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 통제실
화염이 복도를 쓸고 지나간 후에 화재경보기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스프링클러가 물을 쏟아냈다.
나강인이 물이 흐르는 복도를 지나가면서 화재경보기를 껐다. 소음으로 적의 위치를 파악하려면 경보기 소리는 없는 편이 낫다.
"여기 인테리어 다시 하려면 돈 좀 들겠네."
-14층에 이 회사 경영진이 인질로 붙잡혀 있었습니다. 살려줬으니까 이해할 겁니다.
나강인이 모퉁이를 돌았다. 그곳에 엄폐물을 세워놓고 매복했던 두 명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끄으으…."
"사, 살려…."
나강인이 두 놈을 걷어차 기절시켰다.
"이놈들은 병신인가? 폭탄 근처에 매복하면 어쩌잔 거야?"
-요원님의 7층을 기습하니까 당황해서 급히 매복한 것 같습니다. 이놈들은 폭탄의 위력을 몰랐을 겁니다.
"부비트랩을 설치한 폭발물 전문가는 14층에서 잡은 놈 중에 있겠지."
바로 앞에 통제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문은 잠겨있었다.
나강인이 기절시킨 놈의 주머니에서 보안카드를 꺼내 전자식 도어락에 댔다. 꽤 튼튼하게 만든 도어락의 잠금장치가 가볍게 해제됐다.
"이게 그냥 되네?"
나강인이 옆으로 비켜서며 통제실 문을 활짝 열었다.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총탄이 쏟아졌다. 권총이 아니라 기관단총 사격이었다.
그 정도는 이미 예상했다. 적이 쏘는 게 기관단총이 아니라 설사 기관총이라 해도 상관없다.
9mm 총탄이 초당 10발 이상의 속도로 통제실에서 튀어나와 복도 벽에 퍽퍽 박혔다.
AI 전지인이 사격 발사음과 총탄의 궤적을 분석해 적의 위치를 계산했다. AR 렌즈의 홀로그램 투시 영상이 벽 뒤에서 사격하는 적의 모습을 정확히 보여주었다.
통제실 내부의 적은 탄창이 반쯤 비었을 때 사격을 멈췄다. 상대가 보이지도 않는데 계속 쏴봤자 탄약만 낭비하기 때문이다.
적의 사격이 멈추자마자 나강인이 권총만 문 안쪽으로 집어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딱 한 발만 발사했다. 9mm 권총탄이 날아가 적의 어깨를 정확히 뚫었다.
"으아악!"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기관단총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음을 확인했습니다.
나강인이 안으로 쓱 들어가며 권총으로 적을 겨누었다. 적은 오른쪽 어깨를 맞고 총을 떨어뜨린 상태였다. 한쪽 무릎은 바닥에 닿아 있었다.
나강인이 내부를 재빨리 훑어보았다. 그가 보는 건 AI 전지인도 본다.
AI 전지인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보고했다.
-통제실 내부에 다른 놈은 없습니다. 저놈이 오퍼레이터입니다.
나강인이 총을 맞은 놈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머리에 권총을 겨누며 물었다.
"인질 중에 다섯 명이 빈다. 어디 있어?"
"무슨 말인지 모르…."
"그 다섯 명 자리에 너희 패거리가 숨어 있더라. 내가 14층에서 그놈들을 잡는 거 여기서 다 봤지?"
그놈들은 인질로 위장하고 기습을 시도하다가 나강인에게 전멸했다.
나강인이 총구를 적의 이마에 댔다.
"다섯 명 어디 있냐? 대답하기 싫으면 너도 다른 놈들처럼 죽던가."
아직 죽은 놈은 없다.
하지만 오퍼레이터는 그걸 모른다. CCTV로 보면 생사가 불분명한 사람이 몇 명 있기 때문이다.
겁먹은 오퍼레이터가 급히 말했다.
"저, 저희가 끌고 간 게 아닙니다. 인원이 안 맞아서 저희도 조금 전부터 찾는 중입니다."
통제실 내부에는 CCTV용 모니터가 많았다.
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은 바둑판처럼 여러 개로 구분돼 서로 다른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각각의 분할화면에 나오는 건 중요 포인트에 설치된 CCTV의 영상이었다.
그중에는 검은색 네모도 있었다. 그건 14층 CCTV의 영상이 나와야 하는 자리였다.
14층 CCTV는 나강인이 총으로 박살 냈다. 그래서 여기서는 14층 상황이 보이지 않았다.
통제실에는 일반 모니터도 여러 대 있었다. 어떤 모니터에는 건물 내부 전력 상황이나 기타 정보가 떠 있었다. 개별 CCTV가 따로 조회된 모니터도 있었다. 그 모니터에는 7층의 상황이 보였다.
나강인이 대형 스크린을 쓱 보았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11층에서 움직임이 있습니다.
나강인이 개별 CCTV용 모니터에 11층 상황만 따로 띄웠다. 11층에 설치된 모든 CCTV 영상이 그 모니터에 작은 분할화면으로 떴다.
