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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372화 (372/411)

372. 트랩

나강인의 차는 총탄을 수십 발은 맞았다. 그 차는 경찰이 증거품으로 가져가서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이튿날 나강인이 드라마 촬영장에 있는 신은하와 통화하며 말했다.

"당장 탈 차를 한 대 사야겠어."

-드디어 차 바꾸는 거야? 나도 같이 가. 이번에는 내가 차를 골라줄게.

"너는 당분간 조심하라는 말을 벌써 까먹었냐? 네가 날 따라오면 되겠어?"

-아니, 그래도….

"촬영하느라 바쁘잖아. 일해라. 돌아다닐 때는 혼자 다니지 말고"

-영석이 데려왔어. 얘가 알맹이는 실속 없는 관종이지만 겉모습은 싸움 잘하게 생겼거든.

"잘했다. 용돈을 줘서라서 당분간 데리고 다녀."

-강인 오빠도 이번에는 좀 좋은 차 사. 새 차를 사도 또 개조하겠지만, 기왕이면 와꾸가 좋은 차가 좋잖아.

"너 얼빠였냐?"

-아니, 무슨 차 사는데 얼빠를 따져! 예쁜 차! 멋있는 차! 그건 그냥 취향이라고!

"이번에 사는 차는 개조는 별로 안 할 거야."

-응? 진짜?

"오래 탈 차가 아니라서."

-그렇구…. 아니,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차를 사는데 오래 안 탈 거라고? 혹시 원래 그 똥차를 고쳐서 또 타려는 건 아니지?

"어…."

-맞네! 기왕 차를 바꾸는데 왜? 그 차는 진짜 자동차계의 힘순찐이잖아!

"힘을 숨긴 좋은 차라는 거지?"

-그 차는 겉모습이 찐따라고!

"오후에 갈 테니까 촬영 잘해라."

나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사려는 차는 중고차다.

새 차는 사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는 당장 탈 수 있는 차가 필요했다.

지금 보는 차는 타이어가 커다란 SUV였다. 그 SUV는 연식이 10년이 훨씬 넘고 주행거리도 20만을 넘었다. 대신에 가격이 쌌다.

"400만 원이라…."

중고차 딜러가 말했다.

"이 차가 참 많이 팔려서 오래 타셔도 부품 구할 걱정은 없습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활동 자금이 술술 새고 있습니다. 더 싼 차도 있습니다.

"누가 봐도 어색하지는 않아야지. 이 차로 하자."

중고차의 장점 중 하나는 그 자리에서 몰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차를 사서 중고차매장을 빠져나왔다. 그런 후에 곧바로 제작 거점으로 이동했다.

나강인이 도로를 달리며 물었다.

"미행은?"

-없습니다.

"아쉽네."

-그러게 말입니다.

그는 제작 거점에 가서 그 차에 방탄판을 달았다. 그렇다고 예전 차처럼 전체를 방탄으로 만든 건 아니다. 이번에는 운전석을 보호하는 몇 곳에만 방탄판을 설치했다.

이번에는 급가속 장치 같은 건 달지 않았다.

방탄판을 몇 개 달았더니 차가 무거워졌다.

-차량 무게 증가로 차체에 부담이 걸렸습니다. 운동성능이 하락했습니다.

"굴러는 가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됐어."

차에 다른 장치는 안 달았지만, 감지장치와 통신장치, 초단거리 통신방해장치는 신경 써서 설치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촬영 스케줄을 지키려면 슬슬 출발하셔야 합니다.

"가자."

나강인이 조금 개조한 SUV를 타고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바보의 사랑’은 오늘은 경기도 양평에서 촬영하는 중이다.

나강인이 촬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임시주차장에 차를 세워놨다.

신은하는 나강인을 보자마자 무슨 차를 샀는지부터 물었다.

그녀는 차종과 연식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지난번 똥차보단 낫지만…. 너무 오래됐잖아. 슬슬 폐차장 알아봐야 하는 연식 아니야?"

