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55화 (355/411)

355. 차동석

총권도 수강생 박순기가 걱정했다.

-아는 사람을 직접 조사하다 범인인 걸 알게 되면, 나 사범님의 마음에 스크래치가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가하게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저는 걱정이 돼서….

"차 이사가 폭탄마 오르카를 끌어들였습니다. 오르카의 폭탄으로 건물을 무너뜨려 모든 수사력을 그쪽으로 돌려놓고, 그 틈에 국외로 탈출하려 했을 겁니다."

-아까 그 이야기를 듣고, 저희도 그쪽으로 다시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때 탈출하려 했다는 말은, 차 이사는 이미 도망칠 준비를 다 해놨다는 뜻입니다."

-아. 그렇죠.

"그놈이 다음에도 같은 수법을 쓰면?"

-못 막으면 참사가 벌어지겠네요.

"그러기 전에 차 이사를 잡아야 합니다. 사소한 문제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차 사장님의 현재 위치가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휴대폰 위치추적부터 하겠습니다.

***

나강인은 박순기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런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좀 늦네."

예전에 다른 사건으로 경찰에 휴대폰 위치추적을 요청했을 때는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여러 기관에서 쫓고 있는 차 이사와 관련된 일이다. 결과가 그때보다 빨리 나와야 한다.

"이렇게 늦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닌데 말이야."

AI 전지인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

나강인이 만든 잡탕 과자는 차은서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나눠주었다.

사람들은 간식을 받으며 반가워했다.

"이야아. 차은서 씨. 잘 먹을게."

"이거 아까 나 감독님이랑 같이 만든 거야?"

"이건 언제 먹어도 맛있지."

잡탕 과자를 받은 배우가 아쉬워했다.

"나 감독님이 식당이나 디저트 가게를 하면 매일 사 먹을 텐데."

같이 먹던 배우가 피식 웃었다.

"무술감독으로 얼마나 잘나가시는데 왜 가게를 하시겠냐?"

"음식을 만드는 법만 가르쳐서 주방 직원이 만들게 하면 되잖아."

"요리가 요령만 가르쳐서 되는 거면 다 일류 셰프가 되겠지. 그리고 내가 듣기로는, 나 감독님의 요리는 가르칠 방법이 없대."

"어? 왜?"

"일단 불은 항상 최고 화력을 써. 그런데도 요리는 하나도 타지 않아. 그걸 감각으로 해내야 해."

"어렵겠네."

"그게 다가 아니지. 재료가 가득 담긴 그 큰 프라이팬이나 냄비를 재빨리 흔들어 섞을 힘도 있어야 해. 넌 할 수 있냐?"

"어…. 아니. 전에 밥차에서 하시는 거 봤는데 사람의 힘이 아니더라."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 감독님과 똑같은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도 그 맛이 재현이 안 된대."

과자를 받으면서 차은서에게 다른 걸 묻는 배우도 있었다.

"차은서 씨는 나 감독님하고 평소에도 이야기를 종종 하더니, 오늘은 요리도 같이하더라? 잘 아는 사이야?"

"네. 같은 동네 사니까요."

"아. 동네 오빠 느낌인가?"

"네…. 뭐, 그렇죠?"

"은하 씨하고 보라 씨하고도 자주 이야기하던데?"

"그 언니들은 어릴 때부터 우리 동네에 살아서 잘 알아요."

"그 동네가 어디라고? 나도 이사 갈까?"

"에이. 농담도 잘하세요."

차은서가 과자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러 갔다.

방금 질문했던 배우가 과자를 먹으며 중얼거렸다.

"차은서 인맥 쩌네. 지금 맡은 배역을 소속사도 없고 경력도 없는 차은서가 어떻게 잡았을까 했는데…. 혹시 동네 언니 오빠 중에 누가 꽂아줬나?"

옆에 있던 다른 배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쓸데없는 의심 하지 마라."

"내가 이 바닥에서 이상한 일을 많이 봐서 그래."

"원래 그 배역에 내정됐던 사람이 사고 쳐서 잘리는 바람에 차은서 씨가 대신 들어온 거야. 오디션도 제대로 봤대. 상황이 급하니까 적당한 사람을 소개해줬을 순 있는데, 억지로 꽂은 건 아니야."

***

나강인이 차은서를 보며 말했다.

"쟤 요즘 하는 거 보면 배우 계속해도 되겠어."

-연기력과 외모, 개성 모두 남현주, 오세나, 신은하에게 밀립니다.

"비교 대상이 너무 높은 거 아니냐?"

-그래도 운만 좀 받혀주면 연기자 생활이 가능할 겁니다.

"운이라…. 그걸 알 수가 없네. 지금 상황에서는 쟤네 삼촌이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니까."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박순기였다.

"조금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연락이 왔구나."

나강인이 전화를 받았다.

"위치 파악이 됐습니까?"

박순기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사범님. 차동석의 휴대폰이 꺼져 있습니다.

나강인의 표정이 굳었다.

"회의 때문에 껐을 가능성은요?"

