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 사이드 이펙트
남현주가 눈을 반짝이며 태블릿 PC의 영상을 보았다. 이번에는 용산 15층 빌딩의 7층에서 화염이 치솟는 장면이 나왔다.
그녀가 깜짝 놀라 물었다.
"어머나! 저 사람 설마 죽은 건 아니지?"
쌍둥이 동생들이 대답했다.
"아니! 죽을 리가 없잖아!"
"드래곤 나이트는 방탄이라고!"
"하지만 저건 총탄이 아니라 폭탄인데?"
"어쨌든 방탄이라고!"
남현주가 이번에는 14층 영상을 재생해 아래쪽을 확대했다.
"지금 이거 바닥에서 살짝 떠서 날아다니는 거지?"
"당연하지!"
"바닥을 발로 차서 점프한 후에 날개에 달린 엔진의 힘으로 계속 떠서 옆으로 쭉 날아가는 거야!"
남현주가 감탄했다.
"공중 기동 슈트로 이렇게 날아다니면서 싸우는 사람은 미국에도 없을걸?"
"당연히 없지."
"그래서 지금 난리야."
남현주가 기사를 넘겨보다가 기자가 지상에서 위쪽을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확대했다. 그 사진에서 나강인은 날개를 활짝 펴고 14층을 향해 기관단총을 갈겨대고 있었다.
그 사진은 영상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찍혔다. 그녀가 용 스타일 헬멧 부분을 확대했다.
"이 헬멧은 그 헬멧이잖아. 저번에 유원지에서 나타났던 그 히어로의 헬멧. 같은 사람이야?"
"맞아. 같은 요원이래."
남현주는 궁금했다.
"누군지 진짜 대단하다."
"이 요원이 우리나라 최고의 전투력을 가진 사람이야!"
"아니지! 세계 최강이지!"
남현주가 반박했다.
"아니야. 사람 자체의 전투력은 우리 무술감독님이 최고야. 직접 보면 정말, 사람이 저렇게 강할 수도 있구나 싶다니까?"
"그 감독님한테 총 있어?"
"응? 없지?"
동생이 장담했다.
"그럼 이 히어로가 더 강해. 원래 총 든 사람이 제일 세거든."
"총이 나오니까 할 말이 없긴 하다만, 나 감독님도 총 쏠 줄 아실걸? 군대는 갔다 왔을 테니까."
"그래서 드래곤 나이트만큼 잘 쏘나?"
남현주가 말을 돌렸다.
"헬멧 속 얼굴이 진짜 궁금하다."
***
최진욱 피디는 드라마 ‘바보의 사랑’의 그날 촬영을 마친 후에 도주희 작가의 작업실로 찾아갔다.
그가 포장해온 야식을 들고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도 작가! 수정은 잘하고 있냐!"
도주희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최진욱은 당황했다.
"어? 뭐야? 대본 수정하느라고 바쁘다더니? 대본에 공격헬기 넣어야지 왜 놀고 있는데?"
그녀가 모니터를 보며 물었다.
"촬영은 잘 끝났어? 스케줄 딜레이는?"
"말 돌리기는."
최진욱이 야식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실실 웃었다.
"흐흐. 내가 누구냐? 오늘 강인 씨가 늦지 않게 돌아와 줘서 깔끔하게 끝냈다."
"장소 협찬이랑 장비 협찬은?"
"그대로 받기로 했지. 국방부 홍보팀하고 연결해준대. 공격헬기는 내가 국방부 바짓단에 매달려서라도 받아낼 테니까 대본 수정만 잘하라고."
도주희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기왕 조르는 거, 더 열심히 졸라서 이거도 받아내."
"이게 뭔데?"
도주희가 영상을 보여주었다. 최진욱은 남현주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새 영화야? 어디서 만든 거야? 구도가 좀 그렇다?"
도주희는 당황했다.
"어? 이거 몰라?"