나강인이 마우스를 움직여 그중 한 화면을 확대했다. 분할화면이 전체화면으로 변했다.
11층에 복면을 쓴 놈 둘이 있었다. 둘 다 권총을 손에 쥔 상태였다.
그런데 그들은 11층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활짝 열린 문이 몇 개 보였다.
"11층을 수색하다가 14층의 총소리를 듣고 일단 수색을 멈췄겠지. 7층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까지 들리니까 당황했을 테고."
나강인이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오퍼레이터가 나강인의 눈치를 살피며 바닥에 떨어진 기관단총으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나강인이 오퍼레이터를 보지도 않고 발로 걷어차 구석에 처박았다.
"켁!"
"11층부터 확인하자."
***
11층은 14층과 구조가 달랐다.
14층은 강당이나 기타 다양한 용도로 쓰기 위해 사방이 다 트인 구조로 만들어졌다. 14층은 한쪽 면에는 복도가 있고 중간에는 기둥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열린 공간이었다.
반면에 11층은 사무실 용도로 만들어진 곳이다. 여러 개의 공간이 벽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각의 공간에는 문도 달려있었다.
권수연은 11층의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사무실에 숨어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CCTV가 없었다.
그녀가 속삭였다.
"테러리스트일까요?"
유나린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강도는 아닐 거야. 총 쏘는 소리를 들었잖아."
권수연은 귀찮게 하는 양용준을 피해 유나린과 13층으로 갔다가 적이 습격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파티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11층으로 대피했다.
이곳에는 권수연을 따라다니던 양용준도 같이 있었다.
양용준이 덜덜 떨었다.
"총소리 들었어? 폭탄이 터지는 소리도 났어."
11층에서는 14층의 상황을 알 수 없다. 기관단총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박살 나서 눈처럼 쏟아지는 건 보았지만, 나강인이 공중을 날아오는 건 여기서는 볼 수 없었다.
권수연이 양용준을 구박했다.
"너 진짜 자꾸 떨래?"
"넌 겁 안 나냐?"
"겁나지. 그래도 믿어야지."
"누구를? 경찰특공대? 늦었어. 총소리가 저렇게 많이 났으니까 이미 다 죽었을지도 몰라. 다음 차례는 우리가 될 수도 있다고."
권수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넌 정말 예전부터 겁이 너무 많아. 그런 애가 사고는 또 왜 그렇게 겁 없이 쳐대는 거야?"
"나도 이런 내가 이해가…."
갑자기 복도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세 사람이 몸을 움츠렸다. 양용준은 아예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총소리가 멎었다. 세 사람은 침을 꼴깍 삼켰다.
세 사람이 있는 공간의 문이 덜컥 소리를 냈다. 누군가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문을 미리 잠근 건 권수연이다. 어차피 이 안에는 몸을 숨길 곳이 없어서 문이라도 잠가놨다.
권수연이 속삭였다.
"조용히 하고 있…."
양용준이 우는 소리를 냈다.
"으아아. 나 죽기 싫어."
"야. 너 입 다물…."
문밖에서 나강인이 물었다.
"목소리가 익숙하네? 안에 있는 거 건방진 똥덩어리냐?"
"네? 네! 저는 똥입니다!"
권수연이 나강인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강인이야?"
"어. 나야. 문 열어."
권수연이 얼른 뛰어가서 문을 열었다.
"어머?"
나강인의 얼굴이 보일 거라고 기대했는데, 나타난 사람은 용 느낌으로 디자인된 헬멧을 쓰고 있었다.
권수연이 뒤로 주춤 물러났다.
"가, 강인이 맞지?"
나강인이 헬멧을 벗었다.
"어. 나다."
유나린도 활짝 핀 얼굴로 일어났다.
"나 팀장님!"
"유 박사님은 정말 전문가인가 봅니다."
"네?"
"인질이 되는 전문가."
"아, 그게…."
"농담입니다."
그녀가 살짝 웃었다.
"이런 일을 몇 번이나 겪으니까 저도 그런 거 아닌가 싶긴 해요. 굿이라도 해야 하나."
"부적이라면 써드릴 수 있는데."
AI 전지인의 초기 메모리에 부적 데이터가 들어 있다.
"네?"
"농담입니다. 긴장 좀 풀어주려고 농담한 겁니다. 그런데."
나강인이 양용준을 보며 말했다.
"저건 아직도 떨고 있네."
양용준은 머리를 숙이고 떨고 있었다. 그러다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나강인의 얼굴을 본 양용준의 눈이 커졌다.
"너, 너!"
그가 나강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네가 여기 왜 있어!"
"손가락이 거슬리네?"
양용준은 나강인이 얼마나 잘 싸우는지 예전에 회사 보안창고에서 직접 봤다. 그때 팔성테크의 보안창고를 점령한 무장 조직은 나강인에게 쓸려나갔다.
양용준이 손가락을 슬그머니 구부리며 물었다.
