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41화 (341/411)

341. 알레이나 II

알레이나의 드라마 촬영이 시작됐다.

그녀가 길에서 생수병의 뚜껑을 따며 말했다.

"오늘 같은 날은 시원하게 치맥 한잔했으면 좋겠…."

그녀의 바로 앞에 기다란 칼을 손에 쥔 남자가 날아와 떨어졌다. 알레이나가 당황한 얼굴로 생수를 뿌리며 외쳤다.

"깜짝이야! 당신 뭐야? 뭔데!"

나강인이 가면을 쓴 상태로 달려왔다.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알레이나 쪽으로 칼을 내밀었다.

"씨발! 거기 서라고! 안 그러면 이 여자…."

알레이나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칼날과의 거리가 조금 멀어졌다.

그 순간 나강인이 점프했다. 남자가 날아오는 나강인을 향해 반사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나강인이 칼날 바로 위를 흐르듯이 넘어가 적의 가슴을 발로 밀어 찼다.

진짜로 차지는 않았다. 공중을 날아가면서 운동화 바닥을 액션 배우의 가슴에 댄 후에 쭉 밀었다.

남자가 칼을 놓치며 뒤로 날아갔다.

"으악!"

나강인은 밀어낸 반동을 이용해 그 자리에 가볍게 착지했다.

알레이나가 놀란 얼굴로 날아간 남자와 나강인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놀랐다.

‘와. 가까이서 봐도 진짜 걷어차서 날려버린 거 같아.’

놀라긴 했지만 대사는 제대로 쳤다.

"뭐, 뭐죠?"

맛보기 액션은 끝났다. 이제 나강인이 빠지고 김유찬이 들어와야 한다.

문제가 생겼다. 알레이나가 자연스럽게 나강인 쪽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그런데 예정보다 빨리 퇴원한 몸이 문제를 일으켰다. 다리가 조금 풀려 발을 잘못 디뎠다.

그녀가 앞으로 넘어졌다.

"꺅!"

나강인은 알레이나의 수술부위를 피해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녀의 몸을 옆으로 돌렸다. 앞으로 넘어지던 그녀가 어느새 뒤로 누운 상태로 나강인의 왼팔에 안겼다.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강인의 얼굴을 보며 눈을 연달아 깜빡였다.

나강인이 그녀를 일으켜주며 카메라를 피해 작게 말했다.

"너 지금 넘어지면 조금 다치는 거로 안 끝날 수도 있다. 조심해라."

최진욱 피디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마! 애드립 그거 좋았어요! 그 모습 살리면서 교대합시다!"

가면을 쓴 김유찬이 나강인의 자리에 들어갔다. 나강인은 카메라 앵글 밖으로 빠졌다.

김유찬이 알레이나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한국말을 잘하시는군요."

"한국사람인데요?"

"아. 미안합니다."

방금 걷어찬 놈은 이미 기절했다. 김유찬이 적의 몸을 뒤져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런 후에 적의 손가락 지문으로 잠금을 해제하고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의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문자나 톡은 특별한 게 없었다.

김유찬이 스마트폰을 기절한 놈의 주머니에 도로 넣어준 후에 돌아섰다.

알레이나가 떠나려는 김유찬을 불렀다.

"잠깐만요. 다쳤잖아요."

김유찬이 옆구리를 슬쩍 보았다. 옷이 조금 베이고 피가 살짝 묻어 있었다.

"긁힌 겁니다."

"아닌 거 같은데요. 병원 가세요."

김유찬이 가면을 가리켰다.

"이걸 쓰고요?"

"음…. 제가 치료해 줘요?"

"의사입니까?"

"동물병원 수의사예요."

"어…."

"싫으면 말고요. 바로 저기가 제 병원인데."

김유찬이 그쪽을 보았다. 작은 개인 동물병원 영상은 따로 촬영해 편집할 때 집어넣을 예정이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거기까지가 오늘 촬영분이었다. 쪽대본이 여기까지만 나와서 동물병원 촬영은 생략했다.

최진욱이 활짝 웃었다.

"동물병원에서 몰래 치료하는 모습은 나중에 회상장면으로 넣자고 하면서 새로 찍어야지. 흐흐."

