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 날개
현장 지휘부는 나강인이 제안한 진압 계획을 상부에 보고했다. 그런 작전은 정부의 승인이 떨어져야 진행할 수 있다.
장관이 주관하는 비상대책회의에 경찰과 군, 여러 기관과 행정부 공무원, 거기에 국회의원도 한 명 참석했다. 그 국회의원이 이 회의에 참석한 건 인질 중에 같은 당 국회의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 회의실에 나강인이 제안한 진압 계획이 올라왔다.
당장 반대가 나왔다. 특히 인질이 된 국회의원과 같은 당 의원이 격렬히 반대했다.
"지금 거기 김 의원님이 있는 걸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합니까? 어디 김 의원님만 있어요? 괜히 진압하다 그분들이 죽으면 아무도 책임 못 집니다. 한두 사람 옷 벗는 거로 안 끝난다고요."
"하지만…."
국회의원이 삿대질하며 말했다.
"일단 범인들과 협상을 하세요, 협상을. 그래도 정 안 되면 그때 부대 투입을 논의해야 할 거 아닙니까?"
현장 상황을 아는 간부가 말했다.
"그 건물 14층에 총상을 입은 피해자가 두 명이나 있습니다. 당장 구출하지 않으면 사망할 위험이 큽니다."
"그 행사에 의사가 몇 명인데 그거 하나 못 살립니까?"
"아무리 의사라도 맨손으로 총상 환자를 살리진 못합니다. 거긴 의약품이라고는 구급상자밖에 없습니다."
"그럼 부상자부터 내보내 달라고 협상을 하든지요! 협상 전문가가 하는 일이 그런 거잖습니까!"
"협상하는 사이에 부상자들이 사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갑자기 회의 참석자 몇 사람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전화가 걸려온다면 중요한 연락이라고 봐야 한다.
발신자를 확인한 사람들이 전화를 받았다. 그들은 보고를 받고 멈칫했다.
"어? 진짜야?"
"그 사람이 현장에 있어?"
"잠시만 대기해."
전화로 보고를 받던 사람이 통화 중인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강습 작전을 제안한 사람이 그 사람이랍니다."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럼 가능하니까 제안한 거겠죠?"
"하긴. 그 사람이 직접 들어간다면…."
국회의원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는 따로 연락받은 게 없다.
그가 인상을 확 썼다.
"지금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 겁니까? 왜 여러분만 알아요? 국회의원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만들 겁니까?"
경찰 간부가 대답했다.
"강습 작전을 제안한 사람이 최고의 인질구출 전문가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지금 그 현장에 있답니다."
"그래서요? 협상가도 아니고 구출 전문가 한 명이 현장에 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집니까?"
"그냥 한 명이 아닙니다. 강남 7층 국제 용병 사건, 서해 해적단 사건, 종로 보석 전시장 화학무기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한 사람입니다."
그 사건들은 뉴스에 크게 보도됐다. 그런데 해결한 사람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정부에서 특수부대 요원을 투입해 잘 해결했다고만 알려졌다.
"어? 그걸 모두 해결했다는 겁니까?"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 외에도 해결한 사건이 정말 많습니다."
군 관계자도 말했다.
"그 사람이 강습 작전을 제안했고 현장에서도 동의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승인하는 게 최선입니다."
"아니, 그래도 불안해서…. 잘못되면 누가 책임지라고…."
새로운 정보도 들어왔다. 회의를 주관하는 장관이 대형 스크린을 가리켰다. 화면 속에는 부상자의 사진이 떠 있었다. 다른 건물에서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이었다.
장관이 말했다.
"총상을 입은 사람들의 사진이 인터넷에 떴어요. 의사들이 빨리 구출하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론이 안 좋아질 겁니다. 구출 작전을 반대한 의원님은 여론의 직격탄을 맞겠지요."
"그, 그야…."
"저 사람들을 살리려면 이 구출 작전, 해야 합니다."
짧은 의견이 몇 번 더 오간 후에, 회의를 주관한 장관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진행시켜요."
***
나강인은 15층 건물에서 300m쯤 떨어진 고층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그는 드래곤 플레이트 방탄조끼를 옷 속에 입고 있었다. 그건 평소에 차 트렁트에 넣어두고 다녔다.
박순기가 말했다.
"나 사범님 차 트렁크에 상자가 많던데요."
"장비 몇 개를 시험 삼아 만들어봤는데, 아직 테스트는 안 한 것들입니다."
"하시는 일도 많은데 그것들을 만드느라 더 바쁘신가 봅니다. 아. 잠시만요. 전화가 와서."
박순기가 전화를 받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가 전화를 끊은 후에 나강인에게 말했다.
"작전이 승인됐습니다. 나 사범님에게 구출 작전의 전권을 맡기겠답니다."
"그래요?"
나강인이 금속으로 만든 배낭을 등에 멨다. 그 배낭에는 어깨끈은 물론이고 몸을 고정하거나 감싸는 장치가 여럿 붙어 있었다.
나강인이 그걸 모두 체결하며 말했다.
"다행이군요."
