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23화 (323/411)

323. 체육관

나강인과 남현주는 칼국수집을 나온 후에 그 동네 디저트 카페로 장소를 옮겼다.

그녀는 칸막이가 있는 구석 자리에 앉아서 말했다.

"여기가 맛도 있지만 이런 자리가 있어서 더 좋아요. 마스크 없이 먹어도 아무도 모르거든요."

나강인이 물었다.

"자주 오나 보네요?"

"동생들 때문에요. 고등학생인데 내가 잘못 키워서 이런 거 좋아하는 입맛이 됐어요. 일단 오면 진짜 많이 먹어서 여기 사장님이 좋아하세요."

나강인이 이연지를 떠올렸다.

"내가 아는 고딩도 정말 많이 먹던데."

"남자 고등학생이에요?"

"아니요. 이연지라고, 그 드라마에 유찬 씨 동생 역할로 나올 예정입니다."

"그렇구나. 나도 고딩 때 데뷔했거든요. 청순한 신인이 나왔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맞다. 잘 아시겠네. 혹시 그때부터 내 팬?"

나강인은 과거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랬을지도 모르죠."

"어머. 진짜요?"

"기억은 하나도 안 나지만."

"쳇. 아니구나."

남현주가 와플을 먹으며 말했다.

"어릴 때는 내가 뭘 먹든 아무도 신경도 안 썼는데, 연예인이 되니까 놀러 다니기 좀 불편해요."

나강인은 알레이나가 생각났다.

"변장하고 놀러 가는 광…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아무도 못 알아봐서 놀기 좋다던데요."

"어머. 그 사람도 연예인이에요? 혹시 나랑 아는 사람?"

"우리나라 연예인은 아닙니다만."

"아. 다른 나라 이야기구나. 인터넷에서 봤나 봐요?"

나강인의 스마트폰으로 문자와 함께 사진이 한 장 들어왔다. 발신자는 경찰특공대 팀장이었다.

나강인이 사진을 확인했다.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강인이 전화를 받았다.

AI 전지인이 방금 받은 사진을 허공에 띄우며 말했다.

-뇌관이 무력화됐습니다.

나강인이 팀장에게 말했다.

"거기까지 했으면 주의해야 할 단계는 다 끝난 겁니다. 이제 다른 곳으로 옮겨도 안 터집니다."

-저희도 그렇게 판단했는데 확인 삼아 전화 드렸습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마무리하겠습니다.

나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남현주가 물었다.

"폭탄을 해체했대요?"

"뇌관을 처리했으니까 해체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우리는 체육관으로 갑시다."

남현주가 남은 와플을 서둘러 먹으며 물었다.

"차는 있으세요? 없으시면 우리 집에 가서 아빠 차로 갈까요? 출장 가셔서 차가 집에 있을 텐데요."

"차는 이 동네 유료 주차장에 세워뒀습니다."

***

두 사람은 나강인의 차를 타고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남현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혹시 레토르 감성이신 거예요?"

"뭐가요?"

"차가 되게 옛날 차라서…."

"잘 굴러갑니다."

"아니, 보통 나 감독님쯤 되면 삼각뿔이나 돼지코를 타던데. 아니면 국산차 중에서 고급차 라인을 타든지…."

"차를 새로 사면 다 뜯어고쳐야 하는데, 귀찮아서요."

이 차에는 소총탄 정도는 막는 방탄판과 비상시에 엔진을 쥐어짜서 출력을 높이는 장치 등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스위치 몇 개 외에는 외부로 노출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현주는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 새 차를 사면 안 고쳐도 되잖아요."

"그런 게 있습니다."

"어머. 혹시 빠라바라바라밤?"

"그런 거 아닙니다."

***

두 사람은 나강인이 총권도와 자연 체조를 가르치는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그 체육관은 오늘은 임시 휴관일이다. 수련생들은 보통 그런 날에 모여서 훈련을 받곤 했다.

그런데 총권도 수련생 다섯 명은 오늘은 아무도 오지 못했다.

그중 두 명은 유원지 사건에 직접 개입했고 세 명은 그때 후방에서 지원했다. 사건에 개입했던 사람들은 후속조치 때문에 바빠서 훈련하러 올 수가 없었다.

자연 체조를 배우러 이곳에 종종 오던 프프걸스도 그 사건에 직접 휘말렸다. 세 명은 건물 밖에서 총격전을, 한 명은 안에서 인질극을 겪었다.

그녀들은 요즘 멘탈 관리를 받는 중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상담을 받는 건 아니다. 그냥 잘 먹고 잘 놀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뿐이지만, 어쨌든 힘든 훈련은 빠졌다.

SAH 엔터에는 아이돌 그룹이 두 개가 있다. 지금 이 체육관에는 남자 아이돌 그룹 천사전사단이 자체 연습 중이었다.

