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 대책
나강인은 SUV와 15인승 승합차를 끌고 온 무장병력 여섯과 싸웠다. 그 전투에서 권총 탄창 다섯 개가 거의 빌 정도로 총탄이 발사됐다.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는 시골길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정도면 당연히 총소리를 들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
박순기가 말했다.
-제가 확인했습니다만, 신고가 들어온 게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지역 경찰서에 출동을 요청해야 했습니다.
"여기가 좀 외진 곳이긴 하지만 총소리가 수십 번이나 났는데 신고가 없다면, 이유가 있겠군요."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군부대 사격장이 있습니다. 그 동네 사람들은 총소리만으로는 신고하지 않습니다.
"이놈들이 일부러 그런 자리를 찾아서 나를 노렸다는 뜻이군요."
-예.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계획적으로 습격했습니다. 그런데 나 사범님을 상대로 겨우 여섯 놈만 간 걸 보면, 그 계획에 구멍이 많아 보이긴 합니다.
나강인이 통화를 마치고 현장을 확인했다.
세 놈은 15인승 승합차에 탄 채로 들이받혀 기절했고 두 놈은 총에 맞아 쓰러졌다.
땅에 머리를 박고 있는 놈도 하나 있었다. 나강인이 그놈에게 물었다.
"누가 시켰냐?"
"에이전트를 통해서 받은 일이라서 의뢰인은 잘…."
"에이전트는 어디 있냐?"
"모르겠습니다."
"아는 게 없네?"
"사, 살려주십쇼!"
"너희는 어디서 왔는데?"
"저희 팀은 태국에서 왔습니다. 저쪽 팀은 필리핀에서 왔다고 들었습니다."
"한국말 잘하네? 한국말에 능통한 놈들만 불렀나 보다?"
"그래야 조용히 들어왔다 나갈 수 있어서…."
잠시 후에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 차에서 경찰 두 명이 내리다가 현장을 보고 당황했다.
"어?"
그들은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자세한 것까지는 듣지 못했다. 이미 상황이 종료됐으니 먼저 현장에 가서 확인하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 보니 차 한 대는 박살이 나 있고, 한 대는 앞유리창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총격을 당했다. 그나마 멀쩡한 SUV는 앞타이어 두 개가 터지고 옆쪽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이건 어떻게 봐도 편안한 상황이 아니다.
경찰이 허리를 더듬었지만, 순찰차로 이동하던 도중에 연락을 받고 바로 오는 바람에 권총이 없었다.
그가 앞을 보았다. 나강인이 머리를 박고 있는 놈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두 명 중에 고참 경찰이 침을 꼴깍 삼킨 후에 나강인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기, 선생님?"
나강인이 상황을 설명했다.
"이곳에 매복한 적에게 기습당했습니다. 적 병력 여섯 명. 무장은 권총. 장비는 차량 두 대. 모두 진압했습니다."
"예? 혹시 어느 기관에서 일하시는…."
나강인은 민간인이다.
"여기서 밝힐 수는 없습니다."
경찰의 표정이 대놓고 밝아졌다.
"아! 비밀스러운 곳에서 일하시는구나!"
옆에 있던 후배 경찰이 무전으로 상황을 보고하고 대답을 들었다.
"본청에서 우리 쪽으로 협조하라는 지시가 직접 왔다는데요? 저분은 우리 쪽 사람이랍니다."
고참 경찰이 여유 있게 말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지."
"아닌 것 같…."
"쓰읍."
고참 경찰이 후배의 입을 다물게 한 후에, 장갑을 끼고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우러 갔다. 그 권총은 증거물이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 무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강인이 손을 뻗어 경찰을 제지했다.
"일단 정지하시죠."
"예?"
"저도 확인을 좀 해야 해서."
나강인이 박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찰 두 분이 오셨는데, 진짜 경찰인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제가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박순기가 잠시 후에 도로 전화를 걸었다.
-현장에 경찰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답니다. 진짜 경찰입니다.
나강인이 통화를 마치며 적 리더를 겨누던 권총을 내렸다.
"확인됐습니다."
고참 경찰은 이제 마음을 턱 놓았다.
"이야아. 진짜 우리 편이시네."
그들이 그러는 사이에 근처 군부대의 5분대기조가 현장에 출동했다.
나이가 20대 초반인 병사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거나 창백했다. 출동하면서 실제 총격전 상황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현장을 직접 보고 나서야 표정을 풀었다.
"휴우."
"실탄을 받았을 땐 테러리스트와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경찰관이 있는 걸 보면 다 끝났나 봅니다."
"나는 말년에 낙엽이 아니라 총탄을 피해야 하는 줄 알고 진짜 긴장했다."
구급차도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은 현장을 보고 많이 당황했다.
"어? 부상자가 왜 이렇게 많아?"
"한두 대로는 어림도 없겠는데요?"
"구급차 더 불러. 여러 병원에 분산해서 치료해야 할 수도 있어."
그 지역 경찰서 형사들도 도착했다.