"오늘 몰아보니까 잘 굴러간다."

"강인 오빠. 예전에 번 돈은 다 연구비로 쓴 거 아는데, 요즘 돈 다시 많이 벌었잖아. 진짜 그런 차를 꼭 샀어야 했어?"

"잠깐 탈 거라니까?"

"잠깐 타고 나서 그 똥차로 돌아갈 거잖아."

김유찬이 다가왔다.

"난 강인 씨의 원래 차도 좋던데요. 보라가 납치됐을 때 우리가 그 차 타고 추격전도 했잖아요. 나한테는 추억이 많은 차인데."

"유찬 씨가 차를 좀 아네요."

"흐흐흐. 원래 차 폐차하지 말고 나한테 넘겨요. 내가 기념으로 보관하게요."

신은하가 발끈했다.

"지금 둘이서 뭐하는 거지? 유찬 오빠. 나랑 같이 편 먹고 좋은 차 사라고 졸라도 부족할 판에 왜 이래요? 이러면 강인 오빠가 진짜로 그 차 고쳐서 다시 탄다니까요?"

김유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차는 총을 많이 맞았다던데 고친다고 해서 다시 탈 수 있어?"

신은하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뉴스 봤지."

"뉴스에 강인 오빠 이름은 안 나왔는데요?"

김유찬이 피식 웃었다.

"무장 괴한 여섯 명을 총격전으로 잡았는데 우리 쪽 인명피해는 전혀 없다더라. 사건이 벌어진 위치가 우리가 그날 촬영한 곳에서 멀지 않았는데, 강인 씨는 그날 다른 사람 차 타고 왔잖아. 그럼 그림 딱 나오지."

"쳇. 나만 아는 줄 알았더니, 유찬 오빠가 알 정도면 눈치챈 사람이 한둘이 아닌가 보다."

나강인은 그의 촬영 스케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그는 촬영 순서를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배우들과 함께 액션을 찍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가 맡은 액션 부분을 다 찍고 나서도 촬영장을 떠나지 않았다.

최진욱 피디가 물었다.

"강인 씨. 오늘은 오래 계시네요?"

"시간이 좀 남아서요."

"흐흐. 그러면 간단하게 회의 좀 할까요? 옥상에서 전투 헬기로 적을 쓸어버리는 장면 말입니다. 거기 CG가 들어가야 하는데 좀 도와주세요."

"직접 구르면서 싸우는 장면이 아닌데 굳이 제 의견을 들으실 필요가 있습니까?"

최진욱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매트로폴리스 헌터의 한강공원 촬영 때 현장에서 CG를 짜주셨다면서요. 소문 들었거든요."

"최 피디님이 미국에도 인맥이 있으셨나요?"

"알레이나 씨한테 들었죠. 자랑 엄청 하던데요?"

알레이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 드라마에 출연한다.

"알레이나는 그날 거기 없었는데…."

"앤서니 피트 감독한테 들었다던데요?"

"아아."

"우리도 도와주시는 거죠?"

"매트로폴리스 헌터는 이미 A안과 B안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C안을 제안해본 겁니다."

"알레이나 씨의 말로는 미국에서 C안을 채택할 분위기랍니다. 그래서 말인데."

최진욱이 이 드라마의 옥상 전투에서 CG로 처리할 부분의 콘티를 보여주었다.

"할리우드 감독이 기존 계획을 날려버리고 채택하게 한 그 감각으로, 우리 CG도 좀 도와주세요."

나강인의 휴대폰으로 신호가 들어왔다. 그가 휴대폰에 들어온 정보를 확인했다.

그 정보는 차에 설치한 감지장치가 발신한 것이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미끼를 물었습니다.

"삼킬 시간을 줘야겠네?"

AI 전지인이 말했다.

-공중 포격 지원이 또 제 전문분야 아니겠습니까? CG 작업을 도와주시죠.

