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25화 (325/411)

325. 변화 II

아이돌 그룹 천사전사단 네 명은 오늘 자체 훈련을 편하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체육관 상황은 그들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올 줄 몰랐던 나강인이 왔고, 주연급 배우 남현주가 아까부터 체육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들이 한쪽에서 속삭였다.

"와. 오늘 개꿀일 줄 알았는데 개고생 확정이다."

"나도 오늘은 우리끼리 쉬면서 할 줄 알았는데."

"남현주 선배님을 인정사정 안 보고 굴려버리시네."

"우리도 같이 굴러야 하나?"

"넌 옆에서 구경만 하게?"

"톱스타가 구르는데 옆에서 구경만 하면 찍혀서 죽겠지? 난 오래 살고 싶다."

아이돌 그룹 천사전사단은 눈치가 보여서 그 훈련에 끼어들었다.

"선생님. 저희도 옆에서 살짝…."

"살짝? 그런 게 어디 있어. 너희도 보조 맞춰서 굴러."

나강인은 그 네 명도 남현주를 굴리면서 같이 굴렸다.

나강인은 남현주를 자연 체조로 한 시간, 드라마 액션 대비 훈련으로 세 시간 동안 굴렸다.

남현주는 처음에는 속으로만 외치던 ‘악마 새끼’라는 말을 나중에는 대놓고 말했다. 초반에는 정신이 좀 있어서 ‘새끼’는 빼놓고 ‘악마’라고만 외쳤는데, 나중에는 ‘새끼’까지 저절로 입에서 나왔다.

그렇게 세 시간을 굴린 후에 나강인이 말했다.

"훈련은 여기까지."

남현주는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숨이 턱에 차서 헉헉댔다.

"끝났다."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해냈다."

훈련할 때는 죽을 것처럼 힘들었고 악마 새끼라는 욕도 많이 했지만, 어쨌든 끝났다. 끝까지 버텼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성취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나강인표 액션.’

직접 굴러보니 알 수 있었다.

‘힘들긴 했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났어. 이런 실전형 액션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은 저 악마밖에 없어.’

기대도 됐다.

‘이렇게 미리 훈련을 받으면 나강인표 액션이 더 명품이 된다는 거잖아.’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오늘 선호도 조사에서 꼴등 하면 어때? 내가 잘해서 주연을 잡아먹으면 되지. 같은 훈련을 받은 신은하는 연기력으로 잡아먹고, 이런 거 해본 적 없는 오세나는 액션으로 잡아먹고.’

오세나를 잡아먹으려면 이 훈련이 한 번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딱 하루 훈련받은 내가 알고 보니 액션 전문 배우? 그런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남현주가 겨우 몸을 일으킨 후에 나강인을 보았다.

나강인은 땀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나 감독님. 부탁이 있는데요. 들어주실 수 있죠?"

"내용도 모르는 약속은 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저 이 훈련이 더 필요해요. 꼭 더 하고 싶어요."

"좋은 자세입니다. 지금 바로 다시 시작합시다."

그녀가 다급히 손을 흔들었다. 힘이 없어서 팔이 흐느적거렸다.

"아, 아뇨! 오늘 말고요!"

아무리 각오를 다졌다 해도 오늘 또 구르는 건 무리다. 이미 몸이 한계다.

"다음에요. 우리 드라마 촬영 들어간 후에도 시간 되실 때 훈련받을 수 있나 해서요."

"음….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 이주일 간격으로 여기서 무술을 조금 가르치는데, 스케줄 되면 그때 와요."

총권도 수련생들은 그때 와서 무술을 배운다. 프프걸스나 천사전사단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신은하가 응원하러 오기도 한다.

남현주가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그때는 드라마를 한창 찍고 있을 때잖아요. 어떻게 일정을 딱딱 맞추겠어요? 그냥 개인적으로 따로 둘이서…."

"내가 바빠서."

오늘 특별 서비스 훈련을 한 건 남현주가 아이를 구하려고 공사장 구덩이를 내려간 게 마음에 들어서다. 하지만 남현주만을 위해서 시간을 계속 낼 수는 없다.

"쳇. 진짜 안 넘어오네. 그럼 다음 훈련 때 꼭 연락 주셔야 해요."

그녀가 천사전사단을 돌아보았다.

"혹시 너희들도 그때 오니?"

네 명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음 훈련일이 결정되면 저희가 연락 드리겠습니다!"

"어머. 고마워."

***

남현주는 혼자서 집으로 돌아갈 힘이 없었다.

"나 감독님. 저 좀 집에 데려다주시면 안 돼요?"

나강인이 물었다.

"매니저는요?"

"내 스마트폰은 차에 있다니까요? 우리 로드의 전화번호는 내 스마트폰 주소록에 있어요. 그리고 걔 이미 퇴근했을 거예요. 번호를 안다 해도 지금 부르면 걔 입 삐죽 나와요."

"회사에 전화하면요?"

"회사에 전화해서 뭐라고 하게요? 돈 한 푼 없이 남의 동네에 떨어져 있다고 해요?"

