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28화 (328/411)

328. 새 손

신은하는 샵에서 한두 시간은 작업한 것 같은 럭셔리한 화장을 원했다.

AI 전지인이 신은하가 방송이나 영화에 출연하거나 잡지에 나올 때 찍힌 사진 몇 장을 띄웠다.

"잡지 사진으로 하자."

AI 전지인이 나강인의 손을 빌리고 펜과 붓을 사용해 신은하의 얼굴에 그림을 그렸다.

어느 화장품을 얼마나 쓰면 사진과 똑같은 그림이 그려지는지는 이미 계산이 끝나 있었다. 게다가 손의 움직임은 빠르고 정확했다.

겨우 5분 만에 예전에 잡지 촬영할 때 신은하가 했던 메이크업이 재현됐다.

사진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예전 사진을 옆에 가져다 놓고 자세히 비교하면 차이점을 찾아낼 수는 있다. 예전 사진의 메이크업이 조금 더 퀼리티가 높았다.

그런데 이건 잡지 사진이 아니라 드라마 영상이다. 작은 차이 정도는 눈에 뜨이지 않는다.

설사 차이가 좀 나도 상관없었다. 지금 이대로도 굉장히 잘 어울렸다.

"끝났다."

신은하가 거울을 들어 얼굴을 확인했다. 그녀가 방긋 웃었다.

"역시 강인 오빠의 고속 화장 기술은 최고라니까."

옆에서 그 모습을 본 남현주는 당황했다. 그녀는 신은하의 얼굴이 한쪽 부분씩 변하는 걸 보고 처음에는 나강인이 뭘 하나 했었다. 그러다 중간쯤부터는 놀라서 말도 못 붙였다.

그녀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이, 이게 뭐예요? 방금 뭘 한 거예요?"

나강인이 대답했다.

"촬영용 화장이요."

"아니, 그게 왜 그렇게 빨리 돼요? 5분밖에 안 지났잖아요!"

"임시로 한 거라서 이 상태가 오래 유지되진 않아요. 이곳에서 촬영하는 시간 정도나 괜찮겠죠."

"지금은 그거면 충분하잖아요."

남현주가 신은하의 얼굴을 보았다. 감탄할 정도로 화장이 잘 나왔다.

‘잘하는 게 많은 사람인 줄은 알았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일까지 가능할 줄이야….’

그녀가 놀라는 사이에 오세나가 끼어들었다.

"강인 씨! 나도! 난 자연스러우면서도 럭셔리한 느낌!"

AI 전지인이 말했다.

-기존에 수집한 오세나의 영상과 사진 데이터 중에서 몇 가지 안을 제시합니다.

나강인이 그중 하나를 골랐다.

"오세나 씨는 원판이 이미 럭셔리하니까 자연스러운 것만 살립시다."

"어머. 뭘 좀 아신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그 사진이 작업 시간이 제일 짧습니다.

"알아."

오세나의 분장은 3분 만에 끝났다. 그녀도 만족했다.

"내 전담 코디 안 할래요?"

"당연히 안 합니다."

"그냥 물어만 봤어요."

다음은 남현주 차례였다. 그녀는 두 명이나 고속 화장을 하는 걸 보면서 상황에 적응했다.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나강인의 앞에 앉아 욕심을 부렸다.

"난 그럼 털털하면서 예쁘면서 럭셔리하게?"

-사전에 수집한 자료 중에는 일치하는 이미지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털털하면서 예쁘게 갑시다."

"쳇. 알았어요."

AI 전지인이 추천 사진을 보여준 후에 그대로 작업했다.

남현주의 화장은 4분 만에 끝났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이건 내가 예전에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영화에서 했던 화장인데? 그래서 일부러 이 화장을 해준 건가? 이번엔 제대로 변신하라고? 혹시 나한테 관심 있나? 내 팬인가?’

나강인은 세 사람의 화장을 마치고 일어났다.

"난 다른 일정이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

남현주가 얼른 일어나서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가 분장실을 나간 후에 남현주가 신은하에게 물었다.

"나 감독님 말이야. 왜 이렇게 잘해?"

신은하가 자랑했다.

"화장만 잘하는 거 아니에요. 특수분장 실력도 쩔어요."

"그래?"

"영화에서 복경산 장군 분장은 강인 오빠가 스스로 거울 보고 한 거예요."

"와아. 무슨 특수분장을 스스로…. 근데 난 왜 이런 사실을 몰랐지?"

"화장은 남들한테는 잘 안 해주니까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오늘은 해주셨잖아."

"우리 드라마 초반부를 빨리 찍어야 하니까 오늘만 서비스로 해준 거예요."

남현주가 눈을 반짝였다.

