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64화 (364/411)

364. 소문

잡탕 과자와 케이크의 칼로리가 높다는 말을 듣자마자, 옆에서 같이 먹던 비서가 얼른 엠마의 접시를 빼앗았다.

"엠마. 더 먹으면 안 돼요. 지금은 촬영 기간이잖아요."

"너 지금 내 것까지 빼앗아 먹으려고 그러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나 말리지 마! 내 케이크 안 돌려주면 약을 먹을 테다!"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고 그래요?"

비서가 얼른 접시를 도로 주었다. 엠마가 사귀었던 사람 중에는 약쟁이도 있었다. 그녀는 엠마도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웠다.

벤자민은 잡탕 과자와 케이크를 신나게 먹었다.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엠마가 케이크를 아껴 먹으며 물었다.

"벤자민. 그렇게 먹어도 돼?"

벤자민은 간단한 답을 내놓았다.

"더 먹은 만큼 운동을 더 많이 하면 돼."

"쳇. 근육 많아서 칼로리 소비 잘하니까 좋겠다?"

"넌 더 먹고 싶으면 유산소 운동을 해."

"그치? 더 먹고 운동 더 하면 되겠지?"

비서가 말렸다.

"엠마! 정신 차려요! 악마의 속삭임에 속지 마세요!"

벤자민의 전담 스턴트맨인 헨리가 옆에서 잡탕 과자를 먹으며 말했다.

"이거 미국에 돌아가서도 먹고 싶은 맛인데?"

"너도 그렇지?"

벤자민이 나강인을 휙 돌아보았다.

"나강인 씨! LA에 디저트 가게 하나 내시죠!"

엠마는 한술 더 떴다.

"가게 하나로 되겠어? 아예 회사를 차려요! 자본금은 내가 투자할게요!"

나강인이 거절했다.

"가게든 회사든 안 합니다."

"왜요?"

"이건 내가 직접 요리해야 이 맛이 나니까요. 자동화가 불가능합니다."

"요리야 조리 담당 직원을 가르치면…."

"감각으로 요리하는 거라서 남에게 가르칠 수가 없어요."

엠마는 아쉬워하면서도 납득했다. 그녀가 케이크를 먹으며 말했다.

"하긴. 이 맛을 아무나 낼 수는 없겠지."

벤자민은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DHL로 받으면 되지!"

엠마가 맞장구쳤다.

"아! 그러네! 한국에서 만들어서 국제 특송으로 보내주면 되겠네!"

나강인이 그것도 거절했다.

"내가 좀 바빠서."

"네?"

***

오늘 야간 촬영장소는 망원한강공원이다.

공원 바로 옆 한강 위에는 퇴역한 군함이 한 척 떠 있었다. 그 군함은 전시관으로 사용되는 것이라 함포나 미사일을 쏠 수는 없다.

앤서니 피트 감독이 설명했다.

"전투 막판에 저기 전시된 군함의 함포가 공원 쪽으로 포격할 겁니다. 당연히 포를 쏘는 장면은 CG로 처리해야죠. 주인공에게는 심각한 위기가 오는 겁니다."

함포 사격 장면은 굳이 나강인이 개입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AI 전지인이 나섰다.

-포격! 제가 멋진 포격 장면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굳이?"

-저는 전투지원 AI입니다. 포격을 참 좋아합니다.

"그러지 뭐."

나강인이 앤서니 피트 감독에게 물었다.

"포격 CG는 어떻게 할지 디자인이 나왔습니까?"

"두 가지 시안이 논의 중입니다. 그중 하나로 결정되면 바로 CG 작업에 들어가야죠."

"그럼 저도 제안해도 될까요?"

앤서니 피트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물론이죠. 좋은 의견이 있습니까?"

AI 전지인은 외부 장비에 데이터를 직접 출력하지 못한다. 포격 CG는 나강인이 손으로 그려야 한다.

"스케치북과 펜이…."

스태프가 얼른 스케치북과 컬러 펜 세트를 가져왔다.

