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26화 (326/411)

326. 결정

남현주가 검색된 기사를 보며 말했다.

"‘폭탄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힘인가?’ 뭐야? 이 오글거리는 제목은?"

로드 매니저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요. 그거 읽어보면요. 두 사람이 손을 잡았을 때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충격이 서로의 마음을…."

"야. 하지 마. 안 읽어볼 거야. 이거 누가 쓴 거야?"

"그러게요. 아주 소설을 써놨더라고요."

"아니, 잠깐. 너 이 많은 기사 중에 왜 하필 이걸 읽었어?"

"네?"

"일부러 찾아서 읽었니?"

"그, 그게 아니라요."

담당 매니저 김 실장이 끼어들었다.

"걱정하지 마. 아직은 스캔들은 아니야. 기자들은 그 남자가 누군지 모르니까 소설을 써제끼는 거야."

"무슨 일인지 모르면 기사로는 안 써야 하는 거잖아. 이거 찌라시야?"

"좋게좋게 넘어가. 그냥 지나가던 일반인이니까 스캔들이 될 것도 없잖아."

남현주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아니, 그냥 지나가던 사람은 맞는데."

"거봐. 그러니까…."

"일반인은 아니라서."

"응? 일반인이 아니면 누구…."

"나강인."

김 실장은 화들짝 놀랐다.

"헉! 나 감독? 진짜 그 나 감독?"

"응. 그 나 감독."

김 실장이 화를 벌컥 냈다.

"아니, 나 감독이 왜 너랑 스캔들이 날 짓을 해! 국민 첫사랑한테 스캔들이 얼마나 치명타인지 모른대?"

남현주도 발끈했다.

"왜냐니? 당연히 날 살리려고 그랬지!"

"어? 아니, 그래도…."

"그럼 난 스캔들 무서워서 그냥 폭탄 껴안고 공사장 구덩이로 뛰어내려야 했나? 묘비에 국민 첫사랑이라고 써주게? 아주 좋겠네! 신나겠네! 남산 전망대 앞에 묫자리 하나 알아봐 주면 딱이네!"

김 실장이 움츠러들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나 감독님이 널 구출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

"아니라고! 목숨 안 걸었다고! 진짜 쉽게 구했다고! 나를 놀려먹으면서 구했다고!"

로드 매니저가 손뼉을 쳤다.

"이야아! 역시 연예계 최고의 무술 고수!"

"아니, 알고 보니까 무술만 잘하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잠깐. 현주야. 나 감독이 누구야? 영화감독이야?"

"아니. 무술감독."

"아…. 그럼 배고프겠다."

"배 안 고플걸? 우리 업계에서는 되게 유명한 사람이야."

"그럼 지금까지 그 무술감독하고 같이 있었어?"

남현주가 재빨리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엄마.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그거 아니야."

"같이 있었던 건 맞네?"

"이번 드라마 때문에 나 감독님한테 개인적으로 특훈을 받았어. 그게 다야."

옆에서 김 실장이 물었다.

"어? 현주야. 너는 나 감독하고 원래는 모르는 사이였잖아. 그런데 왜 너만 특훈을 받아? 오세나나 신은하가 아니라 왜 너만?"

"오늘 그 사건도 있고 해서 같이 밥 먹으면서 드라마 이야기하다가…."

그녀의 쌍둥이 동생들이 물었다.

"훈련만 한 게 아니라 밥도 먹었네?"

"조사하면 다 나와. 또 뭐 먹었어?"

"너희들이 환장하는 우리 동네 디저트."

"할 건 다 했네?"

"데이트야?"

매니저가 흥분했다.

"나 감독이 너를 노리는 게 틀림없어! 안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돼!"

"김 실장님. 눈에 흙 좀 뿌려줘?"

"아니, 그게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사이야? 언제부터 사귀었어?"

남현주가 두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다들 왜 이해? 그런 거 아니라고! 오늘이 겨우 두 번째 본 거라고!"

"기사가 그렇게 났으니까 그러지. 그리고 젊은 남녀가 두 번이나 만났으면…."

"첫 번째는 방송국 회의실에서 피디랑 작가랑 배우들하고 같이! 두 번째는 오늘 그 공사장에서 사고로!"

그녀의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귀는 것도 아닌데 그 감독이 왜 너한테만 특훈을 해줘?"

"새 드라마의 무술감독이니까."

"왜 너만 해주냐니까? 혹시 특별대우야? 너한테 관심 있대?"

"오늘 나 구해줬을 때 내가 그냥 부탁한 거야."

매니저가 손을 들었다.

"그러니까 정리해보자. 뉴스에 나온, 너를 구해주고 같이 사라졌다는 그 남자가 나강인 감독이잖아?"

"응."

김 실장이 의심했다.

"그런데 나 감독은 왜 하필 네가 사고를 당했을 때 거기 있었을까? 어? 혹시 너를 스토킹…."