나강인은 주차장에 미끼를 뿌려놨다. 고기가 미끼를 삼킬 때까지 기다리려면 여기서 시간을 좀 보내야 한다.

"그럼 좀 볼까요?"

나강인이 콘티를 훑어보았다. 그중에는 이미 작업 중인 CG의 사진도 있었다.

"음…."

AI 전지인이 불평했다.

-이대로 하면 조악한 수준의 CG가 나올 겁니다.

"이건 좀…."

AI 전지인이 대본을 바탕으로 옥상 전투에 맞는 홀로그램 CG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기존에 작업 중인 CG는 버리지 않고 수정해서 재활용했다.

"스케치북이…."

최지욱이 얼른 조연출에게 손짓했다. 조연출이 즉시 스케치북과 컬러 펜을 가져왔다.

"16색?"

"방송국 문구점에서 색이 많은 거로 샀습니다."

"네, 뭐. 디테일한 색 선정은 CG 업체에서 알아서 하면 되니까."

그는 AI 전지인이 보여주는 홀로그램 CG를 스케치북에 옮겨 그렸다.

"기존에 작업한 건 이렇게 고치는 게 낫고요, 아직 작업하지 않은 이 콘티는 이렇게 갈아엎는 게 어떨까요?"

"오! 그림만 봐도 되게 박진감이 넘칩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AI 전지인이 손의 움직임을 보조했다.

나강인이 그림 몇 장을 쓱쓱 그렸다.

"이런 식으로 하면 CG 제작 기간도 단축할 수 있을 겁니다."

나강인이 스케치북을 넘겨주며 말했다.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이제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요."

최진욱이 스케치북을 조심해서 챙기며 일어섰다.

"아유. 그러면 가셔야죠. 이건 CG 업체에 넘겨서 이대로 작업해달라고 하겠습니다."

"그냥 참고만 하셔도 되는데."

"도 작가랑 먼저 이야기해봐야 하는데, 분명히 이대로 가자고 할 겁니다. 제가 도 작가 취향을 잘 알거든요. 하하하."

***

나강인이 촬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적한 임시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뭘 손댔을까?"

그는 차에 감지장치를 설치해두었다. 누군가 차에 손을 대면 감지장치가 반응한다.

그 장치는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게 숨겨뒀기 때문에 영상 정보를 얻을 순 없다. 대신에 차체에 뭔가가 달라붙는다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누군가 차량 하부에 뭔가를 설치했습니다.

"추적장치야?"

-확인이 필요합니다.

나강인이 그의 차 옆으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발등에 손거울을 슬쩍 떨어뜨렸다.

거울에 차량 하체의 모습이 보였다. 나강인이 발등을 슬쩍 움직여 거울에 하체 여러 곳이 보이게 했다.

AI 전지인이 그 손거울에 비치는 상을 즉시 확인해 홀로그램 3D 이미지로 만들었다. 그 이미지에는 외부 물체가 다른 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기존에 없던 물건을 찾아냈습니다. 가느다란 선이 구동축과 연결된 것으로 보아 추적장치일 확률은 낮습니다. 차가 출발하면 터지는 폭탄일 확률이 높습니다.

"추적장치를 붙일 줄 알았는데…."

그는 적이 추적장치를 붙이게 하려고 일부러 이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았다. 적이 추적장치를 이용해 그를 미행하면, 적당히 유인하다가 상대를 역추적하려고 했다.

그렇다고 폭탄을 대비하지 않은 건 아니다. 차가 폭발하면 손해라도 줄여보려고 일부러 오래된 중고차를 샀다.

"대놓고 폭탄을 붙였단 말이지. 이놈들 세게 나오는데? 뒷일은 생각하지도 않아."

-뒷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놈의 짓입니다.

"다른 놈들은 경찰이 작정하고 수사하는 게 무서워서라도 이렇게까지 안 해. 하지만 차 이사는 다르지. 이미 너무 크게 저질러놔서, 차 한 대 더 터트려도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나강인이 주변을 쓱 보았다.

