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 협찬
앤서니 피트 감독은 미국에 있을 때 이미 인맥을 움직여 한국 정부에 드래곤 윙을 영화에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아는 미국 사람 중에는 사업가가 여럿 있다. 그중에는 한국과 문화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그 사람을 통해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에 협찬을 요청했다.
그 사업가 한 명에게만 그 일을 맡겨놓은 것도 아니다.
그는 정치인도 몇 명 안다.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를 찍으며 미군 고위층과도 인맥이 생겼다. 그들을 통해 한국 정부의 다른 부서에 측면 지원을 부탁했다.
***
문체부 담당자의 보고를 들은 국장이 질문했다.
"유명한 감독이야?"
"할리우드 영화 나이트 스트라이커의 감독입니다."
"아! 그 영화? 알지. 나는 못 봤지만 우리 애들이 좋아했어."
"그 영화에 알레이나 민도 나왔습니다."
국장은 나이트 스트라이커는 못 봤어도 알레이나 민은 안다.
"맞아. 그랬지. 그러니까 감독 이름이… 앤서니 피트라고?"
"예. 그 감독이 드래곤 윙을 영화에 쓰고 싶답니다."
"에이. 그건 좀 어렵지 않을까?"
"국장님. 앤서니 피트 감독의 차기작에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술 비행 슈트가 나온다면 그것도 국위선양 아니겠습니까?"
국장이 서류를 확인하며 물었다.
"영화에 슬쩍 나오는 정도로 효과가 있을까?"
"잠깐 나오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한국을 배경으로 활동할 때 주력 무기로 쓰겠답니다."
국장이 피식 웃었다.
"그 미국 감독이 CNN 뉴스를 보고 인상을 깊게 받았나 봐? 그럼 추진해야지. 그거 어디서 빌릴 수 있어?"
"아무래도 국방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국방부에 문의해봐도 담당 부서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대답만 들어서…."
"기밀 무기니까 그렇겠지."
"이미 뉴스에 그렇게 크게 나왔으니까 이제는 기밀이 아니죠."
"하긴."
국장이 큰소리쳤다.
"알았어. 오늘 내가 국방부 홍보 담당관하고 회의가 잡혀 있으니까 그때 해결할게."
"앤서니 측에는 진행 상황을 일단 메일로 보내겠습니다."
***
앤서니 피트는 문화관광부 담당자가 보낸 이메일을 받았다. 아직 확답을 줄 순 없지만, 긍정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앤서니가 호텔방에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실실 웃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나강인. 네가 안 하겠다면 난 원래 계획대로 찍으면 돼. 하나도 안 아쉽다 이거야!"
***
국방부 홍보 담당관이 회의실에서 문체부 국장에게 물었다.
"그 슈트를 할리우드 영화에 쓰고 싶으니까 빌려달라고요?"
"예. 국산 무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릴 기회입니다."
홍보 담당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박 국장님. 혹시 미국 영화사와 이미 약속하신 건 아니죠?"
"진행 상황만 조금 알려줬습니다만, 왜 그러시는지?"
"개인용 공중 전술 기동 슈트는 영화 같은 데 막 나가도 되는 장비가 아닙니다."
"어차피 뉴스에 다 나간 건데 왜 안된다는 겁니까? 아예 할리우드 영화로 화끈하게 띄우면 더 좋잖습니까?"
"사실 그 슈트를 홍보에 쓰자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어와서 제가 좀 알아봤습니다. 결론이 뭔지 아십니까?"
"어렵습니까?"
"기밀 장비라서, 그 부대가 어디인지조차 모르겠더군요. 홍보 담당관인 저도 모른다고요."
"아니, 그럼 왜 뉴스에는…."
"그때는 상황이 워낙 다급했으니까 기밀 장비를 썼나 보죠."
"허….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이 좋은 기회를 어떻게 놓칩니까? 그 영화가 대박이 나면 전 세계에 공짜로 강한 나라 대한민국을 홍보할 수 있습니다. 힘 좀 써주시죠."
홍보 담당관이 머리를 긁었다.
"후우. 제가 좀 더 알아는 보겠습니다.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
나강인에게 총권도 수강생인 군인 이호석이 전화를 걸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나 사범님. 전술 비행 슈트 때문에 연락드리는 건데요.
"호석 씨도 순기 씨처럼 비행 연습하게요?"
이호석은 당황했다.
-네? 순기가 그 슈트를 받는 겁니까?
"하늘을 날고 싶다는데, 연습하는 거 봐서요."
-와. 순기 이 새끼가 자기만 좋은 걸 하려고!
"그럼 호석 씨는 아니군요."
-네? 저, 저도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하늘을 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공군을 안 가시고?"
-제가 그래도 낙하산은 참 많이 탔습니다. 하하하.
"지상훈련 일정이 나오면 순기 씨하고 같이 와요. 지상훈련을 통과 못 하면 하늘은 시도도 못 합니다. 비행 보조장치가 없어서 무리해서 날면 죽어요."
