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 미끼
삼선 국회의원 김석명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차 이사에게 물었다.
"아무리 최고의 킬러라고 해도 운이 나쁘면 실패할 수 있잖습니까? 차 이사가 보낸 놈들은 이미 두 번이나 실패했는데…."
차 이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냥 최고가 아니라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세계 최고의 킬러를 보냈습니다. 나강인은 오늘 죽습니다."
***
월드컵대교 교각에 자리 잡은 킬러는 차 이사에게 나강인 암살 의뢰를 받았다.
이미 거금을 선금으로 받았다. 잔금은 더 많이 받기로 했다.
이전에 차 이사가 스케줄 정보 정도만 제공하고 고용했던 용병이나 청부업자들은 나강인을 공격했다가 쓸려나갔다. 게다가 모두 생포되는 바람에 정보만 거꾸로 빠져나갔다.
그래서 차 이사는 이번에는 정보를 더 많이 제공했다.
킬러는 그 정보를 확인하고 망설였다. 이미 당한 용병과 청부업자들의 암살 능력은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다. 다들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런데 모두 실패했다.
그는 나강인을 상대로 근접전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저격으로 잡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위험한 의뢰는 거절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차 이사는 거절할 수 없는 거액을 제시했다.
그래서 그는 암살 의뢰를 다른 킬러에게 하청을 줬다. 미끼로 쓰기 위해서였다.
1분 전.
나강인을 노린 첫발이 빗나간 후에 월드컵대교 교각에서 킬러가 혀를 찼다.
"쯧. 저놈 선에서 처리하면 일이 편했을 텐데."
미끼 킬러도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 실력에 맞게 의뢰비를 많이 줘야 했지만, 그가 차 이사에게 받기로 한 돈은 훨씬 더 많았다.
게다가 미끼 킬러가 저격에 성공하면 그는 힘들여 한국을 탈출할 필요가 없다. 미끼가 한국 경찰의 추격을 피해서 도망치는 동안 그는 느긋하게 블라디보스토크로 빠져나가면 된다.
그런데 킬러가 다시 하청을 준 킬러가 저격에 실패했다.
그가 최고의 킬러라는 명성을 얻은 건 계획에 문제가 생겨도 의뢰는 항상 성공하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미끼 킬러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했다. 오히려 그때가 진짜 기회라고 생각했다.
"미끼가 제압되고 있을 때를 노리면 타깃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주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 그가 발사한 총탄이 나강인의 가슴 한복판에 명중했다.
하지만 그 총탄은 나강인의 방탄복을 뚫지 못했다.
그는 스코프를 통해 피탄 부위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보았다. 저격소총의 총탄에 맞았는데도 나강인이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는 모습도 확인했다.
그런 방어력을 가진 방탄복인데도 옷 속에 껴입으면 표가 나지 않았다.
그런 물건은 하나밖에 없다.
"타깃이 드래곤 플레이트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도 줬어야지."
그런데 드래곤 플레이트는 개인은 살 수 없다. 정부나 특정 기업에만 판다.
"정부 소속인가?"
킬러가 다음 탄환을 장전하며 말했다.
"미리 알았으면 처음부터 머리를 노렸을 텐데."
그가 나강인을 다시 쏘았다. 그런데 나강인은 두 번째 총탄을 옆으로 슬쩍 움직여 피해버렸다.
"젠장. 저격을 보고 피하는 놈이 실제로 있을 줄이야."
그는 나강인이 미끼 킬러를 향해 달려갈 때 저격을 피하는 걸 보긴 했다. 하지만 현장과 멀리 떨어진 다리 교각에서 본 것이라 어떤 요령으로 피하는지까지는 몰랐다.
나강인에게 총격을 피하는 특별한 감각이 있다는 생각은 처음 자료를 받았을 때부터 했다. 그렇지만 쉽게 믿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저격 거리가 멀어서, 나강인이 있는 곳까지 총탄이 날아가는 데 1초쯤 걸린다.
그는 과거에 멀리서 이리저리 뛰면서 총탄을 피하는 놈은 봤다. 하지만 제자리에서 마주 보고 서 있다가 발사 순간에 피하는 놈은 처음 보았다.
나강인의 상체를 쏘면 명중률은 올라가지만 드래곤 플레이트 때문에 유효한 타격을 주기 어렵다. 상대가 저격을 보고 피할 능력이 있으면 더 어렵다.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일단 미끼 킬러를 제거해 역추적 위험부터 줄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실패했다. 그가 미끼 킬러를 쏘자마자 나강인이 걷어찼다. 다리에 명중하긴 했지만 치명상은 아니다.
킬러는 그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놀랐다.
"발사 순간에 그냥 옆으로 피하는 게 아니라, 어디로 쏘는지까지 예상했다고?"
