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75화 (375/411)

375. 연기 III

청부업자 두 명은 차 이사에 관한 정보를 아는 대로 털어놓았다. 제대로 된 정보만 말한 게 아니라 소문으로 슬쩍 들은 것이나 단순한 추측까지 다 이야기했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복수 때문이다.

‘차 이사가 나를 제끼려고 해? 그럼 너도 당해야지!’

‘차 이사는 집요한 놈이라고 들었어. 내가 안전하려면 그놈도 잡혀야 해.’

그들은 차 이사가 제공한 나강인에 관한 정보도 털어놓았다. 이미 없애버린 문서의 내용을 열심히 떠올려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그 문서에는 드라마 촬영 스케줄만 있었다.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역시 차 이사의 정보력은 쪼그라든 상태야."

-정보 획득 수단이 한 곳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거래하던 상대들이 다 손을 떼서 나에 대해 알아볼 놈은 하나 정도 남아 있는 거겠지."

-정보제공자를 찾아야 합니다.

"내 양쪽 스케줄을 다 알아본 사람들을 찾아보면 용의자를 꽤 줄일 수 있겠지."

***

현장에 경찰차가 여러 대 도착했다.

박순기가 청부업자들의 앞에서 나강인에게 말했다.

"아까는 가짜 경찰이었지만 이번엔 진짜 경찰이 맞습니다. 제가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차 번호까지 미리 확인했으니까 확실합니다."

도착한 경찰이 청부업자 두 명에게 수갑을 채웠다.

암살을 담당하는 청부업자는 오른손은 총에 맞고 왼손은 부러지고 발목도 다쳤다. 그가 비명을 질렀다.

"구급차! 구급차를 불러줘!"

이놈들이 살인 청부업자라는 건 형사들도 안다. 형사들이 그 청부업자를 확실히 제압해 끌고 가며 말했다.

"근처에 올 수 있는 구급차가 없다. 병원에는 들를 테니까 일단 타라."

현장 담당 청부업자는 경찰 승합차로 끌려갔다.

기획 담당 청부업자가 그 모습을 보며 머뭇거렸다.

그는 동료가 끌려가서 경찰 승합차에 타자마자 나강인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할 말이 있습니다만?"

조금 전까지만 하도 삐딱하던 말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공손했다.

형사들이 그놈도 끌고 가려고 다가왔다. 박순기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나강인이 기획 담당을 조금 옆으로 데려갔다.

"왜?"

기획 담당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는 사람을 죽인 적이 없습니다."

"믿을 소리를 해라."

"정말입니다. 전부 다 저놈이 죽였습니다."

"응?"

"저는 누가 의뢰를 하면 전달만 해주는 단순 중개업자입니다. 진짜 킬러는 저놈입니다."

박순기가 옆에서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와. 이 새끼 쓰레기네. 너 지금 동료를 파는 거냐?"

"저놈과는 일 때문에 만난 사이일 뿐입니다. 저놈이 진짜 나쁜 놈입니다."

"너는 좋은 놈이고?"

기획 담당의 표정이 굳었다.

"저는 저놈의 죄를 고발하는 협조자입니다."

"알아. 감탄해서 그래. 일단 차에 타라. 너랑 일로 만났다는 나쁜 동료가 널 의심하겠다. 경찰서에 가서 마저 이야기해."

형사들은 청부업자 둘을 분리했다. 기획 담당은 다른 경찰차에 태워져 현장을 떠났다.

나강인이 물었다.

"저런 놈 많죠?"

박순기가 대답했다.

"잡히면 배신하는 놈이요? 당연히 많습니다. 저런 놈에게 동료라는 건 자기한테 이익이 될 때만 가치가 있으니까요."

나강인이 멀어지는 경찰차를 보며 말했다.

"저놈들은 뜨내기가 아니라 베테랑 킬러입니다. 폭탄을 잘 쓰는 놈들을 찾아보면 뭔가 나올 겁니다."

"인터폴에 의뢰하든 경찰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돌리든 저놈들의 정체를 반드시 알아내겠습니다. 교도소에서 영원히 못 나오게 해야죠."

청부업자들을 태운 차가 현장을 떠난 후에, 그들은 한쪽에 세워놓은 다른 경찰차로 갔다.

그 경찰차가 제일 먼저 이곳에 도착했다. 그 차의 뒷좌석에는 경찰 정복을 입은 두 사람이 누워 있었다. 그들은 아까 박순기가 진짜 경찰인지 확인하겠다고 하자마자 총을 뽑으려다가 나강인에게 맞아 날아갔다.

나강인이 뒷좌석 문을 열며 말했다.

"그놈들은 보냈습니다.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뒷좌석에 누워 있던 두 사람이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을 일으켜 차에서 내렸다.

"아. 끝났습니까? 누워 있기 지루했습니다. 하하."

"시트에 누워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면, 바닥에 누워 있던 나는요? 아오. 허리야."