"어머. 그럼 너도 이런 화장 처음 받아봐?"

신은하가 두 사람 앞에서 대놓고 자랑했다.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남들한테는 잘 안 해준다는 거죠. 내가 뭐 남인가? 오호호호."

***

드라마 ‘바보의 사랑’ 촬영은 첫날부터 강행군을 했다.

김유찬은 눈과 코를 가리는 가면을 쓰면 전사가 된다. 전사가 되어서 싸우는 건 나강인이 연기했고, 대사가 들어가는 연기는 김유찬이 했다.

그럴 때의 김유찬은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런데 김유찬이 가면을 벗고 일상을 연기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럴 때는 좀 바보같이 웃고 다니는 사람을 연기했다.

김유찬의 일상 연기 촬영이 끝난 후에 도주희 작가가 말했다.

"역시 김유찬의 연기력은 최고네. 왜 다들 얼굴만 잘생겼다고 하는지 모르겠어."

최진욱 피디가 대답했다.

"연기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만큼 잘생겼으니까?"

"인정. 저걸 봐. 잘생긴 바보가 됐잖아. 근데 그걸 또 잘 살려. 하나도 안 어색해. 역시 김유찬."

"송인준이 대본을 손에서 안 놓는 거 보이지? 김유찬의 바보 연기를 보더니 충격받고 저러는 거야. 우리 드라마에서 연기 대충했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겠지."

촬영은 밤까지 이어졌다.

그날 밤에는 화장품 PPL이 들어가는 촬영이 있었다.

백한수려에서는 홍보팀 대리 백미소가, 지구뷰티에서는 연구소 실장 지현선이 현장을 찾아왔다.

백미소가 지현선을 보고 말했다.

"어머. 난 홍보팀이니까 왔지만 넌 연구소 실장이 촬영 현장에는 왜 왔대? 연구 안 해? 아. 연구소가 무너져서 못 하나?"

"강인 씨가 화학 전문가잖아. 도움 좀 받으려고 왔다."

백미소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이거 왜 이래? 강인 씨가 화학 전문가로 활동한 건 우리 쪽 일을 도와줬을 때고, 너희 쪽은 지질학 전문가로 도와줬잖아. 남의 영역에 손대지 말지?"

"이게 어떻게 영역을 나눌 일이니?"

"나눠야지! 너랑 나랑은 인연을 맺은 계기가 다른데!"

"근데 강인 씨는 어디 있는 거야? 왜 안 보여?"

"그러게. 모처럼 만나러 왔는데."

"그래서 아주 꽃단장을 했니?"

"네가 할 소리야? 너 그거 어느 샵에서 한 거니?"

남현주는 근처에 있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혼란에 빠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화학 전문가는 뭐고 지질학 전문가는 또 뭔데?"

***

미국 회사 오메가테크는 각종 장비와 로봇, 군대에서 쓰는 무기를 연구 개발하는 회사다. 그 업계에서는 높은 기술력으로 유명했다.

그 오메가테크에서 인공 의수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됐다.

사장 스칼렛 켈리와 친구이자 비서인 제시카는 프로토타입의 첫 실사용 테스트에 참여했다. 그 현장에는 회사 이사도 몇 명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스칼렛이 직접 진행한 것이라 이사 중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뭔가 아는 사람도 그런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만 알지 기술적인 건 몰랐다.

스칼렛이 이사들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이 의수의 핵심은 새로 개발한 인공 근육이에요. 인공 근육의 프로토타입이 얼마 전에 한국에서 완성돼서 도착했어요. 신경 신호 전달 체계는 기존의 우리 기술을 보완했고요. 의수 설계가 이미 끝나서 부품까지 다 만들어뒀으니까 인공 근육이 도착한 후에는 조립만 하면 됐죠."

구경하던 이사가 물었다.

"그러니까 핵심 부품인 인공 근육이 도착하기도 전에 설계를 끝냈다는 겁니까? 그 인공 근육을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닌데요?"

"의수 설계도 우리가 한 게 아니에요."

"네?"

"설계한 사람은 따로 있어요. 그 사람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추진했죠."

"아…. 그럼 프로토타입 제작은…."

"금방 만들었어요. 부품은 설계도 그대로 3D 프린터로 만든 후에, 우리가 개발한 신경 신호 전달 체계와 이번에 도착한 인공 근육을 장착해 조립했죠.

"간단한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간단했어요. 설계대로 조립했었더니 전부 다 딱 맞아떨어졌거든요."

오메가테크는 인공 근육이 오기 전부터 신경 신호 전달 체계의 테스트를 충분히 했다. 그래서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품을 정식으로 조립해서 하는 테스트는 지금이 처음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존 연구원은 실사용 테스트를 할 수가 없어요. 우리 의수에는 멀쩡한 손을 끼울 공간이 없거든요."

