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 기자
경찰특공대 팀장의 질문에 나강인이 도로 물었다.
"저격수를 왜 배치합니까?"
"테러리스트를 추격 중이신 거 아닙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는데 꼬맹이가 공사장 구덩이에 사람이 떨어졌다고 구해달라더군요. 그래서 꺼내준 겁니다."
"이야아. 기특한 꼬맹이네요. 그리고 누굴 구하셨는지 몰라도 구출된 분은 운이 진짜 좋네요. 꼬맹이가 만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강인이 옆쪽을 가리켰다.
"구출된 당사자가 여기 있습니다만."
팀장이 옆으로 돌아보았다.
남현주가 선글라스를 위로 슬쩍 올리고 마스크는 내렸다.
팀장은 깜짝 놀랐다.
"헉! 남현주 씨? 아니, 귀한 분이 여기 왜 계시…. 허억! 그럼 구출된 분이!"
"네. 안녕하세요. 운이 진짜 좋은 남현주예요. 절벽에 매달려 있을 때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줄 알았지만요."
"하, 하하. 팬입니다."
"고맙습니다."
팀장이 얼른 나강인에게 물었다.
"폭발물은 어떤 타입입니까?"
"6.25 전쟁 때 항공기에서 투하된 불발탄입니다."
AI 전지인이 흙벽에 묻혀있는 폭탄의 정보를 허공에 띄웠다. 나강인이 그 정보를 그대로 읽어주었다.
폭탄의 현재 상태도 설명했다. 수십 년 동안 흙 속에 묻혀있었지만, 뇌관은 아직 살아있을 확률이 높았다.
팀장은 심각해졌다.
"대형 폭탄은 아니지만, 워낙 오래된 불발탄인 게 문제군요."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제일 좋은 건 외부로 옮긴 후에 안전한 곳에서 터트리는 거죠. 옮기다 시내에서 터지면 대참사니까 그게 좀 걱정되는군요."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해체 가능한 폭탄입니다.
AI 전지인이 해체 방법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나강인이 말했다.
"현장에서 해체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 공사장 구덩이 안에서 해체하면 그나마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가능할까요?"
"그럼요. 저걸 해체하려면 우선…."
나강인이 그 폭탄의 해체법을 홀로그램을 보면서 설명했다.
팀장은 폭탄 해체법을 여러 가지 알고 있다. 그런데 나강인은 그가 처음 듣는 방법을 설명했다.
"제가 생각한 해체 방식하고 좀 다르네요?"
"저 폭탄은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팀장은 나강인의 말을 의심하진 않았다.
국제 용병 자칼 사건 때 나강인은 강남 7층 건물 계단에 설치된 부비트랩을 AI 전지인의 도움을 받아 해체했다.
그는 나중에 경찰과 만나 당시 상황을 설명할 때, 부비트랩을 해체한 방법을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 문서는 현재 폭발물 처리반 내부 교육자료로 쓴다.
팀장은 그 해체 교육자료의 원본을 만든 사람이 나강인이라는 걸 지난번에 구출 작전을 같이 뛴 후에 알게 됐다.
팀장이 아예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기왕이면 여기에 도면도 좀…."
"아. 그게 낫겠네요."
나강인이 수첩에 그림을 그려가며 이 항공 폭탄에 딱 맞는 해체법을 적었다.
남현주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폭발물 해체 방법을 왜 나 감독님이 설명해? 그것도 해체하러 온 전문가한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특수부대 출신이야?’
그렇게 생각해봐도 여전히 이상했다.
‘아니, 설사 그렇다 해도 이미 제대한 사람한테 현직 전문가가 왜?’
그녀가 나강인이 수첩에 그리는 그림을 보았다. 정밀한 그림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그려지고 있었다.
‘그림도 진짜 잘 그린다.’
수첩이 작아서 해체법을 설명하려면 한 페이지로는 모자랐다.
팀장의 뒤에서 설명을 듣고 있던 팀원이 얼른 차로 뛰어가 노트과 펜을 가져왔다.
나강인이 넓은 종이에 더 자세한 불발탄 해체 설명서를 그렸다.
이젠 아예 폭발물 처리반이 다 모여서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하는 걸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중간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현주도 그사이에 끼어서 구경했다.
나강인의 설명은 쉬우면서도 자세했다. 폭탄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그녀조차도 어떻게 해체하라는 건지 개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대원들에게 설명하는 나강인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무술이나 영상 쪽 잘하는 건 소문으로 듣긴 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이 남자 되게 지적이다?’
나강인이 설명을 마치고 대원들과 의견도 주고받은 후에 말했다.
"질문이 더 없으면, 여긴 맡겨두고 저는 이만."
팀장이 물었다.
"아. 가시게요?"
"가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직접 도와드릴 수도 없는데. 기자들이 오면 불편하기도 하고요."
팀장은 해체까지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 그렇죠. 이건 우리 일이죠."