"내가 요즘 드라마 제작으로 강행군하느라 남의 작품에 신경 쓸 틈이 없잖아. 어디서 나온 영화야? 할리우드? 러시아? 중국?"
"영화 아니야. 드라마도 아니고 CF도 아니야."
"응? 개인이 만든 것치고는 CG가 너무 고퀄인데? 누가 돈이 남아도나?"
"그러니까 CG 영상이 아니라고. 오늘 마포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야."
이번에는 최진욱이 당황했다.
"어? 뭐?"
"이거 뉴스에 나온 사건이라고."
"에이. 그게 말이 돼? 이런 날개가 어디 있…. 진짜야?"
최진욱이 급히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검색했다.
"와. 그러니까 이게…. 인질 구출 작전 영상이네?"
도주희가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어. 쩔지."
"저 날개는 진짜 뭔데? 엔진이 네 개나 달렸잖아."
"몰라. 기사에도 안 나와. 어쨌든 군대 아니면 경찰에서 보유한 장비겠지."
"그렇겠지?"
"딱 봐도 최첨단이긴 한데, 공개되면 안 되는 특급 기밀 같은 건 아닐 거야. 그러니까 방송국 카메라가 찍고 있는데도 구출 작전에 사용했겠지."
"설사 기밀이었다 해도, 이제 기밀이 아니게 됐잖아. 전 국민이 봤을 텐데."
도주희가 말했다.
"그러니까 공격헬기만 빌릴 게 아니라 저것도 협찬받아 와."
최진욱은 멈칫했다. 협상하고 조르고 사정해서 장비를 받아내야 하는 사람은 도주희가 아니라 최진욱이다.
"공격헬기는 바짓가랑이 잡고 조르면 혹시 될지도 모르는데, 저게 될까?"
"바짓가랑이 잡을 때 좀 더 잡아. 뉴스에도 나온 거니까 안 될 건 없잖아?"
"그럼 조연출한테 협찬받아오라고 시켜서…."
"조연출로 되겠니? 최 피디가 매달려도 될까 말까 하는 판에."
최진욱이 입맛을 다셨다.
"그치. 내가 해야지. 근데 우리 드라마가 SF는 아닌데 말이야."
도주희가 신나서 설명했다.
"이건 이미 뉴스에 많이 나온 장비야. 시청자들이 SF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더 열광할 거야. 물론 저 날개를 메인 컨텐츠로 쓰지는 못해. 장르가 다르니까. 대신에 결정적인 장면에서 딱 두 번만 등장시키면 진짜 좋을 거야."
최진욱이 큰소리쳤다.
"알았어. 도 작가. 내가 어떻게든 구해볼게."
"나 대본 수정 미리 들어간다?"
"나만 믿으라고."
***
신은하와 이보라의 부모님 집은 나강인과 같은 동네에 있다. 그는 두 사람을 그곳에 데려다주었다.
이보라가 차에서 내기리 전에 혼잣말을 했다.
"강인 오빠가 만든 야식 먹고 싶다."
신은하가 말했다.
"보라야. 그럼 먹고 가."
"응? 네가 어쩐 일로 반대를 안 해?"
"강인 오빠 요리는 칼로리가 높잖아? 지금 그걸 야식으로 먹으면 내일 촬영은 망하겠지? 넌 많이 먹어. 실컷 먹어. 난 집에 가서 물만 마시고 잘 거야."
"쳇. 나도 그냥 해본 소리라고."
나강인이 말했다.
"내 야식을 왜 너희들 맘대로 결정하냐? 내려!"
***
나강인은 두 사람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차를 몰았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요원님은 오늘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습니다. 식사부터 하셔야 합니다.
그는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근처 분식집으로 걸어갔다.
-광년이를 발견했습니다.
알레이나가 분식집 구석에 앉아서 라면과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그 구석 자리에 등을 돌리고 앉으면 손님들에게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밤이 늦은 시간이라 다른 손님은 없었다.
나강인이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너 이렇게 막 먹어도 되냐?"
