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 폭탄마
지휘본부 버스에서 양복을 입은 남자가 자세를 바로 하고 물었다.
"진짜 새벽 토끼 본인이십니까?"
나강인은 THO 엔터 보안 시스템을 점검할 때 그 별명을 처음 사용했다. 그 후에 IT 보안 커뮤니티 사이트 해모수에서 닉네임으로 썼다.
"그렇습니다만."
"영광입니다."
마포 팀장이 물었다.
"새벽 토끼가 무슨 뜻인데 그러는 겁니까? 저는 처음 듣는데…."
"IT 보안 전문가가 아니라서 모르시는 겁니다. 새벽 토끼는 해커 잡는 해커. 최고의 해커 전문 헌터입니다."
"대단한 실력자인가 보네요. 그런데 해커들이 역습은 안 합니까?"
"새벽 토끼를 추적하려던 해커들이 있었는데, 싹 다 정보가 털려서 인터넷에 공개됐습니다. 해커는 신상정보와 해킹 이력이 털리면 보통은 체포됩니다."
"아…. 잘 모르는 분야지만 대단하신 건 알겠습니다."
양복남이 나강인에게 제안했다.
"저희가 정말 꼭 모시고 싶었는데, 이렇게 뵙게 된 김에…."
총권도 수련생 박순기가 양복남의 말을 끊었다.
"지금 인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면서요?"
조금 전에 양복남이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그게…."
박순기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 사범님은 이런 사건에서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그러니까 현장 상황부터 설명하시죠. 제가 어렵게 모셔왔습니다."
이동식 지휘 차량에 있던 몇 사람이 일어나서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를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했다.
"파티 참석자와 진행 인원은 모두 14층에 인질로 붙잡혀 있습니다. 복면을 쓰고 권총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 셋이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건물 도면을 보며 설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1층과 지하주차장 출입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둘 다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어서 진압부대가 몰래 진입할 수가 없습니다."
양복남도 말했다.
"이 건물은 1층 창문이 하나라도 깨지면 경보기가 작동합니다."
나강인이 물었다.
"옥상은요?"
이미 옥상 쪽 진입을 논의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대답했다.
"옥상에 비상탈출용 헬기장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헬기가 진입할 수는 있습니다."
"거긴 안됩니다. 병력 수송 헬기가 근처에만 가도 꽤 큰 소리가 14층에 들릴 겁니다. 테러리스트들이 인질을 방패로 쓰면서 헬기를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헬기가 추락하거나 인질이 사망하면 끝장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옥상 헬기 진입은 소음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상황을 설명했다.
"건물 전체의 무선 통신망이 교란되고 있습니다. 내부에서는 휴대폰 통화가 불가능합니다."
"건물에 들어가는 전력의 소모량을 계산했습니다. 이런 소모량이면 기계실과 통제실이 살아있다고 봐야 합니다. 적이 CCTV로 건물 내부를 감시하고 있을 겁니다."
나강인이 물었다.
"외부에서 전기를 끊으면요?"
"건물에 비상용 발전기가 있습니다. 밖에서 전기를 끊어도 차단되는 시간은 1분에 불과합니다."
양복남이 나강인에게 물었다.
"저한테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폭발물 쪽도 전문가라고 하셨는데, 혹시 부비트랩 해체도 가능합니까?"
경찰 팀장이 대신 대답했다.
"이분이 강남 7층 건물 사건 때 부비트랩을 해체한 방법은, 우리 경찰과 군에서 교본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와. 새벽 토끼가 전산망 트랩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부비트랩까지 전문가…."
잠깐 중얼거리던 양복남이 정신을 차리고 부비트랩 사진이 모니터에 띄웠다.
"1분 안에 이 부비트랩을 해체할 수만 있으면 특공대가 들키지 않고 지하로 진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진입한 후에 진압하러 올라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원격 폭발이 가능한 부비트랩입니다. 폭탄 전문가의 솜씨입니다.
나강인이 건물 전체 설계도면을 빠르게 넘겨보았다. 지휘본부 모니터에 띄워볼 수 있는 도면만 수십 장이었다. AI 전지인이 그 도면을 모두 분석하고 하나로 모아 건물의 입체 홀로그램을 만들어냈다.
홀로그램은 반투명해서 건물 내부가 보였다. 확대축소와 회전도 가능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입구에서 14층까지 이동 경로에 부비트랩을 설치하기 좋은 포인트를 표시하겠습니다.
반투명한 건물 모형 내부에 수십 개의 빨간색 점이 추가됐다.
나강인이 작게 물었다.
"저 포인트를 피해서 14층까지 올라가는 코스는?"
-없습니다.
"저 포인트마다 부비트랩이 있다면 몇 개나 제거해야 길이 생길까?"
-최소한 다섯 개는 제거해야 길이 생깁니다. 다만, CCTV와 겹치는 전술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CCTV도 해결해야 합니다.
