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33화 (333/411)

333. 인간형

철인기공 본부장 이태성이 말했다.

"‘리얼 핸드’ 발표 영상을 봤습니다. 그런 완벽한 손을 만들 수 있으면 발도 개발할 수 있겠지요. 물론 다리도요. 거기서 더 발전시키면 인간형 로봇도…."

나강인이 손을 슬쩍 들었다.

"이제 겨우 의수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의수 설계도처럼 의족 설계도가 있기는 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제가 가진 야전 상황용 의족 대용품 설계도의 최소 요구치보다, 현재 신경 신호 전달 기술과 인공 근육의 성능이 현저히 낮습니다. 보유한 설계도를 사용하려면 그 두 기술 모두 큰 폭의 성능 개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의족은 의수보다 만들기가 많이 어렵습니다. 현재 개발된 신경 신호 전달 체계는 딜레이가 있거든요. 인공 근육도 반응속도에 딜레이가 있고요."

"예? 완벽해 보였는데…."

"손은 사용자의 의도보다 조금 늦게 움직여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발은 다르죠. 사용자의 생각보다 반응이 느리면 넘어집니다."

"아…. 그래서 손을 먼저 개발하셨군요."

"손만 개발한 겁니다. 지금 기술로는 의족조차 어렵고, 인간형 로봇을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태성이 진지하게 물었다.

"그럼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는 인간형 로봇의 개발이 가능할까요?"

이태성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인공 근육을 사용하는 의수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가 흥분한 얼굴로 설명했다.

"‘리얼 핸드’ 기술을 적용한 원격 제어용 옷을 사람이 입고 움직이면, 로봇은 그 사람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겁니다. 거기다 VR 고글만 추가하면 무선 조종 방식의 인간형 로봇이 나오잖습니까?"

옆에서 설계팀 차지희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맞아요. 영상에는 커피 만드는 로봇도 있던데, 그걸 더 발전시키는 거죠."

나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그건 홍보용 3D 영상일 뿐이고, 그나마도 다리가 없잖습니까? 전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나강인이 도로 물었다.

"그리고 인간형 로봇을 만들어서 어디 쓰게요?"

차지희가 말했다.

"그게 로망이라…."

이태성이 얼른 끼어들었다.

"인간형 로봇을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방사능 재난현장 처리에 투입하면 되잖습니까? 군사용이나 경찰용이 아니라요."

"그런 방사능을 맞으면 로봇이 망가집니다. 현재 개발된 신경 신호 감지 센서나 인공 근육은 방사능에 예민한 장비라서요."

이태성은 관련 자료를 받아본 게 아니라 뉴스만 보고 찾아왔다. ‘리얼 핸드’의 구체적인 스펙은 모른다. 그가 입맛을 다셨다.

"아쉽네요. 성공만 하면 외국에 비싸게 많이 팔 수 있었는데."

나강인이 선언했다.

"인간형 로봇은 난 안 만들 겁니다."

이태성이 제작 거점 앞마당을 떠나기 전에 말했다.

"우리 회사는 유나린 박사의 연구비 지원 업무를 대행하고 있고, 오메가테크와는 드래곤 플레이트로 협업 중입니다. 거기다 나 팀장님도 계시죠. 우리처럼 두루 가까운 회사는 없을 겁니다."

"그건 그렇죠."

"그래서 우리 회사도 이 프로젝트의 파트너가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제가 반대할 이유는 없지요."

이태성이 활짝 웃었다.

"하하. 고맙습니다."

"오메가테크나 유나린 박사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만."

"그거야 우리 회사에서 설득해야죠."

두 사람이 앞마당을 떠난 후에 나강인이 야외 테이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멀어지는 차가 보였다.

나강인이 조금 남은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지인아. 인간형 로봇 설계도는 초기 메모리에 없지?"

-물론입니다. 완전한 형태의 인간형 로봇 개발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알아. 확인하고 싶어서 물어봤어."

