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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324화 (324/411)

324. 변화

나강인은 남현주의 자연 체조 동작을 디테일한 부분까지 교정해주었다.

천사전사단도 옆에서 같이 훈련했다.

한 시간쯤 훈련한 후에 첫 번째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이 체육관 훈련실에는 TV가 없다.

귀한 휴식시간에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몰랐다.

훈련을 같이 받은 덕분에 남현주와 천사전사단 사이가 조금 가까워졌다.

천사전사단 리더 남정석이 새 수건을 꺼내서 남현주에게 가져다주었다.

"선배님. 여기요."

"고마워."

그녀가 그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자연 체조가 영상을 보면서 할 때랑 나 감독님한테 직접 배울 때가 뭔가 좀 달라. 엄청 힘들긴 한데 몸이 더 자연스럽게 움직여."

그녀가 씩 웃었다.

"이거, 나 감독님이 나한테만 특별대우로 교정해주는 거지?"

남정석이 대답했다.

"아뇨. 원래 자연 체조는 개인 맞춤형이라서 다 달라요."

"으응? 왜 다 달라? 그럼 인터넷에 있는 너희 체조 영상은 뭔데?"

"인터넷에는 누구나 할 수 있게 표준형 체조를 공개했죠."

"거봐. 표준이 있잖아."

"그런데 저희가 배울 때는 선생님이 각자 몸에 딱 맞는 상태로 미세조정을 해주시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배우는 거랑, 인터넷이랑, 선배님께서 하신 거랑 전부 다 조금씩 달라요."

"그러니까 나만 특별대우가 아니었어?"

"네. 저희도 다 개인 맞춤형으로 배웠어요."

"쳇."

남현주가 혀를 차다가 나강인을 쳐다보았다.

"진짜 대단한 운동 전문가 같아."

"맞아요. 사람 몸에 대해 모르시는 게 없어요. 근육이나 관절에 조금만 무리가 가도 바로 아시거든요."

10분간의 휴식이 끝났다.

나강인이 말했다.

"자. 이제 소화도 대충 됐을 테고, 몸도 풀렸을 테니까, 진짜 훈련을 시작합시다."

쉬고 있던 남현주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네? 지금까지 한 건 뭔데 진짜가 따로 있어요?"

"그건 소화 시키려고 한 몸풀기?"

"그럼 진짜 훈련은…."

"배역 땄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훈련받겠다면서요? 액션 준비를 위한 훈련을 해야죠."

그녀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거는 아무리 힘들어도 해야죠. 전 준비됐어요. 들어오세요."

그녀 옆에 다가와 있던 천사전사단 네 명이 슬금슬금 물러났다. 네 사람이 주먹을 위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선배님.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하고 또 하면 결국 끝은 옵니다!"

그녀가 네 사람에게 물었다.

"너희들 왜 그래? 죽으러 가는 사람한테 응원하는 표정이네?"

"죽을 거 같지만 안 죽습니다! 저희도 해봐서 알아요!"

"그게 무슨…."

한 시간 후에, 남현주는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하악. 하악. 힘들어서 죽을 거 같아."

나강인이 말했다.

"10분만 쉬었다가 다시 합시다."

그녀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끄, 끝난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 남들은 하루 종일도 하던데."

"이, 이걸요?"

남정석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그분들은 일반인이 아니잖아요. 특수한 일 하시는 분들이잖아요."

"그런가?"

남현주가 얼른 대답했다.

"그래요! 그분들이 누군지 몰라도 저는 일반인이라고요! 여기서 더 하면 죽어요!"

"남현주 씨는 유단자라서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유단자도 사람이에요!"

"흐음. 미리 훈련을 받아두면 드라마에서 남들보다 더 고난도 액션을 보여줄 수 있는데…."

"네? 더 고난도요?"

"힘들어서 못 하겠으면 그만해도 돼요. 그럼 훈련은 여기까지…."

"자, 잠깐만요."

그녀가 얼른 손을 들어 나강인의 말을 막았다.

"이 훈련을 더 받으면, 카메라 앞에서 액션이 많이 좋아져요?"

"훈련을 하나도 안 받은 사람도 안 다치는 수준의 액션과, 미리 적당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안 다치는 액션은 아무래도 차이가 나겠지요?"

그녀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럼 ‘햇살 좋은 날’이나 ‘푸른 하늘’, ‘운명의 창’의 액션은…."

"대부분은 안 받은 사람. 유찬 씨하고 은하는 중간에 CF 때문에 훈련을 좀 받았고요."

남현주가 바닥에 누워서 생각했다.

‘지금 분위기를 보면 인터넷 선호도 조사에서는 내가 두 사람한테 밀릴 거 같아. 주연이 문제가 아니라 꼴등을 할 수도 있어.’