"CCTV의 예상 감시 범위는?"
화면에 노란색의 영역이 주르륵 늘어났다.
"많네?"
-도면에 표시된 것만 추가했습니다.
나강인이 지하층을 확인했다. 노란색 영역과 붉은색 점이 겹쳐 있었다.
나강인이 양복남에게 말했다.
"1분 안에 부비트랩을 해제할 수는 있습니다. 적어도 시도할 가치는 있지요."
"아. 그럼…."
"하지만 그쪽으로 진입하는 진압부대는 전멸할 겁니다."
"예?"
나강인이 이동식 지휘본부의 모니터에 설계도면과 보안시설 관련 서류들을 띄우며 설명했다.
"지하주차장 출입의 부비트랩을 시간 안에 해제하고 진입한다 해도, 안전지대로 이동하기 전에 이 위치에 있는 CCTV에 걸립니다."
그가 도면의 다른 부분도 짚었다.
"적이 여기에 CCTV와 연결된 원격 제어 폭탄을 설치하면, 이쪽으로 진입하는 부대는 피할 곳이 없죠."
"그러면…."
"적이 통제실에서 모니터로 보고 있다가, 진압부대가 여기를 지나갈 때 꽝. 그러면 전멸당합니다."
"아…."
사람들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몰래 진입하지 않으면 인질이 위험한데…."
나강인이 제안했다.
"대놓고 들어가서 14층을 직접 치는 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른 사람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예? 진압을 강행하자고요? 인질들은 어쩌고요? 부대가 한 층을 올라갈 때마다 한 명씩 건물 밖으로 떨어지는 꼴을 보고 싶으세요?"
"저 건물에는 나 혼자 들어갑니다."
"혼자요? 실력이 도대체 얼마나…. 아니, 잠깐만요. 지하주차장에는 원격 제어 폭탄이 있을 거라면서요? 그걸 피할 방법이 있으면, 다른 대원들도 피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저는 거기로 안 갑니다."
"지하가 아니면 1층 유리창을 깨고…."
"위에서 진입할 겁니다."
"옥상이요? 헬기가 날아가는 걸 놈들이 모를 리 없다니까요? 이건 안됩니다. 인질 다 죽습니다."
나강인이 도로 물었다.
"누가 헬기를 탄다고 했습니까?"
"예?"
나강인이 사람들에게 물었다.
"윙슈트를 당장 구할 수 있는 분?"
박순기가 얼른 말렸다.
"어? 나 사범님. 윙슈트라니요.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14층에 총에 맞은 사람이 두 명 있습니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한 시간을 넘기기 어려울 겁니다."
"예? 그걸 어떻게 아십…."
"총상을 입은 부분을 보고 판단했습니다."
"아…. 그래도 윙슈트로 고층건물에 착륙하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다른 사람이 물었다.
"윙슈트가 뭔데 그럽니까?"
박순기가 대답했다.
"부상자가 없다는 익스트림 스포츠입니다."
"부상자도 없는데 왜 위험하다고…."
"사고가 나면 다 죽어서 부상자가 없습니다."
"예?"
"날다람쥐처럼 생긴 옷을 입고 하늘을 고속으로 활강하는 스포츠입니다. 그러니까 사고가 나면 죽습니다."
"어…."
구석에 조용히 있던 사람은 다른 기관에서 나왔다. 그가 말했다.
"진압부대가 윙슈트를 입고 옥상으로 날아가면 소음 문제는 해결되겠군요. 진행하시죠."
"지금 그걸 말이라고…."
"윙슈트를 쓰는 진압부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런 부대가 왜 있겠습니까?"
"예? 없습니까?"
"당연히 없…."
박순기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아! 대신에 하늘 위에서 공수부대가 낙하산으로 옥상에 침투하면 되겠군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거네! 낙하산으로 침투하면 되겠네!"
나강인이 말했다.
"낙하산은 안 됩니다. 야간 침투라면 모를까 지금은 대낮입니다. 적이 외부에 감시병을 하나라도 뒀으면 옥상으로 향하는 낙하산을 발견할 겁니다."
"예? 나 사범님이 윙슈트를 쓰신다고…."
나강인이 건물 사진을 가리켰다. 사진 뒤쪽으로 다른 고층빌딩이 보였다.
"저쪽에 있는 빌딩에서 점프해서 이 건물 14층으로 바로 돌입할 겁니다."
"예?"
"그래야 적이 대응할 틈이 없습니다. 적이 준비할 시간을 주면 늦습니다."
"아니, 윙슈트로 14층 돌입이라니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래서 혼자 갑니다."
"아…."
구석에 앉아 있다가 윙슈트 작전에 찬성한 사람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어? 혼자 가는 건 아니죠. 난 당연히 다른 부대가 침투할 길을 만드는 줄 알았는데요? 혼자서 어떻게 저놈들을 상대하고 저 많은 인질을 구합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박순기가 말했다.