-요원님. 인간형 로봇은 안 됩니다. 차라리 개 로봇을 만드십시오.

"나도 안다고. 안 만든다고."

나강인이 마지막 남은 커피를 마신 후에 물었다.

"그럼 초기 메모리에는 어디까지 있어?"

-손실된 신체를 대체하는 기술 중에서, 전장에서 대용품 제작이 가능한 일부만 있습니다.

"이번에 만든 인공 의수처럼?"

-그렇습니다. 이번 의수에 적용된 설계도면은 전장에서 만들 수 있는 의수 대체품의 도면입니다.

"철인기공에서는 신기술이라면서 감탄해서 찾아왔는데."

-2082년에는 대체품 취급이지만, 지금은 개념조차 없는 기술이 적용되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중에 어떤 게 신개념 기술인지 모르지만."

-만들 줄은 알지만 적용된 이론은 모릅니다.

"우리 지인이가 조금만 더 똑똑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요원님이 논문을 보고 이해할 수 없으면 저도 못합니다. 제가 바보면 요원님도 바보입니다.

"넌 사람 다 되더니 욕이 늘었어."

승용차가 한 대 다가와 바로 앞 공터에 주차했다.

오늘 이곳에 오기로 한 사람은 철인기공 이태성 외에도 있었다. 이태성보다는 늦게 연락이 와서 약속도 늦게 잡았다.

차에서 총권도 수련생인 정보기관 요원 김경식이 내렸다. 그런데 김경식은 정보기관 수습 요원 두 명을 데려왔다.

김경식이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나 사범님은 정말 사람을 여러 번 놀라게 하십니다. 사범님이 ‘미스터 나’ 맞으시죠?"

"뭘 굳이 확인까지 합니까?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짐작만 했습니다. 유 박사님과 가깝게 지내셨다는 것만 알아서 저희도 확신은 없었거든요. 역시 맞네요."

수습 요원 김 과장이 슬그머니 다가와 테이크아웃 커피를 나강인의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사 왔습니다."

"땡큐. 마침 한 잔 더 필요했는데."

김 과장이 커피 석 잔을 더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김경식도 자기 몫의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VTX-13이나 드래곤 플레이트 때도 나 사범님의 기술 능력에 감탄했지만, 이번엔 전혀 다른 분야에서 또 놀라게 하시네요. 인공 근육을 사용하는 의수라니요."

"인공 근육은 유 박사님이 만든 겁니다."

"압니다. 그래도 나 사범님이 프로젝트를 주도하시고 전체 설계도 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보기관에서도 ‘리얼 핸드’에 관심이 있나 봅니다."

"산업스파이 문제는 우리도 담당하거든요. ‘리얼 핸드’에서 오메가테크가 개발한 부분은 하나인데, 한국에서 한국사람이 개발한 건 두 개니까 잘 지켜야죠. 그 좋은 기술을 누가 훔쳐갈지도 모르잖습니까?"

나강인이 제작 거점을 향해 손짓했다.

"해커가 저기 침입해서요?"

김경식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 사범님의 해킹 방어 능력이야 유명한데 그 걱정을 왜 하겠습니까? 다만, 누가 직접 침입해서 컴퓨터를 통째로 들고 가면…."

"컴퓨터를 훔쳐간다 해도 중요 데이터에 걸려 있는 락을 깰 수 있는 놈은 없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도둑놈을 도로 추적하기 좋게 설치해둔 것도 좀 있고요. 누가 침입하든지 찾아가서 다 쓸어버리고 도로 찾아오면 되죠."

"그런 것까지…. 설마 부비트랩을 설치하신 건 아니죠? 지뢰나 고압 전류 같은…."

"제가 사람을 막 죽이고 다니진 않는다니까요?"

"하, 하하. 그렇죠. 그런데 만에 하나 역추적에 실패하고 락까지 깨지면요?"

