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67화 (367/411)

367. 문자메시지

‘바보의 사랑’의 도주희 작가는 전술 비행 슈트인 드래곤 윙을 드라마에 쓰고 싶었다. 하지만 최진욱이 협찬받는 데 실패해서 크게 실망했다.

최진욱 피디가 말했다.

"그건 앤서니 피트가 할리우드 영화에 쓰겠다고 요청했는데도 안 된다고 했대. 나만 협찬에 실패한 게 아니라고. 누가 요청해도 안 된다고."

그녀가 실망한 건 또 있다. 그녀가 상가 건물을 가리켰다.

"공격헬기가 출동하는 곳은 저 낮은 건물 옥상이 아니잖아. 빌딩 옥상이어야 해."

도주희는 김유찬이 도심지 고층빌딩 옥상에서 적의 함정에 빠졌을 때, 그의 등 뒤에서 공격헬기가 등장하는 장면을 대본에 추가했다.

그런데 지금은 고층빌딩이 아니라 상가 건물 옥상에 촬영 세트를 설치하는 중이다.

"내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니란 말이야. 고층빌딩이랑 상가 건물은 스케일 차이가 너무 크잖아."

최진욱도 그러고 싶지만 방법이 없었다.

"나도 종로 빌딩 옥상에서 화려하게 싸우는 모습을 찍고 싶었지.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고층빌딩 사이를 공격헬기가 날아다니는 건 허가할 수 없다는데 어떻게 하냐?"

"그래도 3층짜리 상가 옥상은…."

최진욱이 큰소리쳤다.

"걱정하지 마. 배경은 내가 CG로 멋지게 채워줄게. 어디를 원해? 종로? 여의도? 강남?"

"우리 CG로는 진짜 도시의 느낌을 못 살릴 텐데…."

그녀는 그게 걱정이다. CG는 시간과 돈을 많이 쓸수록 잘 나온다. 제한된 예산과 기간으로 만들어내는 CG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계속 불평만 할 수는 없다. 도주희가 말했다.

"알았어. 장소는 생각 좀 해볼게."

국장이 끼어들었다.

"야. 최 피디. 이 드라마에 CG를 그렇게 추가할 예산이 있어?"

"이미 많이 써서 없죠. 그래서 공격헬기를 빌리는 거잖습니까? 도시 배경과 폭발 효과만 따로 찍어서 합성할 거니까, 공격헬기까지 CG로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싸게 해결됩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국장이 상가 건물 옥상에 한창 설치 중인 세트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저거 언제 방송에 나가?"

"장소는 미리 만들어두는 거고요. 촬영 일정은 아직 좀 남았습니다. 방송일은 한참 남았고요."

"그럼 저건 왜 벌써 만드는데?"

"미사일이 날아가서 폭발하는 장면 같은 특수효과는 CG로 처리해야 하잖습니까? 공격헬기는 나중에 오지만, 그 전에 작업할 수 있는 장면은 드론으로 찍어서 CG 처리에 들어가야죠."

도주희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하는 김에 드래곤 윙도 빌려왔으면 진짜 좋은데."

"전술 비행 슈트는 기밀 장비라서 아무도 빌릴 수가 없다니까? 민간인은 만질 수도 없어."

***

나강인이 제작 거점에서 드래곤 윙에 장착할 새 엔진을 점검했다. 용산 15층 빌딩 전투에서 사용한 모형비행기용 엔진보다 길이는 조금 더 길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이 엔진은 미국 회사인 오메가테크에서 만들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실전 수준의 테스트를 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스칼렛이 만든 엔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나강인이 오메가테크 사장 스칼렛 켈리에게 물었다.

"이거 믿어도 되는 겁니까?"

그 엔진들은 스칼렛이 미국에서 직접 가져왔다.

"어머. 우리 회사 기술력 못 믿어요? 그거 진짜 소형 미사일용 엔진이라니까요? 전에 용산 전투에서 썼던 모형비행기용 엔진하고는 성능 자체가 달라요."

