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53화 (353/411)

353. 피시방

남현주는 드라마 ‘바보의 사랑’의 여자 주연이다. 배역 분량은 김유찬 다음으로 많다.

그렇다고 그녀의 촬영 스케줄이 24시간 연속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강행군 중에도 휴일은 있다. 촬영 기간 내내 휴일이 전혀 없으면 사람들이 버티지 못한다.

그런데 남현주는 시간이 나면 신은하나 오세나에게 배역 비중을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캐릭터를 분석하고 연기를 연습했다. 그러니 다른 회사 파티에 참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녀가 쌍둥이 동생들에게 물었다.

"근데 너희들은 공부 안 하고 드라마 시청률 분석만 했니?"

"이게 다 누나를 위해서 한 건데?"

"누나. 우린 이미 틀렸어. 누나라도 살아."

"응. 아니야. 냉큼 가서 공부하렴. 우리 드라마 시청률만 오르고 너희 성적은 떨어지면 용돈 끊을 줄 알아."

쌍둥이들이 투덜대며 방으로 들어갔다.

"도와줘도 난리야."

"용돈으로 우릴 길들였어."

"야! 너희들이 매번 달라고 한 거잖아!"

남현주가 따져봤지만 동생들은 이미 방에 들어간 후였다. 그녀가 툴툴댔다.

"우리 쌍둥이 많이 컸네. 누나 말을 씹을 줄도 알고."

그녀가 노트북에 뜬 자료를 내려 바탕화면을 띄웠다. 바탕화면 이미지는 사람이 기계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나는 사진이었다.

"어떤 사람인지 진짜 궁금하다."

***

이튿날 총권도 수강생인 박순기가 합수부 형사와 함께 나강인의 제작 거점으로 찾아왔다.

거점 앞 공터의 야외 테이블에서 박순기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드래곤 윙 때문에 요즘 난리도 아닙니다."

"뉴스에 좀 났더군요."

"아이고. 뉴스는 공개된 것만 나오죠? 뉴스에 안 나서 그렇지 어디서 파냐는 문의가 사방에서 들어옵니다. 외국에서도 연락이 온다던데요."

"파는 거 아닙니다. 수제품입니다."

"저야 당연히 그렇게 보고했지요. 그래도 윗분들은 기대하나 봅니다."

"기대요?"

"드래곤 플레이트 기술을 썼지만 딱 봐도 날개는 체형이랑 상관없어 보이니까, 위에서는 양산이 가능할 거라고 판단하던데요."

드래곤 플레이트 방탄조끼는 사람이 입는 형태라 사용자의 체형을 정밀하게 측정해서 만든다. 사용자가 몸을 움직일 때의 형태 변화까지 계산해서 설계하는 건 AI 전지인만 할 수 있다.

그런데 날개는 몸에 닿는 부분이 작다. 당연히 체형의 영향을 덜 받는다.

나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양산이야 민감한 기능만 좀 빼면 가능합니다.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그 날개를 다루려면 올림픽 메달리스트 수준의 운동 감각이 필요합니다."

"특수부대에 감각 하나는 국가대표 못지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부대를 만들면 될까요?"

"그런 사람을 모았다고 해도, 개인용 비행 슈트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위험이 더 큽니다. 고성능 비행보조시스템 없이 날다가 사고 나면 죽습니다."

"그럼 살살 비행하면…."

"살살 비행할 거면 낙하산이나 행글라이더를 쓰면 됩니다만?"

"아…."

***

국방부에 회의실에 국방과학연구소, 특수전사령부, 해병대, 육군, 공군 등의 연구 및 전술 담당자가 모였다. 다른 관련 기관에서도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실 대형 스크린에 나강인이 기계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거나 14층에서 오르카 조직과 싸우는 모습이 나왔다.

오늘 회의의 주제는 그 장비의 전술적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다.

영상이 끝난 후에,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이 스크린에 사진과 도표를 띄우고 설명했다.

"엔진 크기와 출력, 예상 연료 소모량 등을 고려해 분석했습니다. 활강은 꽤 먼 거리까지 가능합니다만, 지속 비행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판단 근거는 뭡니까?"

"영상을 보면 고속 기동 도중에 엔진이 터졌습니다. 출력을 너무 높였기 때문이지요."

"그거야 RC 모형비행기용 제트엔진이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제대로 된 엔진을 달면 또 다르겠죠."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땐 연료 소모량이 문제가 됩니다."

"그거야 보조 연료탱크라도 달면 되고요."

특수전사령부 간부가 말했다.

"지금 저 장비를 그대로 써도 영상처럼 단거리 활강 공격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말입니다. 출력이 더 높은 엔진을 쓰면 단거리 공중 기습 공격용으로 쓸 수 있을 겁니다."

육군 간부도 욕심도 부렸다.