"와…."
"여기서 전쟁이라도 터졌나?"
"바닥에 탄피 밟지 마라. 전부 다 증거품이다."
구급차가 부상자를 챙기고 형사들이 현장을 조사하는 사이에 박순기가 도착했다. 합수부 형사도 비슷하게 도착했다.
박순기가 현장을 보면서 물었다.
"나 사범님. 오면서 여기저기 상황정리를 하느라 아까는 제대로 물어보지 못했는데요. 이놈들 뭡니까?"
"외국에 사는 한국계 청부업자입니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최근에 입국했다더군요."
생포한 A팀 리더가 아까 그 정보를 털어놓았다.
이번에는 합수부 형사가 물었다.
"청부업자면 타깃이…."
"나를 노렸습니다."
박순기가 수갑을 차고 실려 가는 청부업자들을 보며 말했다.
"똥오줌 못 가리는 놈들이네요."
"내가 똥이나 오줌이군요."
"네? 아니, 그게 아니라, 지옥불에 뛰어든 불나방 같은 놈들이란 소리죠. 하, 하하."
박순기가 어색하게 웃다가 말을 돌렸다.
"그런데요. 지금까지 나 사범님과 싸운 놈들이 한둘이 아니긴 했지만요."
지금까지 나강인과 싸우다 잡힌 놈들은 많다.
그런데 그렇게 잡힌 놈들은 나강인을 직접 노린 건 아니다. 그놈들이 저지른 사건에 나강인이 우연히 말려들었거나, 그놈들 때문에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려고 나강인이 개입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나 사범님을 노렸단 말입니다. 이거 문제인데요."
합수부 형사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또 우리 일인 줄 알고 달려왔는데 상황이 더 심각하네요. 처음부터 선생님이 타깃이었다는 이야기는…."
나강인이 말했다.
"저에 관한 정보가 어디선가 샜다는 뜻이죠."
"합수부는 아닐 겁니다. 우리 말고도 선생님에 대해 아는 곳이 좀 있으니까요."
"압니다. 제 정보가 국가기밀은 아니니까요."
박순기가 말했다.
"그런데 저놈들은 왜 나 사범님을 공격했을까요? 이거 진짜 불나방 짓인데요."
합수부 형사가 대답했다.
"불나방 짓인 줄 몰랐겠지."
"하긴. 불을 봐도 타죽을 줄 모르고 다가가니까 불나방이죠."
합수부 형사가 상황을 추측했다.
"이런 일은 상대를 제거해서 큰 이익이 생길 때 저지르거나…."
"나 사범님을 공격해서 무슨 이익이 있는데요?"
"아니면 위협이 되니까 제거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나 사범님은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 소속이 아니잖아요. 주변 사람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먼저 나서서 수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요."
"우리가 부탁하면 도와주시잖아."
"아. 그건 그렇죠."
합수부 형사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혹시 경쟁 영화사나 드라마 제작사에서 손봐주려고 그런 거라면?"
"그런 곳에서 외국 청부업자를 불러서 습격해요? 말도 안 되죠."
"그것도 아니면, 남는 건 복수뿐인데…."
박순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가능성이 있네요. 나 사범님이 그동안 어디 한두 곳을 쓸어버리셨어야죠. 예전에 복수 핑계로 국내에 들어온 용병 놈들도 있었잖아요."
"그때는 말 그대로 핑계였지."
나강인이 말했다.
"범인은 내가 누군지 알아냈고, 내가 오늘 촬영장에 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그 정보를 수집해 이 청부업자들에게 전해준 놈이 있을 겁니다."
박순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은 일단 국내에 있는 놈이네요."
"그런데 그놈이 나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낸 건 아닙니다. 나를 잘 안다면 겨우 여섯 놈만 보내진 않았겠죠."
"그렇죠. 어떻게 겨우 여섯 놈으로 나 사범님을 노리는지. 이건 예의가 아니죠."
나강인이 계속 이야기했다.
"그 조사를 최근에 시작했다면, 시간이 부족해서 제한적인 정보만 겨우 알아냈을 겁니다. 그러면 왜 겨우 여섯 놈이 습격했는지 설명이 되죠."
"가장 최근 사건이면…. 용산 15층 빌딩의 오르카 사건?"
"그놈이 그때 누가 드래곤 윙을 조종했는지 조사했더니, 무술감독 나강인이란 이름이 나온 거죠. 그러면 평소에는 비무장일 거라고 판단했을 거고요."
박순기가 손뼉을 쳤다.
"아! 그래서 나 사범님이 촬영장에 가는 도중에 습격했군요! 이제 설명이 됩니다. 그러니까 용산 사건을 일으킨 놈이 나 사범님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하려고…. 어?"
박순기의 표정이 굳었다.
"그 사건을 저지른 건 오르카 조직인데, 시킨 놈은…."
"차 이사지요. 외국 용병을 이용하는 것도 차 이사 수법이고요."
"그럼 이 사건은…."