그들은 아까 가짜 경찰인 척한 진짜 경찰이다. 총소리를 듣거나 신고를 받고 온 것도 아니다. 박순기가 부탁해서 온 형사들이다.

나강인은 아까 이 단독주택으로 가면서 박순기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청부업자들 앞에서 가짜 경찰 역할을 연기할 사람이 필요했다.

박순기는 즉시 아는 형사들에게 정복을 입고 와서 가짜 경찰인 척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청부업자들은 차 이사가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차에서 내린 형사가 웃으면서 나강인에게 말했다.

"와. 아까 제가 뒤로 날아갈 때는 진짜로 때리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땅에 떨어질 때 하나도 안 아프더라고요. 옷에 흙만 좀 묻었죠. 정말 기가 막히게 날리시던데요?"

"가짜 경찰 연기를 너무 자연스럽게 하셔서 배우인 줄 알았습니다."

형사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사실 제가 꿈이 배우였습니다. 여자친구가 갑자기 와이프가 되어서 그 꿈은 접었지만요."

박순기가 옆에서 설명했다.

"우리 팀원에게 들었는데 취미로 사회인 연극을 하신다더라고요. 그런 분이 근처에 계시다고 해서 얼른 연락드렸죠."

"아. 그러시구나. 잠시만요."

나강인이 조금 옆으로 가서 최진욱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강인 씨? 가신 줄 알았는데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오늘 보니까 대본이 또 수정됐던데, 거기서 형사들이 출연하는 장면 말입니다. 그거 누가 맡을지 정해진 겁니까?"

-어…. 그게요. 우리가 제일 부족한 게 시간이잖습니까?

나강인 덕분에 액션에서 촬영시간을 많이 절약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긴 여유 시간 중 일부는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최소한의 휴식을 보장하는 데 써야 한다. 휴식 없이 계속 강행군하면 사람이 쓰러질 수도 있다.

게다가 도주희는 액션을 보고 영감이 떠올랐다면서 대본을 종종 수정했다. 그걸 고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시청률이 잘 나왔기 때문이다.

최진욱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졌다.

-형사가 나오는 장면은 오늘 대본이 수정되면서 추가됐는데, 배우를 새로 찾을 시간이 없어서 아직 미정입니다. 오늘 당장 뽑아야 하는데 말이죠.

"현직 형사인데 꿈이 배우인 분이 있습니다."

최진욱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어? 그래요? 연기는 좀 합니까?

"제가 확인했는데 일단 가짜 형사 연기를 진짜처럼 잘합니다."

-진짜 형사니까 현실감 있겠는데요? 자문을 따로 구할 필요도 없고요.

"싸우는 연기는 액션 배우처럼 잘하고요."

-이야아. 그런 분이면 우리야 진짜 좋죠!

"그런데, 현직 형사가 우리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습니까?"

-소속 기관장한테 허락을 받으면 됩니다. 경찰 홍보에 도움이 될 일을 거기서 거절할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됩니다.

나강인이 최진욱에게 몇 가지를 더 물어보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후에 오늘 일을 도와준 형사에게 걸어갔다. 그는 박순기와 오늘 체포한 청부업자가 어떤 놈들인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강인이 형사에게 물었다.

"바보의 사랑 아시죠?"

"당연히 알죠. 우리 와이프가 그 드라마에 푹 빠져 있습니다. 김유찬 팬이거든요."

"거기에 형사 두 명이 출연하는 장면이 있는데, 해보실 생각이 있으신지?"

"에이. 당연히 하고 싶지만 그런 일이 어떻…."

형사가 말을 하다 말고 눈을 껌뻑였다. 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 진짜 그 드라마에요? 그런 인기 드라마에 저희가 어떻게 출연한다는 겁니까? 방송국이 뭐가 아쉬워서요?"

"마침 딱 좋은 배역이 비어 있는데 배우가 아직 안 정해졌습니다. 피디님에게 배우가 꿈이었던 현직 형사는 어떠냐고 했더니 무척 좋아하시네요. 형사 연기가 참 리얼할 거라면서요."

형사가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와아…. 이거 우리 와이프가 알면 비명 지를 텐데…."

"사모님의 허락을 받으셔야 하나요?"

"허락이요? 아뇨. 좋아서 비명을 지르면서 방방 뛸 겁니다."

"그 배역에 형사의 여자친구 역할도 있던데요. 대사는 한 마디밖에 없지만요. 혹시 사모님도 동반 출연이 가능하십니까?"

형사가 입을 쩍 벌리다가 이게 진짜라는 걸 깨닫고 활짝 웃었다.

"으하하하! 우리 와이프 기절하겠네요! 당연히 가능하죠!"

형사가 즉시 아내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멈칫했다. 아직 완전히 믿어지지는 않았다.

"저기, 그런데 요원님은 그 드라마 피디님하고 어떻게 아시는지…. 와이프한테 큰소리쳐놨는데 출연이 무산되면 저는 당분간 맨밥에 김치만 먹어야 합니다."