오늘 오전에는 그렇게 되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배역을 맡지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공사장 구덩이에 폭탄을 붙잡고 매달려 죽다 살아나면서 생각이 좀 변했다. 그 절벽에서는 자존심보다 살아남는 게 훨씬 더 중요했다.

‘배우 활동도 마찬가지잖아. 내가 이미지 변신을 못 하면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이 바닥에 있으면서 정상에 올랐다가 사라지는 배우를 많이 봤다.

그래서 그녀는 이미 배역과 상관없이 이 드라마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녀는 아까 벼랑에 매달려 있을 때는 살려달라며 나강인에게 매달렸다.

‘난 어쩌면 지금도 살려달라고 외쳐야 하는 때 아닐까?’

그녀는 주연이 아니면 쳐다도 보지 않던 배우다.

‘조연 배역을 받더라도 출연해서 주연을 잡아먹어야 해. 그래야 내가 살아.’

그런데 상대가 만만치 않다.

오세나는 미모와 연기력 모두 뛰어나서 쉽게 잡아먹힐 상대가 아니다. 오세나의 출연 비중을 실력으로 잡아먹으려면 더 고품격 액션이 필요했다.

신은하는 지금 이 훈련을 CF 촬영 때 이미 받았다. 그런 신은하에게 출연 비중을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최소한 동급의 액션이 나와야 한다.

‘은하보다 고품격 액션이 나오면 더 좋고.’

그녀가 결론을 내리고 몸을 일으켰다.

"훈련 계속 받을게요. 하루 종일이라도 받을게요. 오늘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계속 훈련할게요. 근데요."

그녀는 걱정이 들었다.

"이러다 혹시 죽는 건 아니죠?"

"아직 죽거나 크게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망설이다가 말했다.

"내가 주연이 아니면, 그러니까 조연으로 그 드라마에 들어가도 팍팍 밀어주실 수 있어요?"

대가 없이 그런 부탁을 하는 건 너무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얼른 조건을 제시했다.

"대신에 우리 소속사에서 나 감독님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게 할게요! 제가 회사 간판 배우이고 외삼촌이 사장님이잖아요. 팍팍 지원할 수 있어요!"

"무슨 지원을 한다는 겁니까?"

AI 전지인이 얼른 말했다.

-더 많은 예산! 우리 임무를 수행하려면 예산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거야 당연히!"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 감독님은 돈은 신경 안 쓴다던데?’

나강인과 일하고 싶어 하는 제작사는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연예계 일은 어쩌다 가끔 한다. 어지간한 인맥이 아니면 일을 맡길 수도 없다.

그래서 나강인은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럼 나 감독님 홍보를 우리가 맡아서….’

그렇다고 홍보를 조건으로 걸 수도 없다. 그녀는 나강인이 일부러 대중에 노출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우리 회사가 대가로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그러다 생각 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그녀가 씩 웃으며 제안했다.

"할리우드 진출은 어때요? 소개해줄게요."

"할리우드는…."

"우리 회사에서 현지와 접촉 중이에요. 그 일이 성사되면 같이 할리우드에 가요."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미국 팝스타이자 배우인 알레이나 민은 할리우드 특수분장 자리를 소개해주겠다고 했었다. 그때도 거절했다.

"할리우드는 관심이 없어서요."

"네?"

"해외여행을 안 좋아해서."

"아니, 그게 무슨…."

***

초등학생이 사고 현장에서 구출된 경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언론 인터뷰를 막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남현주의 옆집에 사는 초등학생은 달랐다. 구출되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자기가 신나서 카메라 앞에 섰다.

아이의 부모는 겁먹거나 의기소침한 것보다 신나서 자랑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판단하고 인터뷰를 허락했다.

기자들이 아이 앞에 모였다. 인터뷰 현장에는 TV 방송국에서 온 카메라도 있고 신문사의 카메라도 있었다.

기자 고동환이 물었다.

"너를 구해준 사람이 남현주 씨라며?"

"네! 제가 거기서 손에 힘이 빠져서 울고 있는데, 아니, 진짜로 애처럼 운 건 아니고요. 도와달라고 했는데요."

"그때 남현주 씨가 나타났구나?"

"그쵸! 현주 이모가 갑자기 짠!"

"이모?"

"제가 어릴 때 현주 이모가 우리 옆집에 살았어요."

"너 초등학교 4학년이잖아. 그런데 어릴 때라니?"

"어린이집 다닐 때요."

"어…. 그렇구나."

지금도 남현주의 부모님은 아이의 옆집에 그대로 산다. 오늘 남현주가 가려던 곳이 그 집이다.

"제가 위를 봤는데요. 현주 이모가요. 진짜 멋지게 절벽을 타고 내려왔거든요."

남현주는 그때 벽에 찰싹 붙어서 조심조심 내려갔다.

