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66화 (366/411)

366. 게이머

미국 팝스타 알레이나 민의 게임 닉네임이 방송에서 밝혀졌다.

남현주의 쌍둥이 고등학생 동생들이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레이 맥시멈이 알레이나 민이다아아!"

"쩐다아아아!"

남현주가 동생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레이 맥시멈을 어떻게 알아?"

"하이 캐슬 게임대회를 봤으니까 알지!"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긴 진짜 명경기였잖아."

남현주도 그 대회에 남들이 모르게 참가했다.

그녀는 스스로 그 게임의 연예계 최강자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대회 중간에 지원전문가에잇을 상대편으로 만나는 바람에 떨어졌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희들, 설마 생방으로 본 건 아니겠지?"

"생방으로 봤어야 하는데 공부 열심히 하느라 못 봤지."

"인터넷에 최종 보스전 영상이 많아. 우리는 나중에 그걸 봤어."

인터넷에 그 아마추어 게임대회 영상이 많은 건 알레이나 민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그 대회에 참가했다는 건 방금 알려졌다.

그때 그 대회의 우승팀 리더는 톱스타 김유찬이었다. 톱스타가 이끄는 아마추어팀은 최종 보스전에서 프로팀에게 1승 3패로 졌다. 그때 1승을 거둔 경기 영상이 인터넷에 많았다.

동생들이 흥분해서 말했다.

"최종 보스전에서 김유찬, 에잇, 레이 맥시멈. 그 셋의 활약이 특히 대단했는데!"

"그중에 레이 맥시멈이 알레이나 민이었어!"

남현주가 에잇이 누구인지를 나중에 김유찬에게 들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 대회에서 에잇이 제일 쩔었어. 알레이나 민은 그냥 자기 몫만 한 거야."

"그건 인정. 에잇은 전장의 지배자였지."

"에잇이 프로다 아니다 말 진짜 많았는데, 재야의 숨은 고수로 결론이 났잖아."

***

남현주는 주연을 맡은 드라마 ‘바보의 사랑’ 촬영으로 바쁘다.

그렇다고 그녀가 그 드라마에만 나오는 건 아니다.

가끔은 짬을 내서 방송 출연을 한다. 스케줄을 길게는 못 빼지만, 토크쇼에 짧게 나가는 정도는 사전 협의만 잘하면 시간을 낼 수 있다.

그녀는 이튿날 모처럼 시간을 내서 TV 생방송 토크쇼에 출연했다.

출연하기 전에 방송국 제작진과 하지 말아야 할 질문과 했으면 하는 질문을 협의했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는 드라마의 이후 진행 부분이나 공사장 절벽 사건 같은 것들이었다.

꼭 했으면 하는 이야기는 이번 드라마의 이미 방송된 부분에서 그녀가 멋있게 나온 장면들이었다.

오세나가 얼마 전에 다른 방송에 나와서 자기가 연기를 더 잘한 것처럼 자랑했다. 오늘 그걸 눌러줘야 한다. 그게 그녀가 이 방송에 나온 이유다.

그런데 그녀는 했으면 하는 이야기에 게임을 슬쩍 추가했다.

진행자가 토크쇼 중간쯤에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남현주 씨도 게임 잘하신다면서요? 촬영장에서 노트북으로 하신다는 말도 있던데."

"스케줄이 빌 때는 그러기도 하는데요. 우리 드라마 찍을 때는 한 번도 안 했어요. 저 진짜 열심히 촬영하고 있거든요."

"바보의 사랑은 여신 세 분의 연기력 대결로도 유명하죠."

바로 어젯밤에 음악방송에 팝스타 알레이나 민이 출연했다. 그때 알레이나가 게임 고수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진행자가 물었다.

"잘하신다는 그 게임이…."

"전설의 레전드요."

"아! 그거 알레이나 민과 김유찬 씨가 잘한다는 게임이죠? 그 두 분은 게임대회에서 우승했다던데."

