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32화 (332/411)

332. 리얼 핸드

오메가테크의 앤더슨은 의수를 진짜 손처럼 능숙하게 사용해 넥타이와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전시관에 구경하러 온 다른 회사 엔지니어들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기가 사용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원리를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갑을 벗을 때부터 단추를 풀 때까지의 동작 전체를 의수 컨트롤러에 사전에 입력해놓았겠지. 그게 아니면 저건 말이 되지 않아."

"아니야. 그렇다고 해도 이상해. 모터도 보이지 않고…."

"아니, 잠깐. 저거 설마…."

오메가테크 사장 스칼렛이 강남 컨벤션센터 박람회 전시관 무대 위에서 말했다.

"우리가 개발한 ‘리얼 핸드’는 모터 기반이 아닙니다. 인공 근육으로 움직입니다."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일반 관람객들도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어? 뭐?"

"인공 근육?"

"그런 게 실제로 존재한다고?"

"현재 연구 중인 인공 근육은 저런 게 아닌데?"

스칼렛이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며 유나린을 가리켰다.

"인공 근육을 사용했을 때의 최대 장점은 진짜 사람의 손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죠. 이제 인공 근육을 개발한 유나린 박사님이 설명하겠습니다."

유나린은 오메가테크의 테스트 직원 앤더슨과 같이 움직이며 사람들에게 적용된 기술을 설명했다.

앤더슨은 손을 움직여 공을 잡거나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다.

유나린과 대화할 때는 그 손으로 손짓까지 했다. 그건 따로 입력한 동작이 아니었다. 앤더슨이 평소에 대화할 때 자기도 모르게 하던 손동작이었다.

사람들도 그걸 알아보았다.

"연습한 대로 의수를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도 움직이는 거야?"

"진짜 자기 손처럼?"

유나린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성능이 꽤 괜찮죠? 그래도 아직 사람의 손과 같은 수준은 아닙니다. 정밀한 작업은 어렵거든요. 그렇지만."

유나린은 앤더슨이 지금까지 의수로 만지고 사용한 것들을 가리켰다.

"지금 이 정도 성능으로도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손이 없는 사람들에게 신세계가 열리겠는데?"

"신세계는 선천성인 경우고, 사고로 손을 잃은 사람에게는 예전 손을 돌려주는 거겠지."

"그래서 제품 이름이 ‘리얼 핸드’인 건가? 그 사람들에게는 진짜 손이라서?"

이 박람회에 취재하러 온 기자가 몇 명 있었다. 그중에는 방송국 기자도 있었다. 생중계가 아니라 녹화방송이긴 하지만 카메라도 돌아가는 중이다.

"대박인데?"

"미국 회사랑 한국대학교가 협업했다고? 그럼 우리나라 기술도 들어간 거잖아."

"인공 근육은 한국대학교 유나린 교수팀 독자 개발이란다."

"대단하네."

다른 회사의 로봇 엔지니어가 당황한 얼굴로 손을 들어 질문했다.

"아무리 인공 근육을 쓴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움직임이 가능합니까? 컨트롤러가 어떤 스펙입니까?"

"오메가테크에서 새로운 신경 신호 전달 기술을 개발했어요. 사용자의 신경 신호를 인식한 후에 증폭해 의수의 인공 근육에 전달하는 기술이죠."

"그럼 인공 근육을 신경 신호를 이용해 직접 제어한다는 겁니까? 저 의수가 실제 손과 똑같은 원리로 움직인다는 건가요?"

"원리가 비슷하긴 한데 똑같지는 않아요. 인공 근육이 사람의 근육처럼 전기 신호에 반응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근육은 아니거든요."

"그럼 의수 디자인은…."

"당연히 실제 손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요. 그래서 조금 다른 구조로 의수를 설계했어요."

"하지만 저 의수는 진짜 손처럼 움직이잖습니까?"

"인공 근육과 의수 구조물의 상호 조화 설계가 완벽하거든요. 진짜 신개념 설계죠."

AI 전지인이 나강인에게 말했다.

-2082년 야전에서 의수 대용품을 만들 때 사용하는 설계입니다. 의수의 성능은 다소 떨어지지만 안정성은 높습니다.

엔지니어가 물었다.

"그럼 그 설계는 누가…."

이번에는 스칼렛이 나섰다. 그녀는 관객들의 뒤쪽을 슬쩍 보았다. 나강인이 변장한 알레이나와 함께 구경하고 있었다.

"미스터 나.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하고, 투자하고, 구조설계까지 직접 한 분이죠."

"오메가테크 소속인가요?"

"어머. 아니에요. 한국분이세요. ‘리얼 핸드’는 세 곳에서 공동으로 연구 개발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제 발표를 계속 진행해도 될까요? 아직 보여드릴 게 더 있거든요."

스칼렛이 뒤로 빠지고 유나린이 ‘리얼 핸드’의 발표를 계속했다.

