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29화 (329/411)

329. 리얼 핸드

오메가테크 사장 스칼렛 켈리가 프로토타입 의수를 보며 말했다.

"처음 조립한 건데 왜 이렇게 완벽하게 동작하지?"

제시카가 옆에서 말했다.

"운이 좋았겠지. 우연히 한 방에 잘 될 수도 있잖아."

"이렇게 복잡한 장비가? 아니야. 첫 동작은 괜찮았더라도 계속 테스트하면 숨겨진 버그 몇 개쯤은 튀어나와야 해. 그런데 안 나와. 이대로 양산해도 될 것 같은 완성도야."

"그럼 좋은 거잖아."

스칼렛이 프로토타입 의수를 손으로 만졌다. 손끝에 내부 부품들의 감촉이 느껴졌다.

"인공 근육의 반응성이 너무 좋아."

"그건 우리가 테스트 데이터를 받았을 때 확인했어. 넌 그때 기대한 것 이상이라고 환호했잖아."

"예상했던 것 이상인데도 그 근육과 우리 신경 신호 전달 체계를 사용하는 의수 설계가 너무 완벽해."

"나강인 씨가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를 수정했다며. 나강인 씨의 설계 능력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도 이미 했잖아."

"했지. 실사용 테스트를 하기 전에,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최고의 평가를 했지. 상식선에서 말이야."

스칼렛이 프로토타입 인공 의수를 손으로 들어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제시카. 그런데 이건 말이야. 시뮬레이션을 수백 번 돌려보고, 수십 번을 새로 제작해서 테스트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문제점을 고치는 재설계도 수십 번은 한 것 같은 퀄리티야."

"응?"

"완성도가 미쳤다고."

"그러니까 나강인 씨가 인공 근육을 미리 사용해서 충분히 테스트해본 것 같다?"

"맞아. 그거야."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이 인공 근육은 유나린 박사가 처음 개발했어. 이런 수준의 인공 근육은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못 만들었어."

"알아. 다른 연구소 것은 걸음마도 못 하는 수준인데 유나린 박사의 것은 성큼성큼 걷고 있지."

제시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의수에는 우리 회사의 기술도 들어갔잖아. 혹시 그것도 문제야?"

"우리 회사의 신경 신호 감지 및 전달 기술은 세계 최고수준이지. 하지만 그건 우리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래도 그건 말이 되나 보구나."

"어쨌든 우리 기술까지 고려해서 설계한 것 같아. 그게 아니면 이 퀄리티는 말이 안 되거든."

"그래서 결론이 뭐야?"

"몰라. 모르는데 하나는 알겠어. 나강인 씨는 역시 천재야. 그래서…."

스칼렛이 눈을 반짝였다.

"탐나."

***

드라마 ‘바보의 사랑’을 촬영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리 액션 드라마라도 한 시간 내내 싸우거나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모습만 나올 수는 없다.

드라마에는 일상 이야기도 충분히 있어야 한다.

이제 초반의 몰아치기 액션 촬영은 줄어들었다. 대신에 일상 이야기 중심으로 촬영이 진행됐다.

나강인의 일정에 여유가 생겼다.

오메가테크의 스칼렛 켈리가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나 내일 한국 가는 거 알죠? 공항에 픽업 좀 와요.

"돈도 많은 사람이 그냥 차를 랜트하면 되지 픽업은 무슨."

-어머. 너무해.

"저번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 차를 사서 공항 주차장에 장기주차라도 해놓은 거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고."

-내 주변에 스파이 심어놨어요? 누구지? 제시카인가?

"맞나 보네. 그 차 타고 와요."

-어차피 내일 한국대학교에서 만나야 하잖아요. 그 전에 나강인 씨의 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할 게 있어서 그래요.

"음…. 몇 시 비행기로 도착입니까?"

***

이튿날 나강인이 공항 출국장에 서 있었다.

오메가테크 사장 스칼렛과 비서이자 친구인 제시카가 밖으로 나왔다.

스칼렛이 나강인을 발견하고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면서 제시카에게 자랑했다.

"봤어? 조르니까 오잖아. 역시 그동안은 덜 조른 거였어."

"업무상 온 거 같은데?"

"아닐걸? 나를 보는 눈빛을 봐. 뭔가 감정이 잔뜩 담겨 있잖아."

"내 눈에는 귀찮아하는 감정만 보인다."

"제시카. 넌 감성이 메말랐어."

"반사."

나강인은 두 사람을 차가 주차된 곳으로 데려갔다. 그가 운전석 문을 열며 말했다.

"타요."

스칼렛은 차에 타지 않았다. 대신에 문짝을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게 그 방탄차인가요? 역시 철판 두드리는 느낌이 다르네. 아주 단단해."

"그건 또 어디서 들었습니까?"

스칼렛이 씩 웃었다.

"한국 경찰에 아는 사람이 있다니까요."

"한국 정부에 장비를 납품하면서 알게 된 사람?"

"어머. 단서를 줄 수는 없죠."

"누군지 몰라도 입이 되게 싼 사람인가 봅니다."