-넵! 알겠습니다. 아! 제가 그래서 전화 드린 게 아니고요.
"그럼요?"
-영화에 전술 비행 슈트 협찬 제안이 와서….
"영화요?"
-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인데….
"앤서니 피트의 매트로폴리스 헌터?"
-어?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앤서니가 직접 찾아와 제안했다. 다만 그때는 드래곤 윙이 아니라 무술감독 자리를 제안했다.
"앤서니한테 전해요. 싫다고."
-아. 역시…. 저도 안 될 줄 알았습니다. 국방부 홍보 담당관이 어떻게 알았는지 저한테 부탁해서 물어만 본 겁니다.
***
앤서니 피트는 문체부의 이메일을 받고 당황했다.
"어? 아니, 이게 왜 안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된다며?"
그가 급히 미국의 인맥을 다시 동원해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대답만 다시 돌아왔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그는 이미 비행 액션에 맞춰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시나리오도 고쳐놨다. 그런데 그게 틀어졌다.
"CG로 처리하면…."
할리우드의 CG 기술이면 가능은 하다. 다만 그걸로 만족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실제 전투 현장을 촬영한 뉴스가 있는데, 그것보다도 못한 CG를 영화에 넣을 순 없지.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건 안돼."
앤서니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 이러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나?"
***
앤서니 피트만 당황한 게 아니다. CIA와 미군의 계획에도 문제가 생겼다.
앤서니가 동원한 인맥 중에는 미군 장성이 있다. 그 장군은 부탁을 받아주면서 그 정보를 미군 내부 담당 부서에 흘렸다.
앤서니의 인맥 중에는 정치인도 있다. 그 정치인은 CIA에 정보를 넘겼다.
미군과 CIA 담당자가 만났다. 그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기로 합의하고 앤서니 피트 감독이 드래곤 윙을 협찬받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일이 틀어졌다.
회의실에서 CIA 요원이 상황을 설명했다.
"앤서니가 드래곤 윙을 협찬받으면, 우리 쪽에서 은밀히 확보해 정밀분석을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미군 대령이 제안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정보를 뒤로 빼내는 건 어떻습니까?"
"한국은 동맹국입니다만?"
"당신네가 언제부터 그런 걸 따졌다고. 그리고 누가 설계도면을 빼돌리랍니까? 어떤 성능과 확장성이 있는지에 관한 정보와, 양산이 가능한지를 알아봐 달라는 거잖습니까?"
"그건 저희가 조사했습니다."
"역시 CIA! 그래서 알아냈습니까?"
"정확한 스펙은 제작자만 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모르겠다는 말을 왜 그렇게 돌려서 합니까?"
"커흠.
대령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럼 제작자의 신상정보는 파악했습니까?"
"물론입니다. 드래곤 윙은 드래곤 플레이트를 개발한 사람이 만든 겁니다."
대령은 드래곤 플레이트가 어떤 성능의 방탄복인지, 어느 회사에서 만드는지 안다. 그가 물었다.
"그러면 드래곤 윙은 철인기공에서 만든 겁니까?"
"아닙니다. 제작자는 따로 있습니다. 민간인, 그것도 개인입니다."
대령은 쉽게 생각했다.
"그래요? 동맹국도 아니고 민간인, 그것도 개인이면, 그냥 그 사람 컴퓨터를 해킹해서 정보를 빼내면 되겠군요."
CIA 요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랬다가는 뒷감당이 안 됩니다."
"어째서요?"
CIA 요원이 진지한 얼굴로 설명했다.
"한국에는 국제 해커 사이에서 유명한 화이트 해커가 있습니다. 코드 네임 새벽 토끼. 해커들이 악마라고 부르는 해커죠."
"그 해커의 실력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최근에도 해커 여럿이 인공 근육 기술을 해킹하려다가, 그 악마에게 걸려서 쓸려나갔습니다."
대령이 피식 웃었다.
"지금 날 놀립니까? 그러니까 그 해커가 이 일에 개입하는 게 무서워서 해킹을 못 하겠다? 그것도 당신네가? 믿을 소리를 해야지."
"새벽 토끼는 남의 일에 개입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우리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코드 네임 새벽 토끼가 드래곤 플레이트와 드래곤 윙의 개발자입니다."
대령은 당황했다.
"어? 그게 무슨…."
CIA 요원이 진지하게 말했다.
"새벽 토끼를 해킹하려는 해커는 없습니다. 아니, 전에는 있었는데 이제는 없습니다."
"왜…."
"새벽 토끼는 일단 공격당하면 상대를 끝까지 역추적해서 정체를 공개했으니까요. 해커는 정체가 드러나면, 보통은 체포됩니다. 그동안 새벽 토끼를 해킹하려다가 감옥에 간 놈이 한둘이 아닙니다."
대령도 이제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그러면, 당신네도 해킹이 불가능한 겁니까?"
"팀을 투입하면 해킹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그러다 역추적당하면, 새벽 토끼는 분명히 우리 거점을 찾아낼 겁니다. 그러면 피해가 너무 큽니다."