"저도 그 대회에 참가했었어요. 토너먼트 경기의 대진운이 나빠서 우승은 못 했지만요."

"저런. 하하. 그러면 남현주, 알레이나, 김유찬 이렇게 세 분이 모이면 연예계 드림팀이 되는 건가요?"

남현주는 김유찬이나 다른 연예인과는 가끔 온라인으로 게임을 한다. 이번 기회에 거기에 알레이나 민도 추가하고 싶었다.

‘할리우드 배우 한 명쯤 게임 멤버에 있으면 좋지.’

그런데 그녀는 끌어들이고 싶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에잇 님도 포함해야죠."

"에잇이요?"

"게임 닉네임이 지원전문가에잇인데, 우리 업계 분이라고 들었거든요."

그렇게 듣기만 한 게 아니다. 에잇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

‘나강인 씨랑 같이 게임도 하면서 놀면 좋잖아? 여자 배우 중에는 수준이 맞는 고수가 나밖에 없을걸?’

그녀가 사심을 담아서 말했다.

"제가 그 대회에서 떨어진 건 에잇 님하고 맞붙어서예요. 다시 만나서 설욕전을 꼭 하고 싶네요."

진행자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에잇 님. 들으셨죠? 남현주 씨가 제대로 붙자고 하십니다. 저 같으면 당장 달려옵니다. 하하하."

방송 게시판에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남현주가 그 게임을 잘하나?

-엄청 잘해요.

-남현주와 김유찬이 연예계 남녀 최강자일 걸요?

-그런데 난 왜 몰랐죠?

-팬들만 알았어요. 방송에서는 그 이야기를 안 했거든요.

-지금 하는데요?

-이제 대놓고 공개적으로 게임을 하려나 보네요.

-하긴. 김유찬이랑 알레이나가 먼저 공개했는데, 남현주가 굳이 숨길 필요는 없죠.

-연예인 드림팀이 출전하는 게임대회 보고 싶다.

-드림팀이 인터넷으로 게임방송 하면 시청률 쩔겠네요.

***

김유찬은 그 게임 이야기를 이튿날 촬영장에서 들었다.

휴식시간에 옆에 있던 조연출이 물었다.

"유찬 씨가 하이 캐슬 게임대회 우승팀 리더였잖아요. 그러면 알레이나 민이 팀원인 걸 알았겠네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난 그날 알레이나를 못 봤는데?"

"네? 알레이나가 그저께 심야 음악방송에서 밝혔는데요?"

김유찬이 그때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 생각났다.

"헐. 그럼 레이 맥시멈이 알레이나 민이었어요?"

"몰랐어요? 아니, 어떻게 보고도 모르지?"

"그야 마스크 쓰고 얼굴도 좀 달라 보였으니까…."

"와아. 그러니까 알레이나는 그 게임대회에 나오려고 변장까지 한 거네요? 진짜 그 게임을 좋아하나 보다."

김유찬이 그날 일을 떠올렸다. 우승팀에는 나강인도 있었다. 누가 알레이나의 변장을 해줬는지 깨달았다.

지원전문가에잇은 AI 전지인의 게임 닉네임이다. 프로팀과 겨룬 오프라인 경기는 나강인이 마스크를 쓰고 참전했다.

김유찬이 나강인을 찾아가 주변을 슬쩍 둘러본 후에 조용히 물었다.

"저번에 게임대회에서 알레이나 민의 레이 맥시멈의 변장, 강인 씨가 해준 거죠?"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해달라고 해서요."

"혹시 평소에도 그런 변장을 자주 해줘요?"

"남들 시선 신경 안 쓰고 자유롭게 놀고 싶다고 하면?"

김유찬의 목소리가 더 은밀해졌다.

"알레이나 민한테만?"

"은하도 가끔?"

"나는!"

"예?"

김유찬이 항의했다.

"나도 마트 가서 물건 막 사고 싶은데! 시식 코너도 가고 싶은데! 이젠 유명해져서 그런 거 못 해요."