"지금 기술로는 락을 깨는 건 불가능할 텐데…."

"그러니까 만에 하나…."

나강인이 제작 거점을 다시 가리켰다.

"저곳에 있는 컴퓨터에는 ‘리얼 핸드’를 리버스 엔지리어링으로 분석하면 알아낼 수 있는 수준의 설계도 데이터만 들어있습니다. 도둑놈이 신내림이라도 받아서 락을 깨도 큰 의미는 없습니다."

"역시 철저하시군요. 그럼 특허는…."

"오메가테크에서 특허 등록을 대행해주기로 했습니다."

"아. 오메가테크면 국제 특허까지 깔끔하게 처리하겠네요. 거기가 원래 기술 회사라 특허 쪽으로는 달인 수준이죠."

나강인이 커피를 내려놓았다.

"기관에서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유나린 박사입니다. 유 박사의 인공 근육. ‘리얼 핸드’에서는 그게 핵심이거든요."

"당연히 유 박사님도 저희가 신경 써야죠. 그분은 다시 정부의 특별관리대상에 포함될 겁니다."

나강인이 불평했다.

"거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김경식이 어색하게 웃었다.

"국가 예산에도 한계는 있어서요. 하, 하하."

"엄한 놈들이 해먹는 예산만 잘 챙겨도 유 박사님한테 갈 예산은 충분할 텐데요."

"그야 그렇죠. 근데 그건 또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서…."

나강인이 수습 요원 두 명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저 친구들은 왜 데려온 겁니까? 추가 훈련이 필요하면 좀 더 굴려줄 수 있는데."

두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아, 아닙니다!"

"저희는 보호 임무를 받았습니다!"

설사 수습이라 해도 정보기관 요원들이 붙어 있으면 코앞에 닥친 비밀수술은 못 한다. 나강인은 그들을 달고 다닐 생각이 없다.

"나를? 너희들이? 기관이 미친 건가?"

김경식이 손을 흔들었다.

"어휴. 당연히 아니죠. 유나린 박사님이 다시 특별관리대상이 되면 저 친구들이 담당할 겁니다. 그 이야기였습니다."

"유 박사님에게 수습을 붙인다고요?"

"저희 인력과 예산이…. 하, 하하. 저 친구는 유 박사님과 같은 여자니까 상황에 따라서는 화장실까지 따라가는 근접경호도 가능하죠. 그리고 둘 다 나 사범님께서 잠깐이지만 훈련도 시키고 데리고 다니기도 했잖습니까? 그래서 쟤들이 선정됐습니다."

"아니, 그래도 유 박사님 곁에 저런 햇병아리들을…."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서…."

"뭐, 없는 것보다는 낫겠죠."

***

드라마 ‘바보의 사랑’은 일주일에 두 편씩 방송된다.

첫 편은 시청률 12%를 찍었다. 쌍천만 영화의 톱스타 김유찬이 나오고, 남현주와 오세나, 신은하가 경쟁하는 드라마치고는 높은 시청률은 아니었다.

KMTV 국장이 물었다.

"야. 최 피디. ‘바보의 사랑’이 기대보다 시청률이 낮은데 이유가 뭐 같냐?"

최진욱이 대답했다.

"아유. 국장님. 첫 화 12%면 엄청 높은 거죠."

"평범한 드라마면 그렇지. 그런데 우리 방송국에 다시 없을 초호화캐스팅을 하고도 12%? 원숭이를 데려다 연출을 시켜도 그것보다는 많이 나오겠다."

"그래도 제가 원숭이보다는 낫죠."

"원숭이보다 나아서 좋냐? 좋아?"

"어…. 좋아하면 안 되는 분위기네요?"

"이게 진짜. 아오. 그래서 그 캐스팅으로도 시작이 어중간한 이유가 뭔데?"

최진욱도 할 말은 있다.

