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30화 (330/411)

330. 방영

오메가테크 사장 스칼렛 켈리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인공 근육이 개발되기도 전에 설계했는데 어떻게 이런 완성도가 나올 수 있죠?"

나강인이 둘러댔다.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AI 전지인이 자랑했다.

-맞습니다. 제가 잘한 겁니다.

"유나린 박사님이 인공 근육을 잘 만들어서?"

유나린이 부끄러워했다.

"어머. 전 그냥 운이 좋았던 거예요. 나 팀장님이 투자를 많이 해주신 덕분이죠."

"제가 돕지 않았어도 결국 만들었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서요."

"역시 무한 신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저를 믿으셨잖아요."

"유 박사님의 능력을 믿은 거죠."

"그렇게 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짜입니다."

스칼렛이 불평했다.

"와. 나만 빼놓고 서로 칭찬하기 있기 없기?"

나강인이 스칼렛에게 말했다.

"이 의수의 핵심은 인공 근육입니다. 오메가테크의 신경 신호 전달 기술도 대단하긴 하지만, 그건 고유 기술은 아니니까요."

스칼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 원래는 우리 회사 기술에 자신만만했지만 이젠 우리 기여도가 제일 낮다는 생각이 들어요. 난 나강인 씨의 설계가 더 대단하게 느껴져요."

"난 그냥 어쩌다 보니 겁니다. 그리고 내 설계도 고유 기술이 아닌 건 마찬가지고요."

"어쩌다 될 수 있는 레벨의 설계는 아니지만, 연구비를 쏟아붓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면 다른 연구소에서도 해낼 수 있긴 해요. 그것도 인정. 그런데."

스칼렛이 유나린을 보았다.

"유 박사님의 인공 근육 기술은 진짜 특별해요. 개념 자체가 달라서 다른 연구소나 기업에서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이 의수를 발표하면, 전문가들은 유나린 박사의 연구가 얼마나 특별한지 바로 눈치챌 거예요."

AI 전지인이 나강인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외쳤다.

-노벨상 가즈아!

스칼렛이 나강인과 유나린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 ‘리얼 핸드’를 빨리 발표했으면 해요."

나강인이 물었다.

"이제 막 프로토타입이 나왔는데요?"

"우리 연구에 대해 아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요. 시간 끌어서 좋을 거 없어요. 헛소리하는 놈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요."

"헛소리요?"

"세상에는 염치없는 놈들이 꽤 있거든요. 실험실에서만 가능한 짝퉁을 들고나와서 자기네가 먼저라고 주장하는 놈이 생기기 전에, 공식적으로 발표해서 우리가 최초라고 선언해야 해요."

"그럼 뭐 그러시죠."

유나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찬성해요."

스칼렛이 활짝 웃었다.

"그럼 나강인 씨와 유나린 박사님이 미국에 오셔서 같이 발표하는 거로 알고 있을게요. 발표일은 일주일 뒤로 하고요."

나강인이 말했다.

"난 미국에 갈 생각이 없으니까 두 분이 하시죠."

"네?"

"내가 비행기 타는 거 안 좋아해서."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공수부대 출신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나강인이 유나린에게 말했다.

"유 박사님. 고생 많이 하셨으니까, 미국에 가서 자랑도 잔뜩 하시고, 맛있는 것도 드시고 오세요."

"같이 가시면 좋은데요."

"바빠서요. 드라마 제작에도 참여하는 중이라."

스칼렛이 따져 물었다.

"지금 이게 드라마 촬영보다 백만 배는 중요한 거 몰라요?"

"연구는 중요하지만, 발표에 참석하는 건 별로 안 중요해 보이는군요."

스칼렛이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알았어요. 이렇게 나올 것 같아서 플랜 B도 준비했어요. 발표는 한국에서 할게요."

"음? 한국에서요?"

"이 프로토타입 의수를 왜 가져왔겠어요?"

"우리한테 실물을 보여주고, 유나린 박사님과 공동으로 연구하려고?"

"당연히 그렇긴 한데, 한국에서 발표해야 하는 경우도 고려했어요. 발표 준비는 후발대가 와서 할 거예요. 그럼 됐죠? 같이 발표할 수 있죠?"

나강인이 거절했다.

"내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남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합니다."

"뻥 치시네!"

"표 납니까?"

"다 나거든요?"

"사실 평온한 일상이 깨지는 걸 안 좋아합니다."

"일상이 하나도 안 평온해 보이는데! 스펙타클하던데!"

"연구 발표는 두 사람이 맡아서 해요. 내 이름은 꼭 빼주고요. 한국에서 발표하면 여기 대학원생들이 얼굴 좀 알릴 수 있겠네요."

***

프프걸스는 영화 ‘운명의 창’ OST를 발표하면서 인기가 더 높아졌다. 방송 출연과 행사 섭외도 늘었다.