그게 아니라면 나강인이 미끼 킬러를 걷어찬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킬러는 나강인을 정면에서 장거리 저격으로는 절대로 못 잡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침을 꼴깍 삼켰다.
"괴물인가?"
***
저격수의 총탄에 다리를 맞은 미끼 킬러가 욕을 했다.
"내가 저 새끼 꼭 죽여버린다!"
나강인이 말했다.
"너 그렇게 편하게 엎드려있어도 되겠냐?"
"내가 어디가 편하다는 거냐!"
"총알이 또 날아올 거야. 그게 나를 노리겠냐? 너를 노리겠냐?"
"젠장!"
"박박 기어서라도 피해라. 그렇게 엎어져 있으면 너 죽어."
미끼 킬러는 죽고 싶지 않았다. 나강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는 손이 부러진 채로 묶이고 다리에도 관통상을 입었다. 그런 몸으로도 살고 싶어서 언덕을 데굴데굴 굴렀다. 팔과 다리가 미친 듯이 아팠지만 죽는 것보단 나았다.
그는 언덕을 구르며 숨을 곳을 찾았다. 몸을 완전히 숨길 수 있는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저 아래까지 굴러가야 해!’
그것 말고는 살길이 없었다. 미끼 킬러는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면서도 경사면을 계속 굴렀다.
"으아악! 저 새끼 죽여버릴 거야!"
나강인도 움직였다.
그는 이미 한 발을 맞았다. 드래곤 플레이트로 방어하긴 했지만, 맞았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쏜 놈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상대는 장거리에서 저격 중이다. 무기가 필요했다.
나강인의 눈에 먼저 들어온 건 킬러의 저격소총이다. 하지만 10발짜리 탄창은 나강인을 쏘느라 텅 비었다.
이 킬러에게는 예비 탄창이 없었다. 다른 총이 필요했다.
지금 여기에 다른 총이라고는 킬러가 쓰던 권총밖에 없었다.
나강인이 9mm 총탄을 쓰는 반자동권총을 집었다.
저격수의 총탄이 다시 날아와, 데굴데굴 구르던 미끼 킬러의 팔을 스쳤다. 부상은 크지 않았지만 킬러가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저 새끼 내가 꼭 죽여버린다!"
"같은 교도소에서 지내게 되면 꼭 그렇게 해라."
나강인이 권총으로 월드컵대교의 저격수를 조준해 보았다.
이 권총의 유효사거리는 50m다. 권총을 잘 다루는 사람이 쏴야 겨우 명중할 수 있는 거리가 50m다. 보통은 25m만 떨어져도 빗나가기 쉽다.
그런데 지금 적 저격수와의 거리는 600m가 넘는다. 그 거리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최대 유효사거리의 12배나 된다.
"머네."
***
킬러가 다짐했다.
"다음에는 저놈의 뒤통수를 노려야겠어. 다행히 뒤통수에는 눈이 없는 것 같으니까."
다음 일은 다음에 걱정하면 된다. 지금은 미끼 킬러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역추적의 위험이 줄어든다.
하지만 그것도 어려웠다. 미끼 킬러는 경사면을 열심히 구르고 있었다.
킬러가 다시 사격했지만 명중탄이 나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총탄이 스치는 정도였다. 상대도 저격 전문 킬러라서 조준하기 어려운 움직임이 어떤 건지 안다. 미끼 킬러는 몸을 튕겨가며 정성을 다해 경사면을 굴렀다.
"그래도 세 발 안에는 잡을 수 있겠지."
그는 나강인의 상태도 수시로 확인했다. 조준경에 나강인이 권총을 주워 그를 조준하는 모습이 보였다.
킬러는 피식 웃었다.
"그 거리에서 권총으로 뭘 어쩌려고?"
***
나강인이 월드컵대교의 저격수를 조준하며 작게 말했다.
"지인아. 가능하겠냐?"
-표적과의 거리가 너무 멉니다.
AI 전지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강인의 손을 움직였다. 권총의 총구가 저격수보다 위쪽으로 올라갔다.
-이 거리에서 권총을 정조준해서 쏘면 총탄이 근처에도 못 가고 아래로 떨어집니다. 위쪽으로 쏘셔야 합니다.
나강인이 그 상태로 방아쇠를 당겼다.
9mm 권총탄의 유효사거리는 50m가 한계지만, 그렇다고 총탄이 그 거리만 날아가는 건 아니다. 총구를 위로 들고 쏘면 600m보다 멀리 날아간다.
***
저격수는 조준경을 통해 나강인이 권총을 쏘는 모습을 보았다.
"미친놈이군."
그는 제거하려던 킬러가 아니라 나강인을 정조준했다.
"그래도 나한테 총질을 했으니, 나도 한 방 더 먹여…."
갑자기 그의 옆쪽 철제 난간에서 총탄이 쇠를 때리는 소리가 땅 하고 났다.
"헉!"
