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61화 (361/411)

361. 실전 리얼 액션 II

할리우드 영화 ‘메트로폴리스 헌터’의 여자 주연 배우 엠마는 오늘 액션 촬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그녀도 오늘 찍을 게 있긴 하지만, 그건 따로 연기해야 한다.

그녀는 그런데도 촬영장에서 나강인을 만났다.

그녀는 어제 그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오늘은 대놓고 나강인에게 제안했다.

"미스터 나. 오늘 저녁 식사에 초대할게요."

"알레이나가 어제 그러더군요."

"네?"

"엠마 씨와 같이 저녁밥을 먹으면 안 된다고. 큰일 난다고."

엠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걔 진짜 너무하네. 그냥 고마워서 밥 한 끼 사겠다고 하는 건데."

"나한테 고마울 일이?"

"어제 날 구해줬잖아요."

"그건 연기였습니다만?"

"난 진짜 같았거든요. 시간 되죠?"

나강인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어차피 오늘 저녁에는 선약이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내일 저녁…."

"내일은 야간 촬영입니다만?"

"아…."

앤서니 감독이 나강인을 찾았다. 나강인이 감독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엠마가 나강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설마 나 까인 거야?"

비서가 옆에서 대답했다.

"네."

"날 깐 남자는 처음이야."

"엠마? 그거 농담이죠? 농담 맞죠?"

***

액션 촬영이 시작됐다.

나강인이 가면을 쓰고 골목을 달렸다. 골목을 따라 설치된 카메라가 그의 모습을 촬영했다.

뒤에서 카메라를 들고 뛰면서 쫓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카메라 흔들림 보정장치 덕분에 그렇게 뛰어도 영상은 꽤 안정적으로 찍혔다.

갑자기 골목 모퉁이에서 적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튀어나왔다.

이 영화는 한국이 배경일 때는 총보다 칼이 자주 나온다. 습격한 배우 두 명은 단검을 들고 덤볐다.

배우들이 작정하고 나강인을 공격했다. 소품용 단검이긴 하지만 칼을 쓸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나강인이 첫 번째 칼을 잡아채며 적의 목을 후려치고 뒤로 날려버렸다. 실제로 친 곳은 목이 아니라 목 바로 아래 가슴이었고, 진짜로 친 게 아니라 손날을 대고 밀었다.

그가 적을 뒤로 던지는 순간을 노리고 두 번째 배우가 그의 등을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AI 전지인이 실시간으로 적의 공격 방향을 표시했다.

나강인이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켜 그 공격을 피했다. 첫 번째 적에게서 빼앗은 단검은 이미 역수로 쥐고 있었다. 그는 그 칼로 적의 몸을 아래에서 위로 쭉 그었다.

칼날이 번뜩였다. 적의 가슴 쪽 옷이 쩍 갈라졌다.

배우는 자기 옷을 소품용 칼이 긋고 지나갔다는 것만 알았다. 그래서 그냥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으아악!"

촬영팀은 깜짝 놀랐다. 앤서니 감독은 벌떡 일어서며 눈을 부릅떴다.

배우의 옷이 진짜 칼로 그어진 것처럼 쭉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지, 진짜 칼 아니지? 사고 아니지?"

"아, 아니어야 하는데…. 중지시킬까요?"

"아니, 피가 안 보이니까, 설마 아니겠지. 일단 진행해."

나강인이 방금 쓰러지는 배우의 손에서 단검을 가로챘다. 이제 단검은 두 자루가 생겼다.

그가 골목을 계속 전진했다. 다음 모퉁이에서 새로운 적들이 튀어나왔다. 이번에 나온 배우 두 명은 단검이 아니라 장검을 들고 있었다.

선두의 적이 장검을 번쩍 들어 나강인을 사선으로 베었다. 날을 세우지 않은 소품용 칼이지만 칼날의 재질은 금속이다. 제대로 맞으면 다친다.

나강인이 단검 두 자루를 X자로 교차시켜 그 칼을 빗겨 막았다.

오늘 사용한 소품용 단검은 어제와 달리 칼날이 금속이다. 쇠와 쇠가 갈려 나가면서 불꽃이 튀었다.

나강인이 단검으로 적의 장검을 빗겨내며 발로 상대를 밀어 찼다.

"켁!"

적이 칼을 놓치며 뒤로 날아갔다. 적의 장검은 나강인의 단검 두 자루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적이 달려들었다.

이번 상대는 검도를 할 줄 알았다. 칼날이 예리한 각도로 나강인이 빈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나강인이 방금 빼앗은 장검은 아직도 단검 두 자루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나강인이 단검으로 그 장검을 움직여 적의 칼을 막았다. 이번에도 칼날이 서로 미끄러지면서 불꽃이 튀었다.

상대는 당황했지만 방심하지 않고 칼을 연달아 휘둘렀다. 나강인은 단검 두 자루로 빼앗은 장검을 공중에 띄우고 회전시켜서 적의 공격을 막았다.

마치 장검이 혼자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당황한 상대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말했다.

-서비스 장면은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장검의 손잡이를 발로 걷어찼다. 날을 세우지 않은 칼이 고속으로 날아가 적의 뒤에 있는 골목 벽에 퍽 꽂혔다.

