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83화 (383/411)

383. 비행

드라마 바보의 사랑은 강과 가까운 곳에서 촬영하던 중이다.

스태프와 배우 일부는 총격전 소리가 들리자마자 강변으로 대피했다. 그쪽은 지대가 낮아서 자세를 낮추고 있으면 하늘공원 경사면에서 쏘는 사격을 피할 수 있다.

최진욱 피디도 강변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러다 한강 위에 낮게 떠서 날아가는 나강인을 발견했다. 나강인은 헬멧을 쓰고 있어서 얼굴을 알아보진 못했다.

"어? 어?"

대신에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모습은 확실히 보았다.

최진욱 피디가 급히 외쳤다.

"카메라! 찍고 있습니까!"

촬영용 카메라로 찍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드라마 스태프이지 기자가 아니다. 다들 총격전 소리를 듣자마자 무거운 방송용 카메라는 현장에 놔두고 대피했다.

대신에 휴대폰으로 촬영 중인 사람은 있었다.

스태프 중 한 명이 강변에 대피한 후에 인터넷 개인방송을 켰다. 그는 총격전 상황을 중계하다가 나강인이 날아가는 모습을 촬영했다.

"제가 처음부터 찍고 있습니다!"

"그건 카메라가 아니라 스마트폰이잖아!"

"찍지 말까요?"

"잘했다고! 계속 찍어!"

뒤늦게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켜는 사람들도 있었다.

최진욱이 조연출에게 다급히 말했다.

"우리 카메라 가져와서 찍어! 저 위에 굴러다니고 있잖아!"

"네? 제가요? 그러다 총알이 날아오면…."

"우리 드라마 끝나면 너한테 단막극 밀어줄게!"

"지금 가지러 갑니다!"

신은하는 지금 강물 위를 날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 용산 사건 때도 나강인이 저 날개로 날아다녔다.

그녀가 불평했다.

"아이 씨. 또 위험한 일을 하잖아."

나강인 혼자만 싸우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녀가 손을 허리에 댔다. 옷 속에 입은 드래곤 플레이트가 만져졌다.

"나도 저런 장비를 입고 같이 싸우면…."

다시 생각해보니 나강인처럼 싸우면 오래 못 살 것 같았다.

"미인박명이라는데 난 특히 조심해야지."

그녀가 다른 대안을 떠올렸다.

"총권도 오인방을 더 굴리라고 해야겠다. 그 언니 오빠들을 강하게 만들어야겠어."

드라마 스태프의 인터넷 개인방송에는 백여 명의 시청자가 있었다. 유명한 사람의 방송이 아닌데도 켜자마자 사람이 몰린 건 제목 때문이었다.

[난지한강공원에서 총격전 발생! 목숨 걸고 실시간 중계 중!]

그 제목만 보고 몇 명이 개인방송을 보러 들어왔다.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영상을 시청하다가 곧바로 실제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들이 급히 여러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주변 사람에게도 연락했다.

그렇게 백여 명의 시청자가 모였을 때, 나강인이 한강 수면 위를 날았다.

개인방송 시청자들이 너도나도 채팅을 쳤다.

-난다!

-나 저 사람 알아! 용산 빌딩에서 날아다니면서 싸운 그 히어로다!

-대박! 방장님 제목 바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드래곤이 난다! 로 바꿔야지!

-그런데 어디로 날아가는 거지?

-월드컵대교?

-왜 저기로 가는 건데요?

-총 쏜 놈이 저기에 있겠죠!

-아! 잡으러 가는 거구나!

-그런데 너무 낮게 나는 거 아니에요? 수면에 바짝 붙어서 나는데요?

***

나강인은 드래곤 윙을 고속기동 기능이 반영된 설계도로 만들었다. 그래서 선회력은 좋은데, 날개가 만들어내는 양력은 여객기 날개 형태보다 약했다.

용산 사건 때 사용한 드래곤 윙에는 고속기동형 날개에 RC 모형비행기용 가스터빈 엔진이 달았다. 그때는 엔진 출력이 부족해서 수평으로 비행하는데도 고도가 조금씩 떨어졌다.

지금 이 엔진은 다르다. 이건 오메가테크가 소형미사일용으로 개발한 제트엔진이다. 스칼렛 켈리가 직접 드래곤 윙 전용으로 세팅을 바꾸고 기능도 추가했다.

이 엔진의 출력은 용산에서 쓴 모형비행기용 엔진보다 훨씬 강하다. 그런 엔진을 네 개나 달았다.

덕분에 고도가 떨어지는 일이 없이 한강 수면 위를 수평으로 비행할 수 있었다.

소형 제트엔진이 연료를 빠르게 소모하며 불꽃을 쏟아냈다. 나강인의 비행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홀로그램 속도계에는 현재 속도가 숫자로 표시했다.

그 옆에 떠 있는 막대형 속도계는 처음에는 빨간색이다가 지금은 노란색으로 변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막대의 길이가 늘어났다. 늘어나는 방향에는 결승선 표시가 있었다.