-그건 아닙니다. 다른 기관 수사팀에서 차동석 씨가 길에서 휴대폰을 직접 끄는 사진을 확보했습니다.

"누군가에게 협박당해서 끈 건 아니고요?"

-혼자 있었답니다.

나강인이 인상을 썼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럼 그 후에는요? 미행은요?"

-그 팀이 미행하다 놓쳤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파악이 안 됩니다.

"경계 단계가 올라가겠군요."

-차동석 씨는 방금 비공개 수배 상태로 경계 단계가 올라갔습니다.

"왜 휴대폰을 껐는지는 모르고요?"

-파악 중입니다.

"젠장. 일이 어렵게 됐네요."

박순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사범님. 차 이사를 쫓는 기관이 한둘이 아닙니다. 상황이 이렇게 변했으면, 차은서 씨를 마킹하는 기관이 있을 겁니다.

차은서는 차동석의 조카다.

"경찰은 은서를 마킹 안 하고요?"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말단 찌끄래기라서요.

나강인이 차은서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밝게 웃으면서 사람들에게 과자를 나눠주고 있었다.

"마킹을 하더라도 은서에게 들키지 말라고 하세요."

-그거야 당연하죠.

"은서는 사건 당사자가 아니니까 선은 넘지 말라고 하시고요. 선 넘었다가 나랑 충돌하면 좋을 거 없잖습니까?"

-나 사범님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선 넘지 말라고 꼭 전하겠습니다.

나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입맛이 썼다.

"젠장."

AI 전지인이 말했다.

-차동석과 차 이사는 어떤 형태로든 관계가 있을 겁니다. 최악의 경우 차동석이 차 이사일 수도 있습니다.

"알아."

-차동석이 차 이사라면 외국으로 도망쳐서 조용해질 때까지 귀국하지 않을 겁니다.

"그땐 우리도 비행기 타야지."

-공항 검색대에서 제가 걸릴 수 있습니다.

"그게 문제지."

***

그날 저녁때 나강인이 합수부 형사를 만났다.

형사가 태블릿PC에 문서를 띄웠다.

"보고 싶다고 하셨던, 차동석에 관해 합수부가 조사한 자료입니다."

형사는 단서를 달았다.

"선생님이 합수부의 일을 많이 도와주고 계시지만, 서류상으로는 공식 자문역이 아닙니다."

나강인과 합수부는 서로 상황이 맞을 때 도와주는 관계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어떤 자리에 임명된 건 아니다.

"이 서류를 제공한 게 문제가 되면 저희도 난감해집니다."

"복사하지 않고 그냥 읽어만 보겠습니다."

"그러시면 괜찮죠. 우리 둘만 입 다물면 되니까요."

합수부 형사는 그동안 해결한 다른 사건들도 나강인과 따로 만나서 결과를 설명하곤 했다. 이번에도 문서를 눈으로 읽기만 하면 기존에 하던 방식과 차이가 없다.

나강인이 태블릿PC에 들어 있는 문서를 쭉 넘겨보았다.

나강인이 본 건 AI 전지인도 본다. AI 전지인이 그가 본 문서를 대신 기억했다. 이제 언제든지 이 문서를 홀로그램 형태로 꺼내볼 수 있다.

나강인이 문서를 빠른 속도로 넘겼다. 합수부 형사가 말했다.

"천천히 차근차근 보셔도 됩니다."

"제가 속독을 할 줄 알아서."

나강인이 어느새 마지막 문서를 넘겼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차동석과 차 이사가 동일인이라는 증거는 문서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직접적인 관계가 드러난 것도 없습니다. 차동석의 현재 위치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나강인이 합수부 형사에게 물었다.

"어디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겁니까?"

"미행팀이 놓친 곳부터 CCTV 영상을 모아서 추적했습니다만, 어느 순간 그냥 사라졌습니다. 일부러 피한 것 같습니다."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는군요."

"기관 중에는 차동석이 차 이사라고 확신하는 곳도 있습니다. 다른 기관들도 의심하는 중입니다."

"다른 기관들이 의심만 하는 이유는요?"

"차동석의 과거를 털어봤는데 나오는 게 없거든요. 확신하는 쪽은 차동석이 철저하게 숨겨서 그렇다고 생각하더군요. 현재는 차동석이 과거에 했던 사업이나 주변 인물 위주로 계속 조사 중입니다."

나강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나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죠. 그리고 필요한 지원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

합수부 형사와 헤어진 후에 AI 전지인이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합수부와 여러 기관이 나서서 주변을 조사하는 중이잖아. 이런 종류의 정보 수집력은 정부기관이 우리보다 나아."

AI 전지인이 웹서핑으로 수집해서 획득하는 정보는 정부기관도 알아낼 수 있다. 게다가 정부는 AI 전지인이 접근할 수 없는 정보까지 안다.

"일단 기다려보자. 여러 기관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니까 조만간 뭔가 나오겠지."

***

며칠이 더 지났다.

용산 15층 빌딩 전투 이야기는 첫날은 뉴스를 장악했지만 매일 그럴 수는 없다. 계속 이슈가 되려면 새로운 장작이 공급되어야 하는데 나오는 게 없었다.