"나 사범님은 승인이 없어도 그냥 쳐들어가실 분위기여서, 이제라도 허가가 떨어진 게 정말 다행이죠. 네. 암요."
"무기는요?"
"가져왔습니다."
다른 대원이 가방 몇 개를 열었다. 권총과 기관단총, 돌격소총까지 있었다. 섬광탄도 따로 몇 개 있었다.
나강인이 그중에서 반자동권총과 기관단총을 골랐다. 섬광탄도 예비로 하나 챙겼다.
박순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나 사범님. 직접 만든 윙 슈트를 쓰신다더니 그건 어디에…."
"지금 등에 메고 있습니다만?"
"네?"
"아. 스포츠용 윙 슈트와는 디자인이 많이 달라서."
갑자기 등에 멘 금속 배낭이 얇은 판 여러 개로 분리되며 옆으로 촤라락 펼쳐졌다. 옆으로 펴진 판들이 서로 단단히 연결됐다.
순식간에 등 뒤에 금속 날개 두 개가 생겼다.
"어? 어?"
"얇은 금속판을 여러 장 겹쳐서 만든 날개입니다. 평소에는 배낭 형태로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는 펼쳐서 방식이죠."
"아니, 이게 어떻게 윙 슈트입니까?"
"날개라고 했는데요."
"날개는 맞는데 슈트는 아니잖아요."
"날개라고만 하고 슈트라고는 안 했는데."
"이거…. 날 수 있는 거지요?"
"그동안은 지상테스트만 했고, 오늘이 첫 시험비행입니다."
박순기가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보았다.
"여기는 30층 건물의 옥상인데요?"
"시험비행하기 딱 좋은 높이죠."
"그러다 실수하면 죽습니다!"
"설계는 완벽하니까 괜찮을 겁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초기 메모리에 들어 있는 검증된 도면을 사용해 만들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좀 불안해진다."
옥상에 있던 사람들이 나강인을 보며 웅성거렸다.
"윙 슈트가 아니라 진짜 날개야?"
"저거 날 수 있는 거 맞아?"
박순기는 설득을 포기하고 날개의 표면을 확인했다. 금속으로 만든 날개에 독특한 무늬가 보였다.
"어? 설마 이거…. 드래곤 플레이트 기술로 만든 겁니까?"
"드래곤 플레이트 세트 중 하나인 드래곤 윙입니다. 엔진이 없어도 윙 슈트처럼 글라이더로 쓸 수는 있죠."
나강인이 다른 가방에서 조그마한 엔진을 네 개 꺼냈다. 엔진의 크기는 참외보다 조금 더 컸다.
박순기가 물었다.
"그건 또 뭡니까?"
"이건 RC 모형비행기용 소형 가스터빈 엔진입니다."
"아. 장난감이군요."
"한 개 가격이 오백만 원이니까 장난감치고는 좀 비싸죠."
"와…. 가격이 장난 아니네요."
나강인이 그 소형 엔진을 날개 한쪽에 두 개씩 모두 네 개를 달았다. 엔진이 연료 파이프가 내장된 연결장치에 단단히 고정됐다.
박순기는 또 당황했다.
"그걸 왜 날개에 다세요? 이젠 막 하늘을 날아다시게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지구연합군 강습사단의 공중강습용 날개에는 단거리 비행 기능이 있습니다만, 지금 시대에는 날개에 필요한 고출력 엔진을 구할 수 없습니다.
AI 전지인의 초기 메모리에는 고출력 엔진 설계도가 없었다. 그래서 날개에는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대용품을 달았다.
"하늘을 막 날아다니는 용도로 쓰기엔 출력이 부족하죠."
"그런 엔진을 왜 날개에 다세요?"
"자유비행은 어렵지만, 공중에서 자세를 전환할 때는 도움이 됩니다. 총알을 피하려면 이런 것도 있어야 해서."
"와…. 공중에서도 총알을 피하시게요?"
"그럼 그냥 맞아줍니까?"
"아뇨. 그건 아닌데, 그래도…. 어? 잠깐만요. 이 날개는 조종을 어떻게 합니까? 조종장치가 안 보이는데요?"
"유나린 박사님 덕을 좀 봤죠."
"네?"
"인공 근육을 샘플로 받은 게 좀 있어서 여기 썼습니다. 제어 컨트롤러는 오메가테크의 제품을 썼고요. 그 제품도 테스트용으로 좀 받았거든요."
"리얼 핸드에 쓴 그 기술 말씀이시죠? 그럼 이건 의수 대신에 날개를 움직이는 거네요?"
"그렇죠."
박순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뉴스에서 봤는데, 그건 손의 신경 신호를 그대로 복제해서 의수에 전달하는 거잖습니까? 하지만 사람은 손은 있어도 날개가 없는데요?"
"그러니까 당연히."
"당연히 날개가 없…."
"연습해야죠."
"네?"
"익숙해질 때까지 안 죽고 연습하면 됩니다."
"네? 안 죽고요? 하지만 지금이 첫 비행이라면서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제가 잘 보조하면 됩니다.
"잘하면 됩니다."
"네?"
나강인이 접이식 헬멧을 썼다. 유원지 사건 때 사용한 용 헬멧이었다.