나강인은 지난 이틀간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액션을 설명했다. 그걸 본 스태프가 오늘은 새 스케치북과 컬러 펜 세트 준비해놓았다.

나강인은 살짝 당황했다. 다양한 색의 컬러 펜이 커다란 가방에 가득 들어있었다.

"168색 세트?"

스태프가 활짝 웃었다.

"나강인 씨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한 상자 더 있으니까 언제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어…. 네."

AI 전지인이 홀로그램으로 보여주는 그림을 나강인이 여러 색의 펜으로 그렸다. AI 전지인이 손의 움직임을 보정했다.

스케치북 위에 색이 빠르게 채워졌다.

"이쪽에서 이렇게 포격하면, 저 시설물들이 이런 형태로 하나씩 터지는 겁니다."

앤서니 피트 감독은 물론이고 벤자민이나 엠마도 그림 자체에 감탄했다.

엠마가 말했다.

"와아. 스케치만 잘하는 게 아니었어. 이건 그냥 CG 아녜요?"

"아닙니다. 색을 많이 써서 화려하게 보이는 겁니다."

벤자민도 감탄했다.

"만화책으로 내도 되겠는데요?"

"그냥 포격 장면 몇 장인데 만화책은 무슨."

앤서니 피트 감독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원래 생각하던 A안과 B안에 이걸 C안으로 추가해서 의논하겠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그림이 있으면 CG 작업이 더 빨리 되겠군요."

"도움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아! 이거 혹시 영화 홍보에 이 그림을 써도 되겠습니까?"

"굳이?"

"네. 굳이. 반응이 좋을 겁니다."

AI 전지인이 얼른 말했다.

-저는 좋습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그럼 그러시죠."

***

오늘은 근접전은 없고 총격전이 많았다.

앤서니는 나강인이 총격전에 참여하기를 바랐지만, 그런 것까지 대역으로 연기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에 그는 총격전이 더 그럴듯하게 보이게 환경을 세팅해주었다. 야간 조명과 카메라 위치도 전부 직접 설정했다.

그 작업은 전투지원 AI 전지인이 적극적으로 보조했다.

야간 촬영이 시작됐다.

오늘은 엠마도 총을 들고 싸우는 모습을 촬영했다.

한창 촬영이 진행된 후에 그녀가 엄폐물 뒤에서 외쳤다.

"탄창 남은 거 있어?"

"여기!"

벤자민이 엠마에게 탄창을 던졌다.

엠마가 날아오는 탄창을 받았다. 그런데 탄창을 받으려고 시선을 위로 향한 그녀의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어?"

오늘 촬영에는 드론이 적극적으로 사용됐다. 두 대의 촬영용 드론이 더 극적인 장면을 찍으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그녀를 향하던 촬영 드론 두 대가 공중에서 충돌했다. 두 대 다 날개 일부가 부서졌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큼지막한 드론 한 대가 정확히 그녀를 향해 추락했다. 날개 일부는 아직도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았다. 얼굴이 창백해졌다. 몸이 굳어서 피할 수가 없었다. 드론이 그녀의 얼굴을 향해 추락했다.

갑자기 옆에서 기다란 막대기가 창처럼 날아와 드론을 꿰뚫었다. 드론은 창에 꽂힌 채로 옆으로 날아가다가 강물에 풍덩 빠졌다.

그녀의 시선이 강물로 날아가는 드론을 계속 따라가다가, 그 드론이 물에 빠지자마자 창이 날아온 쪽으로 휙 돌아갔다.

"누, 누가…."

그녀 쪽으로 촬영용 탄창을 던져준 벤자민은 누가 창을 던졌는지 확실히 보았다.

"와. 하늘이 깜깜한데도 그게 정확히 보이나?"

"그러니까 누가…."

"나강인 씨. 표시용 깃대를 뽑아서 깃발을 뜯어내고 던지더라."

엠마의 눈에 나강인의 손이 보였다. 깃발로 쓰던 작은 삼각형 천을 쥐고 있었다.

"나 방금…."

"몸에 맞았으면 다쳤겠고, 얼굴에 떨어졌으면 배우 인생이 위험해졌겠지."