그러다 서울 근교 유원지의 지역 축제에서 총격전 사건에 휘말렸다.

만약 그 사건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으면 프프걸스는 피해자인데도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야 한다.

그런데 그 총격전에서 민간인이나 경찰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반면에 화살에 맞은 놈은 모두 기술을 훔치려던 산업스파이다. 동정은커녕 통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프프걸스는 그 사건을 홍보에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

여러 예능 방송에서 프프걸스를 부르면 다들 그날 일을 꼭 물어보았다.

인터넷에는 야외 공연장 근처에 있던 세 사람이 방패 뒤로 엎드려 총탄을 피하는 영상이 많이 돌아다녔다.

그런데 네 사람 중에 홍보 혜택을 제일 많이 받은 건 그 영상에는 나오지 않는 최지혜였다.

막내 최지혜는 그날 권총을 겨눈 두목의 손을 발차기로 걷어찼다. 그때 그 모습을 본 목격자가 있어서 그 사실이 알려졌다.

그녀가 예능 방송에 출연해 말했다.

"용 가면을 쓴 분이 자연 체조를 설명하길래, 저보고 그 동작으로 총을 걷어차라는 줄 알았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눈앞에서 권총을 걷어차요? 안 무서웠어요?"

"에이. 괜찮았어요. 믿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오해였다면서요? 용 가면은 걷어차라고 한 게 아니라면서요?"

"히히. 그쵸. 그래도 안 다치고 잡았으니까 된 거 아닐까요?"

방송이 나간 후에 자연 체조를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

드라마 ‘바보의 사랑’ 촬영장에서 이연지가 말했다.

"지현이 언니. 제가 그동안 단역만 몇 번 해봤지만요. 오늘 촬영장 분위기가 진짜 장난이 아니라는 건 알겠어요."

공지현이 한쪽을 보며 대답했다.

"저 세 언니 중에 두 명만 붙어도 연기력 싸움이 치열하잖아. 오늘은 셋이 같이 찍는 날이니까 당연히 분위기가 고조되지."

신은하와 오세나, 남현주는 서로 상대 배역을 잡아먹으려고 치열하게 연기했다. 오늘은 1화 마지막 부분에서 세 사람이 충돌하는 장면을 찍는 날이다.

이연지가 말했다.

"언니들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거 같아요. 저게 말로만 듣던 ‘기세’인가?"

"그래도 액션이 아니라 대사와 분위기로 싸우는 장면인 게 얼마나 다행이야?"

"맞아요. 액션이었으면 누구 하나 죽어 나갔을 것 같아요."

***

최진욱 피디가 말했다.

"도 작가. 난 요즘 말이야. 밤낮으로 촬영장이랑 편집실에서 강행군하느라 너무 힘든데, 쪽잠이라도 자려고 눕기만 하면 웃음이 피식피식 나온다?"

"좋아서?"

"시청자의 환호성이 막 들리는 거 같아서."

"벌써 미치면 어쩌자는 거야?"

"도 작가는 안 그래?"

도주희가 실실 웃었다.

"난 누워서 연말 시상식에 뭐 입고 나갈지 고민해."

"흐흐흐."

"히히히."

***

스칼렛 켈리는 한국에 들어와 일주일 동안 유나린 박사와 같이 연구하고 발표도 준비했다.

드라마 ‘바보의 사랑’을 촬영한 지는 보름이 지났다.

‘바보의 사랑’은 보름 동안 강행군을 해 방송일을 맞추었다. 그 드라마의 첫 방송일이 바로 오늘이다.

오늘은 최진욱과 편집 스태프들 외에는 모두 쉬기로 했다. 보름 동안의 강행군으로 배우나 스태프들이 너무 지쳐서 오늘 하루는 휴식이 필요했다.

최진욱과 도주희는 방송국에서 1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최진욱이 퀭한 얼굴로 말했다.

"스케줄 빵꾸 안 냈다. 장하다. 보름 동안 멈추지 않고 달린 나."

도주희가 최진욱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응. 장하다. 장해. 난 안 바빴지만."

"대본 미리 많이 써놨다고 놀리냐? 난 미리 찍을 수가 없었다고."

"광고 끝나간다. 드라마에 집중하자."

"난 최종본 이미 봤거든? 내가 1화 최종 검수자야."

"그럼 왜 여기 있어? 가서 잠이나 자."

"어떻게 그러냐? 첫 방송인데."

***

배우들은 오늘은 촬영이 없는 날이라 각자 편한 장소에서 드라마를 보았다.

몇 명이 따로 모여서 보는 경우도 있었고 집에서 혼자 조용히 보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1화를 보았다.

신은하는 동네 중식당의 별실을 예약했다. 별실 안에 TV가 있었다. 그곳에 배우 몇 명이 모였다.

드라마 ‘바보의 사랑’이 시작했다. 처음부터 화끈한 액션이 터졌다.

신은하가 드라마를 보며 말했다.