-그래서 전술 비행 슈트는 어디서 파는데?

-나도 날고 싶다.

드래곤 윙은 전술 비행 슈트나 개인 비행 슈트 등으로도 불렸다.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서 다들 편한 대로 불렀다.

드래곤 윙이 어떤 장비인지는 나강인 외에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기사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인터넷 게시판이나 너튜브 등에는 여전히 드래곤 윙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생각해보세요. 사단 병력이 하늘을 날면서 박격포탄 하나씩만 던져도 적군이 그걸 어떻게 버팁니까?

-진짜 싹쓸이 폭격이겠네요.

-근데 그 전술 비행 슈트는 활강만 되는 거 아닌가요?

-전문가들 말이, 엔진만 바꾸면 비행기처럼 날 수도 있을 거라던데요?

-딱 봐도 가격이 장난 아닐 거 같은데 그걸 사단 규모로 보급한다고요?

-조종법은 어디서 배우고요?

-현실은 동력 행글라이더 부대조차 없는데 전술 비행 슈트를 입은 공중강습사단이라니. 돈이 넘쳐나는 미군도 그런 건 못 해요.

-그냥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

드라마 ‘바보의 사랑’은 더 잘나갔다. 시청률도 계속 올라갔다. 팬도 많이 늘었다.

제목이 바보의 사랑이지만 그렇다고 김유찬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바보는 아니다. 그저 평소에 바보같이 웃는 좋은 사람일 뿐이다.

드라마 속 김유찬은 평소에는 웃다가 가면만 쓰면 카리스마 넘치는 대사를 말하고 적을 화끈하게 때려잡았다.

김유찬은 한 드라마에서 그 두 가지 모습을 다 보여주면서 인기가 치솟았다. 그는 원래도 톱스타지만 더 유명해졌다. 외국 팬도 많이 늘어 한류스타 중에서도 잘나가는 위치에 올랐다.

드라마가 잘되면서 신은하, 남현주, 오세나의 인기도 높아졌다. 기사도 쏟아졌다.

[세 여신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

[남현주. 국민 첫사랑이 국민 쎈언니로 변했다.]

[신은하의 톡톡 튀는 매력. 올해는 그녀의 전성기.]

[오세나. 샤우팅하다.]

드라마에서 알레이나의 비중도 조금 늘어났다.

-알레이나도 저 난장판 연애 전선에 참전하나요?

-그 드라마에서 알레이나는 김유찬과 로맨스로 엮일 포지션이 아니던데요?

-김유찬이 다쳐서 찾아오면 강아지 치료하듯이 치료하잖아요.

-강아지가 아니라 김유찬을 개 다루듯 하죠.

-그야 동물병원 의사니까요.

***

앤서니 피트가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을 나섰다.

출국장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여자가 앤서니 블록을 발견했다. 그녀는 영화를 좋아해서 외국 배우는 물론이고 유명 감독의 얼굴도 많이 알았다.

그녀가 남자친구에게 속삭였다.

"ㅈ기 봐. 앤서니 피트다."

"나 이름은 들어봤어. 누구였지?"

"나이트 스트라이커의 감독이잖아."

‘나이트 스트라이커’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다.

"어? 그거 알레이나 민이 나온 영화잖아. 진짜 그 영화의 감독이야?"

"맞는 것 같은데?"

"그런 유명한 감독이 왜 혼자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국어를 대충 말이 통할 정도는 할 줄 안대. 혼자 와도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근데 왜 왔지?"

"지금 찍는 영화에 우리나라도 나온대. 그것 때문에 왔겠지?"

"새 영화 제목은 뭔데?"

"메트로폴리스 헌터.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래."

할리우드 영화감독 앤서니 피트는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을 나오자마자 근처에 있는 공항 극장으로 직행했다.

그의 짐은 내일 도착하는 촬영팀이 가져올 예정이다.

그는 극장에서 영화 ‘운명의 창’의 표를 샀다. 그런 후에 자판기에서 생수만 한 병 사서 손에 들고 상영관에 들어갔다.

광고가 지나가고 영화가 시작됐다.

영화는 자막 없이 한국말로 나왔다.

앤서니는 한국어를 할 줄 안다. 발음은 별로지만 듣는 건 별 어려움이 없다.

그는 생수병의 뚜껑을 따고 물 한 모금을 마신 후에 영화를 보았다.

두 시간 후에 앤서니가 영화관에서 나왔다. 물병의 물은 딱 한 모금이 줄어든 것 외에는 그대로였다.

"후우."

그는 밖으로 나와 숨을 몰아쉬고 남은 물을 벌컥 마셨다.

"당혹스럽네."

그가 알레이나 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레이나? 나 앤서니다."

-어머! 앤서니! 한국이야?

"어. 방금 인천공항에서 네가 보라던 영화를 보고 나왔다."

-그러면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겠네?

"맞아. 지금 만날 수 있을까?"

-주소 보낼 테니까 택시 타고 우리 동네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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