라면을 먹던 알레이나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반가워했다.
"앗! 강인이다."
"뭐지? 왜 요즘은 이름을 부르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나강인을 광돌이라고 불렀다.
"히히."
"무슨 꿍꿍이냐?"
"꿍꿍이는 아니고…."
"뭔가 있구나?"
"내가 아는 감독이 곧 한국에 들어오는데, 미팅이라도? 이번 기회에 할리우드 가자."
나강인이 단칼에 거절했다.
"비행기 타기 싫다고 했을 텐데."
"쳇. 어떤 사람은 등에 날개 달고 날아다니면서 총도 쏘는데, 그냥 평범한 여객기 타는 걸 왜 그렇게 싫어하는데?"
나강인이 말을 돌렸다.
"너 야식을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냐?"
알레이나가 나강인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나 말이야. 수술받고 몸이 좀 회복된 후부터 먹는 양이 늘었다?"
"그러다 살찐다."
"신기한 건 체중이 하나도 안 늘어."
"큰일을 겪으면 체질이 변할 수도 있지."
"체력도 늘었는지 하나도 안 피곤해."
"음…."
나강인은 이런 현상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이연지도 수술 후부터 비슷한 현상을 보입니다.
이연지만 그런 게 아니다.
권수연도 체력이 좋아졌다. 그녀는 늘어난 체력만 믿고 이라미드 태양전지 연구를 더 열심히 하고 있다.
나강인이 말했다.
"그건 그 병의 특징 같은데 말이야. 후유증이라고 해야 하나? 완치된 사람들은 체력이 참 좋아져. 먹기도 잘 먹고."
"체력 좋아진다는 말은 들었는데 살도 안 쪄?"
"지금까지는 그렇지."
알레이나가 활짝 웃었다.
"히히.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이게 그 낙이구나!"
"그 현상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모르지만."
"뭐야. 왜 초를 치는데?"
"중증을 수술로 완치한 케이스가 셋밖에 없으니까 통계를 낼 수가 없어. 그 병은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하긴."
"그런데 너…."
알레이나가 떡볶이 사이에서 어묵을 골라 집어 먹으며 물었다.
"왜?"
"한국말을 원래 잘하기는 했지만, 요즘 더 늘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살았잖아."
"원래 언어를 잘하나?"
"나 3개국어 하는 여자야. 영어. 한국어. 프랑스어."
"그러냐."
"엄마가 그러는데 프랑스어도 좀 더 좋아졌다고는 하더라."
나강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언어 능력도 병이 나은 후에 생긴 사이드 이펙트는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래. 아니겠지."
***
드라마 ‘바보의 사랑’ 5화가 방영됐다.
인터넷 반응은 뜨거웠다.
-내가 요즘 이 드라마만 기다린다.
-생방송에 가까운 수준으로 찍어서 방송한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었습니다.
-배우들 연기는 물론이고 액션까지 최고가 아닌 게 없어요.
부정적인 댓글도 없는 건 아니다.
-촬영시간이 부족해서인지 배경이 별로 바뀌지 않아요.
-같은 장소에서 찍은 게 워낙 많아서 시트콤인 줄 알았습니다.
-이 드라마에 김유찬부터 스타급 배우들이 여러 명 참여했는데도 시청률이 낮으면, 감독은 방송국 로비에 거꾸로 매달릴 걸요?
-사장이 직접 매달 듯.
-배우만 스타급인가요? 이 드라마 무술감독이 햇살 좋은 날과 운명의 창 무술감독입니다. 그러니까 액션이 최고로 뽑히죠.
-조건이 이렇게 좋으면 사실 시청률이 엄청 높아야 하는데….
-시청률 엄청 높은데요? 오늘 겨우 5화 만에 23% 찍었어요.
-더 좋았어야 한다는 거죠.
***
최진욱 피디가 시청률 통계를 받아보고 고민했다.
"오르긴 올랐는데, 상승률이 떨어졌네?"