"이모가 제 뒤를, 그러니까 제 옷 여기를 잡고 위로 확 끌어올려도 주고요."

위로 당겨보긴 했는데 끌어올리진 못했다.

"저 먼저 올라가라고, 현주 이모는 절벽에 남고 저만 위로 밀어줬어요. 그래서 제가 위로 올라와서 현주 이모를 끌어올리려고 했거든요?"

"네 힘으로?"

"당연하죠."

"어…. 그래서?"

"그런데 현주 이모가 아래로 더 미끄러져서 손이 안 닿는 거예요. 이모는 미끄러지다가 제가 아까 잡고 있던 걸 겨우 붙잡았어요."

"아. 불발탄…. 그래서 어떻게 됐어?"

"현주 이모가 저한테 먼저 가라고 했어요. 이모는 괜찮다고, 가서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했어요. 제가 위험해질까 봐 그런 거겠죠?"

"그렇겠지?"

"그래서 제가 지나가는 아저씨한테 달려가서 구해달라고 했어요."

고동환의 눈이 번뜩 빛났다.

"그 아저씨가 남현주 씨를 구한 거야?"

"그랬대요. 전 도와줄 어른들을 더 찾으러 가서 못 봤거든요."

고동환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아저씨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줄래? 남현주 씨처럼 네가 아는 사람이야?"

"아뇨. 모르는 아저씨인데요? 처음 봤어요."

***

남현주는 체육관에서 바깥소식은 모르는 채로 훈련을 받았다.

그러는 동안 그녀가 공사장 구덩이에 빠진 아이를 구했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계속 떴다.

처음 기사에는 조금 특별한 미담 정도로만 알려졌다. 좀 더 자세한 기사가 나오면서 작은 미담은 큰 미담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초등학생 인터뷰 기사와 영상이 공개됐다. 그 인터뷰는 TV에서도 나오고 언론사 홈페이지나 인터넷 게시판에도 퍼졌다.

그때부터 난리가 났다.

게시판에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우와!

-남현주가 목숨 걸고 아이를 구출한 거잖아.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와. 청순한 줄만 알았지 이런 멋진 면이 있는 줄 몰랐는데.

-운동 좀 하나 본데?

-남현주 유단자예요.

-새 액션 드라마에는 역시 남현주!

-새 액션이라니요? 남현주 드라마 새로 찍어요?

-KMTV 새 액션 드라마에서 주연 선호도 이벤트 하던데요?

-아. 그거.

-오세나, 남현주, 신은하 세 명 중에 누가 드라마 주연에 어울리는지 투표하는 거 있어요.

-드라마 주연을 이벤트로 뽑아요?

-홍보 이벤트라던데요? 주연이 누군지는 이미 정해져 있겠죠.

-오세나인가? 1등 할 자신 있으니까 하는 거 아닐까요?

-운명의 창 여주인공 신은하 무시합니까?

-운명의 창은 김유찬이 원탑이죠.

-햇살 좋은 날은 안 그런가? 거기서도 김유찬의 무게가 오세나보다 훨씬 크죠.

-지금 남현주 기사에 왜 다른 배우들을….

-그러게. 남현주 칭찬으로 도배해도 모자랄 판에.

-자기 기사에서 소외당한 남현주한테 투표하러 가야겠다. 나라도 응원해야지.

-실전을 저렇게 잘하는데 액션 드라마는 당연히 남현주가 해야지. 나도 응원합니다.

-난 원래 남현주가 제일 좋더라.

***

남현주는 결국 오후 내내 체육관에서 굴렀다.

그녀는 선호도 조사에서는 꼴찌를 하더라도 드라마에서는 오세나와 신은하를 이기고 싶어서 반항하지 않고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다.

‘악마야! 저건 사람이 아니라 악마다!’

나강인이 말했다.

"점프했을 때 회전하는 높이가 좀 낮군요."

"그렇게 뛰다가 거꾸로 떨어지면 죽어요!"

"안 죽을 만큼 하고 있으니까 어서 다시 점프해요. 거꾸로 뒤집혔을 때 발끝이 천장에 닿는 느낌으로."

남현주가 이를 악물고 공중으로 점프했다.

이미 체력이 바닥을 쳐서 혼자 공중회전을 하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나강인이 등을 손으로 밀어서 회전을 보조했다. 그런데도 회전할 때 자세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강인이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죠. 회전할 때 발끝이 원을 그리지 못하고 찌그러졌잖아요."

나강인의 도움으로 착지한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항의했다.

"최선을 다한 거예요!"

"음. 아니에요. 더 잘할 수 있어요. 자. 바닥에서 떼굴떼굴 굴러서 회전하는 느낌에 좀 더 익숙해진 후에 다시 뜁시다."

"또, 또 바닥에서 굴러요?"

"말할 시간에 굴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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