거기까지 가속해야 한다.

월드컵대교가 점점 가까워졌다. 킬러는 다리 위에서 달리고 있었다. 수면에서 다리 위로 가려면 한참을 상승해야 한다.

이대로 다리 밑을 낮게 통과하면 위에 있는 킬러를 잡을 수 없다.

***

킬러는 자전거 페달을 미친 듯이 밟았다. 그러다 제트엔진 소리는 들었다. 그런데 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하늘이 아니라 아래쪽이었다.

그는 앞으로 달리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나강인이 수면 위로 날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킬러는 그가 저격하려던 게 누군지 이제야 정확히 알았다.

"저 날개는 그거잖아! 저놈이 왜 여기서 나와!"

그가 받은 자료에는 나강인의 사진과 현재 직업이 드라마 무술감독이라는 것이 적혀 있었다.

잘못된 정보도 있었다. 그 자료에는 나강인이 한국군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료 어디에도 나강인이 용산 사건에서 오르카 조직을 혼자 쓸어버린 요원이라는 말은 없었다.

그는 왜 그 정보가 빠졌는지 깨달았다.

아무리 대단한 킬러라도 목숨은 하나뿐이다.

그는 감당 가능한 상대만 암살 대상으로 받는다. 상대가 너무 강하거나 너무 위험하면 일을 받지 않는다.

"차 이사 이 새끼! 날 속였어!"

그는 차 이사를 욕하면서도 자전거 페달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다리 쪽으로 날아오는 나강인을 보며 열심히 궁리했다.

‘오르카가 저놈에게 당한 영상을 보면.’

그는 그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됐을 때 전문기관에 돈을 주고 분석을 의뢰했다.

‘저 날개는 추력이 부족해. 이 다리 위로는 절대로 올라오지 못해.’

나강인이 다리 서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날아가는 중이면 킬러도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나강인은 지금 다리 중간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그가 그 이유를 추측했다.

‘저 날개는 항속거리도 짧아. 한강을 건너 다리 서남쪽 끝까지 날아갈 수 없어. 다리 중간 교각에 임시로 설치된 수직 점검 사다리를 통해 위로 올라오려는 거겠지!’

킬러가 자전거 페달을 더 열심히 밟았다.

‘그 사다리로 올라오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 그전에 난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어!’

***

나강인이 수면 위를 날면서 물었다.

"아직 멀었냐!"

-곧 목표 속도에 도달합니다. 2! 1!

막대형 속도계가 파랗게 변했다.

나강인이 즉시 날개를 비틀었다.

동시에 엔진이 연료를 급속히 소모하며 출력을 높였다. 네 개의 엔진이 불꽃을 맹렬히 뿜었다.

한강 수면 위를 항적을 남기며 수평으로 날던 나강인이, 월드컵대교 앞에서 크게 선회했다.

-상승 각도 30도!

네 개의 엔진이 아래쪽으로 불꽃을 길게 뿜었다. 수면이 빠르게 멀어졌다.

문제가 생겼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상승 속도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

최진욱 피디는 월드컵대교 앞에서 나강인이 네 줄기 불꽃을 아래로 뿜으며 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우와아…."

바로 옆에서 도주희도 감탄했다.

"진짜 히어로 같아."

***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상승 속도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는 상판 위쪽으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지금 다리 상판 위쪽까지 올라가는 데 실패하면 다시 올라갈 방법이 없다. 재시도할 연료가 없기 때문이다.

"좀 뛰어야겠다."

나강인이 날개를 움직여 수평 비행으로 전환했다.

그는 공중에서 다리 상판 측면에 바짝 붙은 후에 날개를 옆으로 휙 돌렸다. 몸이 같이 돌아가면서 상판 측면에 발이 닿았다.

나강인이 날개를 활짝 편 채로 벽을 밟으며 옆으로 달렸다. 엔진 네 개가 나강인의 등 뒤에서 힘을 보탰다.

***

킬러는 자전거 페달을 미친 듯이 밟았다. 그는 한강을 거의 건넌 상태였다.

‘여기만 빠져나가면 탈출할 수 있….’

제트엔진 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변했다. 다리 밑으로 지나가거나 멈춰야 하는 소리가 다리 위로 빠르게 올라왔다.

"설마…."

그 소리가 뒤쪽에서 들리다가 빠르게 다가왔다. 바로 옆 난간 바깥쪽으로 날개의 절반이 휙 하고 지나갔다.

그가 대응하기도 전에, 나강인이 앞쪽에서 다리 위로 점프했다. 날개는 활짝 펼친 상태였다.

그는 공중에서 날개를 비틀어 순식간에 뒤로 돌아섰다. 공중에 떴던 그의 몸이 아래로 하강했다.

나강인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킬러를 보며 난간을 발로 툭 밟아 착륙했다.

엔진이 정지하고 날개가 반쯤 접혔다.

킬러가 자전거의 브레이크를 급히 당기며 정지했다. 자전거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킬러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렸다.