"으헉!"

적 역할을 맡은 배우는 진짜로 겁을 덜컥 먹었다. 나강인이 소품용 단검 두 자루 중 하나의 고정장치를 손가락으로 해제하며 적에게 던졌다. 칼날은 상대의 몸에 닿자마자 손잡이 속으로 들어갔다.

배우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단검 손잡이를 잡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는 더 싸우다가 실수라도 하면 진짜 칼에 맞을 것 같아서 무서웠다.

나강인이 고꾸라지는 적의 손에서 장검을 빼앗았다. 그런 후에 앞으로 달렸다. 빨랐다. 너무 빨라서 카메라맨이 쫓아가지 못했다.

중간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카메라맨이 튀어나와 나강인의 뒤를 쫓아갔다.

골목 모퉁이를 다시 돌아서기 직전에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보고했다.

-총기 작동음 확인! 소품용 권총입니다!

여기서 상대가 총을 쓴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는 총구의 방향이다.

AI 전지인이 골목 모퉁이 뒤에서 발생한 소리를 모두 분석해 상대의 현재 위치와 총기의 높이를 예측했다. 홀로그램에 권총으로 정면을 조준하는 사람의 형상이 떴다.

나강인이 바닥을 박차고 점프해 모퉁이 벽을 걷어차고 다시 점프했다. 그가 모퉁이를 돌 때는 하늘 높이 치솟은 상태였다.

아래쪽에서 배우가 권총으로 앞을 겨누고 있다가 깜짝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배우의 뒤쪽에 있는 카메라 중 한 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단검을 던졌다. 소품용 단검이 권총을 든 배우의 몸에 푹 꽂혔다.

"으아악!"

나강인이 착지하며 적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았다. 이제 그는 오른손에는 장검, 왼손에는 권총을 들고 있다.

더 뒤쪽에 세 명이 더 있었다.

나강인이 왼손의 권총을 그들을 향해 겨누며 방아쇠를 당겼다.

거기까지가 그가 맡은 역할이다. 이 이후는 벤자민이 연기해야 한다. 적들이 총에 맞는 모습은 특수효과로 처리해야 해서 나강인이 계속 연기할 필요는 없었다.

나강인이 말했다.

"여기까지."

***

앤서니 감독은 촬영용 드론의 영상으로 진행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외쳤다.

"좋았어!"

단검에 옷이 잘린 배우도 일어났다. 스태프가 이미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앤서니가 그 배우에게 뛰어가 물었다.

"괜찮아요?"

배우가 손으로 옷을 더듬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와. 옷에 베였다는 건 쓰러진 후에야 알았습니다."

"옷만 베인 거지요? 다친 곳은 없지요?"

"없습니다. 그런데 감독님. 그 단검, 혹시 소품이 아니라 진짜였습니까?"

"소품 맞습니다. 그러니까 상처가 없죠."

"하지만 이 옷은."

배우가 손으로 옷의 절단면을 만져보았다.

"진짜 칼로 벤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날을 세우지도 않은 소품용 칼로 어떻게 이렇게…."

남자 주연 배우 벤자민이 옆에서 물었다.

"감독님. 이 장면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어떻게 해요? 실감 나게 잘 나왔으니까, 피가 튀는 효과만 CG로 추가해야지."

그가 방금 촬영이 끝난 골목을 걸어갔다. 장검을 들고 덤빈 배우 두 명 중 하나는 나강인이 집어 던졌다. 그는 옷을 털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진짜 하나도 안 아프네."

그런데 두 번째 배우는 얼굴이 창백했다. 그는 아직도 가슴에 소품용 단검을 붙이고 있었다.

감독이 얼른 그 단검을 받아 확인했다.

"소품용 맞네. 휴우."

그런데 배우의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 감독이 배우를 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창백해요?"

배우가 벽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던진 장검이, 벽에 박혔어요."

"아…."

장검의 칼날이 담벼락에 푹 박혀 있었다.

앤서니가 얼른 변명했다.

"그래도 바로 옆은 아니고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으니까…. 하, 하하."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내가 프로라서 그 상황에서 촬영을 안 망치고 쓰러지는 연기를 했지, 다른 친구들이었으면 어림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네요. 고생했어요."

앤서니가 계속 골목을 걸었다. 카메라맨이 교대한 곳을 지나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다.

나강인이 그곳에 서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앤서니가 오는 걸 보고 말했다.

"오늘 내가 할 건 다 끝났으니까, 난 이만 가보겠습니다."

앤서니는 당황했다.

"네? 아, 아니, 아직 안 끝났……"

"여기서부터는 감독님과 벤자민 씨가 해결해야죠."

"그건 아는데요."

오늘 촬영은 첫날인 어제와는 좀 달랐다.

어제는 벤자민이 연기한 부분을 액션 영상의 앞뒤에 붙이기만 하면 됐다.

오늘은 다르다.

나강인이 벤자민의 대역을 맡아 싸운 장면은 동선이 꽤 길었다. 그러면 중간에 표정 연기도 들어가고 대사도 좀 들어가야 한다.