"사실이니까 그러면 되겠네요."

"어머. 절대로 안 돼요. 나 되게 스마트한 여자예요."

"아니던데."

"아. 몰라요! 안 데려다주면 이 체육관에서 잘 거야!"

"스마트가 아니라 떼쟁이네."

그들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천사전사단은 뒷정리를 하겠다면서 남았다.

나강인이 건물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남현주가 따라 걷다가 비틀거리며 나강인을 향해 팔을 뻗었다.

갑자기 두 사람 사이로 팔이 하나 쏙 들어왔다. 남현주가 얼떨결에 그 팔을 잡았다.

신은하가 팔을 잡힌 채로 물었다.

"어머어. 현주 언니. 여기서 뭐 해요?"

남현주는 당황했다.

"어? 은하?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여기 우리 동네예요. 나도 저 체육관에 가끔 가요. 언니도 저기서 운동했다면서요?"

남현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그건 어떻게 알았어?"

"여기 우리 동네라니까요?"

그녀가 체육관을 돌아보았다.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갔다.

"첩자가 있구나? 천사전사단? 어쩐지 같이 안 나오고 체육관에 남겠다고 하더라."

"어머어. 왜 죄 없는 애들은 의심하고 그래요? 걔들 아니에요. 회사에 일이 있어서 가다가 두 사람이 있는 거 보고 온 거라니까요?"

"진짜야?"

"당연하죠. 이건 우연이에요. 우연."

***

천사전사단 리더 남정석이 말했다.

"은하 누나가 수상한 사람이 자기보다 예쁘면 연락하라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훈련 끝나자마자 톡을 보냈지."

막내가 물었다.

"형. 그래도 돼? 남현주 선배님은 톱스타잖아. 막 화내면 어떻게 해?"

"괜찮아. 은하 누나가 비밀은 지켜주신댔어."

다른 멤버들도 남정석의 편을 들었다.

"우리가 은하 누나한테 얻어먹은 치킨이 몇 마리고 피자가 몇 판인데, 어떻게 모른척해?"

"그리고 오늘 두 분이 딱히 썸 타는 분위기는 아니었잖아. 그냥 일방적으로 굴리는 분위기였지."

"난 두 분 사이에 원한이라도 있는 줄 알았어."

"맞아. 남현주 선배님이 얼마나 유명한 배우인데 선생님하고 썸을 타겠어?"

"어? 그럼 은하 누나는? 그 누나도 엄청 유명한데 썸 비슷한 거 타잖아."

"어…. 두 분은 유명해지기 전부터 친했잖아? 그러니까 다르지."

"그런가?"

남정석이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해프닝 같은 거야. 남현주 선배님은 선생님이랑 사귈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을걸?"

"맞아. 사람을 그렇게 굴렸는데 어떻게 호감이 생겨?"

다른 멤버가 물었다.

"‘날 이렇게 굴린 건 네가 처음이야.’라는 상황이 되면?"

"어…. 설마 그러겠냐? 하하하."

막내가 다른 의문을 꺼냈다.

"근데 정석이 형. 은하 누나가 자기보다 예쁜 여자가 선생님 옆에 붙으면 연락하라고 했잖아."

"그랬지."

"근데 연락했잖아."

"그랬…지?"

"그럼 형은 은하 누나보다 남현주 선배님이 더 예뻐서 톡을 보낸 거야?"

남정석은 무슨 실수를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아…. 난 죽었다."

***

신은하는 스케줄이 있어서 두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다.

"난 회사에 가봐야 하는데 강인 오빠는 같이 안 가나?"

"남현주 씨를 집에 데려다주고 들를게. 이 상태로 보냈다가 여배우가 지하철에서 침 흘리면서 자면 난감해진다."

신은하가 남현주를 빤히 쳐다보았다. 남현주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이긴 했다.

"왜 그렇게 보니? 체력이 바닥난 사람 처음 보니?"

"좀비는 처음 보는데…. 아니야. 알았어."

신은하는 손을 휙 흔든 후에 차를 타고 먼저 출발했다.

남현주가 말했다.

"은하가 왔다 가니까 폭풍이 몰아친 것 같네요."

"얼른 갑시다. 데려다주고 저녁밥은 SAH 엔터에 가서 먹게."

"네? 왜 굳이 거기 가서 먹어요?"

"거기 구내식당이 공짜인데 맛있어요."

"설마 밥 먹으러 거기까지 가는 건 아니죠?"

"겸사겸사 가는 거죠. 회사랑 이야기할 건 없어도 박우섭 실장님은 좀 만나야 해서."

"아, 네."

***

나강인은 남현주를 그녀의 부모님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녀가 말했다.

"여기서 내려주세요. 집 앞까지 모르는 남자가 데려다주면 엄마 아빠 깜짝 놀라세요. 우리 집에 CCTV 있거든요."

그 CCTV는 스토커나 팬, 기자 확인용으로 달아놓았다.

"그러시죠."

나강인이 차를 세웠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말했다.

"나 감독님. 오늘 자정에 좋은 결과 있길 빌어주면 안 돼요?"