촬영이 끝난 후에 최진욱이 박수를 쳤다.

"오케이! 알레이나! 정말 좋았어요!"

그가 알레이나에게 다가가 말했다.

"다음에는 액션으로 갈까요? 나이트 스트라이커에서 액션 진짜 좋았잖습니까?"

"다음이요?"

"에이. 카메오 한 번만 하면 시청자들이 서운해하죠. 다음에 또 나오셔야죠."

"음…."

알레이나는 오늘 나강인의 액션을 바로 앞에서 보았다. 하지만 다른 배우들처럼 치고받고 구른 건 아니다.

‘나강인표 실전 리얼 액션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

지금은 수술 후 회복 중인 상태라서 그럴 수가 없다. 넘어지기만 해도 위험할 수 있는 몸으로 그런 고난도 액션을 하는 건 당연히 안 된다.

그녀가 나강인을 힐끗 보며 생각했다.

‘날 직접 수술해준 사람이니까 내 몸이 조금 더 회복되면 안 위험하게 액션을 조절할 수 있겠지.’

그녀가 최진욱을 보며 방긋 웃었다.

"알았어요. 오늘 말고 다음에 또 찍어요."

"하하하. 고맙습니다!"

***

알레이나가 촬영을 끝내고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기자 몇 명이 모여 있었다.

알레이나가 오자마자 기자들이 질문했다.

"알레이나 씨! 그동안 조용히 계시다가 갑자기 공식활동을 시작하신 이유가 뭡니까?"

그녀가 일부러 카메라 앞에 서서 말했다.

"그동안은 한국에서 작곡 공부랑 공연 기획을 하느라 바빴거든요.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하려고요."

"이 드라마를 첫 번째로 고르신 이유가 있습니까?"

"재미있어서요. 저 이 드라마 좋아해요."

"아! 역시 김유찬 씨가 주인공이어서입니까?"

그녀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 식으로 엮으려고 하지 마시죠? 서로에게 민폐예요."

고동환도 기자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그가 손을 들며 물었다.

"병원에 입원하신 이유가…."

알레이나가 고동환을 째려보았다. 고동환이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질문이 몇 가지 더 나왔다. 고동환이 언급한 병원 이야기를 다시 묻는 기자도 있었다.

그 대답도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조금 전에는 고동환이 물었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은 것뿐이다.

‘오늘 참 알차다. 실전 리얼 액션을 바로 앞에서 보고, 시선 돌리기 위한 인터뷰도 하고.’

***

드라마가 TV에서 방영되기도 전에 그녀의 출연 기사가 먼저 떴다.

그 기사가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올라왔다.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알레이나가 작곡도 해요?

-아직 하는 건 아니고 공부하는 중이랍니다.

-병원은 과로 때문에 입원했던 거라네요.

-어떤 연기인지 기대되는데요?

-이번 주 바보의 사랑 방송분에 바로 나온답니다.

-네? 오늘 찍었는데요?

-저 드라마가 반쯤 생방송 수준으로 촬영하고 방송해서 그렇게 됐답니다.

-그런 스케줄인데도 그렇게 고퀄로 뽑다니. 제작진이나 배우 모두 미쳤네요.

***

며칠 뒤에 드라마 바보의 사랑이 방송됐다.

최진욱 피디는 알레이나가 나온 장면은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집어넣었다.

특히 나강인이 그녀를 왼팔로 부축하는 장면은, 세 대의 카메라에 각각 찍힌 걸 연속으로 연결해서 느리게 보여주었다.

신은하는 나강인이 알레이나를 안는 장면을 다른 각도로 세 번이나 보면서 짜증을 냈다.

"저, 저 여우 같은 년!"

그녀의 동생 신영석이 입을 벌린 채로 말했다.

"여우가 원래 예쁘고 귀엽지."

"넌 누구 편이니?"

"누나 편일 리가 없잖아?"

"하긴 그렇지. 꺼져."

신은하와 신영석은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난다.

반면에 남현주와 동생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동생들이 어렸을 때는 남현주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며 키웠다.

고등학생 쌍둥이 동생들이 알레이나의 연기를 보며 말했다.