앤서니 피트 감독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드, 드론 조종을 어떻게 하는 거야! 사람이 다칠 뻔했잖아!"

촬영은 중단됐다.

추락한 드론은 두 대였다. 한강에 빠진 한 대는 포기했다. 주차장에 떨어진 다른 한 대는 회수했다.

현장이 정리되는 동안 엠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비서가 바로 옆에 충전식 무선 선풍기를 틀어놓았다.

"엠마. 괜찮아요?"

"너 같으면 얼굴에 드론이 떨어지는 걸 봤는데 괜찮겠니?"

"아뇨."

앤서니 피트 감독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엠마. 다치지 않아서 천만다행입니다."

"앞으로는 내 근처에 드론은 띄우지 말아요."

"어차피 한국 스케줄이 우리 영화의 거의 마지막 촬영 일정이라서, 드론은 더 띄울 일이 없어요."

"이미 찍은 건요?"

"기왕 찍은 건 잘 활용해야죠. 전투 도중에 창백하게 질린 엠마의 얼굴이 실감 나게 나왔으니까."

엠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걸 굳이 영화에 쓰게요?"

"관객들이 엠마의 연기력에 깜짝 놀랄 겁니다."

"아…. 그럼 뭐, 멋지게 나오게 해줘요."

"나만 믿어요. 그러면 촬영을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조금 더 쉬었다가 찍어요."

엠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강인 씨는 어디 있어요? 덕분에 살았는데 인사라도 해야지."

"간다던데요."

"네? 가다뇨?"

"나강인 씨가 도와줄 일은 다 끝났으니까…."

그녀가 얼른 나강인을 찾았다.

"또 사고가 터지면 누가 날 구해주는데요? 안돼요!"

나강인은 한쪽에 주차해둔 차의 문을 열고 있었다.

엠마가 얼른 뛰어갔다.

"나강인 씨! 왜 벌써 가는데요?"

"내가 도와줄 건 이제 없으니까?"

"그…."

그녀가 눈동자를 굴리다가 물었다.

"우리 내일 식사라도 할까요?"

"내가 좀 바빠서."

"도대체 뭐가 그리 계속 바쁜데요? 지구라도 구하세요?"

"미래의 지구라면 조금?"

"네? 아! 지구 환경보호 같은 거 하시나 보다."

"그럼 난 이만."

나강인이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

엠마가 나강인의 차를 보면서 말했다.

"근데 유명한 무술감독이라면서 차가 왜 저래?"

비서가 옆에서 말했다.

"클래식카 매니아 아닐까요?"

"저게 어떻게 클래식카야? 똥차지."

***

한국 촬영은 나강인이 액션에서 시간을 크게 줄여준 덕분에 예정보다 빨리 끝났다. 한강공원에서 드론 사고가 있긴 했지만 다친 사람은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

앤서니 피트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은 촬영 스케줄을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에 미국 할리우드 관계자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다.

"앤서니 피트가 한국에서 찍어온 필름이 그렇게 대단하다던데?"

"어느 부분이 대단한데?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찍었대?"

"정말 멋진 액션을 찍어왔대."

"응? 한국에서?"

"어. 한국에서."

"액션을?"

"어. 액션을."

"그 정보 소스가 어디야?"

"벤자민과 엠마. 그 영화 촬영이 끝나서 배우들은 시간 많잖아. 두 사람 다 각자 참석한 파티에서 자랑했다더라고. 특히 엠마가 액션 자랑을 엄청나게 많이 했대."

"난 엠마의 파티 케이크 이야기만 들었는데?"

"그건 또 뭐야?"

"어느 파티에서 케이크를 먹더니, 이 맛이 아니야! 라고 외쳤대."

소문이 퍼지면서 그 영상에 관심을 가지는 업계 사람이 늘어났다. 영화계 관계자 중에는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 실전 리얼 액션이라는 장르를 만든 사람이 있다더군."

"그 액션은 특징이 뭐야?"

"순식간에 고퀄리티 액션 영상을 뽑아낸다더라."

"투자한 시간은 짧은데 퀄리티가 높아? 그게 말이 되나?"

