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강습
인터넷으로 현장 영상을 보던 사람들이 채팅을 쳤다.
-용 모양 헬멧 쓴 저 사람은 유원지에서도 히어로처럼 날아다녔습니다.
-그때는 나는 것처럼 점프한 거지만, 이젠 아예 날개까지 달고 본격적으로 날아다니네요.
-날개가 글라이더치고는 작은데 되게 잘 나네요.
-어?
나강인이 공중에서 엔진을 켰다.
-날개에 불꽃이 네 개나 생겼어!
-엔진이 불을 내뿜잖아!
-저거 글라이더가 아니었어! 제트기였어!
-제트기라서 날개가 날씬한 거야!
-빌딩으로 돌진한다!
-가라! 가서 다 부숴버려!
***
오르카 일당이 점령한 15층 신축 빌딩은 통신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다.
오르카는 건물 내부의 무선 통신망만 교란장치를 이용해 차단하고, 건물 통제실의 유선망은 살려놨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할 수는 없지만, 오르카 일당은 통제실에서 유선망을 이용해 외부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14층 파티장을 그들이 장악했다는 것이 너무 빨리 들통났다. 곧바로 출동한 경찰이 밖에서 건물의 모든 유선망을 차단했다.
건물 안에서는 인터넷을 할 수 없어서, 오르카는 나강인이 드래곤 윙을 이용해 활강으로 소리 없이 날아온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크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헬기 소리는 아닙니다!"
"이건 제트기 소리…."
오르카와 부하들이 엔진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개조한 소형 가스터빈 엔진이 최대 출력으로 가속하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소리의 크기도 상당히 컸다.
대신에 비행 속도가 남은 거리를 순식간에 돌파할 정도로 빨라졌다.
나강인이 14층을 향해 돌진했다. 접근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적이 무슨 일인지 깨닫고 대응할 시간은 없었다.
그는 건물 정면이 아니라 옆쪽을 향해 비행했다. 정면으로 들어가 교전하면 인명피해가 생긴다.
옆면도 정면과 마찬가지도 전체가 유리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나강인이 기관단총을 들며 짧게 말했다.
"타게팅!"
AI 전지인이 사격해야 할 지점을 주르륵 표시했다.
나강인이 날개의 방향을 틀었다. 속도를 내기 위해 공중에서 엎드려 날던 자세가 급격히 변했다. 상체는 위로 올라가고 다리는 아래로 내려갔다.
나강인이 순식간에 공중에서 똑바로 섰다. 자세가 변하면서 비행 속도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나강인이 건물 유리창 바깥 공중에서 14층을 향해 기관단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
오르카는 제트기의 엔진 소리를 듣고 창밖을 봤다가 고속으로 날아오는 나강인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헉! 사람이 등에 비행기 날개를…."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이라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14층의 병력은 건물 수색을 나갔던 부하 두 명이 돌아와 그만큼 늘어나 있었다.
오르카가 권총을 잡으며 소리를 질렀다.
"격추해!"
그의 부하들이 급히 권총을 들어 나강인을 겨누었다.
이미 늦었다. 나강인은 정면이 아니라 건물 옆으로 지나가다가 갑자기 날개의 방향을 바꾸었다.
옆으로 날던 나강인의 몸이 빙글 회전하며 똑바로 섰다. 엔진은 여전히 불꽃을 쏟아내고 있었다. 추진 방향이 이번에는 뒤쪽이 아니라 아래쪽이었다.
덕분에 공중에서 몸을 세웠는데도 고도는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날아오던 관성이 있어서 몸은 여전히 옆으로 움직였다.
나강인이 14층 밖에서 옆으로 날아가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9mm 탄환이 초당 10발 이상 쏟아져 나왔다. 30발짜리 탄창에 가득 들어 있던 총탄이 유리창을 박살 내며 14층을 휩쓸었다.
"꺄아악!"
인질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였다.
오르카와 부하들이 반격하려 했지만 날아오는 총탄이 너무 빠르고 너무 많았다.
AI 전지인이 위험도가 제일 높은 표적을 먼저 표시했다. 인질을 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놈이었다.
나강인이 방아쇠를 당긴 채로 총구를 틀었다. 총탄 소나기가 그놈을 향해 날아갔다.
"케엑!"
그놈은 두 발을 연달아 얻어맞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AI 전지인이 사격 대상을 즉시 바꾸었다. 동그라미와 십자선을 겹쳐 만든 타게팅 표시가 두 번째 위험 대상으로 옮겨갔다. 그놈은 나강인을 비교적 정확하게 조준하고 있었다.
나강인은 14층 바깥 공중에서 수평으로 비행하며 기관단총을 계속 갈겼다. 총구가 이동하면서 유리창이 더 많이 박살 났다.
두 번째 놈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나강인이 쏜 총탄에 맞아 나자빠졌다.
"컥!"
적의 권총이 발사된 건 기관총탄에 맞고 뒤로 몸이 젖혀지는 순간이었다. 적의 총탄이 천장으로 날아가 박혔다.