"빌어줄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서."

"쳇."

나강인은 그녀를 내려다 주고 떠났다.

그녀가 멀어지는 차를 보다가 집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부모님 집은 단독주택이다. 그런데 그 집 앞에 아까 타고 왔던 회사 차가 서 있었다.

그 차는 아까 로드 매니저가 운전했다.

"쟤는 왜 차를 우리 집 앞에 주차하고 퇴근한 거야? 근처에 약속이라도 있나?"

그녀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살짝 놀랐다.

"어?"

로드 매니저와 담당 매니저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현주 누나!"

"현주야!"

남현주가 물었다.

"뭐야? 두 사람이 왜 여기 있어?"

갑자기 그녀의 어머니가 다가와서 등짝부터 때렸다.

"넌 왜 연락이 안 돼!"

"아! 왜 때려! 스마트폰을 차에 두고 내렸단 말이야!"

"자랑이다!"

"왜? 걱정했어? 공사장 소식 들었나 봐? 괜찮아. 나 하나도 안 다쳤어."

"걱정은 안 했지. 너 멀쩡하게 떠난 거 본 목격자가 얼마나 많은데!"

"역시 우리 엄마. 혈관에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흐르시지."

나이 차이가 꽤 나는 고등학생 쌍둥이 동생 두 명이 신난 얼굴로 검지를 세웠다.

"누나 오늘 쩔었어."

"난 우리 누나가 그렇게 멋있을 줄 몰랐다니까?"

남현주가 엄지와 검지 사이를 턱에 대며 씩 웃었다.

"내가 그렇게 멋있어? 근데 너네는 어떻게 알았어?"

"뉴스에 났잖아."

"훗. 내가 원래 길 걷다가 넘어지기만 해도 뉴스에 나는 사람이야. 그래서 어디서 기사가 나왔어?"

"전부 다 났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매니저가 말했다.

"현주야. 너 아직 상황을 모르나 보다?"

"뭘 몰라?"

"인터넷 검색 안 해봤어?"

"스마트폰을 차에 두고 내렸다니까?"

"TV도 안 보고?"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머. 그 이야기가 TV 뉴스에도 났어? 어느 방송국이야?"

"전부 다라니까?"

"으응?"

"모든 방송국에서 뉴스가 나갔다. 신문사도 마찬가지고."

그녀는 오늘 사건이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로 기사화됐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가 얼른 로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야. 내 스마트폰."

"여기요."

스마트폰의 전원은 이미 켜져 있었다. 소리만 최소로 낮춰놓은 상태였다.

그녀가 스마트폰의 잠금을 풀었다. 통화와 문자, 메신저 옆에 숫자 99가 찍혀 있었다. 부재중 통화와 확인 안 한 문자가 100개가 넘었다.

"와…. 연락이 장난 아니게 많이 왔다."

그녀가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부터 검색했다.

"대박. 영화제에서 상을 탔을 때도 이렇게 기사가 쏟아지진 않았는데."

매니저가 설명했다.

"내가 여기 있으면서 기사를 좀 확인해봤는데 대부분은 좋은 이야기야. 댓글도 칭찬하는 이야기가 많아. 너 이번 일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어."

"나 원래 이미지 좋았잖아."

"더 좋아졌다는 거지."

그녀의 어머니가 물었다.

"너는 그런 것도 확인 안 하고 어디 갔었는데?"

"새 드라마 하려고 훈련받았어."

매니저가 급히 물었다.

"어? 선호도 조사 결과 발표는 오늘 자정이잖아."

"거기서 꼴등 해도 무조건 그 드라마 하려고. 나 이미 결정했어."

"아니, 네가 왜 그런 수모를 굳이…."

"됐어. 그 드라마 할 거야."

매니저가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그래. 네가 하고 싶으면 해야지.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 너한테 그 드라마가 꼭 필요하긴 했다."

이번엔 그녀의 어머니가 물었다.

"현주야. 드라마는 네가 알아서 하는데, 그 남자는 누구야?"

"으응? 남자라니?"

"너 구해준 남자랑 같이 사라졌다며. 이미 기사에 다 났어."

"아니, 왜 그런 것까지 기사가 나?"

"너랑 아는 사람 같다던데, 너 혹시 남자친구 생겼니? 어머! 표정이 왜 그래? 진짜였어? 누군데? 뭐 하는 사람이야? 부모님은 뭐 하시니?"

"엄마! 멈춰! 그 잠깐 사이에 손주 이름까지 생각한 거 아냐?"

"으응? 그게 아니라, 기사가 그렇게 나서…."

"아! 기사!"

그녀가 얼른 스마트폰으로 그 기사를 검색했다. 남자의 정체에 관한 추측기사가 난무했다.

그중에는 남현주를 위해 남자가 목숨을 걸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목숨을 걸기는. 날 놀리면서 장난치듯이 쉽게 구해줬는데."

추측기사 중에는 선을 좀 넘긴 것도 있었다.

"어? 뭐야? 나 혹시 스캔들 터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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