"원하는 게 소박하네요."

"버스킹도 하고 싶고요."

"버스킹이요?"

"홍대나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이름값 없이 연기력 하나만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거죠."

"음…. 촬영 쉬는 날에 시간 되면 와요."

김유찬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으흐흐흐. 아. 그리고 그 변장. 나도 배울 수도 있어요?"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나한테 변장을 해달라는 사람은 몇 명 아는데, 배우겠다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어? 그래요? 으흐흐흐.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도 가능한 건가요?"

"유찬 씨의 경우는….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이목구비가 너무 뚜렷하고 얼굴이 너무 많이 알려져서, 본인이 직접 하는 변장으로는 남의 눈을 속이기 어렵습니다.

나강인이 작게 물었다.

"아예 불가능해?"

AI 전지인이 김유찬의 변장 사진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딱 한 가지 타입은 셀프로 가능합니다만, 손기술이 필요합니다.

나강인이 김유찬에게 말했다.

"연습을 많이 하면 가능할 겁니다."

김유찬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연습."

***

미국 팝스타 알레이나 민이 한국에서 공식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를 원하는 곳은 많았다. 각종 음악방송에서 그녀에게 출연을 요청했다.

그녀는 등수를 매기는 음악방송에는 나가지 않았다. 최근에는 신곡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존에 미국에서 발표한 히트곡을 다시 꺼내, 한국에서 순위 경쟁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음악방송은 초대손님 위주로 노래를 부르고 대화하는 곳을 골라서 가끔 나갔다.

여러 예능 방송에서도 그녀를 찾았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서 하는 가벼운 토크쇼 스타일의 예능만 어쩌다 한 번 나갔다.

한국계 미국인인 알레이나 민은 한국에서의 인기가 굉장히 높다. 영화든 드라마든 그녀가 조연만 맡아줘도 티켓 판매량이나 시청률 후광 효과를 확실히 볼 수 있다.

그래서 여러 영화사나 드라마 제작사, 방송국에서 그녀에게 출연을 제안했다. 아예 주연을 제안하는 곳도 있었다.

그녀는 그런 제안은 모두 거절했다. 한국에서 영화나 드라마에 제대로 참여하려면 스케줄을 길게 빼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본격적인 공연과 할리우드 영화 출연을 고려하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알레이나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바보의 사랑’ 하나인 상태가 계속 유지되었다. 그 드라마는 일주일에 두 편씩 방송되는데, 그녀는 매주 한 번은 출연했다.

그녀가 한국에서 공식활동을 재개하면서 그 혜택을 ‘바보의 사랑’이 보았다.

도주희 작가가 말했다.

"우리 드라마 시청률 중에 1, 2프로 정도는 알레이나 씨의 덕분이라고 봐야지?"

최진욱 피디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좀 더 될지도 몰라."

"그런가?"

"그리고 당장 시청률에는 표시되지 않는 효과도 있어."

"응?"

"알레이나가 출연한 덕분에 외국에서도 우리 드라마에 관심을 보인다더라."

"잠깐 나오는 정도인데?"

"어떤 연기를 했는지 보려는 게 아니야. 알레이나가 활동을 재개한 신호탄이 우리 드라마잖아. 그래서 도대체 무슨 드라마인지, 왜 출연했는지 알아보는 곳이 많대."

"원래 한류 드라마가 흥하는 나라만 그러는 거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알레이나의 인기가 높은 미국 쪽이나 유럽 쪽에서 관심이 많아."

도주희가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 그런 곳에서는 우리 드라마를 보니까 어떻데? 재미있대?"

"반응이 장난 아니다."

도주희가 실실 웃으며 자랑했다.

"흐흐. 역시 내 대본이 쩔긴 하지."

최진욱이 다시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게 아니야. 영화 같은 명품 액션이 많이 나오는 드라마라서 놀라는 거야."

