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34화 (334/411)

334. 디데이

드라마 ‘바보의 사랑’은 주연급만 주목을 받은 게 아니다. 다른 배우들도 관심을 많이 받았다.

-이보라 연기 많이 늘었던데요.

-액션도요. 푸른 하늘 때도 액션을 좀 하더니 이번엔 더 잘하네요.

-공지현은 아역 때도 잘했는데 이젠 완전히 물이 올랐군요.

-난 김유찬 여동생 역할로 나온 여고생이 마음에 들던데.

-맞아요. 벽 차고 점프해서 회오리 발차기 날릴 때는 특수요원 보는 줄 알았어요.

-여고생 특수요원! 그런 드라마 나오면 재미있겠다.

-성격도 엄청 밝아 보여서 좋아요.

-에이. 밝은 성격은 연기겠죠.

같은 학교 학생이 댓글을 달았다.

-이연지 우리 학교 다녀요. 걔 원래 성격이 드라마하고 똑같아요. 땡땡이도 잘 쳐요.

-아직 학생인데 땡땡이는 아니지.

-근데 전교 1등이에요.

-가끔 칠 수도 있지.

‘바보의 사랑’ 2화 방영이 끝났다.

남현주가 손을 비비며 스마트폰을 보았다. 잠시 후에 그녀의 스마트폰으로 시청률 조사 결과 문자가 들어왔다.

"어?"

그녀가 화면을 켰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2화 만에 17%? 어제보다 5%나 올랐어?"

쌍둥이 남동생들이 옆에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이게 다 누나가 잘해서야!"

"축하하는 의미에서 용돈을 쏘시오!"

"너희들 사채라도 썼니? 용돈이 왜 또 필요한데?"

"누나가 기분 좋을 때 미리 챙겨놔야 용돈 가뭄 때 버티지."

"옜다. 이제 꺼지렴."

"응! 냉큼 사라질게."

"TV 리모컨도 누나 가져!"

쌍둥이 동생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남현주가 거실에 혼자 남아 스마트폰의 연락처를 열었다. 나강인의 전화번호가 즐겨찾기에 등록되어 있었다.

그녀가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받지를 않았다.

"쳇. 이 기쁜 소식을 핑계로 이야기라도 좀 하려고 했는데."

그녀는 통화를 포기하고 인터넷 기사를 검색했다.

"칭찬. 칭찬. 칭찬 댓글만 볼 거야."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발신자가 신은하였다.

"얘가 왜 지금?"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응. 은하야."

-현주 언니 지금 어디예요?

"집인데?"

-그렇구나. 알았어요.

남현주는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야. 잠깐. 끊지 말아봐."

-왜요?

"네가 왜 이 시점에 내 위치를 확인할까?"

-그냥?

그녀가 씩 웃었다.

"나 감독님이 네 전화도 씹어?"

-어떻게 알았어요?

"나도 전화해봤으니까 알지.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지?"

-원래 전화 안 받을 때가 많아요. 아주 그냥 휴대폰을 시계로 쓴다니까요.

"그래? 알았어."

통화를 마친 후에 남현주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TV 리모컨을 눌렀다.

"은하가 하도 큰소리쳐서 그런가 했더니, 걔도 뭐 특별한 사이는 아닌가 보네."

TV에서 오메가테크의 의수 이야기가 나왔다. 그 기술로 로봇을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한 흥미 위주의 방송이었다.

"나 감독님은 지금 뭐하시려나."

***

나강인은 이정호 외과 과장의 처남인 손성현의 성형외과에서 사람들과 수술 전에 손을 맞춰보았다.

연습을 마친 후에 나강인이 말했다.

"수술 당일에는, 저는 알레이나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나서 병원에 오겠습니다. 마주치면 곤란하니까요."

마취를 맡은 손성현이 대답했다.

"닥터 노네임은 당연히 그러셔야죠. 정체가 드러나면 큰일 나는데요."

"그럼 일이 있어서 이만."

나강인이 먼저 병원을 나갔다.

오늘 연습에 참여한 로버트 민도 말했다.

"나도 필요한 물자를 빼돌리려면 밤에 처리해야 할 게 있어서 먼저 가겠습니다."

두 사람이 나간 후에, 이정호가 남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힘을 모아 환자를 살리는 게 벌써 세 번째군요."

알레이나와 같은 병을 앓았던 이연지와 권수연도 이 비밀수술을 받았다.

손성현이 웃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손이 착착 맞는 느낌이죠."

"겨우 세 번으로 자신하지 마라. 목숨이 걸린 일이다."

"알죠. 어디 환자의 목숨만 걸렸나요? 만약에 환자가 잘못되면…."

나강인은 의사 면허가 없다. 그 비슷한 것도 없다. 그런 그가 수술의 핵심 역할을 맡는 건 불법이다.

