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 꿈나무
권수연이 물었다.
"그럼 이 디저트를 또 누구 주려고?"
나강인이 대답했다.
"유나린 박사님 연구실에도 돌려야지."
"거긴 사람 많잖아."
"그래서 그쪽 건 상자가 좀 커."
"설마 그 연구실에 연구 성공 축하 선물 주려고 만들면서 내 것도 덤으로 만든 건 아니지?"
"네 디저트는 마음을 담아서 따로 만들었지."
권수연이 웃었다.
"진짜? 고마워."
"재료랑 조리법은 똑같지만."
"마음 담은 거 맞아?"
"마음은 저울에 달 수가 없어서 위에 살짝 뿌렸다. 거기 반짝거리는 거 보이지? 그게 내 마음이야."
"설탕 아냐?"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네 거가 더 달아."
***
나강인이 유나린 박사의 연구실로 찾아가 새로 만든 디저트를 돌렸다.
연구에 지친 대학원생들의 뇌를 깨우려면 당분이 필요했다.
대학원생들이 디저트를 먹으며 환성을 질렀다.
"우와아. 이거 진짜 맛있어요!"
"어디서 팔아요?"
나강인이 대답했다.
"파는 거 아닙니다. 수제품입니다."
"수제품으로 팔아요?"
"내가 직접 만들었다고요."
유나린도 자기 몫의 디저트를 먹으며 말했다.
"요리 잘하는 남자시구나."
"취미 삼아 좀 하는 거죠."
"변장도 잘하시고."
"네?"
"아, 아니에요."
유나린이 얼른 말을 돌렸다.
"아참. 우리 연구 엄청 유명해진 거 아시죠?"
"요 며칠 좀 바빠서 잘은 모릅니다."
비밀수술이나 촬영 등으로 바빴다. 기사를 몇 개 보긴 했지만 자세히 찾아보진 않았다.
"어머. 못 보셨구나. 뉴스에도 엄청 많이 났고요. 인터뷰도 여러 번 했어요."
"잘됐네요."
"인터뷰하다 보면 미스터 나가 누구냐는 질문이 꼭 나와요. 우리 애들이 입조심을 해서 알려지진 않았는데, 언제까지 괜찮을진 몰라요."
"그런 관심은 곧 사라질 겁니다. 제일 중요한 기술은 유 박사님의 인공 근육이니까요."
"꼭 그런 건 아닌데…."
"사람들이 그다음으로 신기해할 건 신경 신호 전달 기술이죠. 의수의 구조설계는 보통 사람은 관심 없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겠죠."
"일반인들은 그러겠지만…."
"기자들도 일반인이잖아요. 그 질문은 그냥 덤으로 하는 겁니다."
유나린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게 아닌데, 그렇겠네요."
"그러니까 인공 근육 기술을 노리는 놈들이 많겠죠. 정부에서 유 박사님을 다시 특별관리대상으로 지정한다던데요."
"아직은 아니에요. 곧 된다고 듣긴 했어요."
"이 사람들 일 처리가 느리네요. 그럼 해커 방어를 위해 따로 조치 받은 것도 없겠군요?"
"그렇죠. 나 팀장님이 세팅해주신 그대로예요."
AI 전지인이 예전에 유나린의 연구실 컴퓨터 보안을 강화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취약점은 대부분 막아놨습니다. 미세한 빈틈은 남았지만 해커가 뚫고 들어오긴 극히 어렵습니다. 그 빈틈 입구에 가드를 세워뒀습니다. 파고들려는 시도만 해도 요원님의 휴대폰으로 경고 문자가 날아올 겁니다.
"그런 문자는 안 오더라. 안 뚫렸나 봐."
나강인이 유나린의 컴퓨터를 가리켰다.
"지난 며칠 동안 누가 뭘 노렸는지 확인 좀 해도 될까요?"
"앗! 네! 우리 보안을 업그레이드해주신 분인데 당연하죠!"
나강인이 자리에 앉았다.
"지인아. 어떤 손님들이 왔다 갔는지 좀 보자. 돌아갈 때 발자국은 남겼겠지."
AI 전지인이 나강인이 손을 빌려 상황을 점검했다.
-지난 며칠간 해킹 시도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얼마나?"
-기존의 백 배 이상입니다.
"외국 해커들이 개나 소나 다 건드려봤나 보네."
-적극적인 해킹 시도도 여러 건 있습니다. 그 경우는 그냥 건드려본 수준이 아닙니다.
"인공 근육 기술의 가치를 눈치챈 놈들이겠지. 어느 나라에서 시도했어?"
-한두 국가가 아닙니다.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미국 등등 다양한 국가의 해커가 해킹을 시도했습니다.
"국제적이네."
-북한 해커도 있습니다.
"그걸로 무기라도 만들 줄 아나?"
-국내에서도 해킹 시도가 있었습니다.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국내 해커가 간도 크다. 국내 기술을 노리다 걸리면 체포될 텐데 말이야."
-국내 해커들을 역추적해서 경찰에 넘길까요?