도주희 작가가 통계를 같이 보면서 말했다.
"우리 드라마는 다 좋은데 뭐가 문제지? 이쯤에서 확 치고 올라갈 줄 알았는데…."
최진욱이 도주희를 슬쩍 보았다.
"혹시 대본에…."
"연출로 꼬투리 잡혀서 멱살까지 잡히고 싶냐?"
"아니야. 다른 이유가 있겠지. 근데 진짜 이유가 뭐지?"
***
신은하가 조연출이 보내준 시청률 문자를 확인하고 말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주연을 맡았으면 확 치고 올라갔을 텐데."
동생 신영석이 거실에 누워서 TV를 보며 말했다.
"남현주가 주연이라서 그만큼이라도 오른 거 아닐까?"
"너 아직도 안 꺼졌니?"
***
남현주의 앞에서 고등학생 쌍둥이들이 노트북 두 대를 펼쳐놓고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며칠 전에 빅 이벤트가 있었잖아. 그 영향이야."
"공중 기동 슈트의 기계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히어로가, 총을 막 갈겨대면서 테러리스트들을 쓸어버렸어. 현실에서 그런 빅 이벤트가 있었는데 드라마의 어중간한 액션이 먹히겠냐고."
남현주가 반박했다.
"어중간한 거 아니거든? 우리 액션은 최고거든?"
"알지. 최고지. 근데 바보의 사랑에서는 총이 안 나오잖아."
"설사 총이 나온다 해도 하나는 픽션이고 다른 하나는 리얼인데, 당연히 리얼이 관심을 더 받지."
그 이야기가 남현주의 귀에 설득력이 있게 들렸다.
"그런가?"
"사람들은 이미 리얼 액션 영상을 며칠 동안 봤어. 그러면 드라마 액션이 아무리 실감이 나도 약하게 느껴지지."
"맞아. 날개 달고 날아가서 테러리스트들과 총격전을 주고받고, 그놈들이 진짜로 총에 맞아 나자빠지고. 그 영상 지금 당장 인터넷에 찾아보면 많이 나오잖아."
남현주가 물었다.
"그 영상들은 왜 아직도 인터넷에 남아있대? 다 내려야 하는 거 아냐?"
동생들이 대답했다.
"죽은 사람이 없으니까."
"수위가 높긴 하지만 어쨌든 악당들을 무찌르는 통쾌한 장면이잖아. 그래서 안 내리고 그냥 대충 모자이크만 해서 넘어가는 분위기야."
남현주가 툴툴댔다.
"하필 우리 드라마랑 그 전투 영상이 겹쳐서 우리만 손해 보네."
쌍둥이 두 명이 노트북 두 대에 다른 화면을 띄웠다.
"누나네만 손해 본 거야. 드라마랑 전투가 겹쳐서 혜택을 본 사람도 있지. 이건 민수경이 출연한 드라마인데, 이번 주 시청률이 5%나 올랐어. 아주 폭등을 했지."
"민수경이 그 사건 현장에 있었고 총도 제일 먼저 받았잖아. 총을 받은 후에는 멋진 자세도 여러 번 보여줬는데 그게 다 영상으로 찍혔어.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이 민수경의 드라마를 찾아봤나 봐."
남현주가 말했다.
"그거 민수경이 예전에 영화에서 했던 동작을 그대로 다시 한 건데? 그리고 그 드라마는 액션도 아닌데?"
"액션이 아니니까 손해는 안 보고, 사건 관계자인 민수경이 나오니까 관심만 받았지."
"버프 제대로 받아서 민수경만 신난 거지. 반면에 누나 드라마는 디버프를 받았고."
남현주가 아쉬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그 파티에 참석할걸."
"어? 누나한테도 제안이 왔었어?"
"공중 기동 슈트를 볼 기회인데 왜 안 갔어?"
"그런 일이 생길 줄 몰랐으니까. 그리고 우리 드라마 스케줄 모르니? 파티 가서 놀 시간이 있을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