기자들은 현장을 취재하며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특종이라니까요. 그냥 사람 손이나 마찬가지로 움직입니다."

"이거 속보 내야 합니다. 직접 보면 말로 듣는 것하고 달라요. 대박 냄새가 난다고요!"

"제가 동영상을 좀 찍긴 했는데요. 저쪽에서 방송국 카메라가 아주 대놓고 찍고 있는데요?"

‘리얼 핸드’의 시연과 유나린 박사의 설명이 끝났다.

박수 소리가 요란했다.

알레이나도 신나서 박수를 쳤다.

"대박! 저거 진짜 멋있다! 나도 하나 갖고 싶어!"

"저거 장난감 아니다."

스칼렛이 앞으로 나섰다. 뒤쪽 스크린에 영상과 사진이 떴다.

질문이 본격적으로 쏟아졌다.

"그 의수는 언제쯤 쓸 수 있는 겁니까?"

스칼렛이 대답했다.

"현재 보신 제품은 프로토타입이에요. 아직 기술이 발전하는 단계죠."

"저렇게 움직임이 자연스러운데 완성된 게 아니라고요?"

그녀가 씩 웃었다.

"프로토타입이 이정도인데 완성형은 얼마나 대단하겠어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제가 가진 설계도는 저게 완성형입니다.

나강인이 작게 물었다.

"저 다음 버전은?"

-2082년에는 있겠지만 제 초기 메모리에는 없습니다.

"저것보다 나은 걸 만들려면 갈 길이 먼데, 저렇게 큰소리치면 안 될 텐데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신경 신호 전달이나 인공 근육 성능을 올리면 개선은 되겠지."

-2082년에 비해 인공 근육과 신경 신호 전달 체계의 성능이 낮지만, 지금 상태로 양산해도 개인용으로는 충분히 쓸만합니다.

"하긴. 저건 전투용이 아니니까."

기자가 스칼렛에게 물었다.

"그러면 양산 계획은요?"

"우선은 오늘 공개한 프로토타입 버전을 주문제작 방식으로 조금씩 생산할 예정이에요. 지금보다 개선된 성능으로 대량생산까지 가능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죠."

"프로토타입을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터넷 구매 신청자 중에서 저희가 알아서 잘 선정할게요. 생산량은 소량이겠지만 선착순은 아니니까 서두르실 필요는 없어요."

"무작위 추첨인가요?"

"저희가 선정한다니까요?"

"선정 기준이 뭡니까?"

"비밀이에요."

"뒤쪽 화면 속에 중장비처럼 생긴 기계는 뭔가요?"

"그건 실제 제품이 아니라 예상도예요. 재난현장에서 활약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알레이나가 나강인에게 물었다.

"연구 중인 걸 왜 발표하는 거야? 아직 팔 수도 없는데."

"많은 사람이 실생활에서 써봐야 개선점을 더 빨리 찾아서 더 좋은 걸 만들지."

"아아."

"투자도 좀 받아야지. 양산으로 넘어가려면 공장도 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금이 많이 필요하니까."

"저 로봇도?"

그녀가 스칼렛의 뒤쪽 화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무한궤도가 달린 사람 크기의 초소형 탱크에, 포탑 대신에 손이 두 개 달린 형태의 로봇 예상도가 보였다.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서 작업하는 로봇인데, 저것까지 만들려면 투자금이 더 많이 필요해."

"그렇구나."

나강인이 오늘 발표에서 보려던 건 다 봤다.

"가자."

알레이나가 옆에 따라붙었다.

"저런 걸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천재일까?"

"저 두 사람은 천재 맞아."

"둘 다 아는 사람들이라고 했지? 그럼 공동으로 연구했다는 ‘미스터 나’도 알아? 누구야? 그 사람도 천재야?"

"아니. 보통 사람이야."

"아닐 거 같은데?"

나강인이 말을 돌렸다.

"나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가자."

"앗! 좋아! 오늘 변장했으니까 맛있는 거 먹고 놀이공원도 가자. 잠실에 있는 거."

"너 놀이기구 타면 위험하지 않냐?"

"으…. 그야 그렇지. 그럼 남들 타는 거 구경이라도…. 으응? 내가 놀이기구 타면 위험하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나강인이 둘러댔다.

"평소에 조금만 오래 걸어도 숨차하길래."

"어머. 바보인 줄 알았는데 눈치가 빠르네?"

"너보다 바보겠냐."

"나 바보 아니다!"

"그래. 그래."

***

오메가테크와 유나린의 의수 시연은 오후에 한 번 더 진행됐다.

이미 오전 시연의 소식이 퍼져 기자들이 많이 모였다. 방송국에서도 찾아왔다.

관련 기사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퍼졌다. 게임이나 로봇을 좋아하는 커뮤니티에서 특히 관심이 많았다.