"닥치지?"

"그건 아니구나."

"우리 동네에 칼국수 맛집 알지?"

"알지."

"거기 칼국수 먹으러 왔는데, 옆집 꼬맹이가 울면서 뛰어다니다가 만났대. 그래서 구해준 거야."

"아…. 그런 요리 고수도 칼국수 가게에 가는구나."

그녀의 어머니가 물었다.

"김 실장님. 무술감독이라더니 요리 고수는 또 뭐예요?"

"저는 먹어본 적이 없는데, 요리를 너무 잘해서 좋은 거 많이 먹고 다닌 배우들이 극찬하던데요."

"가정적인가보다."

"그건 저도 잘…."

그녀의 어머니가 남현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 무술감독 일은 잘해? 실력은 있어?"

남현주가 신나서 설명했다.

"국내, 아니, 전 세계 무술감독 중에서 최고야. 내가 이 드라마 하려는 건 그 감독님 때문이야. 나 감독님이 영화든 드라마든 작품에 참여만 했다 하면 대박이 나거든. 지금은 무술감독이지만 영화감독도 가능할 거라는 소문까지 돌아."

"그런 사람이면 처자식 밥은 안 굶기겠구나."

"내가 왜 밥 굶을 걱정을 해? 나 남현주야!"

"처자식 이야기하는데 네가 왜 발끈해?"

"아니, 분위기를 자꾸 그렇게 몰아가니까…."

"요리사가 아닌데도 요리를 그렇게 잘한다는 건 취미가 요리라는 건데, 그럼 집에서 맛있는 거 많이 해주겠네?"

"으응?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괜히 이상한 놈 만나는 것보다 훨씬 낫겠다."

"아직 그런 사이 아니라고!"

"총각은 맞지?"

"당연하지."

"친하게 지내."

"응. 그건 그러려고."

***

매니저 두 명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기자들은 아까 본가에 들이닥쳤다가 남현주가 없는 걸 알고 모두 사라졌다.

남현주가 평소에 지내는 집은 여기가 아니라서 다른 집으로 간 기자도 몇 명 있었다.

남현주는 거실 소파에 누워 쉬었다. 기다리는 게 있어서 잠은 오지 않았다.

시간은 이미 자정에 가까웠다.

남현주의 고등학생 쌍둥이 동생들은 그녀가 사준 노트북 두 대를 거실에 꺼내놓고 오늘 사건 기사들을 확인했다.

"이 기사는 누나를 여전사처럼 묘사했는데?"

"우리 때릴 때 보면 전사 맞지. 야만전사."

남현주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에게 한마디 했다.

"용돈 끊기고 싶지?"

"야만전사는 너무했지. 나처럼 여전사라고 했어야지."

"너 지금 혼자만 용돈 받으려고 그러냐?"

어느새 자정이 됐다.

남현주가 말했다.

"노트북 가져와 봐. 확인할 게 있으니까."

동생들이 노트북을 들고 왔다. 그런데 그녀가 선호도 조사 사이트를 열어보기도 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남현주가 발신인을 확인했다. KMTV 최진욱 피디였다.

그녀가 얼른 소파에 바로 앉아서 전화를 받았다.

"네. 피디님."

-남현주 씨. 오늘 고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고생하긴 했죠. 그래도 잘 해결됐잖아요. 그런데 결과는…."

-남현주 씨에게 제일 먼저 전화 드린 겁니다. 남현주 씨가 1등입니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진짜요? 꺄아! 어? 저는 제가 제일 불리할 줄 알았는데요?"

최진욱이 상황을 설명했다.

-원래는 그랬죠. 사실 오늘 오전까지는 남현주 씨가 3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 공사장에서 하신 일이 뉴스에 나오면서 선호도 조사 사이트에 표가 쏟아졌어요.

"아…."

-좋은 일 하셔서 좋은 일이 생긴 거죠. 하하하.

남현주가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렸다.

"그러네요. 오늘 좋은 일이 많이 생겼네요."

-네? 많이요?

"그런 게 있어요."

***

오세나는 최진욱 피디의 전화를 받고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제가 2등이요? 왜요?"

-원래는 1등이었는데, 오늘 오후에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현주가 휘말린 그 공사장 사고요? 아니, 그렇다고 이런…. 이건 공정하지 않아요! 배우가 연기력과 필모로 승부를 봐야지, 어떻게 그런 이벤트로 결과가 바뀌어요?"

-어쩌겠습니까? 이번에는 운이 남현주 씨에게 간 걸요. 그래서 어떻게 하실지….

"주연도 아닌데 드라마에 출연할 거냐고요? 나 오세나예요!"

-그럼 안 하실….

오세나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기다려봐요. 나 지금 혼란스러워서 생각 좀 하고요."

-예. 내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시간이 없어서…. 이미 촬영 준비는 다 끝나 있습니다. 촬영에 곧바로 들어가야 합니다.