그런데 불법으로 수술하다 걸리는 것과 그러다 환자가 사망하는 건 차원이 다른 사건이다.

손성현이 말했다.

"난 수술실까지 빌려줬으니까, 환자가 사망하면 매형이랑 닥터 노네임이랑 나랑 셋이서 사이 좋게 손잡고 교도소 가겠네요."

이정호가 인상을 썼다.

"넌 로버트 앞에서는 그런 소리 절대로 하지 마라."

"제가 뭐 바보인가요? 로버트가 먼저 나가서 우리끼리만 있으니까 말한 거죠."

외과 의사 김중석이 손을 들었다.

"저도 있는데요."

"알지. 김중석 선생도 우리 편이잖아."

이정호의 아내이면서 손성현의 누나인 손미연이 말했다.

"비밀수술은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요. 이거 할 때마다 들킬까 봐 무서워서 진짜."

율명바이오 사장 권동진이 손뼉을 쳤다.

"자. 연습이 끝났으니까 야식이라도 먹으면서 쉬죠. 늦은 시간에 한 시간 동안 집중했더니 당이 떨어지는 느낌이 드네요."

김중석이 입맛을 다셨다.

"먹을 거라면…."

"족발에 소주?"

이정호가 말했다.

"수술 전에는 금주 하셔야 합니다."

"당연하죠. 오늘만 마시고 디데이까지 딱 끊을 겁니다. 그땐 가볍고 맛있는 디저트를 가져오죠. 하하하."

***

별일 없이 며칠이 지났다.

수술 당일 저녁에 알레이나가 로버트의 차에서 숨을 골랐다.

"아빠. 기다리고 기다리니까 오늘이 드디어 왔네?"

"그래. 드디어 오늘이다. 늦어서 미안하다."

"아니야. 아빠는 비밀수술을 준비하느라고 한국에 회사까지 만들었잖아. 고생 많이 한 거 다 알아."

"네가 날 이렇게 알아주는 게 얼마 만인지…."

"뭐래."

"다시 옛날처럼 인생 막사는 부끄러운 딸이 돼도 좋으니까 건강하기만 해라."

"내가 언제 막살았다고 그래? 난 마약은 안 했다고."

"그거 했으면 넌…."

알레이나의 몸은 이미 한계에 가까운 상태였다. 만약 예전에 마약을 했으면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다.

알레이나가 말했다.

"나 안 죽었어. 그럼 됐잖아?"

"그래. 수술 끝나고 건강해진 다음에도 마약에는 손대지 마."

"당연하지. 마약 하다 맛 간 사람을 한두 명 본 줄 알아? 난 그냥 조신하게 술만 마실 거야."

"넌 술을 좀 많이…."

알레이나가 손을 내밀었다.

"아빠. 거기까지. 나 오늘 수술받으러 가는데 잔소리는 그만."

"아. 그래."

알레이나는 한밤중에 손성현의 병원에 도착했다.

로버트가 엘리베이터에서 당부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비밀수술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아. 네가 오늘 만나는 사람들은 그냥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 거야."

"알아. 연지 부모님과 외삼촌은 아빠랑 연지 핑계를 대면 되고, 제약회사 사장님은 정호 아저씨랑 아빠 통해서 아는 사이라고 하면 되는 거잖아."

"김중석 선생도."

"정호 아저씨가 아끼는 제자라서 우연히 얼굴만 봤다고 하면 되지?"

"그래. 그거지."

알레이나가 아쉬워했다.

"닥터 노네임은 누구인지 궁금해하지도 말아야 하고."

"이 수술은 닥터 노네임이 없으면 불가능해. 하지만 그는 진짜 닥터가 아니지. 그게 들통나면 여러 사람이 다쳐."

알레이나가 큰소리쳤다.

"나만 믿어. 내가 설마 그런 걸 함부로 이야기하겠어? 마약이라도 하기 전에는 그럴 일 없어."

"그럼 술도…."

"나 다 나으면 강남이랑 홍대에 술 마시러 갈 거야. 엄청 기대 중이니까 말리지 마."

두 사람이 손성현의 성형외과에 들어갔다. 이미 와 있던 사람들이 그녀를 반겼다.

특히 손성현은 활짝 웃었다.

"알레이나 씨! 팬입니다!"

알레이나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같이 사진이라도 찍…."

손미연이 손성현의 등을 때렸다.

"미쳤니? 병원에 사진 걸어놓게? 내 남편 감옥에 보내고 싶어? 알레이나는 오늘 여기 온 적 없어. 흔적도 남기지 마."

"알았다고."

알레이나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정호과 권동진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사진이 나온다. 손성현도 병원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려놓았다. 손미연은 여자다.

김중석이 얼른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중석입니다."

"네. 반가워요. 오늘 잘 부탁드려요. 그런데…."

알레이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닥터 노네임은…."