게시판에 올라온 기사 링크에 댓글이 여러 개 붙었다.

-실제 사용 가능한 인공 근육을 개발하고, 그걸 이용해서 사람의 손처럼 작동하는 의수를 만들었군요.

-제어 방식은 근육의 움직임이 아니라 팔의 신경 신호를 캐치해서 증폭하는 거고요.

-인공 근육 자체에도 에너지를 저장해서 출력을 높였다네요. 그럼 진짜 근육하고 차이가 없는데요?

-인체의 신경 신호를 증폭해서 전달하면 인공 근육이 반응한다잖아요. 진짜하고 진짜 비슷한 거죠.

-저 의수 하나에 대단한 기술이 여러 개 들어갔어요.

-인공 근육이면 사람 몸에도 쓸 수 있나요? 운동 안 하고 근육질 몸매가 되고 싶어요.

-인체에는 사용할 수 없다던데요. 의체나 로봇용입니다.

뉴스가 나가면서 유나린 박사에 대한 것도 알려졌다.

-와. 나이가 30대인데 한국대학교 교수야.

-의대를 나왔는데 교수는 생화학 분야에서 합니다. 그런 분이 만든 건 로봇용 인공 근육이에요. 이분 뭐지?

-학교에서 유 교수님 수업을 들었는데요. 방송에서 보니까 되게 반갑네요.

-잘 가르치세요?

-유 교수님은 잘 가르치시죠. 듣는 우리가 바보라서 그렇지. 그래도 학점은 괜찮게 주세요.

***

나강인은 알레이나와 밥을 먹은 후에 잠실 놀이공원에 잠깐 들렀다가 집으로 데려갔다. 현재 알레이나의 체력은 그 정도 움직였으면 쉬어야 할 정도로 낮았다.

"이제 허튼짓하지 말고 푹 쉬어라."

알레이나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방긋 웃었다.

"오늘 마지막으로 재미있게 놀았으니까 이제 푹 쉴 거야."

"마지막 아니다."

"으응? 아. 그렇지. 마지막 아니지. 다음에 또 놀자. 이히히."

알레이나가 문을 닫고 들어갔다.

나강인이 바로 옆에 있는 그의 집 현관을 열며 말했다.

"수술 성공하겠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강인이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철인기공 이태성 본부장이었다.

-나 팀장님.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음…. 작업실로 오시죠."

나강인이 제작 거점으로 이동했다.

철인기공은 경기도 동쪽에 있다. 제적 거점과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이태성은 설계팀 차지희와 같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오는 길에 커피를 사 왔다.

나강인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본부장님 표정이 심각하시네요?"

이태성이 차가운 커피를 마신 후에 입을 열었다.

"유나린 박사와 오메가테크의 연구 발표 기사를 봤습니다."

"‘리얼 핸드’ 말이군요."

"나 팀장님의 드래곤 플레이트 설계비와 로열티가 그동안 유나린 박사에게 연구 투자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시다시피 관련 절차는 우리 회사가 대신 처리했습니다."

"덕분에 제가 편했죠."

"우리야 대행만 한 거라 그 예산이 어디 쓰이는지 자세히는 몰랐는데, 인공 근육 연구가 목적이었습니까?"

"그렇죠."

"그럼 역시 공동 연구자 ‘미스터 나’는 나 팀장님입니까?"

나강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다 보니까요."

옆에서 차지희가 말했다.

"역시 공학 천재."

"그렇다고 내가 천재는 아니고요."

이태성이 물었다.

"오늘 발표를 보면, 그 기술의 응용 분야가 의수 하나가 아니더군요."

"그렇죠."

"군사용으로도 쓸 수 있고요."

나강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군사용으로는 단가가 안 맞을 텐데요. 무인차량에 로봇 팔을 장착하고 소총을 주는 것보다, 그냥 처음부터 기관총을 달아놓는 게 훨씬 싸게 먹힐 겁니다."

차지희가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그게 로망인데…."

이태성이 말했다.

"야전에서 전투용으로 쓰기에는 단가가 안 맞죠. 그건 압니다."

"전투용이 아니면요?"

"폭탄 해체 로봇용으로 쓸 수 있잖습니까?"

"아. 그건 가능하죠. 사람이 VR 고글을 쓰고 재난현장용 로봇을 조종해 폭발물을 해체하면 되니까요."

"바로 그거죠. 저 기술을 쓰면 인명피해 없이 현장에서 폭발물을 해체할 수 있습니다. 해체하다 폭탄이 터져도 로봇이 망가지지 사람이 죽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네요."

이태성이 다른 아이디어도 말했다.

"실내에 있는 범죄자를 체포할 때 로봇이 먼저 들어가면, 경찰 대테러 작전 때도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그러려면 계단을 오를 수 있는 다리가 있어야 한다.

나강인이 물었다.

"이태성 본부장님. 인간형 로봇을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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