나강인이 설명했다.
"차 이사는 용산 사건과 같은 방법을 다음에 또 쓸 생각일 겁니다. 그때 내가 또 나타나면 방해가 되니까, 먼저 제거하려 했겠죠. 덤으로 복수도 하고. 나 때문에 다 망쳤다고 생각할 테니까."
"와. 차 이사 이 새끼. 막 나가네요."
"차 이사는 외국으로 튈 생각이고, 어차피 잡히면 끝장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대놓고 일을 저지르는 겁니다. 외국 청부업자는 차 이사가 국내에서 쫓기고 있다는 걸 모르니까 이용하기도 쉽고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요?"
"잡아야죠."
"하지만 차 이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다시 움직일 겁니다."
나강인이 현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도로 위에 차 세 대가 부서져 있었다. 두 대는 차체가 찌그러졌고 한 대는 유리에 총탄 자국이 수두룩했다.
"이미 막 나가는 놈입니다. 이번 한 번으로 안 끝낼 겁니다. 또 나를 노리겠죠."
***
삼선 국회의원 김석명이 차 이사와 통화했다. 통화에 사용한 휴대폰은 대포폰이었다.
김석명이 물었다.
"혹시 오늘 경기도에서 발생한 총격전, 차 이사가 한 겁니까?"
-내가 처리하겠다고 했잖습니까?
김석명이 따졌다.
"그랬지요. 내가 정보만 알아다 주면 차 이사가 완벽하게 해결한다면서요?"
오늘 습격한 청부업자들은 김석명이 동원한 게 아니다. 그는 차 이사가 나강인을 제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쓸지는 몰랐다.
그는 나강인에 관한 정보만 알아다 주었다. 오늘 경기도에 있는 드라마 촬영장에 나강인이 온다는 걸 알아낸 건 김석명의 보좌관이다.
그런데 갑자기 경기도에서 총격전이 있었다는 기사가 떴다. 그걸 본 김석명은 뜨끔해서 차 이사에게 연락했다.
김석명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건 선을 넘었잖아! 너무 대놓고 사고를 쳤다고! 이러다 걸리면 난 어떻게 하라고!"
-선은 이미 넘었을 텐데?
"뭐?"
-용산 15층 빌딩 사건 때, 그 파티 정보가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한 겁니까?
"내가 뭘 어쨌다고! 난 그때 그냥 그런 파티가 있다고 알려준 것뿐이야! 건물 도면 같은 건 준 적이 없다고!"
-건물 도면이야 작전에 추가로 필요하니까 나중에 따로 입수한 거지만, 그 회사가 거기서 파티를 한다는 정보를 준 건 의원님입니다만?
"차 이사. 지금 뭐하자는 거지? 날 협박하는 거요?"
-의원님. 걱정하진 마십시오. 나 차 이사입니다. 내가 고객 정보를 얼마나 확실히 보호하는지 잘 알잖습니까? 이건 그냥 알고 계시라고 설명한 겁니다.
김석명이 휴대폰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가….’
기분이 더러웠지만 발을 빼기엔 일이 너무 커졌다.
"끄응. 그럼 이번 일은! 일단 시작을 했으면 성공을 해야지! 그놈을 완벽하게 해결한다더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뉴스에서는 습격한 놈들이 전멸했다는데!"
-오늘 붙잡힌 놈들이 어떤 상황인지 의원님이 좀 알아볼 수 있습니까?
김석명이 화를 냈다.
"지금 그랬다가는 의심만 사! 내가 관계자라고 자백하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하긴.
"그래서 이제 어쩔 겁니까?"
-그러면 꼬리를 잘라야겠는데….
"무슨 꼬리?"
-경찰은 나강인이 그 시간에 그곳을 지나간다는 걸 누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조사할 겁니다.
김석명은 멈칫했다. 그 정보는 김석명의 보좌관이 알아왔다. 차 이사가 말하는 꼬리는 보좌관이다.
‘가만? 나도 이놈한테는 잘라낼 꼬리 아냐? 보좌관으로 해결이 안 되면 나도 자르려고 들까?’
차 이사는 외국에서 무장 청부업자를 불러들여 습격하는 놈이다. 차 이사가 김석명을 제거하려고 들면 평범한 경호원으로는 막기 어렵다. 그렇다고 경찰에 자수하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
그는 이번 일에서 손을 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차 이사가 고객 정보를 확실히 보호하는 건 알지만, 과연 붙잡힌 후에도 그럴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예전 일들은 적당히 둘러대면서 주변 인맥과 삼선 국회의원의 권력을 이용하면 덮을 수는 있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일어난 일들은 덮기 어렵다. 차 이사가 경찰에 붙잡혀서 최근 일을 터트리면 예전 일도 같이 터진다.
차 이사가 체포되면 김석명도 끝장난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먼저 끝장나도 차 이사는 끝장이 안 나네? 난 차 이사의 얼굴을 모르니까 나만 너무 불리한데?’
삼선 국회의원 김석명은 대책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