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투시
15인승 승합차가 새로 나타나 좁은 도로 한복판을 가로로 틀어막았다. 그런데도 나강인은 달리는 차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더 있을 줄 알았다. 방금 그 SUV 한 대만 왔을 리 없지."
두 차의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갑자기 15인승 승합차 중간의 슬라이딩 도어가 옆으로 벌컥 열렸다. 안에서 두 놈이 나강인의 차를 향해 권총을 조준하고 있었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경고했다.
-무장병력 둘 확인! 반자동권총입니다!
AI 전지인이 홀로그램으로 만든 붉은 직선 두 개가 적의 예상 사격 방향을 보여주었다. 그 라인은 정확히 나강인의 차와 겹쳤다.
-적 쏩니다!
나강인이 재빨리 몸을 옆으로 눕혔다.
거의 동시에 적이 방아쇠를 당겼다. 9mm 권총탄이 고속으로 날아와 차에 꽂혔다.
차체를 때린 총탄은 철판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나강인의 차는 철판 안쪽에 방탄판이 추가로 붙어 있다.
적의 총탄이 외부 철판만 긁으며 불꽃과 함게 튕겨 나갔다.
이 차는 라디에이터 그릴 안쪽에도 방탄 구조물을 설치했다. 그쪽으로 들어온 총탄도 구조물을 뚫지 못하고 저지됐다.
문제는 유리다.
이 차는 차체는 방탄인데 유리는 방탄이 안 된다. 자동차 앞유리에 총탄이 퍽퍽 꽂혔다.
앞유리 내부에는 인터넷에서 살 수 있는 방탄필름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름만 방탄필름이지 총탄을 막을 정도로 대단한 제품은 아니다. 차량 유리 안쪽에 접착식으로 붙이는 필름으로 완벽한 방탄 성능을 내는 건 어렵다.
적이 발사한 9mm 권총탄이 유리를 뚫고 필름까지 관통했다. 그 총탄이 차량 내부에 박혔다.
나강인이 방탄필름을 괜히 붙인 건 아니다. 권총탄은 방탄필름이 부착된 앞유리를 뚫고 지나가면서 에너지를 꽤 많이 소모했다. 차 내부에 박힐 때는 위력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그 필름은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서 차의 안쪽으로 뿌려지는 걸 막아주었다. 그게 그 필름을 붙인 가장 큰 이유였다.
승합차에서 사격하는 두 명은 나강인의 차를 향해 부지런히 방아쇠를 당겼다. 차체를 맞은 총탄은 불꽃을 뿌리며 튕겨 나갔지만, 유리에 맞은 건 모두 관통했다.
총알이 앞유리를 뚫고 지나갈 때마다 그 주변으로 균열이 쫙 퍼졌다.
방탄차의 앞유리에 총알구멍이 빠르게 늘어났다. 앞유리 전체가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이제 승합차에서는 방탄차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나강인이 몸을 옆으로 눕혀 피했다는 것도 적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한 놈이 말했다.
"해치웠나?"
나강인의 방탄차는 여전히 승합차를 향해 똑바로 돌진했다.
"아니야! 아직 살아있다! 더 갈겨!"
적들이 방탄차를 향해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이 차체를 때리고 유리를 뚫었다.
나강인도 바깥을 직접 볼 수는 없다. 그런데 그에게는 AI 전지인이 있다.
AI 전지인이 적과의 상대 거리를 계산해 외부 상황을 홀로그램으로 보여주었다.
나강인은 옆으로 누워서 바깥 상황을 홀로그램 이미지로 보면서 운전했다. 마치 바깥을 투시해서 보는 느낌이었다.
나강인의 방탄차와 승합차의 거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충돌합니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나강인 가속 페달을 꽉 밟았다. 니트로 부스터도 사용했다.
엔진에 더 많은 산소와 연료가 밀려들었다. 엔진이 비명을 지르고 RPM이 치솟았다. 무거운 방탄차가 급가속하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나강인의 차는 방탄판을 추가하고 차체를 보강하면서 다른 차보다 훨씬 더 무거워졌다. 그런 차가 이제 속도까지 빨라졌다.
승합차에서 사격하던 두 놈은 당황했다. 그들은 권총 따위로는 저 차를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정면에서 돌진하는 방탄차를 상대로 권총만 쏘고 있으면 죽는다.
그걸 깨달은 그들은 허겁지겁 옆으로 피했다. 한 명은 운전석으로 몸을 날렸고, 다른 한 명은 차의 맨 뒷좌석 뒤쪽으로 뛰어들었다.
그 직후에, 방탄차가 승합차의 옆을 들이받았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승합차의 옆면이 휴지처럼 구겨졌다. 그러고도 방탄차의 힘이 남아돌았다. 승합차가 쭉 밀려났다.
나강인이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승합차는 더 밀려나다가 도로 위에서 멈췄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아군 차량의 가속 구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처음부터 부스터를 써서 가속했으면 적 차량을 찢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넌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하고 그러냐."
-농담이십니까?
"당연히 농담이지."