"중대 병력이 저 날개를 펼치고 고지 위로 날아가면서 수류탄만 까도 크으…. 그런 후에 그 병력이 산 정상에 착륙해서 자리를 잡고 아래위로 적 부대를 쌈 싸먹으면…. 고지전에서 효과가 죽이겠네요."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적 중요 시설에 하늘에서 침투해 폭파, 그 후에 적 방어 병력이 대응하기 전에 다시 하늘을 날아서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거죠."

"캬아. 그것도 좋네요."

"저 장비의 생산량에 한계가 있다니까 특전사에 먼저 보급해야 하지만요."

"잘 나가다가 이야기가 이상하게 갑니다?"

"효율을 이야기한 겁니다. 보병은 낙하산이나 헬기로 고지에 강습해도 되잖습니까? 우린 적 후방에 침투하는 특전사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육군 무시합니까? 다루는 예산의 단위가 다른데 저 장비가 누구한테 먼저 가는지 어디 한번 해볼까요?"

회의에 참석한 경찰 간부가 마이크를 켜고 대형 스크린을 보며 설명했다.

"다들 진정하시죠. 저희 쪽에서는 제작자와 직접 접촉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이 장비를 분석했습니다. 저 전술 비행 슈트가 대단해 보이는 이유는요."

그가 마우스를 움직였다. 영상이 실내에서 나강인이 총탄을 날개로 막으며 싸우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장비가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저 사람이 쓰기 때문에 대단한 겁니다."

***

박순기가 말했다.

"물론 저도 보고했죠. 드래곤 윙이 대단한 게 아니라, 그걸 쓰는 나 사범님이 대단한 거라고요. 제 윗분들은 어느 정도 납득 했는데요. 다른 분들은 또 모르죠. 국방부에서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다 사망 사고라도 나면 책임자는 옷 벗어야 할 텐데, 무리하게 진행하려고 할까요?"

"나 사범님이 교관이 되셔서 직접 대원들을 훈련 시킨다면…."

"교관 안 할 겁니다만?"

"저도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드래곤 윙은 그렇게 정리하죠."

박순기는 아직 포기한 게 아니다.

"나 사범님. 드래곤 윙이 있으면 와이번 윙도 있겠죠? 저 그거 하나만. 네?"

"개인적으로 쓰게요?"

"넵!"

AI 전지인이 말했다.

-드래곤 윙과 와이번 윙은 비행보조장치가 필요합니다. 2082년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비행보조장치이지만, 지금은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와이번 세트는 드래곤 세트보다 성능이 떨어지지만 대신에 생산성이 높다.

문제는 지금 드래곤 세트도 완전한 상태는 아니라는 데 있다.

-현재 구할 수 있는 원자재의 품질이 기준보다 낮습니다. 와이번 윙은 성능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드래곤 윙을 와이번 세트에 적용할 것을 권장합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드래곤 세트는 와이번 세트와 장비 호환이 되니까, 그냥 드래곤 윙을 쓰면 되긴 되는데…."

박순기가 신나서 손을 들었다.

"그럼 저 날개 하나만 만들어주십시오. 저도 하늘을 날고 싶습니다!"

"사고 나면 죽는다니까요?"

"처자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찮습니다."

"부모님한테 등짝 맞을 소리를 하시네."

"나 사범님이 총권도를 가르치실 때처럼 직접 가르쳐주시면 안 죽을 거 같은데요."

"그러면 되긴 하는데…."

같이 날면서 위험한 상황을 미리 막아주면 훈련이 가능은 하다.

"먼저 인공 근육을 제어해서 기계 날개를 진짜 날개처럼 움직이는 게 가능해지면, 비행 연습은 그때 다시 이야기합시다."

"으하하하. 고맙습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사람은 원래 날개가 없어서, 비행보조장치가 없는 드래곤 윙은 제어가 어렵습니다. 박순기가 비행 기준을 통과할 확률은 10% 미만입니다.

"낮네."

-박순기라서 많이 쳐준 겁니다. 일반인은 1% 미만입니다.

나강인이 단서를 달았다.

"지상에서 날개를 마음대로 못 움직이면 없던 이야기로 하고요."

"꼭 성공해서 저도 하늘을 날겠습니다!"

합수부 형사가 부러워했다.

"나도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싶은데, 오토바이도 안 된다는 마누라의 허락을 받기가 어려워서…."

나강인이 말렸다.

"형사님은 안전한 거 하세요. 드래곤 윙은 오토바이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험합니다. 순기 씨는 죽으려고 하는 겁니다."

박순기가 당황했다.

"아니, 나 사범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로 죽겠다는 건 아니고요."

합수부 형사가 나강인을 찾아온 건 수사가 좀 진전됐기 때문이다.

잡담이 끝나고 나서 형사가 본론을 꺼냈다.

"그 건물을 점령한 놈들이 누군지 알아냈습니다."

그가 태블릿 PC에 사진을 띄웠다.

"코든네임 오르카. 별명은 폭탄마. 아시아에서 주로 활동하는데, CIA에서도 폭탄마라는 별명을 그대로 식별부호로 씁니다."