"알았다고요!"

***

신은하는 피시방에서 전화를 받았다.

"제가… 꼴등이요? 어머. 최 피디님 농담도 잘하신다."

-원래는 신은하 씨가 남현주 씨보다 표를 훨씬 많이 받고 오세나 씨를 맹렬히 추격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후부터 공사장 사건의 영향으로 분위기가 바뀌어서….

"그러니까 그 사건 때문에 제가 꼴찌로 밀렸다?"

-그렇…지요.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하실지….

"내일 연락드릴게요. 회사랑도 이야기해봐야 하니까요."

-예. 기다리겠습니다.

신은하가 전화를 끊고 옆을 돌아보았다.

나강인이 피시방 옆자리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강인 오빠. 진짜 이럴 거야?"

"응? 뭘?"

"내가 1등과 차이가 거의 안 나는 2등이었는데, 1등으로 치고 올라갈 수도 있는 2등이었는데!"

그녀가 키보드를 탁탁 두드렸다.

"강인 오빠가 낮에 현주 언니를 구해주면서 판이 바뀌었다잖아. 내가 꼴등이래. 꼴등."

"어…. 그렇다고 남현주 씨가 죽게 놔둘 순 없었잖아. 그때 안 구했으면 폭탄하고 같이 바닥으로 떨어졌을 거야."

"그야 그렇지만!"

그녀가 말을 돌렸다.

"내가 누구야? 지금 극장가를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는 ‘운명의 창’ 여주인공이라고! 근데 내가 왜 2등도 아니고 꼴등이야?"

"‘운명의 창’ 남자 주인공인 유찬 씨가 먼저 그 드라마 남자 주인공으로 확정됐잖아. 그 영화의 남녀 주연이 전혀 다른 성격의 드라마에 그대로 나오는 걸 반대하는 시청자가 많았겠지."

"지금 내가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본 거 같아?"

"아니구나."

"아무리 그래도 꼴등은 아니지! 책임져!"

"음…. 야식 만들어줄까?"

"촬영이 코앞인데 야식을 먹을 수 있겠냐고! 다른 방식으로 책임져!"

"훈련 더 시켜줄까?"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럼 뭐?"

"그걸 꼭 내 입으로…. 아오. 이 고릴라."

답답해진 신은하가 생수를 벌컥 들이켰다.

나강인이 물었다.

"그 드라마 할 건가 보다?"

"당연히 해야지. 세나 언니든 현주 언니든 내가 연기로 다 잡아먹어 버릴 거야."

AI 전지인이 말했다.

-인터넷에서 수집한 정보에는, 연기력은 오세나와 남현주가 신은하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어…. 은하야. 열심히 해라. 내가 너 응원하는 거 알지?"

"응. 맨날 말로만 응원하는 거 알아. 몸으로 좀 하라고."

***

남현주가 여자 주연으로 결정됐다. 그녀는 배역에 불만이 있을 리가 없다.

"훗. 나 아직 안 죽었어."

쌍둥이들이 옆에서 아부했다.

"그러엄. 우리 누나는 언제나 주인공이지."

"주연 맡은 기념으로 우리 용돈 좀 안 주나?"

"옜다."

"마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오세나는 아침부터 짜증을 잔뜩 냈다.

"내가 어떻게 현주한테 밀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매니저가 말했다.

"말이 안 되지. 그럼 그 드라마는 안 할 거지? 영화 새로 들어갈래?"

"뭐야? 왜 맞불 놓을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야?"

"어…. 드라마는 이제 들어가 봤자 일정도 안 맞고…."

"다른 드라마에 들어가 봤자 맞불은커녕 밀릴 거 같아서?"

"어…. 그게 말이야."

"됐어. 나 이 드라마 할 거야."

그녀가 대본을 손으로 탁탁 두드렸다.

"주연이랑 경쟁하는 캐릭터니까 내가 들어가서 주인공 잡아먹을 거야. 그러면 되잖아? 이를 박박 갈고 들어가서 현주한테 누가 위인지 확실히 알려주겠어."

***

신은하는 어차피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배역 상관없이 그 드라마 해야지. 이 언니들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내가 감시할 거야."

이보라가 말했다.

"너 그거 좀 오버하는 거 아냐? 너랑 강인 오빠가 친하긴 해도 사귀는 건 아니잖아."

"어디서 견제를 들어오니? 너도 수상하거든?"

"앗. 난 아니야."

"얼굴 붉히면서 아니라고 하지 마! 더 수상하잖아!"

***

이미 드라마 제작을 위한 다른 준비는 거의 다 끝나 있었다.

남현주와 오세나는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이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배역에 적응했다.

신은하도 연기 못 한다는 소리는 안 듣는 배우다. 그녀는 처음부터 세 개의 배역을 모두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응이 빨랐다.

모든 배역이 확정되자마자 드라마 촬영이 바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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