나강인은 건물 밖 공중을 옆으로 날며 기관단총을 연사했다. 순식간에 건물 14층 한쪽 면의 유리창이 거의 다 박살 났다. 반대쪽 유리창도 상당수가 깨졌다.
적은 두 놈을 잡았다.
총에 맞지 않은 세 놈은 인질이나 나강인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기관단총 사격부터 피하려고 뛰었다.
나강인은 피하는 놈들은 일단 놔두고 반격하려는 놈들을 먼저 쐈다.
문제가 생겼다. 기관단총에서 철컥 소리가 났다. 30발짜리 탄창이 벌써 비었다. 홀로그램 잔탄 게이지도 0을 가리켰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보고했다.
-적과 인질을 분리했습니다! 현재 상태가 오래 유지되진 않습니다!
이 제압사격은 적과 인질을 분리하는 게 1차 목적이었다.
난사하는 기관단총에 죽고 싶지 않으면 도망치는 세 놈처럼 몸부터 피해야 했다. 그냥 서서 총을 쏘려던 놈들은 이미 나강인의 총에 맞아 제압됐다.
나강인이 날개의 방향을 틀었다. 엔진의 불꽃이 뒤쪽으로 쏟아지면서 그의 몸이 앞으로 전진했다.
나강인이 날개를 편 채로 14층 안으로 진입했다.
***
지상에서 나강인이 비행하는 모습을 보던 사람들은, 그가 14층을 향해 기관단총으로 사격하는 걸 보며 환성을 질렀다.
"갈겨!"
"박살 내!"
순식간에 탄창 하나를 다 비운 나강인이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지상에서는 건물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 사건을 신고한 기자는 아직 근처 건물의 촬영 명당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른 기자들은 경찰의 현장 통제 때문에 그 건물에 들어갈 수 없지만, 먼저 자리를 잡은 그는 그곳에서 대놓고 현장 영상을 인터넷으로 내보냈다.
그런데 그가 있는 곳은 나강인이 날아온 곳과는 다른 방향이다. 그래서 나강인이 건물 밖에서 사격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찍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강인이 갑자기 건물 안에 진입했다. 그때부터는 14층에서 뭘 하는지 명확하게 보였다.
이제 시청자들은 오직 이 기자의 인터넷 방송으로만 내부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시청자들이 급속도로 유입됐다.
***
나강인은 14층 모퉁이 쪽에서 안으로 진입하며 기관단총에서 손을 놓았다. 그건 이미 탄창이 비었다.
대신에 다리에 매달아둔 권총을 뽑았다.
AI 전지인이 적의 몸 주변에 표식을 띄우며 고속 음성으로 보고했다.
-적 셋 확인! 적이 쏩니다!
나강인은 일부러 인질이 없는 모퉁이 방향으로 14층에 진입했다. 그래야 빗나간 총탄이 인질에게 날아가지 않는다.
14층은 3면이 유리창이지만 나머지 한쪽 면은 복도나 화장실 등의 기본 시설과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 있었다.
날개의 엔진은 아직 살아있었다. 나강인이 날개를 비틀어 추력의 방향을 옆으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땅을 박찼다.
적은 기관단총의 탄창이 비었다는 걸 눈치채고 권총으로 사격했다.
나강인의 몸이 옆으로 고속으로 이동했다. 빨랐다. 적의 조준 실력은 나강인의 이동 속도를 쫓아오지 못했다. 총탄이 그의 뒤쪽 복도 벽에 꽂혔다.
나강인은 고속으로 기동하며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제일 먼저 노린 건 그를 향해 쏘는 놈이 아니라 인질 쪽으로 총구를 돌리던 놈이다.
"케엑!"
총에 맞은 놈이 고꾸라졌다.
AI 전지인이 즉시 나강인을 향해 사격하는 놈을 타게팅했다.
적이 방아쇠를 부지런히 당겼다. 총탄이 벽에 퍽퍽 꽂혔다. 나강인이 바닥에서 낮게 떠서 고속으로 수평 이동을 하는데도 탄착점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상관없다. 맞기 전에 쏘면 된다.
그가 옆으로 날아가며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AI 전지인이 조준을 보정했다.
9mm 권총탄이 날아가 정확히 적의 어깨를 뚫었다. 한 발로는 부족할까 봐 양쪽 어깨에 사이좋게 한 발씩 박았다.
"끄아악!"
적이 권총을 놓치며 나자빠졌다.
나강인 옆으로 계속 이동했다. 어느새 건물 모퉁이가 나왔다. 그 방향으로 더 이동하면 건물 밖으로 떨어진다.
그가 날개를 비틀어 방향을 꺾었다.
엔진 소리가 거칠게 변했다. AI 전지인이 경고 표시를 띄웠다.
-엔진이 한계입니다!
개조된 소형 가스터빈 엔진은 원래 스펙보다 출력이 훨씬 더 높다. 대신에 엔진의 예상 사용 가능 시간은 30초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실전에서는 예상보다 빨리 엔진에 문제가 생겼다.