"이거 왜 이래? 액션도 내 대본에 포함된 거거든?"

"네 대본에는 액션 부분은 그냥 어떤 분위기여야 하는지만 간단하게 적혀 있잖아. 액션 자체는 강인 씨가 다 했지."

"그건 그렇지만…."

최진욱이 웃었다.

"알지. 우리 도 작가가 대본을 잘 썼으니까 액션도 통하지, 대본에서 말아먹었으면 지금 시청률이 나오겠어?"

"알면 됐어. 좋은 이야기 더 해봐."

"외국 여러 곳에서 우리 드라마 수입을 타진하고 있대. 국장님이 그것 때문에 오늘 촬영장까지 와서 우리를 보려는 거야."

이 드라마는 여전히 일정이 바쁘지만, 그래도 초반처럼 강행군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고 피디와 작가를 국장실로 부를 만큼 일정이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드라마 국장이 직접 현장을 찾아왔다.

국장이 두 사람을 보며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야아. 우리 드라마의 영웅들. 시청률 25% 넘었더라?"

최진욱이 손을 비볐다.

"다 국장님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으하하하. 야. 일부러 아부하는 척하지 마. 안 어울려."

최진욱이 비비던 손을 펴서 앞으로 내밀었다.

"빈손으로 오신 건 아니죠?"

국장이 빈손을 앞으로 흔들었다.

"옜다. 금일봉."

"국장님. 빈손이신데요?"

"요즘 누가 현금으로 주냐? 오늘 소고기로 회식하고 법인카드 긁어. 다 제작비로 처리해줄게."

"으흐흐. 소고기 좋죠. 한우 꽃등심…."

"아니. 그냥 등심 먹어. 법인카드인데 한우 꽃등심은 선 넘었지."

"에이. 예."

국장이 웃었다.

"사장님께서도 칭찬이 자자하셔. 내가 최 피디랑 도 작가가 한 방 제대로 터트릴 줄 알았다니까."

"그럼 꽃…."

"삼겹살로 낮아지는 수가 있다."

"소고기 등심 좋죠. 잘 먹겠습니다."

국장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나강인 씨는? 촬영 준비하느라 바쁜가?"

"오늘은 나오는 날이 아닌데요?"

국장은 당황했다.

"어? 매일 나오는 거 아니었어?"

"액션 촬영 있을 때만 잠깐 들렀다가 갑니다. 아시다시피 촬영을 워낙 빨리 끝내니까요."

국장이 아쉬워했다.

"저런. 따로 만나서 참치 대뱃살 코스라도 사려고 했는데…."

"아니, 국장님. 메뉴 차별이 좀…."

"회식은 먹는 입이 많잖아. 나강인 씨는 한 명이고. 그래서 그런 거야."

"그럼 저만 따로…."

"치킨 시켜주는 수가 있다."

국장은 촬영 중간의 휴식시간에 방문했다. 그래서 배우와 스태프 대부분은 쉬는 중이다.

지금 일하는 사람은 세트장 시설을 새로 만드는 사람들뿐이다.

최진욱이 촬영장에 국장을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했다.

"저기 만들고 있는 세트에서 공격헬기가 등장할 겁니다."

"이야기는 들었다. 국방부에서 공격헬기 협찬을 따냈다며? 어떻게 한 거야?"

"흐흐. 나강인 씨가 국방부 홍보 담당관을 소개해줘서, 제가 가서 잘 설득했죠. 드라마로 강한 국군을 보여주자고 했더니 오케이 하더라고요."

옆에서 도주희가 툴툴댔다.

"전술 비행 슈트도 우리 드라마에 쓰고 싶었는데."

"정부의 기밀 장비를 방송용으로 어떻게 빌리냐고."

"그거 장비하고 싸우는 영상이 뉴스에 그렇게 대놓고 나왔으면 이제 기밀이 아니지."

"포기해. 그건 아무도 만져볼 수도 없는 환상의 장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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