"유명한 놈인가 보군요."

"유명하지요. 폭탄 기술을 CIA에서 배웠다는 소문이 있는데, 진실은 모릅니다만 실력 하나는 확실합니다."

"그놈이 왜 용산의 건물 완공기념 파티를 노린 겁니까?"

합수부 형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차 이사가 수작을 부렸더군요."

"도망치느라 바쁜 놈이 그럴 여유가 있습니까?"

얼마 전부터 여러 기관에서 차 이사를 쫓고 있다. 얼굴 몽타주도 확보했다.

"외국으로 튀기 전에 도피자금을 최대한 끌어모으려고 했나 봅니다."

"돈이 없는 놈은 아닐 텐데요?"

"한국을 아예 뜰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말이 되지요."

합수부 형사가 다른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습격당한 회사 말입니다."

오르카가 습격한 용산 15층 건물은 의료기기 회사가 본사로 쓰려고 지은 곳이다.

"다른 회사의 기술을 훔쳐서 회사를 성장시킨 정황이 있습니다."

"기술을 훔쳐서 사장한테 판 놈이 차 이사겠군요."

"예. 차 이사와 꾸준히 거래한 것 같습니다."

"그 회사는 차 이사에게 줄 돈이 있었는데 배를 쨌군요."

"사장이 차 이사가 쫓기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손절하려고 한 거겠지요."

"돈을 떼인 차 이사는 열 받았을 테고요."

"쫓기는 놈이 직접 보복할 수는 없으니까, 폭탄마 오르카를 끌어들여서 그 회사를 치려고 했나 봅니다."

나강인은 오르카가 14층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오르카도 기술을 팔아먹을 줄 아니까, 그 회사에 엄청난 돈이 되는 기술 정보가 있다면서 끌어들였겠군요."

"맞습니다. 최소 천억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했다더군요."

경찰이 차 이사의 개입을 알아낸 건 그 회사를 조사해서가 아니다. 이 정보는 오르카 쪽에서 먼저 나왔다. 경찰은 정보를 얻고 나서 그 회사를 조사했다.

"오르카는 차 이사의 계획대로 움직였습니다. 처음 거래하는 것도 아닌 데다가, 차 이사가 쫓기고 있다는 걸 몰랐던 거죠."

"오르카가 그 정보를 경찰에 털어놓은 건, 차 이사에게 속았다는 걸 알려줬기 때문일 테고요."

합수부 형사가 씩 웃었다.

"오르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증거를 보여주니까 미친 듯이 화를 내더니, 차 이사에 대해 아는 걸 다 이야기해줬다더군요. 그러면서 자기는 이번에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오르카가 그때 경찰 포위망을 뚫으려면 건물을 무너뜨리면서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을 텐데요?"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눈뜬장님도 아니고, 다른 상황이라면 그놈들을 놓칠 리가 없으니까요."

"건물 내부에 폭탄이 많더군요. 작정하고 급소에 터트리면 그 건물을 무너뜨리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 정도로요."

"폭탄마 오르카의 실력이면 가능했겠죠.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만약 건물이 무너지고 파티 참석자가 모두 사망했다면, 경찰력은 도망친 오르카 조직원들을 잡는 데 집중되겠군요."

"눈에 불을 켜고 쫓을 테니까 당연히 그렇게 되겠죠."

"그러느라 차 이사를 쫓는 인력이 빠지면, 차 이사는 돈을 긁어모아서 외국으로 탈출하기가 그만큼 수월해지고요."

차 이사 이야기가 또 나왔다. 합수부 형사는 멈칫했다.

"어…. 그렇죠."

"차 이사가 그동안 거래한 놈이 한둘이 아닐 텐데, 굳이 폭탄만 오르카를 끌어들인 이유가 그거 아닐까요? 전 그럴 것 같은데."

"그…러네요? 와. 차 이사 이 새끼. 진짜 막 나가네. 자기가 쉽게 도망치려고 오르카를 속여서 건물을 폭파하고 백 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는 거잖습니까?"

"오르카가 속았다고 해서 죄가 줄어드는 건 아니고요."

"오르카는 한국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오르카를 넘겨달라는 나라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처벌을 받든 그놈은 이제 끝났습니다."

"차 이사를 못 잡으면 이런 짓을 또 꾸밀 겁니다."

합수부 형사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음…. 사실 수사에 진전이 있습니다. 차 이사는 조만간 잡을 겁니다."

나강인이 물었다.

"차 이사에 관해서 더 나온 게 있나 봅니다?"

"저번에 알려주신 해커 명단 말입니다. 그 해커들의 주변 사람들까지 사진을 확보해서 몽타주와 비교했습니다."

"뭐가 나왔습니까?"

합수부 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차동석 씨 아시죠?"

나강인의 표정이 굳었다.

"차 사장님이요?"

"예. 평소에 자주 가신다고 한 그 피시방의 사장 차동석 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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