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42화 (342/411)

342. 용산

총권도 수련생 박순기가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어 지원을 요청했다.

나강인이 생각했다.

‘신축이라는 말을 굳이 했으니 입주 전일 텐데, 빈 건물이면 나한테 급하게 연락할 리 없겠지. 중무장한 특수부대로 밀면 되니까.’

그럼 도와달라고 할 이유는 하나뿐이다.

"인질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아직 명단을 파악하지 못했는데, 많습니다.

"공사 관계자입니까?"

"아닙니다. 건물 공사는 완전히 끝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 건물 14층에서 완공 기념 파티가 있었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계신 곳이 어디입니까? 저희가 헬기를 보낼 테니까….

"마포입니다. 거리가 가까워서 차로 가는 게 낫습니다. 주소만 보내세요."

-예!

나강인이 최진욱 피디를 찾아갔다.

최진욱은 방금 김유찬과 신은하가 연기한 장면을 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다 좋은데, 다시 찍으면 더 좋은 장면이 나올 것 같단 말이야."

나강인이 그를 불렀다.

"최 피디님."

"아! 강인 씨. 마침 잘 왔습니다. 여기서 구도를 좀 바꿔보고 싶은데, 이건 액션은 아니지만 도움을…."

"오늘 오후 액션 촬영은 미뤄야겠습니다."

최진욱은 당황했다.

"예?"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니, 오늘 촬영이 딜레이되면 이번 주 방송은 어떻게…."

"그만큼 급한 일입니다."

나강인이 이 드라마에 참여하는 조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건, 급한 일이 생기면 일정을 무조건 조정해주는 것이었다.

최진욱은 그 조건은 반드시 들어준다고 약속하고 나강인을 섭외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일이 닥치자 스케줄 때문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꼬, 꼭 가셔야 하는 일…."

"네."

최진욱은 못 가게 막을 방법이 없다. 못 가게 하려고 땡깡을 부렸다가 나강인이 앞으로 손을 뗀다고 하면 이 드라마는 망한다. 나강인이 연예계에 큰 관심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방송국의 힘으로 압박할 수도 없다.

최진욱이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강행군하면 스케줄을 맞출 수 있을 겁니다. 잠 더 줄이고, 카페인도 들이붓고, 초반부터 퀄 떨어졌다고 욕도 좀 먹으면 뭐…. 진짜로 가셔야 하죠?"

"대신에 장소 협찬 약속을 좀 받았습니다."

"장소 협찬이야 우리도 충분히…."

"관공서, 경찰서, 도로 통제 같은 것들이요. 협조 요청하면 장갑차나 군 헬기 지원도 가능할 겁니다."

"네? 정말입니까?"

최진욱이 머릿속으로 했던 스케줄 계산의 결과가 바뀌었다. 추가할 수 있는 장면들도 떠올랐다.

최진욱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빨리 가셔야 하신다면서요? 얼른 가서 일 보세요. 하하하."

"일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면 연락드리죠."

"아! 다시 오실 수도 있겠군요! 그럼 촬영 순서 조정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나강인이 떠난 후에 최진욱이 도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 작가!"

-잠이 모자라 죽겠다더니 왜 이렇게 목소리가 밝아?

"장소 협찬이 어려워서 난감하던 거 있잖아? 경찰서에서 대놓고 찍어보자."

-어? 장소 섭외가 됐어?

"강인 씨가 해결했어."

-대박! 나 그럼 전에 이야기한 거 살려서 쓴다?

"도 작가 쓰고 싶은 대로 다 써! 그리고 우리 전투씬에 전투 헬기 넣을까?"

-응? CG 만들 시간이 없잖아.

"군대에서 장비 지원도 해준대. 그것도 강인 씨가 섭외했어. 군 헬기도 된다니까 조금만 더 힘쓰면 전투 헬기도 되지 않을까? 그거 넣을래?"

도주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후반부 결정적인 순간에 타타타타 하면서 전투 헬기가 빌딩 옥상으로 올라오면 되겠네!

"그거지!"

-적이 주인공을 함정에 빠뜨렸을 때, 등 뒤에서 배경처럼 전투 헬기가 짜잔! 적의 함정을 예상한 주인공이 카운터 치는 거지!

"역시 도 작가는 말이 통한다니까! 그리고 헬기에 달린 진짜 기관포를 적들을 향해서 위잉 하면서 돌리면! 크으. 뽕 찬다!"

-나 경찰서랑 옥상 대본 수정해야 하니까 끊어!

***

나강인이 그의 차를 주차해놓은 곳으로 갔다.