"제가 그 드라마의 무술감독인데요."

"헉! 싸인 좀!"

"예?"

"아, 아닙니다. 근데 진짜입니까? 진짜 무술감독님이십니까?"

"아까 뒤로 날아가서 땅에 떨어질 때의 모습이, 드라마에서 보던 거랑 비슷하지 않습니까?"

형사가 아까 일을 떠올렸다. 나강인이 주먹으로 치는 척하며 손바닥으로 밀었다. 뒤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아! 진짜 그 명품 무술감독님이시군요!"

"배역 이야기는 이미 피디님과 이야기했습니다. 사모님만 좋다고 하시면 진행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형사가 즉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가고 나서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왜?

형사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영아! 너 나랑 드라마 나가자. 으하하하!"

아내의 목소리는 시큰둥했다.

-왜? 사회인 연극에 사람이 부족하다니? 머릿수 채워줄 사람이 필요해?

"그 연극 이야기가 아니야. 바보의 사랑 알지? 그 드라마에 출연하자."

그의 아내가 조금 걱정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기 혹시 나쁜 놈들한테 머리 맞았어? 칼에 찔린 건 아니지? 지금 공중전화에 기대서 전화하는 거 아니지?

"네 머릿속이 드라마구나. 그게 아니라 내가 오늘…."

아내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면 또 뭘 질렀는데? 택배 오늘 도착하니? 도대체 뭘 샀는데 이렇게 떡밥을 깔아? 설마 그 카메라 진짜로 질렀니?

형사는 오늘 사건을 아내에게 설명할 수 없다. 아직 공개하면 안 되는 정보이기도 하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 말해봤자 걱정만 한다.

"내가 오늘 바보의 사랑 무술감독님을 만났는데."

-너 집에 돌아오면 죽는…. 어? 누굴 만나?

"내 연기에 감동했다면서 ‘우리 드라마에서 형사 역할을 한번 해보지 않겠나?’라고 하시네?"

휴대폰에서 잠시 숨소리만 들리다가 목소리가 나왔다.

-지, 진짜야?

"당연히 진짜지!"

-엑스트라야? 아니, 엑스트라라도 그게 어디야!

"어? 어…. 출연 분량이…."

나강인이 손가락 열 개를 다 펴며 입으로 작게 말했다.

"십 분."

"헉!"

-왜 그래?

"그 드라마에 십 분은 나올 거야. 으하하하!"

-어머! 잘됐다! 진짜 축하해!

"너도 같이 나가자니까?"

-으응?

"형사 아내 역할도 있대."

-지, 진짜? 나, 나는 연기는 자기 할 때 땜빵만 해봤는데?

"무술감독님이 너도 나와도 된다고 하셨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다 알아서 하시겠지. 너만 좋다고 하면 나올 수 있대."

-꺄아! 당연히 나가야지!

나강인이 한마디 더 했다.

"김유찬 씨와 만나는 부분도 있습니다."

"헉! 우리가 김유찬 씨랑 같이 연기할 거라는데?"

-어? 어? 촬영 언제 하는데! 오늘부터 피부관리 들어간다!

"흐흐흐. 내가 알아보고 알려줄게."

형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통화를 계속했다.

동료 형사가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부럽다. 드라마도 찍고."

나강인이 말했다.

"같이 출연하셔야죠."

"예?"

"그 배역이 형사 두 명이 나오는 거라서요. 실제 파트너와 같이 연기해야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이 나오죠."

형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저는 연기 경험이 없어서…."

"평소처럼 하시면 됩니다. 긴 대사는 경험 많은 분이 하시면 되고요. 연기력 문제는…. 음. 잘 찍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동료 형사도 활짝 웃었다.

"고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으하하하!"

"사모님과 같이 나오셔도 됩니다."

형사의 표정이 굳었다.

"어…. 제가 모쏠이라…."

"아…. 멋지게 나오게 도와드리겠습니다. 혹시 압니까? 이번 기회에 탈출할지."

***

상황이 정리되고 차를 가지러 가는 길에 박순기가 말했다.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니까 진짜 좋아하시네요. 저한테도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오늘 위험한 일을 맡아주셨는데 저분들도 남는 게 있어야죠."

"그런데 갑자기 그 드라마 배역에 자리가 났네요?"

"오늘 수정된 대본에 있는 배역입니다. 그래서 캐스팅 자체가 아직 안 됐습니다."

"아. 그러면 촬영은…."

"내일입니다."

"와. 진짜 빠른데요? 그럼 방송은요?"

"이번 주입니다."

"네?"

"아시잖습니까? 우리 드라마 거의 생방송인 거."

박순기가 살짝 걱정했다.

"오늘 잡은 킬러들은 저분들을 차 이사가 보낸 가짜 경찰로 알고 있는데, 만약 그 드라마를 보면…."

"경찰서에서 드라마를 보여주게요?"

"아. 그렇죠. 그놈들은 한가하게 TV나 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