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 7층
나강인이 행사 사회를 맡은 개그맨에게 물었다.
"이 파티를 주최한 회사 사람들은 어디 있습니까?"
"저기 저분들입니다. 그런데 왜…."
"조금이라도 수상한 사람들은 권총을 안 주려고요."
"네? 저분들은 피해자니까 제일 믿을 수 있잖습니까?"
"이놈들이 왜 하필 이 파티에 쳐들어왔는지 아직 모릅니다. 저 사람들 사이에 한 명쯤 적과 내통한 놈이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아!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나강인은 파티를 주최한 회사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면서 신분이 확실한 사람을 더 찾아내 권총을 하나씩 맡겼다.
국회의원 김석명은 그와 잘 아는 사람들이 권총을 받았으면 했다. 그런데 아무도 권총을 받지 못했다.
그가 인상을 썼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총을 받으면, 그 사람들을 데리고 전체를 지휘하는 그림을 만들려고 했더니….’
이젠 국회의원 간판을 써도 상황을 주도하긴 글렀다.
‘이미 체면을 많이 구겼으니 차리리 여길 나가는 게 낫겠다. 기자들에게 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지.’
그가 헛기침하며 14층 사람들에게 말했다.
"커흠. 우리는 이제 여기를 나갑시다."
나강인이 말했다.
"안 됩니다."
김석명이 짜증을 냈다.
"뭐? 내가 간다는데 당신이 왜 막고 난리야?"
"아직 테러리스트를 다 잡은 게 아니라서. 당장 아래층에 몇 놈 있을지도 모르는데 가고 싶으면 가시든가."
김석명의 목소리가 당장 작아졌다.
"어? 아니, 저런 놈들이 더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줘야지…."
나강인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건물에 놈들이 더 있을 겁니다. 중간에는 함정도 있을 거고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여기서 구출부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권총을 나눠드린 건 만약을 대비해서입니다."
배우 민수경이 물었다.
"저희보고 여기서 기다리라는 건, 요원님은…."
"내가 구해야 하는 사람이 다른 층에 있어서."
"네? 여기 말고도 붙잡힌 사람이 또 있어요?"
"파악된 명단과 이곳에 있는 사람의 수가 안 맞아요. 가짜 인질과 바뀐 다섯 명은 다른 층에 있을 겁니다."
나강인이 적을 제압하려고 던졌던 왼쪽 날개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가 그 날개를 회수한 후에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국회의원 김석명이 다급히 물었다.
"거기! 우리를 지켜야지 어딜 가는 거요?"
나강인이 권총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켰다.
"이제 스스로 지킬 힘이 있습니다만?"
"아니, 그래도 기왕이면 최고가 지켜줘야지! 그리고 다른 특수부대원들은 지금 어디 있는 거요?"
나강인이 창밖을 가리켰다.
"특수부대는 곧 헬기 타고 옥상으로 올 겁니다. 난 가봐야 해서."
김석명은 화가 치밀어올랐다. 목격자가 많아서 참고 있었지만 이제 한계였다.
그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국회의원이 말하는데 왜 이렇게 뻣뻣해! 당신 소속이 어디냐니까!"
나강인은 김명석이 소리 지르는 걸 무시하고 통로로 나갔다.
***
나강인이 14층을 공략하는 영상은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그가 적을 잡고 획득한 권총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을 보고 채팅이 주르륵 올라왔다.
-권총이 되게 많다!
-그러니까 몹을 잡으면 아이템으로 저 권총이 떨어지는 거죠?
-어? 민수경이 권총을 받았다!
-왜 민수경이 먼저인데? 예뻐서냐!
-민수경은 예전에 첩보 영화를 찍을 때 권총 사격을 배웠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제가 민수경 팬이거든요.
-그걸 알고 민수경한테 권총을 줬나 본데? 어? 그럼 저 날아다니는 요원도 민수경 팬인가?
-민수경 왕팬이라는 데 한 표.
-잠깐. 개그맨도 총을 받는데?
-저 개그맨은 사단 수색대 출신입니다. 방송에서 수색대 개그도 몇 번 했어요.
-잠깐만요. 조금 전에 손을 든 사람 중에서 몇 사람이 권총을 받는데요?
-손을 든 사람들이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인가 봅니다. 권총 나눠주려고 손을 들라고 한 거네요.
-왜 남자 중에 반밖에 안 드는데요? 나머지 반은 면제?
-저기 모인 사람들은 뭔데 면제 비율이 저렇게 높지?
-그러게요. 남자 중에 반이 면제네.
-김석명도 손을 안 들었는데요?
-그게 누구인데요?
-국회의원이요.
-김석명은 희귀병으로 면제입니다.
-무슨 병인데요?