"어디 감히 김유찬한테 꼬리를 쳐! 저 드라마에서 김유찬과 연결되는 건 우리 누나라고!"

"우리 누나가 주인공이다!"

남현주가 말했다.

"저 사람 김유찬 아니야."

"어? 그럼 누구야?"

남현주가 대답을 피하려고 스마트폰으로 용돈을 이체했다.

"옜다. 이거나 받아라."

"누나. 알라뷰!"

"사랑합니다!"

"용돈을 사랑하는 거겠지."

***

드라마 관련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본방사수하는 사람들의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역시 이 드라마는 액션이 쩐다니까.

-김유찬이 잘생긴 얼굴로 바보처럼 웃는 것도 너무 좋잖아요.

-아줌마 얼빠였어요?

-넌 안 그럴 거 같냐?

-남현주, 신은하, 오세나의 연기 대결도 진짜 장난 아니죠.

-맞아요. 김유찬이 가면 벗고 나오면 분위기가 달달한 로코인데, 저 세 명 중에 둘이 따로 나오면 그때부터 스릴러로 변한다니까요.

-어? 알레이나다!

-떴다!

알레이나가 김유찬과 만나는 장면이 나왔다.

-알레이나가 놀란 얼굴로 안겨 있는 모습이 막 간질간질합니다.

-역시 할리우드 배우는 연기력이 장난 아니네요.

-에이. 그건 아니죠. 알레이나가 할리우드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한 건 팝스타라서이지, 연기자로 경력을 쌓은 건 아니잖아요.

-첫 출연은 그랬는데요. 알레이나 연기 되게 잘해요. 그래서 그 후로도 계속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하잖아요.

-맞아요. 스파이 셰프도 알레이나의 연기 때문에 망한 건 아니에요. 그거 액션만 좋았어도 망하진 않았을 거예요.

***

드라마가 끝난 후에 최진욱이 외쳤다.

"시청률 얼마 나왔어!"

"잠시만요! 확인하고 있습니다! 어?"

"왜? 얼마야? 올랐지? 올랐다고 해!"

"20%입니다!"

"으아아! 이대로 쭉 가즈아!"

***

신은하가 시청률 문자를 확인한 후에 씩 웃었다.

"벌써 20%네?"

동생 신영석이 옆에서 말했다.

"오늘 알레이나가 나와서 오른 거 아닐까?"

"우리 드라마 입소문 많이 났거든?"

"지난주보다 3% 오른 것 중에 알레이나 몫이 2%쯤은 될 거 같은데?"

"너 꺼져."

***

드라마 ‘바보의 사랑’의 시청률은 이튿날 방송 때는 2%가 더 올라 22%가 되었다.

게시판에 아쉬워하는 댓글이 붙었다.

-어제 방송에서는 알레이나가 계속 나올 분위기였는데, 오늘 안 나오네요?

-다음 주에 나오겠죠. 김유찬하고 그렇게 만났는데 그냥 끝내는 건 진짜 아니니까요.

***

며칠 뒤에 권수연이 말했다.

"밀린 연구하느라 바쁜데 굳이 그런 행사까지 가야 해?"

율명바이오 사장 권동진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지루한 행사가 아니라 파티라니까. 연예인도 온다니까 가서 재미있게 놀아. 이 기회에 우리 업계 사람들도 좀 만나고."

"그래서 보내는 거 맞아? 다들 바빠서 회사 일 안 하는 내가 대타로 가는 거 같은데?"

"어? 그런 것도 있지만…."

"대타 맞네."

"너 요즘 너무 연구만 하잖아. 그러다 건강이 또 나빠지면 어쩌려고. 좀 놀아."

권수연이 팔을 들어 자랑했다.

"나 그 병 낫고 나서 체력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좋아졌어."

"그 좋은 체력으로 놀면 되겠다. 혼자 가지 말고 친구랑 같이 가면 더 좋고."

"친구 누구?"

"요즘은 강인이하고 안 노니?"

"걔는 그동안 미뤄둔 일 한다고 바쁘대. 저번에 디저트 주러 왔을 때 이후로 못 봤어."

"아. 하긴."

"응? 하긴이라니? 아빠가 뭐 아는 거 있어?"