"당연하지. 어디 감히 여기를 노려? 전부 다 추적해."
-국내 해커 중 일부는 외국을 경유해 해킹을 시도했습니다.
"응? 일부? 그럼 외국을 경유하지도 않고 국내에서 다이렉트로 해킹을 시도한 놈들도 있는 거야?"
-많습니다.
"이런 아마추어들을 봤나."
-해커 꿈나무들입니다. 계속 추적할까요?
"나쁜 해커 나무가 되기 전에, 새싹일 때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리지. 전부 다 추적해."
-알겠습니다. 12건의 국내 직접 해킹 시도를 역추적하겠습니다.
AI 전지인이 역추적을 시작했다.
나강인이 그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차 이사도 이 기술을 노리겠지?"
-현재 여러 기관에서 동시에 차 이사를 쫓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산업스파이 활동을 하긴 어렵습니다.
"몽타주를 들고 여러 기관이 쫓는 건 맞아. 먼저 잡는 기관이 위너가 되거든. 그러니까 차 이사가 잡히는 건 시간문제야. 그런 상황에서 그놈은 뭘 하려고 할까?"
-외국으로 도주하려고 할 겁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국내에 있으면 답이 없으니까 외국으로 도망쳐서 당분간 잠수라도 타겠지."
-도망치기 전에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난 차 이사가 그냥 도망만 칠 놈은 아니다 싶어."
-겁이 없는 성격이긴 합니다.
"도망치기 전에 크게 한탕 하고 뜨고 싶겠지."
-돈은 이미 많을 겁니다.
"망가진 체면이나 무너진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챙겨야 하잖아."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있어 보이는 신기술이 딱 나왔네? 그중에서도 제일 핵심인 인공 근육 기술은 보안 짱짱한 대기업 연구소가 아니라 이 연구실에서 개발했네?"
-차 이사가 이 기술을 노릴 거라고 보십니까?
"최소한 찔러는 보겠지. 도망치고 있는 놈이 여기 직접 침입하긴 어려울 테니까 해킹을 시도했을 거야. 그놈이 그동안 기술 빼먹던 거 보면 해킹 능력도 상당할 테니까."
-타당한 추측입니다.
나가인이 지시했다.
"지인아. 국내 꿈나무들 역추적이 끝나면, 국내에서 외국을 경유해 해킹을 시도한 놈들을 모두 찾아내. 그중에 차 이사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알겠습니다.
***
나강인은 한국대학교에서 보안 점검을 마치고 나온 후에 합수부 형사를 만났다.
형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저희가 꿀 잘 빨고 있습니다."
"챙길 게 있던가요?"
"어휴. 많죠. 유원지 사건은 합수부와 공조 수사였고, 총까지 쏘던 놈들을 피해자 없이 화끈하게 때려잡아서 여론도 굉장히 좋습니다."
"그날 여러 기관에서 유원지에 왔던데요."
"그러면 뭐하겠습니까? 현장에서 전투에 참여한 건 경찰인 순기인데요. 그쪽 꿀은 경찰이 다 빨았는데, 아시다시피 제가 합수부에 파견 나간 경찰이잖습니까? 전 양쪽에서 꿀 빨고 있습니다. 하하하."
나강인이 슬쩍 웃었다.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는데 이번엔 다행이네요."
"흐흐. 그래서 오늘 커피도 제가 사는 거잖습니까?"
웃던 형사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오늘 보자고 하신 건, 혹시 또 어디 하나 박살을 내셨다든지…."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신고 좀 하려고요."
합수부 형사의 얼굴이 대놓고 밝아졌다.
"아! 신고 좋죠! 선생님이 신고하시면 해결은 저희가 하는 거지요? 이거 뭔지 기대가 됩니다."
"대단한 건 아니고요."
"흐흐. 사소한 거라도 괜찮습니다."
나강인이 USB 메모리를 카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국내 해커 꿈나무 열두 명의 정보입니다."
"네? 꿈나무요?"
"남의 연구실을 해킹하려던 꿈나무들인데, 아직 새싹 단계니까 적당히 혼이나 내주시죠. 실력이 어설퍼서 꿈나무라고 판단했는데, 조사해 보시고 꿈나무가 아니라 독초다 싶으면 처넣어도 되고요."
합수부 형사가 USB 메모리를 잡았다.
"하하하. 뭘 이런 걸 다. 그런데 해킹은 선생님의 그 개인 연구실을 노린 겁니까? 간도 크네요. 감히 해커계의 저승사자인 새벽 토끼의 연구실을…."
"저를 노린 건 아니고요."
"예?"
"한국대학교 유나린 교수님의 연구실을 해킹하려던 놈들입니다."
"아아. 한국대학교. 거기 요즘 유명…."
형사가 당황했다.
"어? 유나린 교수요?"
"아십니까?"
"뉴스에서 봤습니다. 그럼 이 USB에 있는 놈들은 신개념 인공 근육과 차세대 의수 기술을 노린 겁니까?"
"그렇죠."