엔진 소리는 변했지만 당장 터지는 건 아니다. 좀 더 버틸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30초를 넘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이제 서 있는 놈은 두목 오르카 하나뿐이다.
나강인이 엔진 네 개를 즉시 정지시키며 바닥에 착지했다.
두목 오르카는 권총을 손으로 잡기만 하고 뽑지는 않았다. 그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물었다.
"그 장비는 도대체 뭐냐?"
"아아. 이건 날개라는 거다. 하늘을 날 수 있지."
오르카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처음 보는 물건인데, 한국군의 신형 장비인가? 아니지. 정식 제식 장비로 그런 게 있다면 내가 모를 리 없지. 어느 기업이 만든 거냐?"
"알아서 뭐하게?"
오르카가 혀를 찼다.
"쯧. 미리 알았다면 그 기술부터 빼내서 팔아먹었을 텐데."
***
인터넷으로 14층 전투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이겼어!"
"다 잡았다고!"
채팅창에 글도 주르륵 올라왔다.
-으아아아!
-해냈다!
-나비가 아니라 매처럼 날아서 두다다다!
-왔노라! 싸웠노라! 다 쏴버렸노라!
-저 날개 뭐야? 도대체 뭐야?
-저거 어디서 파냐!
-이거 실화냐! 실화냐고!
-총격전이 영화보다 더 엄청나!
-날개 펼친 채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거 봐라. 포스 쩐다!
-근데 저 사람 진짜 누구지?
-저 헬멧, 유원지 사건 때 그 용 헬멧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럼 그때 같이 싸운 여우랑 곰은 어디 가고?
-하늘을 나는 건 오직 용뿐입니다! 여우랑 곰은 날개가 없어서 못 왔어요!
***
박순기도 옥상에서 그 전투 영상을 보았다. 쌍안경으로도 보고 인터넷 중계 영상도 수시로 모니터로 보면서 현장을 확인했다.
"와. 나 사범님 실력이야 알고 있었지만, 드래곤 윙이 진짜 쩌네."
그가 입맛을 다시며 왼팔을 만졌다. 그의 왼팔에는 와이번 플레이트 세트의 팔뚝 부분이 장착되어 있었다.
"드래곤 윙이 있으면 와이번 윙도 있겠지? 나중에 나도 만들어달라고 졸라야겠다."
아직 테스트 중인 위험한 장비라는 건 들었지만, 나강인이 너무 익숙하게 잘 날아다니는 걸 보니까 용기가 났다.
"저 장비만 있으면 나도 하늘을 멋지게 날 수 있을 거야."
***
인질로 붙잡혀 14층에 바닥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났다.
"이, 이겼어!"
"으하하하! 우리 편이 이겼다고!"
"살았다!"
"고맙습니다!"
그중에 양복을 입은 남자가 몸을 일으키고 옷을 턴 후에 나강인 쪽으로 걸어왔다.
"수고했습니다. 나 김석명입니다."
나강인이 김석명을 향해 왼손을 내밀었다.
"거기 정지."
김석명이 인상을 확 썼다. 보좌관이 앞으로 튀어나가 나강인에게 말했다.
"의원님이십니다."
"의사?"
"삼선 국회의원이십니다!"
"짜장인 줄 알았네."
김석명이 화를 냈다.
"어? 이봐. 거 소속이 어디요? 나 김석명이라니까?"
"네. 김석명 씨."
나강인이 김석명을 정지시킨 건 다른 문제가 있어서였다.
"지인아. 두목이 묘하게 여유가 있지?"
-당황한 것처럼 보이지만, 적극적인 저항이나 도주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뭔가 이상해."
인질로 잡혀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일어났다. 다른 방향으로 앉아 있던 사람들도 나강인을 보기 위해 몸을 돌렸다.
"살았어."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어."
"어? 왜 통화권 이탈인데?"
"창가로 가서 전화를 걸면 되겠지."
사람들이 일어서고 돌아서고 움직인 덕분에, AI 전지인이 14층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을 스캔할 수 있었다.
AI 전지인이 다급히 보고했다.
-지금 이곳에 권수연과 유나린이 없습니다!
나강인도 당황했다. 명단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인질 숫자는 명단과 일치했잖아!"
-그렇습니다만, 방금 모든 인질의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곳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질 숫자가 맞아?"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나강인이 권총을 들었다.
"사람들 사이에 인질이 아닌 놈들이 섞여 있다."
김석명은 화들짝 놀랐다. 나강인의 총구가 그를 향했다.
"이, 이봐! 나 김석명이야!"
인질 사이에서 갑자기 권총을 꺼내는 놈이 보였다. AI 전지인이 요란한 경고 표시와 함께 적을 표시했다.
나강인이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 두 발이 김석명을 스쳐 지나가 그 뒤쪽에 있던 가짜 인질의 양쪽 어깨를 뚫었다.
"케엑!"
AI 전지인이 급히 경고했다.
-인질로 위장한 적 추가 발견! 한 놈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