나강인이 먼저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앉아서 쉬고 있던 네 사람이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선생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

"오늘은 훈련이 없는 거 아니었어요?"

나강인이 물었다.

"그러는 너희들은 여기 어쩐 일이냐?"

천사전사단 리더 남정석이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었다.

"열심히 해야죠. 저희만 뒤처져 있으니까…."

"음…."

"물론 저희도 예전하고는 완전 다르죠! 저희 이제 스케줄이 들어와요!"

예전에는 프프걸스나 천사전사단에 들어오는 스케줄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들어오는 건 지역 소규모 행사 정도였다.

그나마도 워낙 가끔 들어와서, 매니저 없이 자기들끼리 봉고차를 운전해서 행사를 뛰곤 했다. 그러면 절약되는 비용만큼 회사에서 따로 챙겨주었다.

프프걸스 네 명과 천사전사단 네 명은 전에는 그렇게 버는 돈으로 살았다. 그때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 밥은 어지간하면 회사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그러던 그들은 나강인을 만난 후로 CF도 찍고 행사도 더 늘었다.

하지만 두 그룹이 다 잘나가는 건 아니었다.

프프걸스는 현재 극장가 최대 화제작인 천만 영화 ‘운명의 창’의 OST를 맡았다. 덕분에 프프걸스는 스케줄이 많이 들어왔다.

천사전사단은 예전에 프프걸스와 같이 CF를 찍긴 했다. 그런데 그때는 출연료를 여덟 명이 나눠 가지다 보니 한 명에게 들어오는 몫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그 CF와 자연 체조 덕분에 행사가 가끔 들어와 밥은 먹고 다니지만, 프프걸스처럼 뜨지는 못했다.

나강인이 말했다.

"고생이 많다."

AI 전지인도 말했다.

-너무 프프걸스만 챙겨주셨습니다.

"내가 일부러 걔들만 챙겼겠냐?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잖아."

-일부러 챙긴 줄 알았습니다.

체육관 문이 다시 열리면서 남현주가 들어왔다.

"어머. 여긴 어디예요?"

그녀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리더 남정석은 지나가던 사람이 들어온 줄 알고 얼른 말했다.

"저기, 오늘 여기 휴관일입니다. 문에 종이 붙여놨는데요."

남현주가 네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머! 천사전사단이다!"

남정석의 표정이 대놓고 밝아졌다.

"앗! 저희를 아세요?"

"당연하죠. 호신술 영상을 얼마나 많이 돌려봤는데."

"어? 호신술이요? 와! 고맙습니다!"

"내가 더 고맙죠."

남현주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다.

"내가 유단자라서 그런 영상을 자주 보거든요."

네 사람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앗! 남현주!"

네 사람은 즉시 직각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팬입니다!"

남현주가 손을 흔들며 네 사람의 인사를 받고 나서 나강인을 보며 씩 웃었다.

"봤어요? 내가 이런 사람이에요."

"압니다."

"날 대할 때는 모르는 거 같던데…."

그녀가 네 사람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서 뭐 해요?"

남정석이 얼른 대답했다.

"자연 체조 2단계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어머. 나 자연 체조도 매일 해요. 프프걸스 영상도 좋지만, 여러분 영상이 난 더 마음에 들어서 예전에 자주 봤어요."

요즘은 그 영상을 보지 않는다. 이제는 굳이 영상을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연 체조가 익숙해졌다.

"감사합니다!"

"자연 체조가 2단계도 있었구나."

"아직 영상으로 공개하진 않았습니다! 곧 공개할 예정입니다."

"기대되네요. 그런데 그걸 왜…."

그녀가 체육관을 다시 돌아보았다. 내부는 조금 허름했다.

"여기서 연습해요? 소속사에 연습실 없어요? 아니면 회사에서 박대받아요?"

"아닙니다! 그건 원래 여기서 연습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걸 왜 소속사가 아니라 여기서?"

"당연히…."

남정석이 나강인을 가리켰다.

"선생님한테 배워야 하니까요."

"으응? 나 감독님도 자연 체조를 할 줄 알아요?"

"당연하죠. 직접 만든 분인데요."

남현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으으응?"

"2단계를 선생님한테 배우려면 당연히 저희가 여기로 와야죠."

남현주가 나강인을 돌아보았다.

"자연 체조를 만들었어요? 직접? 어디서 배워온 게 아니고?"

나강인이 대답했다.

"얘들 몸이 균형이 좀 틀어져 있어서 교정에 도움이 되라고 가르친 겁니다."

"와…. 어? 가만. 천사전사단이 나오는 호신술 영상에 가면 쓴 사람들이 있던데, 그럼 혹시 그 호신술도…."

"아는 애가 영상 콘텐츠가 좀 필요하다고 해서."