그가 무전기를 켰다.
"다시 말하지만, 저격수는 제가 신호하기 전에는 쏘면 안 됩니다. 어지간하면 저격할 일이 없게 끝내겠습니다."
저격수 두 명은 다른 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이 즉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30층 빌딩의 옥상이다. 오르카가 점령한 곳은 15층 건물의 14층이다. 높이는 이쪽이 더 높지만, 거리가 300m나 떨어져 있다.
그 거리를 날아가려면 날개의 활강 능력이 중요했다.
"지인아. 바람 상황은?"
두 건물 사이에는 헬륨 풍선이 하나 떠다니고 있었다. 지상에서 미리 띄워놓은 것이다.
AI 전지인은 지상에 펄럭이는 플래카드부터 주변 건물 옥상의 환풍구 상태까지 데이터로 삼아 계산했다.
-목표지점까지 비행하기에 충분합니다.
나강인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작전 시작합니다."
그가 금속으로 만든 날개를 쭉 편 채로 옥상을 달렸다. 빨랐다. 난간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가볍게 점프해 난간을 밟은 후에 다시 힘차게 점프했다.
나강인이 30층 옥상에서 위로 날아올랐다.
옥상에 있던 요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벌렸다.
"와아."
"진짜 난다."
소형 가스터빈 엔진은 아직 켜지 않았다.
박순기에게는 굳이 설명하지 않은 것이 있다.
AI 전지인은 모형비행기용 엔진을 그대로 쓴 게 아니다. 개조해서 출력을 크게 높였다. 대신에 엔진 가동 시간이 급격히 짧아졌고 소음도 커졌다.
벌써 엔진을 켜면 소리 때문에 적이 눈치챌 수 있다.
"조용히 가자."
-바람 방향 확인했습니다. 소리 없이 덮치겠습니다.
***
14층 상황을 처음 알린 사람은, 취재 대상자인 파티 참석자를 다른 건물 창가에서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촬영하던 기자였다.
그 기자는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진이 포함된 속보를 올렸다.
이 사건은 그래서 처음부터 언론에 공개됐다. 곧바로 다른 방송국이나 언론사의 기자들이 현장에 찾아왔다.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긴 했지만, 카메라 여러 대가 지상에서 14층을 찍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상에서 14층을 찍으면 건물 내부가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상에 있는 기자 중 일부는 건물과 하늘을 배경으로 영상을 촬영하면서 현장 상황을 중계했다.
근처에는 구경꾼들도 모여 있었다. 그들도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중 한 명이 하늘을 가리켰다.
"어? 새다."
"새가 무척 큰데? 독수리인가?"
하늘만 찍던 방송국 카메라 기자가 망원렌즈의 방향을 조금 틀었다.
방송국에서 쓰는 고성능 카메라에 하늘을 나는 존재가 선명하게 찍혔다.
현장 방송을 TV에서 계속 중계할 순 없다. 다른 방송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편성시간에 제한이 없는 방송국의 인터넷 채널에서 현장 생중계가 진행됐다.
인터넷으로 현장을 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채팅을 쳤다.
-어? 저거 사람 아냐?
-사람이 난다!
-날개가 있어!
방송국 기자가 카메라의 망원렌즈를 사용해 영상을 최대로 확대했다. 비행하는 사람의 모습이 좀 더 선명하게 나왔다.
-기관단총을 가지고 있는데?
-어? 저거 용 헬멧 아냐?
-저거 그게 맞는 것 같은데요? 경기도 유원지 사건에서 활약한 사람이 쓴 그 용 헬멧이요.
-그럼 우리 편인가?
-가! 가서 다 쓸어버려!
***
나강인은 공기의 흐름을 최대한 이용하며 활강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예상보다 하강 속도가 조금 빠릅니다.
AI 전지인이 AR 렌즈를 통해 예상 비행경로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경로가 조금 바뀌었다.
-이대로 활강하면 14층이 아니라 13층에 도착합니다.
"저기까지 비행하기에 충분하다며?"
-그러게 말입니다.
"지인아. 넌 너무 사람이 됐다. 이제 대놓고 뻔뻔해."
-저도 이런 제가 당혹스럽습니다.
"방법은?"
-엔진을 켜면 고도를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럼 켜야지."
-엔진 소음을 적이 듣게 됩니다.
"거의 다 왔잖아. 어차피 이쯤에서 켜야 했어."
나강인이 엔진 네 개를 한 번에 켰다. 곧바로 드레곤 윙의 엔진이 뒤쪽으로 불꽃을 쏟아냈다.
AI 전지인이 고출력으로 개조한 엔진은 가동 가능 시간이 짧았다. 거의 1회용이나 마찬가지였다.
나강인의 눈앞에 홀로그램으로 된 숫자 30과 게이지가 나타났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보고했다.
-엔진이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30초입니다!
"알아!"
나강인이 14층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비행 방식이 활강에서 능동 비행으로 바뀌었다.
날개에서 뒤쪽으로 쏟아지는 네 줄기 불꽃이 더 강해졌다.
나강인이 하늘에서 14층을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