발견된 불발탄을 폭발물 처리반의 능력으로 해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강인의 조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대로면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필요하면 전화하시고요. 해체가 끝날 때까지 이 동네에 있을 테니까요."
"아. 그러십니까? 다행입니다."
나강인이 현장을 떠났다.
남현주가 슬그머니 나강인을 따라왔다.
나강인이 물었다.
"왜 따라와요?"
"우리 로드한테 데리러 오라고 연락해야 하는데, 스마트폰을 차에 두고 내렸어요."
"휴대폰 빌려달라고요?"
남현주가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어차피 전화번호 못 외워요. 요즘 번호 외우고 다니는 사람 없잖아요."
"본인 휴대폰 번호는 외울 텐데요? 차에 있다면서요."
"차에 있을 때 스마트폰 꺼놨어요. 괜히 검색하면 스트레스만 더 받아서 껐다가 그냥 내렸죠. 그래서 전화해봤자 신호 안 가요."
"난 지금 밥 먹으러 갑니다만?"
"어머. 잘됐다. 나도 밥 먹어야 하는데."
그녀는 원래는 본가에 가서 집밥을 먹으려고 이곳에 왔다가 공사장 구덩이에 빠졌다.
지금은 워낙 놀라고 흥분해서 밥 생각이 딱히 나진 않았다.
아까 그 공사장에 서 있다가 기자들과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은 마음을 안정시킬 편안한 분위기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집에 가면 부모님이 눈치채고 걱정한다.
그 선택지를 빼면 남는 건 나강인뿐이다.
‘옆에 있으면 든든하긴 할 거야.’
나강인이 물었다.
"지갑은 있어요?"
"아뇨."
"밥 먹어야 한다면서요?"
남현주가 눈을 반짝이며 입맛을 다셨다.
"그쵸. 밥 먹으러 가신다면서요?"
AI 전지인이 불평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더니 보따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갑시다. 그 고생을 했는데 밥이라도 맛있는 거 먹어야죠."
그녀가 얼른 나강인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맛집 찾아오셨다고 했죠? 어디로 가는데요? 여기 우리 동네라서 내가 잘 알아요. 안내할게요."
"이 근처에 맛있는 칼국수집이 있다던데."
"아! 거기 좋죠. 아니, 예전엔 좋았죠. 근데 거기 사장님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건물주가 직접 한다던데요? 그래서 이젠 맛이 그냥 그래요."
"음…. 기대했는데."
AI 전지인도 실망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맛집은 이제 맛집이 아니고. 망했습니다.
남현주가 설명했다.
"대신에 원래 사장님이 다른 곳으로 옮기셔서 새로 문을 열었어요. 그 새 식당도 우리 동네에 있는데 가실래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남현주를 구해준 보람이 있습니다. 어서 가시죠.
"거기도 줄 서야 합니까?"
"아뇨. 사장님이 옮기셨다는 게 소문이 덜 났거든요. 줄 안 서요."
"남현주 씨가 도움될 때가 다 있네요?"
"이거 왜 이래요? 나 남현주예요."
"빨리 갑시다. 배고프니까."
"네."
***
신문사 사회부 기자 고동환이 의자에 앉아서 하품을 크게 했다.
"흐아아암. 술이 안 깨네."
고참 기자가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 새끼. 술 좀 작작 처마셔라."
"에이. 이것도 다 취재 활동입니다."
"그런 핑계 대면서 맨날 남이 사는 술 처먹다가 훅 가는 사람 여럿 봤다."
"그래서 숙취해소제를 꼬박꼬박 마시는데요."
"그게 간 보호에 퍽이나 효과가 있겠다. 너 그 꼬라지로 중요한 건은 안 되겠고, 간단한 취재나 하러 나가."
"무슨 일인데요?"
"초등학생이 공사장 구덩이에 빠졌다가 구출됐대."
고동환이 의자를 옆으로 돌렸다.
"많이 다쳤대요?"
"아니. 다친 사람은 없다더라."
고동환이 손으로 턱을 만지며 견적을 냈다.
"공사장 안전 관리 문제로 엮으면 기삿거리로 나쁘진 않겠네요. 다른 정보는요?"
"그건 이제부터 니가 알아봐야지. 그러라고 보내는 거잖아!"
"어우. 갑니다. 왜 때리려고 그러세요."
***
칼국수는 맛있었다. 나강인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네요."
남현주가 칼국수를 깨작거리면서 말했다.
"이 칼국수 덕분에 제가 오늘 살아남은 거네요?"
"내가 없었어도 다른 사람이 구하러 왔겠죠. 119구조대도 금방 왔고요."
"제가 매달린 폭탄이 절벽에서 점점 빠져나오고 있었는데요?"
"거기가 절벽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수직은 아니라서, 잘 미끄러지면서 떨어지면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대신에 많이 다치고요?"
"그거야 뭐. 일단 사는 게 중요하죠."