"입 무거워요. 그동안 쌓은 상호 신뢰가 있어서 나한테만 예외인 거예요."

"그렇다고 칩시다."

스칼렛이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

"그것도 보여줘요."

"그거?"

"드래곤 플레이트 기술로 만든 방패. 이 차 안에 어떻게 끼워 넣었는지도."

나강인이 버튼을 조작했다. 작은 모터음이 들리면서 조수석 문짝 내장재가 열렸다.

스칼렛이 얼른 안쪽을 확인했다.

"어머어. 내부에 공간 장갑 형태로 배치했구나. 이러면 진짜 RPG도 막는 거 아녜요?"

"그건 실험해본 적이 없어서."

"이 방패를 열 개만 보내주면 우리가 실험할게요."

"철인기공에서 방탄차용 방패 버전을 몇 가지 타입으로 생산하기로 했으니까 거기 이야기해요."

"어머. 이 제품이 벌써 철인기공에 넘어갔어요? 우리는요? 우리도 방탄차 만들 줄 알아요."

"철인기공에서 먼저 찾아와서."

"쳇. 우리도 한국에 연구소를 따로 세우든지 해야지. 또 철인기공이 먼저야."

그들은 나강인의 차를 타고 한국대학교로 이동했다.

스칼렛은 조수석에 앉아서 차 내부를 부지런히 확인했다.

"이 스위치는 부스트? 어? 이건 뭐예요? 글로브박스에 뭔가 있는데?"

그녀가 뚜껑을 열어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혹시 이거 전파 교란장치예요?"

"앰프입니다. 차 오디오에 관심이 많아서."

"어디서 약을 팔아요? 나 오메가테크 연구 책임자예요. 내가 회로 좀 보거든요? 딱 봐도 앰프가 아니라 교란장치 쪽인데요?"

그녀가 부품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거 양산품을 사서 개조한 거네요? 이렇게 출력을 높이면 한 번 쓰면 타버릴 텐데…. 그래도 잠깐은 주변 통신을 다 먹통으로 만들 수 있겠어요. 아이디어 좋네요."

"취미 삼아 개조해본 겁니다."

그녀가 차를 둘러보며 말했다.

"차 얻어탄 보람이 있네요. 이건 뭐 겉만 허름하지 알맹이는 전술차량이야."

"허름하다고 하면 차 주인이 상처받습니다."

"일부러 허름해 보이게 위장한 거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그들은 한국대학교로 유나린 박사를 찾아갔다.

유나린이 활짝 웃었다.

"나 팀장님! 자주 좀 오시지!"

스칼렛이 말했다.

"어머. 난 보이지도 않으시나 보다."

"그게 아니라, 켈리 사장님하고는 화상통화를 많이 했잖아요. 나 팀장님은 전화통화 하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한 말이에요."

"나도 농담 한 거예요."

별도로 마련된 회의실에서 스칼렛이 은색 가방의 보안장치를 해제하고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의수가 들어있었다.

스칼렛이 말했다.

"우리 첫 합동 연구 작품. 인공 근육 기반의 의수. ‘리얼 핸드’의 프로토타입이에요."

회의실에 있던 연구원들이 환성을 질렀다.

"와아! 진짜가 왔다!"

"드디어 실물을 본다!"

의수는 내부 구조가 그대로 보이는 형태였다.

스칼렛이 설명했다.

"피부 대신에 사용할 소재로 비슷해 보이는 실리콘을 써봤는데 내구성에 문제가 있어서 탈락했어요. 일단은 고강도 합성수지로 외피를 만들 거예요."

나강인이 물었다.

"의수의 사용감은 어떻습니까?"

"직접 보여드릴게요."

스칼렛이 팔에 센서가 모여 있는 조종장치를 붙이며 설명했다.

"이건 우리 신경 신호 감지 센서를 모은 거예요. 의수에는 손이 들어갈 공간이 없어서, 실사용 테스트 후에 이걸 급히 만들어 팔에 붙이고 유선으로 연결해봤거든요?"

스칼렛이 나강인에게 물었다.

"잘 작동하더라고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이 의수 도대체 뭐예요?"

"직접 만든 분이 그렇게 물어보면 어쩝니까?"

"우린 센서만 개발하고 조립만 했잖아요! 후우. 어쨌든 지난 일주일 동안 우리 회사에서는 프로토타입을 추가로 만들어서 다양한 실험을 했어요. 응용 아이디어도 많이 나왔고요."

그녀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유선으로 연결된 인공 의수의 기계 손가락이 그녀의 손과 같은 형태로 움직였다.

다시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탄성이 나왔다.

"와아!"

"최초 개발 목적은 손이 없는 분들을 위한 인공 의수였는데, 이렇게 유선으로 제어하는 것도 성공했어요. 유선이 되니까, 수신기만 추가하면 당연히 무선도 되겠죠?"

대학원생이 물었다.

"그럼 의수의 장거리 원격 제어도 가능하겠네요? 혹시 원격 수술도 되나요?"

"그런 정밀한 작업은 어려워요. 의수가 손의 신경 신호를 감지해서 그대로 움직이긴 하는데, 정밀도에 차이가 있거든요. 딜레이도 살짝 있고요. 그러니까 이걸 써도 원격으로 수술할 순 없어요. 하지만."