나강인이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어쨌든 잡았으니까 됐…."
AI 전지인이 갑자기 경고했다.
-후방에 적 의심 차량 출현!
나강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SUV가 고속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그 차는 옆쪽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적 차량 확인! 조금 전에 도로 밖으로 밀어낸 차량입니다!
달려오던 적 SUV가 도로 중간에서 급정지했다. 타이어가 도로 위를 미끄러졌다. 곧바로 권총을 든 세 놈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적 무장 확인! 반자동권총입니다!
나강인이 차 안에 있는 스위치 중 하나를 켰다. 즉시 차 주변으로 연막이 쏟아졌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연막 교란장치가 가동됐습니다. 이게 다 돈입니다. 돈을 뿌리고 계십니다.
나강인은 운전석 문을 아예 활짝 열었다.
"요즘 돈 많이 벌었잖아. 펑펑 쓰자며?"
-이런 곳에 쓰자는 게 아니었습니다.
***
SUV에서 내린 세 놈은 당황했다. 그들이 나강인을 총으로 겨누기도 전에 연막이 쏟아졌다.
"연막이 갑자기 어디서 나온 거야?"
"저쪽 팀에 연막탄이 있었어?"
"장비는 우리랑 같으니까 저쪽도 연막탄은 없을걸?"
"그럼 저 연막은 뭔데?"
A팀 리더가 잠시 갈등하다가 외쳤다.
"씨발! 그냥 갈겨!"
"예? 저쪽 팀이 아직 저기에 있습니다. 지금 쏘면 우리 총에 맞…."
"봉고차 찌그러진 거 못 봤어? 그 팀은 다 죽었을 거야! 그냥 갈겨!"
"하지만…."
"이 새끼들이 왜 이렇게 멍청하게 굴어? 저 새끼는 보통 놈이 아니야! 정보가 잘못됐다고! 지금 못 잡으면 우리가 죽어! 갈겨!"
SUV 팀과 15인승 승합차 팀은 공동작전을 펼치긴 했지만 정식 동료는 아니다. 그들은 이번 의뢰에서만 손을 잡은 사이다.
팀 리더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한 명이라도 먼저 쏘면 나머지 놈들도 부담을 덜 받는다. 즉시 부하 두 명도 연막을 향해 사격했다.
권총 세 자루에서 9mm 총탄이 연달아 발사됐다.
나강인은 운전석 문을 활짝 열어놓고 차의 앞으로 이동했다. 적의 총탄이 날아오긴 했지만 차체는 물론이고 열어놓은 운전석 문의 방탄판조차 뚫지 못했다.
AI 전지인이 총탄이 날아오는 방향을 계산해 안전지대를 표시했다. 그 안전지대에 구겨진 15인승 승합차의 일부가 겹쳤다.
나강인이 자세를 낮추고 안전지대를 통해 승합차로 이동했다.
승합차에는 세 명이 타고 있었다. 한 명은 운전사였다. 셋 다 다쳐서 기절한 상태였다.
"살아는 있지?"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우리 차량의 가속 구간이 짧아 적이 죽지는 않았습니다.
"무기는?"
AI 전지인이 봉고차 내부를 확인한 후에 무기 위치를 따로 표시했다.
나강인이 승합차의 바닥에서 권총을 하나 주웠다. 그 권총은 차량 충돌로 기절한 놈이 쏘던 것이다.
탄창을 분리해 잔량을 확인했다. 네 발이 남아있었다. 약실에 있는 한 발까지 세면 다섯 발이다.
나강인이 권총에 탄창을 다시 삽입하고 돌아섰다. 연막이 심해 적의 모습이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적은 꾸준히 사격했다. 총탄이 연막을 뚫고 그의 옆으로 지나갔다.
"눈먼 총알에 내가 맞기를 바라나 본데."
AI 전지인이 총소리와 총탄의 탄착점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계산했다.
짙은 연막 너머로 사람 형태의 윤곽선 세 개가 보였다.
-눈은 저놈들만 멀었습니다.
나강인이 그중 하나를 향해 권총을 조준했다.
"당연하지. 나한테는 네가 있으니까."
***
SUV를 타고 온 놈들은 연막을 향해 열심히 사격했다. 하지만 총탄이 나강인에게 명중했는지를 알 수가 않았다.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리더가 먼저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뗐다. 그걸 본 다른 두 놈도 사격을 멈췄다.
SUV를 운전한 놈이 말했다.
"죽였나?"
갑자기 총소리와 함께 연막을 뚫고 총탄이 한 발 날아왔다. 그 총탄이 운전한 놈의 몸에 박혔다.
"켁!"
총에 맞은 놈이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당황한 리더가 소리를 질렀다.
"갈겨!"
남은 두 놈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이 연막을 향해 빗발쳤다.
갑자기 연막 속에서 총탄이 한 발 더 날아왔다. 이번에는 리더의 옆에 있던 놈이 총에 맞고 뒤로 나자빠졌다.
"커어억!"
리더는 겁을 먹고 방아쇠를 계속 당겼다.