"그 소형 미사일은 실전 배치가 됐고요?"

스칼렛이 그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아뇨. 이건 우리 회사에서 미사일용으로 개발한 거지, 아직 미사일에 쓰는 건 아니라서…."

"설마 나한테 엔진 테스트를 시키려는 건 아니겠지요?"

스칼렛이 손을 흔들었다.

"에이. 이젠 폭발하지 않아요."

"폭발?"

"아…. 개발 초기에 그런 일도 있었다는 거죠. 이젠 진짜 괜찮아요. 문제점도 다 보완했고요, 테스트도 우리 연구소에서 많이 했어요."

"그 테스트는 미사일용으로 했고요?"

"그렇죠?"

"전술 비행 슈트용은 내가 테스트하고?"

스칼렛이 어색하게 웃었다.

"호, 호호. 우리도 남는 데이터가 있어야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술 비행 슈트 제작자인 나강인 씨가 테스트 파일럿을 해준다면 최선의 결과가 나오겠죠?"

나강인이 엔진을 손으로 들어보았다. 그렇게 무겁진 않았다.

"테스트 결과가 좋게 나와도 이걸 장착할 날개가 없으면 쓸모가 없을 텐데, 되게 적극적이네."

"날개는요. 나강인 씨가 개발한 전술 비행 슈트를 우리가 라이센스를 받아서 생산하고요. 엔진은 우리 걸 쓰는 거죠. 우리랑 나강인 씨랑 유나린 박사님까지. 꺄아. 진짜 최고의 조합이죠?"

전술 비행 슈트의 날개는 유나린의 인공 근육으로 움직인다. 인공 근육을 제어하는 신경 신호 전달장치는 오메가테크의 제품이다. 거기에 엔진까지 추가하면 오메가테크의 지분이 꽤 높아진다.

그러니 드래곤 윙을 오메가테크가 생산한다고 해서 안 될 건 없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나강인은 드래곤 윙을 양산할 생각이 없다.

"최고는 무슨. 드래곤 윙은 비행 보조장치 없이 날면 공중에서 삐끗만 해도 추락해서 죽는다니까."

"그 위험한 걸 나강인 씨는 엄청 잘 썼잖아요."

"난 삐끗 안 할 거니까."

"비웃어주고 싶은데 그동안 본 게 너무 많아서 비웃을 수가 없네요. 그럼 비행 보조장치를 만들면 되죠."

"직접 만들어보던가요."

"나강인 씨가 도와주면 금방 개발할 거 같은데."

그건 AI 전지인에게 설계도가 없다.

"난 안 만들 겁니다."

"쳇."

나강인이 엔진 네 개를 보관용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어쨌든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시간 내서 테스트해봅시다."

스칼렛이 또 혀를 찼다.

"쳇. 엔진만 가져오면 결과를 바로 볼 줄 알았는데."

"왜 사장이 이걸 직접 가져왔어요? 안 바쁩니까?"

"겸사겸사 유나린 박사님도 보고, 나강인 씨도 보려고요. 그리고요."

그녀가 눈을 반짝였다.

"전술 비행 슈트는 로망이잖아요. 사람이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건 인간의 오랜 꿈이라고요."

"그냥 행글라이더를 타요."

그녀가 두 팔을 좌우로 뻗었다.

"난 공대 공순이라서 제트엔진이 달린 기계 날개를 원하거든요? 그것도 그냥 펼쳐져만 있는 게 아니라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진짜 날개를 원해요."

***

삼선 국회의원 김석명은 얼마 전에 마포 빌딩 파티에서 오르카 일당에게 붙잡혔다가 구출됐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을 구출한 요원은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우대해주지 않았다.

김석명은 구출된 사람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기자들에게 보여준 후에, 앞으로의 선거에서 그 일을 쭉 써먹으려 했다. 하지만 구출해준 요원이 협조하지 않아서 실패했다.