"거점이야 고정이 아니라 임시로 만들었다가 버리면 되잖습니까?"
"거점 소실 비용이 문제가 아닙니다. 임시 거점을 만들어도 우리 짓이라는 걸 눈치챌 겁니다."
"정말 대단한 해커인가 보군요."
"뭘 상상하시든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새벽 토끼와 적대적 관계가 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만약 나중에 우리가 급해서 손을 벌렸는데 새벽 토끼가 거절하면, 우리 손해가 너무 큽니다."
미군 대령은 상황을 이해했다.
"해킹으로 빼낼 수 있는 정보의 가치보다 예상 손실이 크다는 말이군요."
"그렇지요. 드래곤 윙은 양산만 되면 한국 정부를 통해 구매하면 됩니다. 하지만 새벽 토끼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쉽군요."
대령이 입맛을 다셨다.
"델타가 하늘을 날면 진짜 끝내줄 텐데…."
"그러게요. 델타가 날면 우리도 좋은데…."
"델타에게 줄 날개가 없군요."
"그러게요."
***
최진욱 피디는 ‘바보의 사랑’ 촬영 스케줄 사이에 겨우 끼워 넣은 휴일에 국방부 홍보 담당관을 만났다. 이 자리는 경찰 쪽에서 국방부에 협조를 요청해 마련됐다.
최진욱은 공격헬기 협찬 문제부터 꺼냈다.
"그 장면에서, 김유찬의 뒤에서 공격헬기가 따악! 기관포를 적에게 따악! 진짜 멋지겠죠?"
홍보 담당관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드라마에 코브라나 아파치를 쓰겠다고요? 그건 좀…."
최진욱이 열심히 설명했다.
"도와주십쇼. 우리 한국군의 공격헬기가 나쁜 역할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주인공 뒤에서 멋지게 등장하는 거라고요."
"그래도 그게 참…."
"아니면 개발 중인 국산 공격헬기도 좋습니다. 뭐든 빌려주시기만 하면 제가 진짜 멋지게 처리해 드린다니까요?"
"후우. 알겠습니다. 공격헬기는 제가 관계부처와 협의하겠습니다."
최진욱이 활짝 웃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는 그러면서 다른 부탁을 슬쩍 끼워 넣었다.
"그러면 도와주시는 김에…. 전술 비행 슈트도 좀…."
홍보 담당관이 도로 물었다.
"빌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물어보시는 건 아니죠?"
"어차피 뉴스에 다 공개된 거잖습니까?"
"바로 어제 앤서니 피트 감독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그 슈트를 넣고 싶다고 협찬 요청을 했습니다. 그것도 문체부를 통해서요."
최진욱은 깜짝 놀랐다.
"헉! 미국 영화에 그 슈트가 나옵니까? 그건 아니죠! 나와도 우리가 먼저 나와야죠! 국산 드라마를 할리우드 영화보다 더 밀어주셔야죠!"
"안 나옵니다. 거절했거든요."
"네?"
"그러니까 공격헬기로 만족하시고 전술 비행 슈트는 포기하시라고요."
최진욱은 당황했다.
"아니, 이미 우리 도주희 작가가 대본을 고치고 있는데…."
"다시 고치셔야겠네요."
***
도주희 작가가 촬영장에서 최진욱 피디에게 잔소리를 했다.
나강인이 촬영 현장에 왔다가 그 모습을 보고 신은하에게 물었다.
"도 작가님이 최 피디님을 왜 쥐 잡듯이 잡고 있냐?"
"최 피디님이 전술 비행 슈트를 협찬받아오겠다고 큰소리쳐서, 도 작가님이 대본을 고쳐놨대. 그런데 협찬받는 데 실패했대."
나강인은 그런 말은 전해 듣지 못했다.
"국방부가 알아서 잘랐군."
AI 전지인이 맞장구쳤다.
-앤서니 피트가 시도했다가 실패한 후로 드래곤 윙 협찬 제안은 다 자르나 봅니다.
신은하는 드래곤 윙을 누가 만들었는지 짐작하고 있다. 그녀가 물었다.
"진짜 안돼?"
나강인이 말을 돌렸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저 두 분은 무슨 사이인데 저렇게 구박을 수시로 주고받냐?"
"중학생 때 처음 만나서 대학까지 같이 갔대. 하는 일도 비슷해. 한 명은 피디, 한 명은 작가. 드라마도 손잡고 같이 만들어. 저쯤 되면 영혼의 단짝 아닌가?"
"남의 개인사를 잘 아네?"
"방송계에서는 유명한 이야기거든. 저 두 분이 아직까지 솔로인 건, 어떤 남자나 여자도 저 사이에 끼어들어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서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니까."
"누가 소개팅이라도 안 해주나?"
"해줬다가 무슨 욕을 먹으려고?"
"그런가?"
김유찬이 나강인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나강인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신은하가 그런 나강인을 보며 다짐했다.
"난 최 피디님이랑 도 작가님처럼 되지는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