"앤서니 피트가 찍는 메트로폴리스 헌터 말이야. 한국 촬영 일정이 예정보다 훨씬 짧았어. 퀄리티는 몰라도 시간을 줄인 건 사실일 거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돈이 많이 든다. 사람이 움직이고 장비가 움직이는 게 다 돈이다. 촬영 기간이 짧아지면 비용이 줄어들고 그만큼 예상수익은 늘어난다.

"그래? 자료 좀 더 찾아봐."

그러다 영화사에서 영상이 하나 흘러나왔다. 한국에서 찍은 액션의 1차 편집본 중 일부가 영화사에 참고용으로 전달됐다가 유출됐다.

그 액션 영상이 인터넷에 퍼진 건 아니다. 일반인은 그런 영상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 중에는 그 액션 영상을 본 사람이 여럿 있었다.

"액션 수준이 굉장히 높은데?"

"카메라워크도 끝내주는군."

"잠깐. 이걸 촬영하는데 쓴 시간이 얼마라고? 이 문서에 적힌 거 진짜야?"

"이걸 원 테이크로 끝냈어? 복잡하게 편집되어 있는데?"

"카메라를 여러 대 써서 찍은 후에 하나로 편집했다고? 아니, 그게 말로나 쉽지, 결과물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올 수가 있나?"

***

알레이나는 한국에서 비밀수술을 받은 후에 건강을 회복하면서 잘 놀고 잘 쉬었다. 그녀는 피시방에 다니면서 게임도 많이 했다.

"아오. 정글 차이."

그녀가 채팅창에 정글의 부모님 안부를 물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응?"

발신자는 그녀가 출연했던 ‘스파이 셰프’의 감독이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톰?"

-알레이나! 잘 지냈어? 지금 한국에 있다며?

"톰 감독님. 그건 어디서 들었어요?"

-매트로폴리스 헌터 촬영팀이 그러더라고.

"아아. 내가 촬영 현장에 응원 갔었죠."

-요즘 한국에서 뭐하면서 지내?

"작곡도 공부하고, 공연도 준비하고."

공식적으로는 그런 핑계를 댔다.

"가끔 한국 드라마도 짧게 출연하고?"

-한국에서 드라마만 하지 말고 내 차기작에 나와야지!

알레이나는 배우보다 팝스타로 더 유명하다.

앤서니 피트의 ‘나이트 스트라이커’는 흥행에 성공했다. 그래서 그녀도 차기작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망해버린 ‘스파이 셰프’ 감독의 차기작까지 굳이 출연할 필요는 없다.

"음…. 톰 감독님. 영화 새로 찍어요?

-조만간에 찍을 거야. 이야기가 잘 진행되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스파이 셰프 때는 액션이 약해서 망했잖아?

‘스파이 셰프’는 액션이 중요한 영화였다. 그런데 액션이 엉망으로 나왔다. 그게 그 영화가 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새 영화에서는 액션 문제만 해결하면 확실히 성공할 거야.

"아하. 응원할게요."

-응원만 하지 말고 도와줘.

팝스타 알레이나는 망한 영화의 감독이 찍는 차기작에 굳이 출연할 생각이 없다.

"나 요즘 하는 거 많아요."

그녀는 지금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 가뜩이나 그녀의 팀이 밀리던 중인데 전화를 받느라 상황이 더 나빠졌다. 채팅창에 욕이 계속 올라왔다.

"게다가 영화는 나이트 스트라이커 속편에 출연할 예정이라서 스케줄 맞추기 어려워요. 도와줄 수가 없어요."

-알레이나 말고.

"그럼요?"

-한국에 실전 리얼 액션이란 장르를 만든 무술감독이 있다며?

"응? 그걸 어떻게 알았지?"

-요즘 할리우드에 알음알음 소문이 나고 있거든. 그 사람 좀 여기로 보내줘.

알레이나가 잠시 멈칫하다가 피식 웃었다.

"어머. 소문을 제대로 못 들으셨나 보다."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친구는요. 거기서 부른다고 해서 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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