김석명은 그때부터 그 요원에게 앙심을 품었다.

게다가 그가 그때 그 요원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는 게 외부에 알려졌다.

그는 그것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다. 따로 조용히 돌려본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도 꽤 떨어졌다.

오늘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마주친 기자가 그날 일을 질문했다.

김석명은 기자에게 짧게 대답했다.

"어허. 그거 다 오해라니까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나."

"그날 용산에서 의원님이 보여준 모습이 인터넷에 생중계됐습니다. 그 영상을 본 사람이 많습니다만."

"현장에서 국회의원답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우연히 이상하게 찍힌 것뿐입니다. 그거 오해 맞아요."

망원렌즈로 찍은 그 영상에는 목소리가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김석명은 누가 그날 일을 물어볼 때마다 오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 현장에 있던 사람 중 몇 명이 인터넷에 당시 상황을 글로 올렸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그 특수요원한테 김석명이 막 소리를 지르더라니까요.

-소속이 어디냐고 소리를 지르는데, 누가 봐도 협박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 동네 국회의원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참고로 전 김석명 안 찍었습니다.

김석명이 인터넷 댓글을 분석한 보고서를 집어 던지며 화를 벌컥 냈다.

"이게 다 그 새끼 때문이야!"

보좌관이 김석명의 의원실에 들어오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김석명이 보좌관을 향해 삿대질했다.

"야! 넌 내가 시킨 일은 어떻게 됐어! 왜 보고를 안 해!"

보좌관이 얼른 대답했다.

"그게, 알아냈습니다."

"어? 그래? 들어와서 문 닫아."

보좌관이 김석명의 집무실 문을 닫았다.

김석명이 물었다.

"확실해?"

"예. 제가 인맥을 총동원해서 알아냈습니다."

"네 인맥이야? 내 인맥이야?"

"그게, 총동원해서…."

"알았어. 보고해."

보좌관이 숨을 고르고 말했다.

"이름은 나강인."

김석명이 처음부터 손을 흔들어 말을 끊었다.

"됐고. 어느 부대 소속이야?

보좌관이 머뭇거렸다.

"예? 어…. 그게요."

"내가 장군들한테 전화해서 혼쭐을 내줄 거야. 어디야?"

"저기, 그러시면 역풍이…. 아시다시피 그 사람의 인기가 상당해서요."

김석명이 짜증을 냈다.

"이 새끼가. 장사 하루 이틀 해? 군대에서 표 안 나게 내리 갈굼을 하면 되잖아!"

"그게…. 군인이 아닙니다."

"어? 아니야?"

김석명은 쉽게 납득했다.

"하긴. 인질 사건인데 처음부터 군대가 투입되면 좀 그렇지? 그럼 경찰이네? 경찰 장비가 너무 좋아진 거 아냐? 예산이 남아도나."

"경찰도 아닙니다."

김석명이 인상을 썼다.

"뭐야? 그럼 어딘데? 아. 정보기관 중에 있어? 음지에 있어야 할 놈이 왜 양지에서 날개를 달고 날아다녀?"

"다 아닙니다. 그게…."

"뭔데 이렇게 뜸을 들여?"

"민간인인데요."

김석명은 멈칫했다.

"뭐? 민간인이 왜 구출작전을…. 아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경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비밀 임무를 위해 일부러 퇴직시키고 민간인으로 만들었구만? 그래서 어디야? 국방과학연구소? 테스트 파일럿?"

"무술감독이랍니다."

"그럴 줄…. 뭐?"

김석명은 크게 당황했다.

"무, 무술감독? 야. 너 지금 무술교관하고 착각한 거 아냐?"

"교관 아니고 무술감독 맞습니다. 나강인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액션 대역배우도 하고, 무술감독도 한답니다."

김석명이 멍하니 있다가 화를 벌컥 냈다.