-몰라요. 우리 동네 국회의원인데 그냥 희귀병이래요.
-근데 김석명이 지금 삿대질하면서 화내는 거 같은데요?
-권총을 안 줘서 그러나?
***
나강인이 14층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는 엘리베이터와 계단, 화장실 등이 있었다.
그가 화장실에 숨어 있는 놈이 없는지 확인하며 말했다.
"수연이하고 유 박사님은 왜 14층에 없을까?"
-적의 목표가 두 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유나린 박사님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수연이는? 이라미드 태양전지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은 지금 이 지구에 우리밖에 없어."
-적의 목표는 아닌가 봅니다.
"놈들에게 잡힌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가 14층에서 사건이 터지니까 다른 층에 숨었을 거야. 놈들에게 들켰다면 이미 14층으로 끌고 갔을 테니까."
-적은 파티 참석자 중에 민간인이 몇 명이나 빠졌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적의 추가 병력이 다른 층에서 수색 중일 확률이 높습니다.
"놈들에게 잡히기 전에 찾아야지."
-15층 건물을 모두 조사하는 건 너무 오래 걸립니다. 부상자 두 명에 대한 구조 대책도 세워야 합니다.
적이 이 건물을 점령할 때 진행요원 두 명이 총에 맞았다.
"여기서 응급수술을 할 순 없겠지?"
-야전 응급수술 스킬을 수많은 목격자 앞에서 보여주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통제실부터 확보하자. 그곳에 가면 건물 전체 CCTV를 볼 수 있으니까."
-통제실은 7층에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와 계단 중에 어느 경로로 가시겠습니까?
"부비트랩을 깔아놨겠지?"
-적이 1층에 설치한 부비트랩의 수준으로 판단하면, 엘리베이터는 물론이고 계단도 층마다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건물 구조 띄워."
AI 전지인이 건물 전체 도면을 분석해 3D 홀로그램 모형을 만들었다.
"통제실 위치."
그 건물 모형에 나강인의 현재 위치와 통제실의 위치가 표시됐다.
"최단 경로는 저거네."
나강인이 분리해서 방패로 사용했던 날개를 다시 장착했다.
"놈들이 통제실에서 우리를 보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나강인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김석명이 실실 웃었다.
"돌아왔네? 저럴 거면 큰소리치면서 가지 말았어야지."
보좌관이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의원님."
민수경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저희랑 같이 계시기로 마음을 바꾸신 거예요?"
"아뇨."
"네?"
그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벽에다 총을 몇 발 쏠 거니까 놀라지 마세요."
AI 전지인이 14층에 설치된 CCTV의 위치를 모두 표시했다. 나강인이 권총을 들어 한 바퀴 돌며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9mm 총탄이 사방으로 날아가 천장에 설치된 CCTV를 모조리 박살 냈다.
사람들은 미리 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강인이 왜 그러는지 몰라 의아해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이제 적은 이곳 상황을 볼 수 없습니다.
나강인이 탄창을 교환했다.
그런 후에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유리는 이미 박살 나 있었다. 그는 14층의 경계에서 사람들 쪽으로 돌아섰다.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강인을 쳐다보았다.
나강인의 양쪽 날개에서 소형 엔진 네 개가 다시 가동됐다. 엔진에서 불꽃이 쏟아졌다.
그는 조금 전에 이곳을 강습 타격할 때 엔진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30초짜리 엔진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엔진 가동 가능 시간, 10초!
"충분해."
나강인이 뒤로 물러나 건물 바깥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의 몸이 14층에서 아래로 휙 사라졌다.
민수경이 짧게 소리를 질렀다.
"꺅?"
사람들도 당황했다.
"어? 어?"
"왜 뛰어내리는데!"
***
인터넷으로 중계를 보던 사람들은 나강인이 창가에 서는 걸 보고 채팅을 쳤다.
-어? 왼쪽 날개가 도로 붙었는데?
-날개가 착탈식이었어?
-어? 불꽃 네 줄기?
-엔진 켰다!
-나냐?
-뒤로 뛰었어!
-난다!
-아니다! 떨어진다!
-천천히 떨어진다!
나강인이 14층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그냥 추락하는 것보다는 느렸다. 마치 낙하산을 맨 같은 속도로 내려갔다.
그가 권총으로 아래를 겨누었다. 7층 대형 유리창이 보였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권총을 두 손으로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약실에서 탄피 속 장약이 폭발하며 총탄을 총구 밖으로 날렸다. 그 반동으로 탄피가 튀어나가며 총이 뒤로 밀렸다.
나강인이 그 반동을 이용해 발사 속도를 높였다. 총이 뒤로 밀렸다가 돌아올 때마다 방아쇠가 손가락에 걸려 자동으로 당겨졌다. 그때마다 총탄이 다시 발사됐다. 발사 간격이 굉장히 짧았다.
