세나와 남현주의 SNS를 보고 입에서 불을 뿜었다.

"이 언니들이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아주 그냥 주연에서 똑 떨어지고 공개적으로 쪽팔려봐야 정신을 차리지! 페어플레이 몰라? 페어플레이!"

그러면서 그녀도 SNS에 손가락 하트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유권자 여러분 사랑합니다.]

세 사람의 의도는 같았다.

오세나가 SNS에 글을 쓴 건 온라인 선호도 조사 홈페이지가 열린 직후였다. 그녀의 SNS를 본 팬은 그 홈페이지에 찾아가서 표를 줄 수도 있다. 그게 그녀의 의도였다.

그렇게 모은 표가 100개만 돼도 주연 경쟁에 영향을 끼친다.

오세나는 아예 한복을 입고 절을 하는 사진을 새로 올렸다. 그걸 본 신은하와 남현주도 제대로 차려입은 사진을 추가했다.

톱스타 여배우 세 명이 온라인에서 경쟁했다. 연예계 기자들이 그런 상황을 모를 수가 없다.

기자 몇 명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소속사에 전화했다. 홍보팀에서는 친절하게 미리 세팅된 정보를 알려줬다.

-아. 그거요? 드라마 홍보 이벤트예요. 저희가 이름만 빌려주는 거죠. 근데 왜 그런 SNS가 올라오냐고요? 그래야 더 재미있죠.

곧바로 기사가 몇 개 떴다.

[오세나, 남현주, 신은하. 3인방의 KMTV 드라마 선호도 홍보 이벤트]

[남자 주인공은 쌍천만 배우 김유찬.]

[톱스타 3인방의 자존심 대결?]

온라인 선호도 투표는 공식적으로는 홍보 이벤트로 위장되었다. 주연 캐스팅이 그 투표로 결정된다는 건 핵심 관계자들만 알았다.

아직 촬영을 시작도 안 한 드라마에서 왜 이런 이벤트를 하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긴 했다.

하지만 홍보 이벤트처럼 꾸며진 이번 일을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소속사도 경쟁에 참전했다.

남현주는 소속사의 간판 배우다. 소속사는 그녀를 위해 주연 자리를 따내려고 KMTV와 따로 협상한 적도 있다. 그 회사는 대놓고 홍보팀을 동원해 남현주를 지원했다.

오세나의 소속사도 바로 홍보 지원에 들어갔다. 그 회사는 즉시 효과가 날 만한 단기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했다.

신은하의 소속사인 SAH 엔터는 달랐다.

사장 서재현이 말했다.

"이 난장판에 우리까지 끼어들면 모양이 빠지잖아."

신은하의 매니저 박우섭 실장이 말했다.

"하지만 사장님. 우리만 손 놓고 있으면 은하가 사장님 멱살을 잡을지도 모릅니다."

"에이. 내가 사장인데 설마 그러겠냐?"

"은하의 계약 기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이번에도 지원 없이 구경만 하시면, 멱살은 안 잡아도 재계약은 안 할 겁니다."

신은하는 영화 두 편으로 스타가 됐다. 새 CF도 찍었고 차기작 제안도 여러 곳에서 들어오고 있다.

"그건 좀 아쉽긴 한데…."

박우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혹시 아직도 나강인 씨가 무서워서 그러십니까?"

서재현이 펄쩍 뛰었다.

"이거 왜 이래? 내가 누굴 무서워할 사람이야? 나 서재현이야!"

"예. 그럼 힘 좀 쓰시죠. 이 상황에서 우리만 가만히 있으면 나강인 씨한테도 욕먹을 겁니다."

서재현이 툴툴댔다.

"알았어. 한다고. 나도 원래 하려고 했어."

SAH 엔터는 등을 떠밀려서 이틀짜리 단기 홍보 전쟁에 참전했다.

세 기획사는 대놓고 광고를 띄우는 것만 빼고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남현주의 소속사는 그녀의 일상 기사를 쏟아냈다. 대부분은 친근한 느낌을 주는 기사들이었다.

그 기사는 모두 사실이긴 하다. 그런데 이번에 취재한 기사는 아니다. 전부 다 예전에 알려지고 기사화됐던 것을 다시 꺼내 재활용한 것이다.

그녀의 소속사는 이틀만 효과를 보면 된다는 생각에 그런 기사를 그냥 밀어붙였다.