"와…. 나 그거 진짜 많이 봤는데. 우리 인연이 이번 드라마가 처음이 아니네요? 전부터 잘 알던 사이였네요?"

"난 모르던 사이였습니다만?"

"이거 왜 이래요? 내가 출연한 작품이나 방송 많이 봤을 거 아녜요? 그 정도면 서로 알던 사이죠."

나강인이 피식 웃으며 가볍게 손뼉을 쳤다.

"자연 체조를 할 줄 안다니까 다행이네요. 소화 좀 시킬 겸 그것부터 시작합시다."

남현주가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그 체조를 매일 한다. 그 체조가 어지간한 요가보다 건강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다.

"잘됐다. 혹시 틀린 부분이 있으면 봐줄 수 있겠네요? 직접 만든 분이니까요."

"일단 옷부터 갈아입읍시다. 그 옷 입고 훈련할 수는 없으니까."

"알았어요. 나가서 옷 좀 사 올게요."

"여기 여분이 있으니까 그거 입어요."

"남이 입던 건 좀…."

"새 옷입니다."

"그럼 좋아요."

나강인이 한쪽에 있는 캐비닛을 열었다. 비닐도 뜯지 않은 상하 만 원짜리 운동복 세트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옷은 방문객용으로 근처 옷가게에서 샀다. 그곳은 나강인이 이 동네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떨이로 옷을 팔았다.

AI 전지인이 남현주의 신체 사이즈를 측정했다. 나강인이 맞는 크기의 옷을 한 벌 꺼내주었다.

"여기."

남현주가 옷을 받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브랜드가?"

"만 원짜리 옷에 무슨 브랜드를 찾습니까?"

"네? 만 원짜리예요?"

AI 전지인이 조언했다.

-요원님. 만 원에 떼어왔어도 마진은 붙여야지요.

"여기서 사면 2만 원. 나도 남는 게 있어야지."

남현주가 도로 물었다.

"그러니까, 상한 각각 만 원도 아니고, 한 세트에 만 원?"

"이제 2만 원이라니까요."

"그게 그거죠! 지금 나한테 만 원짜리를 입으라는 거예요? 나 남현주예요!"

"나한테 훈련받고 싶은 줄 알았는데."

남현주가 얼른 말을 바꾸었다.

"물론! 안 입는다는 건 아니고요. 다음부터는 내가 추리닝을 챙겨오겠다는 거죠."

"탈의실은 저쪽입니다."

"알았다고요."

남현주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녀가 두 손을 허리에 살짝 대며 자랑했다.

"훗. 어때요? 내가 입으니까 만 원짜리가 명품으로 변하죠?"

"2만 원은 안 줍니까?"

"진짜 돈을 받으려고 했어요? 선물 아니었어요?"

"있는 사람이 더하다더니 그걸 떼어먹으려고 하네."

"쳇. 지금은 지갑이 없으니까 나중에 계좌로 쏴줄게요."

남현주가 먼저 자연 체조 실력을 보여주었다.

나강인이 말했다.

"제법 하네."

AI 전지인의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홀로그램 화살표와 설명문을 띄웠다.

-다수의 개선 포인트를 발견했습니다.

나강인은 그녀의 동작에 작은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다."

"네? 영상에서 본 그대로 아니에요?"

"사람의 체형이 다르면 디테일도 달라져야죠. 동작을 조금씩만 수정합시다."

나강인은 그녀가 한 동작씩 구분해서 움직이게 하면서 고칠 점을 말해주었다.

남현주는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보았다. 동작이 이어질수록 차이점이 확실히 느껴졌다.

‘몸이 더 자연스럽게 움직여. 마치 나만을 위한 맞춤형 체조 같아.’

"와. 나 감독님이 자연 체조를 만든 사람이라더니 진짜였어.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예요?"

***

신문사 부장이 고동환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아직도 남현주 인터뷰를 못 따면 어쩌자는 거야!

"찾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귀신같이 사라졌어요."

-무조건 찾아! 거기로 사람 더 보냈으니까 같이 찾아! 남현주 인터뷰를 제일 먼저 따면 그게 특종이야!

고동환이 전화를 끊은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그는 잠시 쉬러 들른 디저트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를 쭉 마셨다.

"크으. 시원하다. 여기가 디저트 맛집이라더니 커피도 맛있다."

현장에 출동한 기자들은 남현주를 찾으려고 뛰어다녔다. 동네를 무작정 걸어 다니는 기자도 있고,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는 기자도 있었다.

하지만 남현주를 찾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남현주가 폭탄 옆에서 아이를 구한 이야기와, 지나가던 남자에게 구출된 후에 같이 사라진 이야기가 계속 올라왔다.

남현주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사라진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더 자극했다. 추측이 난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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