"우리 드라마 여러모로 역대급이다. 그치?"

신은하와 이보라는 요즘은 부모님 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다. 두 사람의 부모님은 이 동네에 산다.

이보라가 맞장구를 쳤다.

"출연진도 대작 영화급으로 화려하고, 액션도 진짜 끝내주지. 그중에 제일 대박은 여주인공을 인터넷 선호도 조사로 뽑은 거지만."

그 조사에서 신은하는 꼴등을 했다.

"야. 밥 먹으러 와서 시비냐?"

"부럽다고. 이년아. 난 꼴등인 너보다도 배역이 약해. 출연 비중만 놓고 보면 나랑 연지랑 맞먹을걸?"

옆 동네에 사는 고등학생 이연지는 요리를 흡입하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넹? 저요?"

"어. 신인 같지 않은 너. 이번 드라마 대박 나면 너도 꽤 뜰걸?"

"에이. 저는 대사가 언니보다 훨씬 적잖아요."

"대신에 넌 화끈한 액션을 자주 하잖아."

"화면에 자주 나오는 건 은서 언니도 마찬가지인데요?"

한쪽에서 드라마를 멍하니 보던 차은서가 고개를 돌렸다.

"응? 나? 나는 그냥 배우들 따라다니는 게 다인데?"

"화면에 얼굴이 엄청 자주 나오잖아요."

"난 대신에 대사가 없지. 아니다. 난 대사 많이 받아봤자 소화할 능력이 없어. 지금이 딱 좋아."

공지현은 이 근처에 살지 않는데도 이 모임에 끼었다. 그녀가 말했다.

"겨우 보름 찍고 첫 회 방영하는 우리 드라마의 미친 제작 속도도 대박 아닐까요? 저 이런 드라마는 처음 해봐요."

신은하가 TV를 가리켰다.

"그렇게 급하게 찍었는데도 저 화려한 액션 좀 봐. 누가 저걸 벼락치기로 찍은 드라마라고 생각하겠어?"

"선생님이 대단하신 거겠죠?"

"강인 오빠가 대단한 거 맞아. ‘햇살 좋은 날’ 재촬영이 1주일 만에 끝난 것도, ‘운명의 창’ 촬영이 한 달 만에 끝난 것도 다 강인 오빠의 실전 리얼 액션 덕분이니까."

그녀가 TV를 가리켰다.

"지금 저 화려한 액션을 카메라만 여러 대 두고 예행연습도 없이 한 방에 찍어서 편집했다는 거, 누가 믿겠냐고."

TV에서는 건물 1층 로비에서 싸우는 장면이 나왔다.

화면 속에서 김유찬이 눈과 코를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전진했다. 거기까지가 진짜 김유찬이었다.

나강인은 예전에 김유찬의 대역 땜빵을 한 게 계기가 되어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그때 땜빵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체형이 김유찬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강인은 김유찬과 똑같은 마스크를 썼다. 그러면 입 주변만 노출되는데 그 부분은 김유찬과 비슷한 느낌이 들게 직접 분장했다.

상대 기업에서 고용한 남자들이 나강인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나강인이 적의 주먹을 슬쩍 피하며 다리를 걷어차 넘어뜨렸다. 그러면서 적의 멱살을 슬쩍 잡아 몸이 바닥에 떨어질 때의 충격을 줄였다.

그가 앞으로 걸어가자 이번에는 다른 남자가 달려들어 발차기를 날렸다. 나강인은 적의 발을 몸만 슬쩍 기울여 피하며 다가가 가슴을 쭉 밀었다.

상대가 옆으로 밀려나다가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이보라가 달려드는 적을 하나씩 물리치며 뚜벅뚜벅 전진하는 나강인을 보며 말했다.

"강인 오빠 액션은 정말 볼 때마다 쩐다. 저 장면 찍을 때 상대편 액션 배우들한테 진짜로 주먹질하고 발로 차라고 했잖아."

신은하가 맞장구쳤다.

"맞아. 배우들에게 미리 지정해준 건 동선밖에 없었어. 맘대로 공격하라고 해놓고, 진짜로 공격하니까 저렇게 다 날려버렸잖아."

"그것도 저렇게 멋있게."

"날아간 사람들은 하나도 안 다치게."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았다.

-액션 쩌네.

-진짜로 치고받는 것 같아.

-맞아. 때릴 때 어색함이 전혀 없어. 진짜 때리고 맞은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저렇게 찍을 수 있지?

-철저한 계산으로 동선을 짜고 모든 동작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연습하면 됩니다.

-그러면 촬영 기간이 길어지지 않아요?

-당연히 길어집니다.

-저 드라마는 촬영 보름 만에 방영한다고 기사가 났던데요? 촬영 기간이 엄청 짧은데요?

-그럼 1화 초반 액션 촬영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썼겠네요. 제가 장담하는데 저런 고품격 액션은 이 뒤로는 못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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