그가 깜짝 놀라 옆을 보았다. 난간 페인트에 총알에 맞은 자국이 보였다. 총탄에 맞은 자리는 단순히 긁힌 흠집과는 모양이 달랐다.
킬러는 경악했다.
"저 거리에서? 권총으로?"
나강인의 사격은 빗나가긴 했다. 그런데 총탄이 때린 위치는 킬러의 몸에서 1.5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킬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저격의 신인가?"
***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빗나갔습니다.
AI 전지인이 나강인의 시각 정보를 재처리해서 적 저격수의 모습을 홀로그램 확대 화면으로 보여주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시각 정보를 재처리해도 얼굴을 정확히 알아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움직임 정도는 충분히 구분할 수 있었다.
킬러가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빗나간 거야?
AI 전지인이 권총탄이 때린 난간을 표시했다.
-약 1.5m입니다.
"너도 빗나갈 때가 있구나."
-최대 유효사거리의 12배 거리입니다. 바람 등의 변수를 확인할 방법도 없습니다. 제가 요원님의 손을 보조했으니까 2m 안쪽으로 들어간 겁니다. 이거 진짜 대단한 겁니다.
"다시 쏴보자."
나강인이 방아쇠를 다시 당겼다. 9mm 권총탄이 위쪽으로 날아가다가 고도가 점점 내려가 킬러의 옆 난간을 다시 때렸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맞았다.
"이번엔 좀 낫네?"
-기존 사격 결과로 바람 등의 변수를 확인해 조준을 보정했습니다.
"보정이 가능하면, 이렇게 쏘다 보면 저놈이 맞을까?"
-운이 많이 좋아야 가능합니다.
"가능은 한 거네? 그럼 쏴야지."
나강인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이 적을 향해 날아갔다.
***
저격수는 두 번째 권총탄이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떨어지는 걸 보았다. 세 번째 권총탄은 바깥쪽으로 빗나갔지만 네 번째는 두 번째보다 가까운 곳에 떨어졌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그는 자신이 세계 최고수준의 장거리 저격 능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권총으로 이런 결과를 만들 수는 없다.
이 비슷한 것도 할 수 없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
상대가 쏘는 건 권총이다. 그것도 조준경조차 없는 흔한 9mm 반자동권총이다.
그런데도 이 거리에서 꽤 가까운 위치로 총탄을 날렸다. 게다가 총탄이 때리는 위치가 점점 가까워졌다. 사격 결과를 보고 실시간으로 보정 중이라는 뜻이다.
"권총이 아니라 소총이었으면…."
스코프가 없어도 저격당했을 수 있다.
권총탄의 탄착 지점이 더 가까워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강인을 저격할 수 없다.
나강인은 그의 위치를 정확히 포착하고 쐈다. 아직은 빗나가고 있지만 여기서 버티면 결국 한 방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상황은 러시아 킬러에게 불리해졌다. 이렇게 교착된 상태로 계속 교전하다가 한국 무장경찰이 출동하면 끝장이다.
그는 정면대결을 포기했다.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야겠다."
암살을 포기한 건 아니다.
"다음에는 네놈의 등 뒤에서 뒤통수를 쏴주지. 그때가 네가 죽는 순간이다."
***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적 저격수가 도주합니다.
"이제야 가네."
-일부러 쫓아내신 겁니까?
"어."
-이 거리에서 권총으로 놈을 잡는 건 무리지만, 다리 쪽으로 이동하면서 교전했으면 명중 확률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나강인도 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저놈에게 다가가면서 쏘면, 저놈이 어떤 선택을 할까? 내가 못 오게 막을 방법을 찾겠지?"
-물론입니다.
"방법을 찾으려고 궁리하면, 내가 오늘 촬영팀과 같이 있었다는 걸 금방 깨달을 거야. 그러면 저놈이 어떻게 하겠어?"
-민간인을 공격해 요원님을 혼란에 빠뜨리겠군요.
"그러니까 일단 도망치게 해야지. 저놈은 어차피 저격 위치가 노출됐으니까 경찰이 오기 전에 도망쳐야 해. 그래서 민간인을 쏘기 전에 쫓아낸 거야.
-요원님. 그런데 왜 뛰고 계십니까?
나강인은 저격수가 도망치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쫓아냈으니까 쫓아가서 잡아야지. 저놈이 저 다리를 완전히 벗어나면 놓칠 수도 있어. 다리 너머에 탈출할 방법을 숨겨뒀을 테니까, 그 전에 잡자."
그는 달리면서 박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순기는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나 사범님! 마포에서 대기 중입니다. 떴습니까?
"하늘공원에 저격수가 있어서."
-헉! 저격수요? 괜찮으십니까?
"잡았습니다."
-휴우. 역시 나 사범님.
"월드컵대교 교각에도 저격수가 있는데."
-헉! 저격수가 한 놈이 아닙니까!
"추격 중입니다. 지원이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