"잠깐만요. 그러면 그 테스트를 지금 처음 한다는 겁니까?"

"물론이죠."

"테스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는 거네요?"

"처음부터 잘될 수야 있나요. 오늘은 손이 움직이기만 하면 돼요."

"우리도 바쁜데, 그럼 충분히 테스트한 후에 우리를 부르시지…."

스칼렛이 씩 웃었다.

"어머. 오늘 이 자리에 얼마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시나 보다. 우리의 프로토타입 의수 첫 테스트를 같이 보고 싶어서 일부러 이사님들을 모신 거예요."

"그러니까 왜 굳이 첫 테스트에…."

"첫 테스트니까 의미가 있죠."

그녀가 장담했다.

"두고 봐요. 오늘 이 첫 테스트에 참여한 일이 이사님들의 평생 자랑거리가 될 테니까."

테스트 공간 한복판에는 양팔이 팔꿈치 아래에서 사라진 사람이 서 있었다. 그 남자는 반소매 정장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넥타이까지 맨 상태였다.

스칼렛이 설명했다.

"앤더슨 씨는 불이 붙은 차량에서 동료를 구하다가 양손을 잃은 전직 군인이에요. 이번에 우리 회사에 입사했어요. 오늘부터 저분이 실제 사용 테스트를 담당할 거예요."

연구원들이 테스트 직원 앤더슨의 양팔에 프로토타입 의수를 장착했다.

스칼렛은 오늘 첫 테스트를 구경만 하러 온 게 아니다. 그녀가 테스트를 직접 진행하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미스터 앤더슨. 손을 천천히 들어보세요."

앤더슨이 두 손을 위로 들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을 활짝 폈다. 열 손가락이 쫙 펴졌다.

스칼렛이 급히 말했다.

"앤더슨. 장비의 이상 동작은 첫 테스트니까 그럴 수 있어요. 위험한 건 아니니까 진정하시고…."

앤더슨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손목도 이리저리 꺾었다.

스칼렛은 조금 당황했다.

"어?"

앤더슨이 앞에 놓인 테니스공을 잡았다. 그걸 가볍게 위로 던졌다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손으로 받았다.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그 모습을 보았다.

연구원들이 웅성거렸다.

"어? 움직임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왜 저렇게 반응이 좋은데? 저 사람, 저 의수를 처음 쓰는 거 맞아?"

"첫 조립품의 첫 테스트인데 당연히 처음이지. 우리 의수는 저 사람이 세계 최초로 쓰는 거잖아."

"의수에 너무 빨리 익숙해졌어. 이건 예상 못 한 일인데…."

앤더슨이 스칼렛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장님. 손이…, 저한테 손이 다시 생겼습니다."

스칼렛은 당황했다.

"그, 그러네요? 아. 느낌이 어떠세요?"

"진짜 손하고 비교하면 조금 어색하긴 한데…."

"손을 조종하기 어렵지 않아요?"

"조종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손이 그냥 예전처럼 움직입니다. 이건 정말… 제 손 같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사람들이 하나둘 박수를 쳤다.

"와아!"

"테스트가 한 방에 성공했어!"

참관한 이사들도 박수를 쳤다.

"역시 사장님."

"대단하십니다.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첫 실사용 테스트에서 이런 결과를 내셨습니까? 그만큼 준비를 철저히 하신 거겠지요?"

스칼렛은 아직도 당황한 상태다.

"아니, 이건…."

앤더슨이 물었다.

"사장님. 혹시… 이 의수를 나중에라도 제가 살 수 있을까요? 진짜 손이 다시 생긴 기분이라서…."

"아! 그건 저희가 최초로 만든 프로토타입이라서 드릴 수가 없어요. 저희한테도 의미가 큰 거라서요."

앤더슨이 조금 실망했다.

"아. 그렇군요. 어차피 이걸 살 돈은 없는데 제가 욕심을…."

"그건 프로토타입이라서 아직 개선점이 있을 거예요. 정식으로 양산품이 나오면 당연히 양손 다 만들어드려야죠."

"네?"

"우리 회사에 입사하셨으니까 양산품 개발에도 참여하고 테스트도 계속하셔야 하잖아요. 다음 테스트용 제품도 맞춤형으로 만들 테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팔지도 못해요. 그냥 쓰셔야 해요."

"고, 고맙습니다!"

***

그날 밤에 스칼렛 켈리는 사무실에서 프로토타입 의수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왜 이렇게 성능이 좋지? 어떻게 첫 실사용 테스트부터 실제 손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이게 말이 돼? 나강인. 도대체 무슨 설계를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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