"네가 여기 왜 있는데?"
"수연이랑 유 박사님 구하러 왔다."
"나, 나는?"
"너는 버리고 갈까 생각 중인데…."
"형! 살려주세요!"
"나 수연이랑 동갑이다."
"야! 살려줘!"
"그게 살려달라는 사람의 태도냐?"
"구하는 김에 나도 좀 살려주면 안 될까?"
"살려는 주는데, 나 여기서 봤다고 하지 마라."
"어? 왜…."
나강인이 헬멧을 다시 썼다.
"내가 이걸 왜 쓰고 있겠냐? 괜히 내 소문내면 다음엔 너만 빼고 구할 거다. 그땐 재주껏 혼자 살아나 보든가."
양용준도 이런 일을 처음 당하는 게 아니다. 두 번 일어난 일은 세 번도 일어날 수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마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입 다물게! 진짜 다물게! 그럼 다음에도 살려주는 거지?"
갑자기 전화 알림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권수연의 스마트폰이었다.
그녀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 이제 전화가 된다."
"무선 통신 방해장치의 작동을 중단시켰거든. 시차를 두고 중단되게 처리했는데, 그게 지금이야."
통제실 CCTV에는 다른 놈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이 건물에 숨어 있는 놈이 더 있다면, 11층에 있는 놈들을 잡을 때까지는 서로 통신을 못 하게 막아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시차를 두었다.
권수연이 전화를 받았다.
"어? 아빠? 아. 난 괜찮아."
-내가 미안하다! 너를 대타로 거기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나 대타 맞구나?"
-아니, 그게…. 어디 다친 데는 없지? 괜찮지?
"괜찮아. 강인이가 구하러 왔어."
-어? 강인이가? 거길 왜….
"몰라. 하여간 왔어. 그러니까 난 이제 괜찮아."
유나린의 스마트폰도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응. 난 괜찮아. 여긴…."
그녀는 나강인이 양용준에게 그의 정체를 말하지 말라고 한 게 생각났다.
"요원님이 구하러 왔어. 괜찮아. 잠깐. 나 전화가 또 들어왔어. 끊어."
두 사람은 전화통화를 하는 도중에도 통화 중 대기 신호가 계속 떴다. 전화를 끊으면 바로 새로 전화가 걸려왔다. 둘 다 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나강인이 양용준을 보았다. 양용준의 휴대폰만 조용했다.
나강인이 물었다.
"야. 너 친구 없지?"
양용준이 반발했다.
"이, 있다! 친구 엄청 많다!"
"그중에 너 걱정하는 친구는 하나도 없나 보다? 집에서도 전화가 안 오네?"
"내, 내가 여기 온줄 몰라서 그럴 거야!"
"그니까 왜 그걸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냐고. 수연이나 유 박사님은 주변 사람들이 계속 전화를 걸었나 본데."
"그, 그게…"
AI 전지인이 말했다.
-요원님. 더 물어보면 울겠습니다.
나강인이 세 사람에게 물었다.
"총 쏴본 사람?"
권수연과 유나린는 한국에 살면서 연구만 하던 사람들이라 총을 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양용준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나!"
"아. 넌 군대 갔다 왔지."
양용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지 멀쩡한데 당연한 거 아냐? 나 병장 제대야."
"14층에 있는 남자들은 안 간 사람이 반이던데."
권수연이 옆에서 말했다.
"쟤가 사고 치고 다니는 거지 쟤네 부모님까지 그러시는 건 아니야. 군대에 갔다 오면 사람 될 줄 알고 서둘러 보내셨대."
"효과는 없었네."
"그건 그렇지."
나강인이 양용준에게 7층에서 가져온 기관단총을 넘겼다.
"네가 수연이랑 유 박사님을 지켜라."
양용준이 큰소리쳤다.
"나만 믿으라고!"
"너니까 안 믿기는데, 너라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는 권수연과 유나린에게는 11층에서 획득한 권총을 주었다. 권총 사격법도 간단히 가르쳐주었다. 특히 오발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를 자세히 설명했다.
"유 박사님. 쏘라고 주는 거 아닙니다. 우린 이제 14층으로 올라가 합류할 건데, 권총을 가지고만 있어도 아군 병력이 더 많아 보이는 효과가 있으니까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안전장치는 항상 걸어두세요."
권수연이 옆에서 물었다.
"우리도 쏴야 할 일이 생기면?"
"그땐 안전장치를 풀고 쏴야지."
나강인이 권수연에게 주의사항을 하나 더 알려주었다.
"설사 빈 총이라도 총구가 사람 쪽으로 향하면 삼 년간 재수가 없다. 총구 방향 조심해."
"알았어. 네 쪽으로는 절대로 안 가게 할게."
나강인이 양용준을 슬쩍 보았다. 양용준은 기관단총을 받은 후부터 기운이 넘쳐났다.
"저놈 쪽으로도 총구를 돌리지 마. 저거 더 재수 없어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