"폭탄이 터지는 걸 확인하려는 놈이 근처에 있겠네?"

-주차장 반대편 끝에서 수상한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아까 이곳에 주차할 때는 없던 차량입니다.

"몇 놈이나 있냐?"

-시각 정보를 재처리했습니다. 유리의 틴팅이 진한 편입니다만, 두 명의 윤곽을 포착했습니다.

"저 두 놈을 추적하려면 폭탄부터 해결해야겠지. 지인아. 이 폭탄을 해체할 방법은?"

-간단한 구조의 폭탄입니다. 10초면 됩니다.

적 차량은 반대쪽에 있다. 나강인이 몸을 숙이면 적 차량은 그가 뭘 하는지 볼 수 없다.

나강인이 주머니에서 맥가이버 칼을 꺼내며 지갑을 떨어뜨렸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져서 지갑을 떨어뜨렸네!"

그가 몸을 아래로 숙이며 말했다.

"폭탄부터 해체하자."

***

주차장 반대편 구석에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차 유리의 색이 짙어서 밖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대낮에는 내부에서 밖이 잘 보였다.

그 차에서 청부업자 두 명이 나강인의 차를 감시했다.

그들은 나강인이 SUV의 옆에 서는 걸 보고 말했다.

"타깃이 차에 도착했다."

둘 다 청부업자이지만 하는 일은 분업이 되어 있었다. 한 놈이 의뢰를 받고 암살 계획을 세우면, 다른 놈이 폭탄이나 총으로 타깃을 죽였다. 그들은 서로의 일을 기획과 현장이라고 불렀다.

나강인의 차 운전석 아래에 있는 폭탄은 현장 담당인 청부업자가 설치했다.

기획 담당자가 확인을 위해 물었다.

"폭탄은 확실히 터지겠지?"

"차가 출발하면 바퀴 축에 감아놓은 선이 당겨지는데, 그러면 폭탄이 잠시 후에 터져. 수류탄이 안전핀을 뽑으면 터지는 것처럼 몇 초 후에 확실히 터진다."

이번에는 현장 쪽에서 물었다.

"이 차가 추적당하진 않겠지?"

"대포차다. 흔한 차종이라 조금만 조심하면 추적이 불가능해. 추적한다 해도 그때는 이미 저수지에 버렸을…. 어? 저놈이 몸을 숙였다!"

"어어?"

"뭐지? 설마 폭탄을 눈치챘나? 그러게 눈에 안 보이게 잘 설치했어야지!"

"방금 지갑을 떨어뜨렸다고 말했지?"

"아. 그 말이 그거였나?"

"아무런 전조도 없이 내 폭탄을 눈치챌 수는 없어. 밑을 들여다보지도 않았잖…. 다시 일어났다!"

"설마 그사이에 폭탄을 해체한 건 아니겠지?"

현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겨우 10초 만에 내 작품을 해체하는 건 폭탄 해체의 신이 와도 불가능해."

"하지만 지갑을 그냥 줍는 것치고는 오래 걸렸는데?"

"지갑이 떨어지면서 차 밑으로 들어갔겠지."

"지갑을 줍다가 폭탄을 발견했으면…."

"느긋하게 지갑의 먼지를 털잖아. 폭탄을 못 봤으니까 저러는 거야. 그냥 팔을 차 밑으로 넣어서 더듬었겠지."

"기다려보면 알겠지. 폭탄을 본 건지, 아니면 단순히 지갑만 주운 건지."

나강인이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 타는 모습이 보였다.

"차에 탔다. 폭탄을 봤으면 차에 탈 리가 없어."

"지갑만 주운 게 확실하군."

"이제 저 차가 출발하면 3초 후에 터진다."

"확실히 제거할 수 있겠지?"

"엉덩이 밑에서 폭탄이 터졌는데도 안 죽으면 사람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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