스칼렛이 인공 의수를 움직여 마우스를 잡았다.

그녀가 그 마우스를 조작해 스크린에 3D 그래픽으로 만든 사진을 띄웠다.

화면에 다리 대신에 무한궤도가 장착된 작은 로봇이 나왔다. 로봇의 두 팔에는 지금 보는 인공 의수와 비슷한 것이 달려있었다.

"이건 재난 현장에 들어가 활동하는 로봇의 예상도예요. 사용자는 VR 헬멧을 쓰고 로봇의 눈을 통해 상황을 보면서 두 손으로 장애물을 치울 수 있죠. 조작해야 하는 스위치가 있으면 그것도 다룰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인명도 구조할 수 있어요."

대학원생이 손을 들었다.

"어? 그럼 혹시 원자로 사고가 난 곳에서도 쓸 수 있나요?"

"강력한 방사능을 맞으면 민감한 센서가 바로 고장 나요. 못 써요."

"아…."

유나린도 말했다.

"인공 근육도 방사능은 못 버텨."

스칼렛이 계속 설명했다.

"대신에 다른 위험한 현장에는 쓸 수 있죠. 공장 같은 곳에서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의 장비를 제어할 때 쓸 수 있고요. 방수 처리하면 수중 작업도 가능해요. 그리고."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로봇이 커피 머신을 조작하는 3D 영상이 나왔다.

"커피도 만들 수 있어요. 카페를 원격으로 운영하는 거죠."

대학원생이 물었다.

"저 로봇은 AI로 움직이나요?"

"당연히 사람이 조종해야죠. VR 헬멧을 쓰고요. 그러니까 이건, 재택근무하는 카페 직원용이에요."

"네? 그러면 커피 가격이…."

"당연히 단가는 안 맞죠. 이건 우리 기술을 쓰면 이런 일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만든 거예요."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인아. 네가 저 장비를 써서 로봇을 움직일 수 있을까?"

-신체삽입형 전투지원 AI는 외부 장비와 직접 연결해 정보를 주고받는 행위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럼 내 손의 움직임을 보조하는 형태로만 조종할 수 있겠네."

스칼렛이 설명했다.

"원래 개발 목적인 의수로 돌아가서."

화면에 영상이 나왔다. 양쪽 팔이 팔꿈치 아래부터 없는 남자였다.

"전쟁터에서 동료를 구하다 두 팔을 잃은 퇴역 군인이 우리 회사에 입사해서 의수 테스트를 맡았어요."

영상 속에서 연구원들이 그 남자의 팔에 인공 의수를 장착했다.

"사람마다 신체 손실 정도가 다르니까 의수는 맞춤형으로 만들어야 해요. 저 사람도 양쪽 팔의 손실 정도가 달라요."

그 남자가 의수를 사용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는 테니스공은 물론이고 달걀도 깨지 않고 쉽게 잡았다. 그 손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잡아 식사하는 모습도 있었다.

"이렇게 일상생활에 쓸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그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사용하는 모습도 나왔다.

"손을 써야 하는 일반적인 업무도 수행할 수 있어요. 고속 타이핑은 어렵지만 가벼운 문서 작업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죠."

그다음에는 여자가 남자의 앞에 서 있는 영상이 나왔다.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인공 의수로 쓰다듬었다. 여자의 얼굴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저 두 사람은 부부예요. 이제 다시 아내를 만질 수 있게 됐죠. 비록 촉감은 못 느끼지만, 피드백 시스템이 있어서 자기가 어떤 형태를 만지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어요."

대학원생들이 박수를 쳤다.

"와아!"

"저게 진짜지!"

그녀가 팔에 장착된 원격 조종장치를 벗으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직접 테스트해봐요. 장착법은 이 매뉴얼을 참고하고요. 제시카가 도와줄 거예요."

그녀는 장비를 연구원들에게 넘겼다. 연구원들이 달려들었다.

그녀가 나강인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때요?"

"기대한 그대로네요."

"기대한 이상이라고 해주면 안 될까요? 우리는 의수를 조립하고 처음 테스트한 순간에 다들 경악했는데."

"예상했던 거라서."

스칼렛이 나강인을 빤히 보며 말했다.

"물론 그렇겠죠. 처음부터 이런 성능을 예상하고 일을 추진했겠죠. 그런데 이해가 안 가요."

"뭐가요?"

"설계가 너무 완벽했어요. 마치 시행착오를 수십 번은 겪고 개선한 제품처럼."

AI 전지인이 말했다.

-야전 피드백을 수없이 거쳐 개선된 의수 대체품의 설계를 적용했습니다. 열악한 전장 보급 상황이 고려된 설계이므로, 센서나 인공 근육의 성능이 다소 떨어져도 동작은 합니다.

그 이유를 사실대로 설명해줄 수는 없다.

나강인이 말을 바꾸었다.

"음…. 다시 생각해보니 기대한 이상이네요. 와. 박수 쳐야겠다."

"장난치지 말고요. 도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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