"이거 질이 아주 나쁜 놈들이네!"
"그냥 신기해서 아무 생각 없이 건드려본 걸 수도 있죠. 해킹 스킬 수준도 낮고, 국내에서 직접 해킹을 시도했거든요."
"저희가 하나하나 확실히 확인하겠습니다."
나강인이 USB 메모리를 하나 더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건 외국에서 해킹을 시도한 놈들의 명단입니다. 그런데 그중 일부는 국내에서 외국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해킹을 시도했더군요."
"그러니까 국내 해커인데 추적을 피하려고 외국인으로 위장했다는 거지요?"
"예. 이놈들은 꿈나무가 아니라 최소한 묘목 정도는 됩니다. 개중에는 이미 다 큰 나무도 있고요. 이 정도 레벨이면 최소한 몇 놈 정도는 범죄자 해커일 겁니다."
합수부 형사가 살짝 걱정했다.
"저기, 합수부에서 잡을 수 있는 놈들인지…."
"그 메모리에 위치까지 파악해서 넣어뒀으니까 국내 주소는 찾아가서 그냥 잡으시면 됩니다. 외국은 그 나라 경찰과 협의하시고요."
합수부 형사의 표정이 다시 확 펴졌다.
"그런 거라면 저희가 잘하죠. 하하하. 편하게 쓸어담겠습니다. 외국 해커들은 그 나라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겠습니다. 그쪽 정부가 뒤에서 해킹을 시킨 경우만 아니면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나강인이 조금 진지해졌다.
"그런데 국내에서 외국을 경유해 해킹을 시도한 케이스 중에…."
"여기 주소가 들어있다면서요? 다 체포해야죠."
"그중에 차 이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 차…. 예?"
합수부 형사가 당황한 얼굴로 나강인을 보았다. 그가 주변을 경계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차 이사요?"
"차 이사 아직 못 잡으셨죠?"
"유원지 사건 때 잡은 놈을 조사해서 얼굴 몽타주는 확보했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추적 중입니다만, 오천만 국민 중에서 찾으려니까 쉽지 않습니다."
"얼굴이 비슷한 사람을 다 의심할 수는 없겠지요."
"예. 여러 정황 정보를 추가로 수집해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갈 길이 멉니다. 대상자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대면 조사라도 할 텐데…."
"비슷하게 생겼다고 다 부를 순 없겠죠."
"용의자를 찾는 것도 어렵습니다. 사진도 아니고 몽타주 한 장이 전부라서요. 그렇다고 공개 수배를 하기도 어려운 게, 잘못하면 기술유출 루머가 퍼질 겁니다. 그러면 일부 기업은 주가가 폭락할 수도 있습니다."
나강인이 USB 메모리를 가리켰다.
"이 사람들의 신상을 파악하고, 당사자와 그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시죠. 그중에 차 이사의 몽타주와 일치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이 쉬워지잖습니까?"
합수부 형사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USB 메모리를 조심해서 챙겼다.
"고맙습니다. 조사 대상자가 이렇게 줄어들면 그 새끼는 잡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료에 차 이사가 있다면 말이죠. 확실한 건 아닙니다."
합수부 형사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건 지금까지 확보한 단서 중에서 차 이사의 얼굴 몽타주 다음으로 가치 있는 자료입니다. 여기 들어있는 놈들은 전부 증거까지 확보된 해커니까, 다 잡아서 털겠습니다."
***
미국 팝스타 알레이나 민은 비밀수술이 끝난 후에 최소한의 회복만 거치고 이정호 과장이 근무하는 병원의 VIP실에 입원했다.
처음에는 권수연 때처럼 1인실에 조용히 입원하는 것도 고려했다.
그런데 권수연은 연예인이 아니라서 병원 관계자들은 그녀가 입원해도 누군지 알지 못했다. 1인실에 입원한 후에는 이정호 과장이 잘 관리한 덕분에 소문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알레이나는 그 방법을 쓸 수가 없다.
그녀의 인기는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높다. 이 병원에는 그녀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얼굴은 몰라도 음악은 아는 사람은 더 많다.
그래서 알레이나는 1인실이 아니라 VIP실에 입원했다. 잘나가는 미국 팝스타가 1인실에 입원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다. 대신에 병실에 출입 가능한 사람을 제한했다.
외과 의사 김중석이 그녀의 병실에 들어왔다. 그는 알레이나의 비밀수술에 참여했다.
알레이나가 반가운 얼굴로 김중석을 불렀다.
"어머. 김 선생님."
"어…. 알레이나 씨. 지금 뭘 하시는…."
그녀가 꼬치를 들었다.
"소떡소떡 좀 드실래요?"
"아니, 그게 어디서 생겨서…."
"연지가 사다 주던데요?"
"과장님이 허락하셨나? 근데 그렇게 드셔도 괜찮습니까?"
"그럼요. 맛있어요."
"벌써 걸으면서 그걸 드실 정도면…. 와. 그 병은 정말 수술만 성공하면 회복력이 아주 미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