"씨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보이기라도 하는…."
리더의 권총 슬라이드가 갑자기 뒤로 철컥 젖혀졌다. 그건 탄창이 완전히 비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리더가 급히 권총의 빈 탄창을 제거했다. 그런 후에 손으로 몸을 더듬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예비 탄창은 모두 차에 있다.
"아…."
당황한 그가 부하들을 보았다. 부하들의 옆에는 그들이 떨어뜨린 권총이 보였다.
‘저 권총을 집으면?’
그래도 나강인을 이길 자신이 없다. 이곳에 두 팀이 투입됐는데 지금 서 있는 건 혼자밖에 없다.
팀 리더는 급히 SUV로 뛰어갔다. 아직 차에 시동이 걸려 있었다.
그는 운전석에 올라타자마자 후진기어를 넣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여기서 빠져나가야겠….’
갑자기 총탄이 날아와 앞타이어를 터트렸다. 곧바로 한 발이 더 날아왔다. 다른 앞쪽 타이어도 터졌다.
이제 그 차로는 도망칠 수가 없다.
나강인이 연막을 헤치며 걸어 나왔다. 팀 리더의 눈에는 마치 연막이 알아서 나강인의 좌우로 쩍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리더는 겁에 질렸다.
"으, 으아…."
리더가 뒤를 재빨리 돌아보았다. 뒷좌석의 가방에 예비 탄창이 들어있다.
리더가 다시 앞쪽을 보았다. 나강인의 총구가 정확히 리더의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그걸 보자마자 예비 탄창을 포기했다.
나강인의 사격 실력은 방금 부하 둘이 총에 맞을 때 확실히 보았다.
‘연막 속에서 쐈는데도 원샷원킬이었는데….’
지금은 나강인이 연막 밖에 있고 거리도 더 가깝다. 지금 쏘면 빗나갈 리가 없다. 평범한 자동차 앞유리는 저 총탄을 못 막는다.
리더가 조용히 권총을 차 밖으로 던져버리고 두 손을 위로 들었다.
"항복합니다! 살려주십시오!"
"대가리 박아."
"예?"
"아니면 죽던가."
두목이 즉시 차에서 뛰어내려 머리를 땅에 박았다.
나강인이 휴대폰을 꺼냈다.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 상황을 수습하려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그렇다고 112부터 누르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이곳의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려면 나강인이 누구인지 알고 같이 작전도 뛰어본 사람이 필요하다.
나강인이 총권도 수련생 박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순기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하하하. 나 사범님. 제가 드래곤 윙 훈련 1단계를 성공한 건 어떻게 아시고 전화를 주셨습니까?
박순기는 하늘을 날고 싶다. 행글라이더가 아니라 엔진이 달린 날개를 달고 날고 싶다.
하지만 비행보조장치가 없는 드래곤 윙은 너무 위험하다.
그래서 나강인은 박순기에게 지상에서 하는 훈련부터 시켰다. 그것도 가장 기초적인 1단계부터 시작했다.
1단계 훈련에서는 오메가테크의 신경 신호 전달 시스템을 사용해 모니터 속 가상의 날개를 움직이는 연습을 한다.
진짜 날개를 지상에서 움직이는 연습은 1단계를 통과해야 시도할 수 있다. 실제 비행 연습 단계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
인공 근육을 사용한 의수는 연습 없이도 바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날개가 없다. 날개를 움직이는 감각을 모른다.
의수는 실수해도 되지만, 날개는 하늘에서 실수하면 추락한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은 날아서는 안 된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하다 보면 걷고, 뛰고, 그러다 날겠지요. 그때는 날개 하나만 멋진 거로 뽑아주세요.
"그건 그 단계까지 통과했을 때 이야기고요."
-그래도 저한테 가능성이 보이니까 이렇게 응원 전화를 주시는 거잖습니까? 하하하.
"오늘은 드래곤 윙 때문에 전화한 게 아닙니다. 일이 좀 생겼습니다."
박순기의 목소리가 즉시 진지해졌다.
-예? 어? 혹시 사건입니까? 누가 또 위험해진 겁니까?
"누가 위험한 게 아니라."
-휴우. 아니군요.
"나를 공격한 놈들이 있습니다."
박순기는 당황했다.
-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여섯 놈이 날 습격했습니다."
-겨우 여섯이서요?
"모두 권총으로 무장했습니다.
-겨우 권총으로요?
나강인이 스마트폰을 귀에서 떼고 눈으로 보다가 물었다.
"순기 씨. 내 걱정은 안 합니까?"
-그러게요. 아! 혹시 다 죽여버리신 건….
"다친 놈이 많으니까 구급차가 다섯 대 필요합니다."
-네? 여섯 놈이라고 하셨잖습니까?
"한 놈은 멀쩡하게 생포해서."
-아! 한 놈은 살려두셨군요!
"다른 놈들도 아직 안 죽었습니다. 내가 사람을 막 죽이고 다니진 않는다니까요. 항상 산 채로 잡았는데 말이죠."
-하, 하하. 알죠. 살려는 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