"아, 아니다."

권수연은 그녀의 차를 몰고 용산으로 갔다. 그곳에 15층짜리 신축 건물이 있었다. 의료기기 회사가 사옥으로 쓰려고 그 건물을 지었다.

그 건물은 이제 막 완공해서 아직 그 회사가 들어오진 않았다.

그 15층 신축 건물의 14층에서 그 회사가 주최한 완공 축하 파티가 열렸다.

그녀가 차를 건물 지하주차장에 주차했다.

"새로 지었다더니 번호판인식 주차 차단기까지 다 설치되어 있네? 바로 입주하면 되겠다."

그녀가 새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으로 이동했다.

14층은 가벽이나 파티션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뻥 뚫린 14층 전체가 보였다.

파티는 이미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권수연이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직원이 초대장을 확인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양용준이 권수연을 발견하고 얼른 다가왔다.

"수연아! 너도 왔구나!"

"응? 네가 여기 왜 있어?"

오늘 파티는 의료기기와 제약 관련 회사 사람들이 주로 초대되었다. 그런데 양용준은 제약회사가 아니라 팔성테크 사장의 셋째 아들이다.

"네가 온다고 해서 나도 초대장 구해서 왔지. 내가 또 인맥 하나는 쩔잖아."

"흥청망청 놀아서 아는 사람이 많은 건 아니고?"

"왜 이래? 내가 그래도 선은 안 넘는다고."

"보통 사람은 그게 당연한 거야."

"그 당연한 걸 못하는 애들도 있는 거 알잖아."

알레이나가 아는 양용준은 적어도 마약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괜찮은 건 아니다.

"넌 다른 쪽으로 사고를 치잖아. 네가 아직도 집에서 안 쫓겨났다는 게 난 참 놀라워."

유나린이 다가왔다.

"어머. 수연아. 너도 여기 왔어?"

"앗! 교수님. 전 대타로 왔는데 교수님은 어쩐 일이세요?"

"리얼 핸드를 만들었더니 이런 곳에서 나를 초대하네?"

옆에서 양용준이 인사했다.

"아! 인공 근육으로 의수를 만든 그 교수님이시군요!"

"네. 그걸 저 혼자 만든 건 아니지만요. 그런데 누구?"

"수연이 친구 양용준입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절친이죠. 그리고 팔성테크…."

권수연이 양용준의 말을 끊으며 유나린의 팔을 잡아당겼다.

"사고 많이 치는 애예요."

양용준의 항의했다.

"야.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나도 당했거든?"

"쟤는 사고에 남이 말려들게 하는 재주가 있으니까 가까이 가지 마세요."

***

‘바보의 사랑’은 액션이 초반에 집중되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로맨스의 비중이 높아졌다.

그렇다고 액션이 없는 건 아니다. 여전히 이 드라마는 액션이 중요했다.

나강인은 액션 촬영을 마치고 의자에 앉아 다른 사람의 연기를 구경했다.

알레이나는 오늘 새로운 촬영이 있어서 촬영장에 왔다. 그녀가 그의 옆자리에 앉아서 쫑알댔다.

"너 미국 가봤어? 미국에 가면 말이야. 할리우드가 있거든? 거기 가면 구경할 거 진짜 많다? 내가 여행 가이드 해줄까?"

"광년아."

"응?"

"그런다고 내가 비행기를 탈까?"

"아 왜! 비행기가 왜 싫은데!"

"그런 게 있다."

"쳇. 그러면 말이야. 내가 아는 감독님이 제작 중인 영화 일부를 한국에서 촬영하려고 곧 들어올 건데, 만나보고…."

나강인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총권도 수련생인 경찰 박순기였다.

"잠시만."

나강인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박순기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나 사범님! 도와주십시오!

"지금 촬영 중이라 바쁜데요. 우리 드라마가 촬영 스케줄이 빠듯해서."

-바보의 사랑 말이죠? 저희가 경찰서든 군부대든 장소 협찬 확실하게 지원할 테니까, 그때 촬영시간 단축하시고 지금은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나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데 그럽니까?"

-용산에 있는 15층 신축 빌딩이 테러리스트에게 점령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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