총탄이 연발로 날아가 유리창을 퍽퍽 뚫었다. 7층 대형 창문 유리가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지며 무너졌다.
갑자기 날개의 엔진 네 개 중 하나가 터졌다. 폭발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균형이 한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예상보다 빨리 엔진이 터졌습니다!
나강인이 즉시 반대쪽 날개의 엔진을 권총으로 쏘았다. 그 엔진도 터져나갔다. 양쪽 추력이 다시 균형을 잡았다.
이제 엔진은 두 개만 남았다. 추락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나강인이 날개의 방향을 틀었다. 남은 엔진 두 개가 뒤로 불꽃을 쏟아냈다.
나강인의 몸이 아래로 하강하면서 동시에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공중에서 7층의 부서진 대형 창문으로 마치 걷는 것처럼 쓱 들어갔다.
***
인터넷 중계 영상 채팅창에 불이 붙었다.
-으아아! 엔진이 터졌어!
-기울어진다!
-추락이냐!
-어?
-하나 터지자마자 다른 엔진 쏴버린 거 실화냐?
-더 빨리 떨어진다!
-아니다! 난다! 앞으로 난다!
-들어갔어! 정확히 들어갔다고!
-공중을 뚜벅뚜벅 걸어서 들어갔다아!
-이거지!
-쩐다!
-근데 왜 7층으로 갔지?
-속보 나왔습니다! 7층에 건물 전체 통제실이 있답니다!
***
나강인이 7층에 진입했다. 옆으로 펼쳤던 날개는 접었다.
7층은 탁 트인 14층과 달리 내부에도 벽과 복도가 있었다. 특히 7층 통제실은 외부로 노출된 창문이 아예 없었다. 통제실에 들어가려면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AI 전지인이 7층 도면을 띄웠다. 시야 한쪽에 미니맵처럼 지도가 보였다.
나강인이 복도 옆 사무실의 문을 열어 내부를 확인하고 통제실을 향해 걸어갔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부비트랩을 발견했습니다.
통제실로 가는 복도에 발목 높이로 가느다랗고 투명한 선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선의 한쪽 끝은 복도 화분 뒤에 숨겨져 있었다.
"저 화분은 원래 햇빛 잘 드는 창가 쪽에 있었겠지."
-해체하시겠습니까?
"부비트랩이 이거 하나가 아니지?"
AI 전지인이 허공에 빨간색 0직선을 그렸다.
-복도 끝부분에 하나가 더 설치되어 있습니다.
"화력은? 이거 터지면 벽이 무너질까?"
-부비트랩이 화염 타입입니다. 폭발력이 약해 벽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사람 한 명 잡기엔 충분한 화력입니다.
총을 쏴서 유리창을 박살 내면서 들어왔으니 그가 7층에 진입했다는 걸 적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러면 조용히 전진할 필요가 없다.
"매복이 있지?"
-복도 모퉁이 뒤에서 총기 작동음을 확인했습니다. 적이 매복하고 있습니다.
"그럼 빠르고 쉽게 가자."
나강인이 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 손가락으로 날렸다. 그러면서 복도 뒤로 피했다.
날아간 동전이 바닥에 깔린 투명한 선을 툭 끊었다. 잘린 선과 연결된 부비트랩의 격발장치가 즉시 작동했다.
곧바로 폭탄이 폭발했다. 대량의 화염이 복도를 채우고 밀려와 창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그 화염이 복도 끝에 있는 부비트랩의 투명한 선도 끊었다. 폭발이 한 번 더 일어나고 화염이 다시 쏟아졌다.
나강인은 이미 복도 옆 사무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복도에서 옆으로 빠져나온 화염이 있긴 했지만 그 사무실로 들어오진 않았다. 대부분의 불길은 이미 깨진 대형 유리창을 통해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귓속 독립형 보조 모듈이 허용치를 초과하는 소음을 차단했습니다.
***
7층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바깥으로 치솟았다.
그 대인용 사제 부비트랩은 화력은 약했지만 화염은 확실히 만들어냈다. 사람이 있었다면 불길에 휩쓸릴 수밖에 없을 정도의 화염이 두 번이나 7층 바깥으로 쏟아졌다.
인터넷으로 중계되는 영상을 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터졌어?
-당한 거야?
-폭탄이 터졌는데 어떻게 살아!
-죽었어!
-히어로가 죽었다!
***
박순기도 300m쯤 떨어진 30층 건물 옥상에서 그 폭발을 보았다.
"나 사범님…."
그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막 터트리시면 건물주가 웁니다. 저 건물 화재보험은 들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