"마취가 끝나면 올 겁니다."

"아. 그렇군요."

‘아예 마주치지도 않게 하려는 거구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사람들이 먹고 있던 것을 보았다.

"어? 그건…."

율명바이오 사장 권동진이 테이블에 올려놓은 과자를 가리켰다.

"아. 이건 수술 전에 당을 보충하려고 가져온 겁니다."

"그 과자는…."

"이거 진짜 맛있는데, 알레이나는 수술 전이라 먹으면 안 돼요. 수술 잘 받고 나면, 내가 나중에 좀 얻어올 테니까 그때 먹어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건 광돌이가 만든 잡탕 과자가 맞는 거 같은데?’

그녀는 잡탕 과자를 피시방에서 먹어봤다. 옆집에 사는 나강인을 졸라서 얻어먹은 적도 있다. 그래서 잡탕 과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안다.

그녀가 물었다.

"얻어오시는 거면…. 파는 게 아닌가 보죠?"

나강인은 권동진의 딸 권수연의 친구다. 그래서 오늘 수술에 참여하는 사람 중에 오직 권동진만 나강인에게 반말을 한다.

권동진은 그걸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건 닥터 노네임이 만든 수제품 과자입니다. 하하."

"네?"

"수술 잘 받으면 내가 닥터 노네임한테 말해서 꼭 선물할게요. 하하하."

권동진은 알레이나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한 말인데, 정작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광돌이랑 닥터 노네임이 왜 똑같은 과자를 만드는데?’

그녀는 잡탕 과자가 너무 맛있어서 다른 곳에서 살 수 있는지 알아본 적이 있다. 하지만 파는 곳도 없고 레시피도 공개되지 않았다.

‘피시방에 물어봤을 때도 광돌이만 만들 줄 안다고 했는데….’

그녀가 물었다.

"그러니까 닥터 노네임이 잡탕 과자를 만들 줄 안다는 거죠?"

"그래요. 잡탕 과자를…. 어?"

권동진이 당황했다.

"이 과자 이름을 어떻게…."

"제가 다니는 피시방에서 가끔 먹어봤고요. 옆집에서도…."

"여, 옆집?"

이정호는 알레이나의 집이 어디 있는지 안다. 그가 뒤늦게 문제를 깨닫고 개입했다.

"제가 말렸어야 하는데…. 권 사장님이 방금 실수하셨습니다."

"아니, 난 그냥 응원하려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잠시만요."

이정호가 한숨을 쉰 후에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비가 벌써 끝났습니까?

"아니요. 좀 와보셔야겠습니다. 비밀 유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습니까?

"그건 아닌데, 알레이나가 눈치챘습니다. 지금 확실히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면 나중에 문제가 터질 수 있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잠시 후에 나강인이 병원으로 들어왔다.

알레이나가 나강인을 가리키며 외쳤다.

"앗! 진짜 광돌이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요원님이 누구인지 광년이에게 들켰습니다. 파국입니다.

나강인이 한숨을 푹 쉬었다.

"어쩌다 네가 우리 상황을 알게 됐을까?"

알레이나가 잡탕 과자를 가리켰다.

"저거 보고! 어때? 내 추리력 장난 아니지?"

"저건 또 어디서…."

나강인이 이정호와 권동진을 보며 물었다.

"연지입니까? 수연이입니까?"

그는 두 사람에게 잡탕 과자를 가끔 챙겨준다.

권동진이 사과했다.

"내가 일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실수로…."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대책을 세워야죠."

로버트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닥터 노네임. 우리 딸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 수술이 유일한 치료법입니다. 비밀 유지는 확실히 할 테니까, 부탁합니다. 알레이나. 비밀 잘 지킬 거지?"

알레이나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잠깐만. 그러니까 진짜 쟤가 닥터 노네임이야?"

"쟤라니! 예의를 지켜!"

"아니, 그게 아니라…. 광돌이한테 내 운명을 맡기라니까…."

로버트는 초조했다. 나강인이 빠지면 수술은 불가능하다.

"넌 왜 자꾸 닥터 노네임을 이상하게 부르는 거냐!"

"하지만 쟤가 먼저 날 광년이라고 불렀단 말이야!"

"어? 뭐? 그게 무슨…."

나강인이 둘러댔다.

"친하게 지내려고 붙인 별명입니다."

-요원님. 좀 미친 것 같아서 광년이라는 별명을 붙인 거잖습니까?

로버트의 표정이 펴졌다.

"그렇군요! 그냥 아는 사이도 아니고 친하게 지내셨군요!"

알레이나가 나강인에게 물었다.

"진짜 나랑 친하게 지내려고 그런 거야?"

"네가 나를 광돌이라고 부른 건 그럼 다른 이유가 있던 거냐?"

"어…."

"왜 머뭇거리지? 광돌이 그거 욕이었냐?"

"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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