"당연히 홍보 부족이죠. 드라마를 겨우 보름 만에 찍어서 방송했습니다. 홍보할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걸 아는 놈이 여주인공 선정에 그렇게 오래 걸려?"

"그렇게 오래 걸렸으니까 겨우 그 예산으로 스타급 여배우 세 명을 잡은 거 아니겠습니까? 하, 하하."

"말은 잘한다."

최진욱이 큰소리쳤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 드라마 입소문이 엄청나게 나고 있습니다. 오늘 밤 2화는 다를 겁니다."

"제발 좀 그래라. 그 초호화캐스팅으로 말아먹으면 너 능력 의심받아."

최진욱이 움찔했다.

"말아먹다니요. 무슨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까? 안 그래도 부담 엄청 받고 있는데."

"부담은 너만 받냐? 나도 받아. 그런데…."

국장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물었다.

"나강인은 어때?"

"뭐가요?"

"진짜 그렇게 잘해?"

"어? 국장님. 우리 드라마 안 보셨어요?"

"너도 국장 자리에 앉아봐. 이건 뭐 밤에도 모임에 회의에 업무 연장 술자리에, 엄청 바빠. 그래서 잘하냐고."

최진욱이 활짝 웃었다.

"액션의 신입니다."

"그 정도야?"

"뭘 상상하시든 그 이상입니다."

***

그날 밤에 ‘바보의 사랑’ 2화가 방영됐다.

드라마 관련 커뮤니티 게시판에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와…. 액션 영화 같은 드라마라고 들어서 봤더니, 이건 뭐 어지간한 영화보다 더 화끈하네요.

-1편 안 보셨으면 그것부터 보세요. 진짜 쩝니다.

-김유찬은 바보 연기가 왜 저렇게 잘 어울린대요?

-잘생긴 바보가 저기 있네?

-역시 김유찬의 연기는 쩌네요.

-송인준 연기도 좋아요. 전보다 더 잘하는 듯.

-그래도 송인준이 김유찬의 저 바보 같은 모습에는 밀리네.

-저건 누가 와도 못 이길 걸요? 바보가 너무 잘 어울려요.

-저 바보가 가면만 쓰면 카리스마가 진짜….

-가면 썼을 때는 액션도 쩔죠.

-그때 액션은 김유찬이 아니라 무술 대역이 하겠죠. 직접 했다고 보기엔 너무 쩔잖아요.

-진짜요? 하도 비슷해서 당연히 김유찬 본인인 줄 알았어요.

-대역도 연기력이 대단한 거겠죠.

‘바보의 사랑’의 설정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기서 김유찬은 정체가 뭔가요? 원래 바보처럼 웃고 다니는 게 본모습인데 가면을 쓰면 변하는 건가요?

-아니죠. 원래는 가면이 본체인데 그걸 벗었을 때는 순박하고 착한 모습으로 위장하는 거겠죠.

-둘 다 틀렸습니다. 저건 그냥 잘생긴 바보입니다.

-뭐가 맞는지 공식 발표 없어요?

-없어요.

김유찬만 화제가 된 게 아니다.

-와. 남현주 액션 봤어요? 그 풋풋하고 청순하던 남현주가 왜 여전사가 됐어요?

-공중회전으로 날아다니면서 싸울 때는 다른 사람 보는 줄 알았습니다.

-대역 썼겠죠.

-대역은 무슨. 날아다닐 때 얼굴이 선명하게 나오던데. 남현주는 본인이 모든 액션을 직접 연기했어요.

-국민 첫사랑이 아니라 이제 국민 쎈 언니인가?

-남현주만 잘하나요? 오세나랑 신은하도 잘하죠.

-맞아요. 그 세 사람 연기는, 특히 서로 만나는 장면에서는 아주 불꽃이 튀어요.

-정말 그 세 사람은 이 악물고 연기하는 게 보여요. 표정 하나, 대사 한 마디도 대충 하는 게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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