"폭탄은요? 그게 같이 떨어져서 터지면요?"
"음…. 그 폭탄이 터질 확률은 반반이었으니까, 안 터질 확률도 반반이었죠."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시는 거예요?"
"안 터졌으니까요."
"안 터졌어도 그 무거운 쇳덩어리에 깔리긴 했을 거 같아요."
그 상황을 상상한 남현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나강인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얼른 말을 돌렸다.
"칼국수 맛있네요. 왜 안 먹어요?"
"촬영 곧 들어가잖아요."
"선호도 조사 결과는 오늘 밤에나 나올 텐데요?"
남현주가 나강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까까지만 해도 배역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그 드라마의 여자 주연 자리는 하나다. 인터넷 선호도 조사에서 2등이나 3등을 하면 조연 자리로 들어가거나 때려치워야 한다.
그런데 경쟁자들이 하필 올해 천만 영화 두 편의 여자 주인공들이다.
남현주는 그 부분에서 밀리는 만큼 소속사의 지원을 더 받아 상대하려고 했는데, 다른 배우들도 소속사가 나섰다.
‘2등이면 몰라도 3등을 하면 이 드라마는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구덩이에 빠진 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인터넷 선호도 조사에서 꼴등을 해도 출연하려고요. 주연을 누가 하든 실력으로 잡아먹으면 되잖아요."
"무조건 출연하시겠다?"
"그쵸. 저 그 드라마 꼭 해야 해요."
"그럼 그 칼국수 먹어도 돼요."
"네? 왜요?"
나강인이 칼국수를 먹으며 설명했다.
"액션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훈련이 있어요. 그 훈련을 받으려면 잘 먹어야 해요. 그게 좀 힘들거든요."
"어머. 저 유단자예요. 힘든 훈련도 잘해요."
그녀는 발표를 기다리면 스트레스만 받기 때문에 일부러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러 본가로 가던 중이다. 원래는 쌍둥이 동생들에게 시달리면서 잊으려고 했는데 다른 대안이 생겼다.
그녀가 물었다.
"혹시 오늘 그 훈련을 받을 수 있어요?"
"체육관이 노는 날이니까, 오후 서너 시간 정도라면야."
"고마워요."
그녀가 칼국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녀도 이 가게 칼국수를 좋아하는데 활동 기간에는 먹을 수 없다.
"그럼 이건 나 감독님만 믿고 먹을게요."
"그거 다 먹어도 먹은 것 이상으로 빼줄 테니까 마음껏 먹어요."
"그래도 국물은 안 마실래요."
***
기자 고동환은 느긋하게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초등학생은 안 다쳤고, 경찰도 출동했을 테고. 그럼 뭐, 공사장 사진 좀 찍고 경찰서에 전화 걸어서 상황 들으면 되겠네."
다른 건 전화로 해결할 수 있는데 공사장 사진은 그럴 수가 없다. 사진을 찍으려면 고동환이 현장에 가봐야 한다.
"어우. 속 쓰려. 급할 것도 없는데 해장이나 하고 가야겠다."
그는 현장이 멀지 않은 곳에 차를 세우고 스마트폰으로 그 근처 맛집을 검색했다.
"이 동네는…. 칼국수 맛집? 뜨끈한 칼국수 좋지. 어디 보자. 응? 진짜 원조는 장소를 옮겼네? 그럼 옮긴 데로 가야지."
그가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 앱에 진짜 원조 칼국수 집의 주소를 입력했다.
"칼국수로 해장이나 하고 나서 현장 사진 찍고, 사우나 가서 땀 좀 뺀 후에 경찰서에 전화 걸어야겠다. 담당 경찰이 상황을 정리할 시간은 줘야 기사에 쓸 이야기가 나오…."
갑자기 그의 스마트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부장이었다.
"어우! 씨! 놀라라. 사우나 가려는 거 눈치챘나?"
그가 전화를 공손히 받았다.
"네. 부장님."
-너 지금 어디야!
"현장에 취재 가고 있습니다. 현장이 어디냐면요. 공사장인데요."
"어딘지 알아! 왜 아직도 도착을 안 했는데! 빨리 가!"
고동환은 멈칫했다.
이런 작은 사건에 부장이 흥분해서 독촉할 이유는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왜 그러시는지…. 아! 혹시 그 사고로 사람이 죽었습니까? 설마 그 초등학생이…."
-그 초딩을 구출한 사람이 남현주야!
"예?"
-남현주가 공사장 절벽을 타고 내려가서 초딩을 구했다고!
"배우 남현주요? 국민 첫사랑 남현주?"
-이 새끼가 급해 죽겠는데 왜 자꾸 도로 물어? 됐고, 현장까지 얼마나 남았어?
고동환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특종인가!’
"거의 다 왔습니다! 곧 도착합니다!"
-속보 때려야 하니까 그 공사장에 빨리 가서 남현주 사진부터 찍어서 보내! 그리고 남현주 인터뷰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