"그러니까 날 무시한 그 새끼가! 비밀요원이나 특수부대원이 아니라 딴따라였다는 거냐!"

"예. 그렇…."

"겨우 그런 새끼가 국회의원을 무시해? 어디서 일해? 방송국이야? 영화사야? 내가 사장한테 전화를 넣어서 잘라버리겠어!"

보좌관이 말렸다.

"의원님. 고정하십시오. 그러다 잘못하면 역풍이 붑니다."

"겨우 대역 배우 하나 자르는데 역풍이 왜 불어!"

"유명…."

"그 사건으로 유명해졌으면 뭐 어쩌라고! 그 새끼는 정체를 밝히면 안 되니까 헬멧 썼을 거 아냐! 잘려도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해!"

"그게 아니라, 유명한 무술감독입니다."

김석명이 멈칫하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명해 봤자 대역배우 아냐?"

"아닙니다. 업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무술감독이라고 들었습니다. 특히 싸움을 기가 막히게 잘한답니다."

"그, 그래?"

김석명은 그날 용산 건물 14층 파티장에서 나강인이 오르카 일당을 쓸어버리는 모습을 직접 봤다. 그렇게 잘 싸우는 사람을 김석명은 처음 보았다.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러다 국회의원의 자부심이 그의 어깨를 도로 쭉 펴게 했다.

"그러면 소속사 사장한테 전화해서, 그 새끼가 나한테 찾아와 머리 숙이고 사과하게 해야겠어. 그때 그 장비 다 착용하고 같이 사진도 찍어야지. 그 사진을 언론에 뿌리면 손해 본 건 복구되겠지. 그래서 그 새끼 어느 회사 소속이야?"

"프리랜서 무술감독이라 소속이 따로 없습니다."

"그럼 방송국이든 영화사든 주로 일하는 데서 일 안 준다고 하면 되잖아. 배고프면 숙이고 들어오겠지."

"나강인을 섭외하고 싶어 하는 영화사나 방송국이 워낙 많아서, 몇 개 막아봤자 표도 안 납니다."

김석명이 얼굴을 구겼다.

"뭐 그런 무술 대역이 다 있어?"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대단한 실력이 있는 놈이니까, 정부에서 전술 비행 슈트를 맡긴 거 아니겠습니까?"

보좌관은 그날 사람들을 구출한 요원이 나강인이라는 것만 겨우 알아냈다. 그 전술 비행 슈트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거기까지 조사하라고 지시받은 적도 없다.

"젠장. 그렇다고 그 새끼를 그냥 놔두라고?"

김석명은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손해 본 게 얼마인지 알아? 내 체면을 깎아 먹은 거라도 복구해야 할 거 아냐!"

"연예계에서 유명한 사람이라니까 아는 배우가 많을 겁니다. 잘못 건드리면 시끄러워집니다."

"나 김석명이야! 그런 놈들은 조용히 시키면 돼! 내가 참을 필요가 없…."

휴대폰으로 문자가 들어왔다.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대신 받아주는 전화가 아니라 그의 개인 전화다.

김석명이 화면을 힐끗 보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그가 문자를 확인했다.

"어떤 새끼…."

김석명의 표정이 굳었다. 문자메시지에는 네 자리 숫자만 적혀 있었다.

[2100]

"이건…."

이런 식으로 문자를 보내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이런 문자가 이 휴대폰으로 온 것도 처음이다. 원래는 대포폰으로 와야 한다.

그런데 그 대포폰은 꺼놓은지 꽤 됐다.

김석명의 눈빛이 흔들렸다.

‘차 이사?’

그가 대포폰을 켜지 않은 건 차 이사가 여러 기관에 쫓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다. 그는 그때부터 차 이사와 연락할 수 있는 대포폰을 꺼두었다.

‘쥐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외국으로 도망쳐야 할 놈이, 내 개인 휴대폰에 일부러 문자를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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