그런 장면은 주연 배우인 벤자민이 연기해야 한다. 그걸 액션 사이에 끼워 넣는 건 감독인 앤서니가 할 일이다.

액션은 나강인이 전부 새로 세팅했지만, 대사까지 만든 건 아니다. 벤자민이 해야 하는 대사는 원래 시나리오에 있던 걸 그대로 쓰면 된다.

앤서니 감독이 방금 지나온 골목길을 보았다. 곳곳에 카메라가 배치되어 있었다. 지금 이곳에도 카메라는 있었다. 그중 한 대는 나강인이 점프했을 때를 대비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이 골목 전투씬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강인이야. 이 골목에서 액션 대역만 한 게 아니라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심지어 카메라 배치까지 다 했으니까.’

앤서니가 결정을 내리고 나강인에게 말했다.

"도와주십쇼."

"뭘요?"

"벤자민이 골목에서 촬영해야 하는 장면들 말입니다."

"그건 감독님이 할 일입니다만?"

"나강인 씨가 한국에서의 액션 전체를 맡는다면서요."

"액션만 맡는다고 했죠."

"이것도 액션에 포함된 부분인데, 그냥 가시면 우리는 망합니다."

나강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감독님 실력이면 충분히 잘 찍을 텐데 왜…."

"내가 추가 장면을 내 스타일로 찍으면 방금 그 액션과는 색이 많이 다를 겁니다. 그걸 중간에 끼워 넣으면 관객은 그 미묘한 어색함을 무의식중에라도 느끼겠죠. 그러면 안 좋습니다."

나강인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아아."

두 사람은 한국어로 대화해서 벤자민은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었다.

"무슨 이야기인데 그럽니까?"

앤서니가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벤자민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감탄했다.

"그렇겠네요! 이 골목 전투는 한 사람이 쭉 맡는 게 느낌이 확실히 더 살겠군요. 미스터 나라면 진짜 잘할 겁니다."

앤서니가 응원군을 등에 업고 나강인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도와주십쇼."

"바쁜데…."

"플리즈."

***

결국 나강인은 앤서니와 벤자민, 그리고 스태프들을 데리고 골목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작게 말했다.

"지인아."

-지구연합군 훈련 교본 영상을 제작할 때에는 이런 걸 추가하지 않습니다.

나강인과 AI 전지인이 액션 촬영에 쓰는 기술은 원래는 훈련 교본 영상을 만들 때 쓰는 스킬이다.

"그건 네가 아무것도 모를 때의 이야기지. 너도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봤잖아. 의견 좀 팍팍 내 봐."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AI 전지인이 즉시 3D로 만든 골목 지도 곳곳에 작은 표시를 띄웠다. 그 옆에 간단한 설명도 달았다.

-수많은 작품을 감상한 제가 엄선했습니다. 이 지점들을 추천합니다.

"몇 개는 내가 생각한 곳이랑 같네."

-추가할 부분과 삭제할 부분을 표시해 주십시오.

"다 넣지 뭐. 삭제 없이 추가만 하자. 알아서 골라 쓰겠지."

-어차피 요원님이 고생하는 것도 아닌데 팍팍 넣으십시오.

나강인이 손가락을 움직여 골목 지도에 표시를 몇 개 추가했다. 그런 후에 골목 입구에 있는 첫 번째 지점에서 말했다.

"여기부터 시작하죠."

여기는 AI 전지인이 아니라 나강인이 추가한 곳이다.

AI 전지인이 즉시 그 지점 주변에 가상의 카메라 여섯 대를 배치했다. 각각의 카메라에 사람이 어떻게 찍힐지도 홀로그램 스크린 여섯 개를 띄워 보여주었다.

나강인이 홀로그램 속 모습들을 간단히 확인한 후에 말했다.

"여기서 벤자민 씨가 대사를 한 번 치고, 카메라를 저기 배치해서 그 모습을 찍읍시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냐면……"

나강인은 홀로그램 화면에 나오는 모습을 스케치북에 간단히 그렸다.

앤서니가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군요. 그런데 이게 최선…."

나강인이 스케치북을 넘겨 다른 홀로그램 화면을 그림으로 간단히 그렸다.

"이런 방법도 있고요."

"아! 이게 좋겠네요! 딱 제가 바라는 모습입니다."

"그럼 시작하죠?"

"예? 뭘…."

"촬영이요."

"바로요?"

"내가 좀 바빠서."

"아…."

스태프들이 즉시 카메라와 조명, 마이크 등이 위치를 옮겼다.

나강인은 원래 액션 연기를 찍을 때만 카메라와 조명의 위치를 지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액션이 아닌데도 카메라와 조명은 물론이고 마이크 배치까지 하나하나 지정해주었다.

장비 배치는 금방 끝났다.

벤자민이 말했다.

"난 아까부터 준비되어 있습니다."

촬영이 시작됐다. 워낙 짧은 장면이라 첫 번째 촬영은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끝났다.

나강인이 말했다.

"장비 들고 다음 지점으로 이동합시다."

앤서니 피트 감독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예? 벌써요? 우린 방금 잠깐 찍었는데요?"

"내가 좀 바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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