"나 사범님이라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닌데 말이죠. 와. 그래도 윙슈트로 건물에 바로 뛰어들겠다니…. 심장이 강철이신가?"
마포 사건 때 만난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포에서 보여주신 실력을 생각하면 가능할지도…."
블러드 아이스 사건 때 만난 팀장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착륙만 성공하면 저 세 놈 정도는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구석에 있던 남자가 화를 냈다.
"다들 미쳤습니까? 혼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나강인이 말했다.
"그럼 거의 다 찬성이군요. 윙슈트는 구할 수 있습니까?"
박순기가 말했다.
"최대한 빨리 구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흔한 장비는 아니라서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시간이라…. 그걸 구해오는 시간이면 총에 맞은 두 명은 죽겠군요. 그냥 제 걸 쓰겠습니다."
박순기는 당황해서 눈을 껌뻑였다.
"예? 그게 왜 있으세요?"
"윙슈트는 아니고, 시험 삼아 만들어본 날개가 차 트렁크에 있습니다."
"시험 삼아요? 그러면 실제로 테스트는…."
"오늘 하겠네요."
"아니, 나 사범님?"
"시간 끌면 끌수록 상황이 나빠질 겁니다. 나중에는 놈들이 인질을 쏠 수도 있어요. 놈들도 준비가 덜 된 지금 쳐야 합니다. 이게 최선입니다."
"그래도…."
"무기나 좀 챙겨주시죠. 내가 다른 건 다 있는데 총이 없어서."
박순기가 갈등했다. 다른 사람이 그러겠다고 하면 당연히 뜯어말리겠는데, 그 말을 한 사람이 나강인이다.
‘나 팀장님은 이미 사람의 한계를 넘는 일을 많이 했던 분이니까….’
게다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알겠습니다. 가능하니까 그렇게 말씀하셨겠죠. 그렇지만 그냥 저지르시면 안 됩니다. 위에 보고해서 작전 허가부터 받아야 합니다."
"허가받는 동안 우리는 저쪽 건물로 미리 이동합시다. 그 전에 차에 먼저 들릅시다. 날개가 트렁크에 있어서."
***
건물을 점령한 조직의 리더 오르카가 얼굴을 구겼다.
"누가 실수한 걸까?"
오르카의 원래 계획은 이렇게 인질극을 벌이는 게 아니었다.
"여기는 이제 막 완공된 건물이잖아. 14층을 빼면 관리 인원 몇 명밖에 없어서, 통제실만 장악하면 깔끔하게 일을 끝낼 수 있어야 했다고."
통제실에 갔다 온 부하가 긴장한 얼굴로 보고했다.
"유무선 통신망은 모두 제때 차단했습니다. 비상 발신기용 주파수까지 차단했는데…."
"그런데?"
"밖에서 14층 파티를 엿보던 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놈이 우리 계획을 눈치챈 건 아닐 테고…."
"기자입니다. 유선 통신망을 한국 경찰이 밖에서 끊기 전에 통제실에서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여기 상황이 속보로 떴다고…."
"그러니까 기자가 참석자 중 누군가를 쫓아다니다가 여기 상황을 파악했다?"
"예. 그놈이 신고를…."
오르카가 권총에 손을 댔다.
"이 파티에 참석한 놈들이 얼마나 고가치인지 알면 그쯤은 예상했어야지."
부하가 바짝 긴장했다.
"여기서 빠져나가면 그 기자 놈을 반드시 찾아내서 처단하겠습니다!"
오르카가 인상을 썼다.
"무능한 놈."
"죄송합니다."
오르카가 인질들을 보았다.
"여기에 전부 다 가둬놓고 필요한 것만 챙기려고 했는데…."
그런 후에 폭탄 테러 사건으로 위장하려고 했다.
"일이 꼬였어."
부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보스. 그러면 어떻게…."
오르카가 인질들을 가리켰다.
"고가치 인질이 이렇게 많으면 칼자루는 우리가 쥔 거야. 한국 정부는 절대로 무력 진압을 못 해. 우리와 협상하는 수밖에 없어."
"그럼 우리를 그냥 보내줄까요?"
"그건 아니겠지. 협상으로 시간을 끌면서 인질을 구출할 방법을 찾으려고 하겠지. 그런데 그러면 한국 정부만 시간을 버는 게 아니야."
오르카의 눈이 번뜩였다.
"협상으로 시간을 끌면서 폭탄을 더 만들었다가, 주변에 몇 개 터트려서 혼란을 일으켜야지. 그 혼란을 이용해 이 건물을 빠져나가고, 곧바로 건물 전체에서 쾅. 이 근처까지 불바다로 만들어 대혼란을 일으키고 사라지면 돼."
"역시 보스는 폭탄의 신이십니다! 따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