알레이나가 따라왔다. 그녀는 이제 빠른 걸음 정도는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다.

"어디 가?"

"일이 있다."

"방금 전화할 때 인질 이야기는 뭐야?"

나강인이 걸어가며 말했다.

"광년아. 비밀수술 이야기 어디 가서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당연하지!"

"이것도 비밀이야. 너무 깊게 알려고 하지 마."

"앗! 그럼 불법으로 뭘 하려고 가는 거야?"

"불법은 아니다. 그냥…."

"그냥?"

"네가 소문내서 쓸데없는 관심을 끌면 다른 일 할 때 불편해."

"아! 그러다 비밀수술이 들통나면 여러 사람 다치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나 이유는 없다.

"어…. 그래. 대충 그런 거야."

알레이나가 손가락을 입 앞에 대고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그런 후에 말했다.

"뭔지 궁금해하지도 않을게. 조심해서 갔다 와."

나강인이 알레이나를 쓱 본 후에 차를 타고 떠났다.

알레이나는 차가 코너를 돌아가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했다.

"인질이라고 했어. 인질로 검색해보자. 그러면 뭔가 나오겠지."

***

나강인이 차를 몰았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광년이의 목소리와 눈동자, 표정을 분석했습니다. 엄청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보겠지. 뭔가 알아내도 입은 다물 거야."

그가 박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가고 있습니다. 과속에 신호위반까지 하고 있으니까, 카메라에 찍히거나 신고 들어오는 거 있으면 흔적 안 남게 처리해줘요."

-제가 직접 나서서 싹 다 지우겠습니다. 아! 이 기회에 차에 경광등 하나 다시겠습니까?

"안 그래도 됩니다."

마포에서 용산은 그렇게 멀지 않아서 차가 막히지만 않으면 빨리 갈 수 있다.

나강인은 강변북로에 올라가자마자 고속으로 달렸다. AI 전지인이 도로 위를 주행하는 자동차들 사이로 최적의 추월 경로를 표시했다. 나강인이 다른 차 사이를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목적지까지는 순식간에 도착했다. 헬기가 마포에 가서 착륙하고 이륙하고 용산에 돌아와 다시 공터에 착륙하는 것보다 차로 오는 게 더 빨랐다.

용산에는 15층 신축 빌딩이 있었다. 그 앞은 이미 경찰이 통제하는 중이다.

나강인이 빠르게 달리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그 근처에 차를 세웠다.

나강인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현장을 통제하던 정복 경찰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박순기가 달려오며 말했다.

"우리 쪽 사람입니다!"

나강인이 박순기와 함께 안쪽으로 이동했다.

"상황을 구체적으로 듣죠."

박순기가 건물을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저 빌딩은 의료기기 회사가 본사로 쓰려고 지었습니다. 아직 입주를 시작하지는 않았는데, 14층에서 완공 기념 파티가 열렸습니다."

"파티 참석자는 인질이 됐고요?"

"예. 저희가 다른 건물에서 망원 카메라로 창문을 통해 사진을 찍어 내부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박순기가 태블릿PC에 14층 내부 사진을 띄웠다. 인질들은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일부는 카메라가 있는 쪽 창밖을 보고 있었다. 반대편이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벽을 향해 앉아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강인이 말했다.

"옆에 서 있는 놈들이 테러리스트겠군요."

박순기가 사진을 넘겼다. 적을 확대해서 찍은 사진이 나왔다.

"예. 그 세 놈입니다."

그중 둘은 서 있었고 하나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셋 다 권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저게 진짜 총인지 확인은요?"

"진행요원 두 명이 총에 맞았습니다. 여기 보시죠."

박순기가 보여준 새로운 사진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응급조치는 했군요."

"의료기기 회사가 주최한 파티라 참석자 중에 의사가 있었나 봅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피격 부위로 부상자의 상태를 분석했습니다. 1시간 안에 구출하지 못하면 생명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나강인이 혀를 차며 물었다.

"한 시간이라…. 여기 있는 인질이 전부입니까?"

"주최측에 참가자 명단을 요청한 상태입니다. 곧 들어오…. 아. 왔습니다."

박순기가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문자를 확인했다. 같은 명단이 태블릿PC에도 들어왔다.

"파티 참가자와 주최측 인원과 인질의 수가 일치합니다. 전부 14층에 모여 있습니다."

박순기가 명단을 넘겨보며 말했다.

"참석자 중에 한자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업체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도 있습니다."

"테러리스트에게는 고가치인 인질이 많군요."

"예. 그래서 놈들이 오늘 파티를 노렸나 봅…. 어?"