오세나의 소속사는 연기력을 강조했다.

잡지사와 언론사 몇 곳에서 오세나의 과거 작품들을 소개하며 연기력을 칭찬하는 분석 기사를 인터넷에 게재했다. 소속사는 그걸 다시 여러 게시판에 퍼트렸다.

신은하는 두 회사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걸 보면서 물었다.

"박 실장 오빠. 우리 회사도 제대로 한다더니?"

매니저 박우섭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며 말했다.

"그러게. 사장님이 회사 차원에서 나서겠다고 하셨는데…. 아! 여기 있다."

"있어? 어디?"

박우섭이 검색한 걸 보여주었다.

"여기 봐봐. 신은하의 일상 기사. 여기도 있다. 신은하의 연기력 기사."

신은하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어…. 그러니까 일상 기사는 현주 언니한테 물량으로 밀리고, 연기력 기사는 세나 언니한테 작품 수에서 밀리겠네? 뭐야?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해! 등 떠밀려서 억지로 하는 게 너무 표가 나잖아!"

"그치? 사장님이 너무하시긴 했네. 그럼 하지 말라고 할까?"

"크아앙! 그런 말이 아니잖아!"

***

신은하는 현재 극장가를 장악한 ‘운명의 창’의 여자 주인공이다. 바로 앞에서 천만을 돌파하고 내려간 영화 ‘햇살 좋은 날’에선 주연급 조연을 맡았다.

그녀는 현재 충무로의 떠오르는 스타다. 사람들도 그녀를 좋게 보았다.

인터넷으로 투표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이 세 명의 이름을 보며 말했다.

"난 요즘 신은하가 좋더라."

친구가 옆에서 말했다.

"에이. 그래도 연기력 하면 오세나지."

다른 친구는 의견이 달랐다.

"지금 국민 첫사랑 남현주 무시하냐?"

***

신은하의 팬은 대부분 최근에 생겼다.

반면에 오세나와 남현주는 예전부터 팬이 많았다. 그런 팬일수록 홈페이지까지 찾아가서 투표할 확률이 높았다.

신은하는 어디를 가든 연기를 꽤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오세나와 남현주는 원래부터 연기파 배우로 유명했다.

그래서 신은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박 실장 오빠. 그래도 ‘운명의 창’이 인기 최고인 지금 투표를 하니까 내가 제일 유리하겠지?"

박우섭이 장담했다.

"당연하지. 이런 건 원래 시기가 중요한데, 네가 주연을 맡은 천만 영화가 절찬 상영 중이잖아. 원래 네 팬은 물론이고 그 영화의 팬들까지 널 찍어줄 거야."

"낙승이겠네?"

"낙승이지."

***

화장품회사 지구뷰티의 연구소 지현선 실장은 영화 보는 게 취미다. 그녀는 운명의 창을 세 번이나 봤다.

그녀가 선호도 조사 홈페이지에서 마우스를 신은하의 이름 쪽으로 옮기다 멈칫했다.

"잠깐만. 신은하가 주연이 되면, 운명의 창 남녀 주인공이 다시 주연을 맡는 거잖아. 그것도 전혀 다른 드라마에서."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안돼. 두 사람이 다른 작품에 주연으로 같이 나오는 건 싫어. 이미지가 섞이면 내 감동에 스크래치가 날 거 같아."

그녀는 그게 싫어서 오세나에게 투표했다.

그녀만 그런 게 아니다.

신은하와 김유찬이 새 드라마의 주연을 맡으면 영화 ‘운명의 창’의 느낌이 손상될까 봐 오세나를 찍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

투표 진행 상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결과만 내일 자정에 나온다.

신은하는 내일까지 스케줄을 잡지 않았다.

멍하니 기다리기만 하면 시간이 더 안 간다. 그래서 동네 피시방에 갔다.

"강인 오빠도 오늘은 피시방에 온다고 했으니까, 불잡탕조림이라도 만들어달라고 해야겠다. 오늘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화끈한 게 먹고 싶어."

그 피시방에는 그녀의 고정석이 있다. 그녀가 그곳으로 걸어가다가 멈칫했다.

"어?"

비어 있어야 할 미국 팝스타 알레이나의 고정석에 사람이 앉아있었다.

"호텔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왜 여기 있는데?"

그녀가 눈에 힘을 꽉 주며 알레이나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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