나강인이 다리 난간 위에 서서 킬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야. 왔냐?"

킬러는 당황했다.

"드래곤 히어로!"

나강인은 유원지 사건 때 용 모양의 헬멧을 쓰고 활약했다. 그때 그 영상이 외국으로 퍼지며 여러 나라에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용산 사건을 해결한 후에는 별명이 늘었다. 드래곤 히어로라고 부르기도 하고, 스트라이크 이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플라잉 나이트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킬러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날아왔지? 어떻게 이 위로 올라왔지? 항속거리가 안 될 텐데? 엔진의 추력이 부족할 텐데?"

킬러가 쓰는 언어는 러시아어였다.

AI 전지인이 한국어로 통역해주었다.

나강인이 러시아어로 대답했다.

"말해준다고 알겠냐?"

"타깃이 너인 줄 몰랐다! 차 이사가 나를 속였어!"

"너도 다른 킬러를 속여서 미끼로 썼잖아. 똑같은 놈끼리 왜 억울해하고 그러냐?"

킬러는 나강인과 지금 러시아어로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아?"

"내가 잘하는 게 좀 많아."

나강인이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건 AI 전지인 덕분이다.

지금 그의 눈앞에는 AI 전지인이 추천하는 대사가 다섯 개씩 떴다.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손가락만 까닥이면 된다. 그러면 다섯 개의 리스트가 즉시 추가됐다. 그중에 하나를 고르면 발음은 AI 전지인이 보조했다.

나강인이 완벽한 러시아어 발음으로 제안했다.

"차 이사를 잡는데 협조하면 나중에 사식은 넣어줄게."

킬러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나강인이 강한 건 알지만, 그냥 잡혀줄 수는 없다.

그런데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는 이미 나강인의 전투 영상을 여러 번 보고 분석했다. 결론은 정면대결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순순히 잡히고 싶지는 않았다.

‘탈출해야 해.’

킬러가 방법을 찾아 눈알을 굴렸다. 그러다 드래곤 윙을 분석한 자료가 생각났다.

‘항속거리가 짧은 날개로 여기까지 날아와서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왔으니까.’

나강인이 다리에 올라올 때 난간을 발로 차면서 뛰었다는 것도 생각났다.

‘당연히 연료가 다 떨어졌겠지!’

갑자기 킬러가 옆으로 점프했다. 그는 그대로 난간을 뛰어넘어 한강으로 뛰어내렸다.

나강인이 인상을 썼다.

"저게 죽으려고?"

킬러가 공중에서 두 팔과 다리를 쫙 폈다. 그의 팔과 다리에서 날개가 튀어나왔다.

킬러가 팔과 다리를 쫙 펴고 활강했다.

"뭐냐? 날다람쥐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윙슈트와 드래곤 윙의 기능을 조합해 만든 날개입니다. 날개를 옷 속에 감아서 숨길 수 있는 구조입니다.

"성능은?"

-혼종 짝퉁입니다. 제한적인 상황에서 탈출용으로 쓸 수 있습니다만, 착지가 문제입니다. 낙하산 없이 맨땅에 착륙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여긴 한강이잖아?"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면 죽지는 않을 겁니다.

나강인은 난간 위에 서서 킬러를 보며 말했다.

"아주 준비를 철저히 한 놈이구나."

다리 위의 차들은 나강인을 발견하고 정차해 있었다.

버스에 탄 여고생이 창문을 활짝 열고 두 팔을 내밀며 소리를 질렀다.

"오빠! 같이 사진 찍어주세요!"

나강인이 여고생에게 손을 쓱 흔들어주었다.

날개의 엔진 네 개가 다시 켜지며 터빈이 돌아가는 소리를 냈다.

나강안이 다리에서 한강으로 점프하며 날개를 쫙 폈다.

여고생이 비명을 질렀다.

"꺄악! 멋있어요!"

연료는 이미 대부분 소모해서 잔량이 얼마 없었다.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 때는 연료 소모량이 적다.

킬러는 팔과 다리를 활짝 펴고 아래쪽으로 활강하고 있었다.

나강인이 위에서 아래로 급강하했다. 목표는 앞에서 활강하는 킬러였다.

***

최진욱 피디가 활강하는 킬러를 향해 날아가는 나강인을 보며 말했다.

"매가 공중에서 먹이를 노리고 날아가는 것 같다."

도주희 작가가 최진욱을 불렀다.

"최 피디."

"왜?"

"국방부에 가서 드래곤 윙을 협찬받아 와."

"으응? 아니 저건 아무도 못 빌린다니까? 볼 수는 있어도 만질 수는 없는 환상 속의 장비라니까?"

"이제 드래곤 윙이 없는 대본은 생각할 수 없게 됐어. 정 안 되면 CG로 만들어줘!"

"CG는 제작할 시간이…."

"강인 씨가 CG 최적화의 대가라며. 드래곤 윙 CG를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도와달라고 할 게 아니라, 우리 드라마 좀 살려달라고 부탁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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