"왜 그러십니까?"

박순기가 명단을 넘기다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참석자 중에 유나린 박사님이 있는데요?"

나강인이 즉시 태블릿PC를 받아 명단을 확인했다.

"젠장. 유 박사님은 정부의 특별관리대상으로 다시 지정됐습니까?"

"그건 저도 아직 파악을 못 해서…."

"지정됐으면 햇병아리 둘이 붙어 있었을…."

나강인의 손이 멈췄다.

"수연이도 있어?"

명단에 권수연이 있었다.

AI 전지인이 다급히 말했다.

-요원님!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이라미드 태양전지 최초 개발자 권수연은 반드시 구출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도 구해야지. 쟤 내 친구다."

나강인이 박순기에게 물었다.

"작전본부가 어디입니까? 가서 이야기하시죠."

"이동식 지휘본부가 있습니다. 이쪽입니다."

박순기가 가리킨 곳에는 창문까지 검은색인 버스가 서 있었다.

버스 안에서는 이미 여러 사람이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는 중이다. 한쪽 벽에는 현장을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여러 대 있었다. 각각의 모니터에는 건물 영상이나 도면 데이터, 명단 등이 떴다. 그중에는 다른 건물에서 망원 카메라로 14층을 감시하는 영상도 있었다.

나강인이 버스에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중에는 나강인이 아는 얼굴들이 있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마포에서 유나린을 구출할 때 협조한 경찰과, 블러드 아이스 때문에 유나린이 납치됐을 때 같이 구출 작전을 뛴 경찰을 발견했습니다.

"이번에도 유나린 박사님이 있잖아. 납치당하는 것도 전문가인가?

-이쯤 되면 부적이라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부적?"

-초기 메모리에 부적 데이터가 있습니다.

블러드 아이스 사건 때 만난 팀장이 나강인을 알아보고 반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오셨습니까? 휴우. 안 그래도 막막했는데 최고의 인질구출 전문가가 오셨으니까 좀 낫겠네요."

마포에서 만난 팀장이 물었다.

"누구신데 최고라는 거야? 내가 아는 최고는 마포에서 만난 요원인데."

"어? 제가 듣기로는 저분이 마포 건도 해결하셨다던데요?"

"아닌데? 얼굴이 다른데…."

나강인이 말했다.

"그땐 변장하고 있었습니다."

"어? 아!"

마포 팀장은 그 말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러면, 협상가로 변장하시기 전의 모습이 혹시 운명의 창에서 복경산 장군…."

"맞습니다."

"역시!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착각했나 하면서도 계속 궁금했었습니다."

"그런 게 소문나면 제가 일하는 데 방해가 돼서요."

"아! 물론이죠. 저 입 무겁습니다."

박순기가 옆에서 당부했다.

"비밀 유지는 꼭 좀 부탁드립니다. 나 사범님이 하시는 일이 많거든요."

다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나 사범님? 혹시 총권도의 그…."

"그렇죠."

"이야아. 영광입니다."

구석에 앉아 있던 양복 입은 사람이 툴툴댔다.

"지금 서로 인사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14층에 VIP가 얼마나 많이 계신 줄 압니까? 구출 작전이 조금이라도 실패하면 여러분은 무인도 파출소로 전출 갈 수도 있습니다."

팀장이 인상을 썼다.

"협박입니까?"

"아니요.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저라고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잘리면 연금도 못 받습니다."

박순기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나 사범님을 모셔온 거잖습니까?"

"그분이 인질구출 전문가인가 본데, 지금 상황이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당장 입구의 부비트랩만 해도…."

"인질구출, 실내전투, 폭발물, 각종 공학, 거기에 해커 추적, 기타 등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이십니다."

"예?"

"이런 일에는 여러 전문가를 모시는 것보다 나 사범님 한 분 모시는 게 더 효율적이고 빠릅니다."

"아니,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다고…."

"여기 계시잖습니까."

양복 입은 남자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의심의 눈초리로 나강인을 보며 말했다.

"제가 해커 대응 분야를 좀 아는데, 보안 전문가 중에 그런 분은 들어본 적 없습니다."

"그러면 새벽 토끼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박순기가 나강인을 두 손으로 가리켰다.

"이분이 바로 해커들의 저승사자, 닉네임 새벽 토끼입니다."

남자가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했다.

"헉! 지, 진짜입니까?"

나강인이 말했다.

"순기 씨. 별 이야기를 다 합니다?"

"저 사람이 도와주러 오신 사범님을 무시하니까 제가 열 받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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