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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384화 (384/411)

384. 공중기동

킬러가 한강 위를 활강으로 날면서 도망쳤다.

나강인이 더 높은 고도에서 추격했다. 나강인의 날개에는 엔진 네 발이 장착되어 있어서 속도가 훨씬 빨랐다.

킬러가 제트엔진 소리를 듣고 뒤쪽을 황급히 돌아보았다.

"헉!"

킬러가 분석을 맡긴 곳에서 제출한 보고서대로면, 나강인의 드래곤 윙은 이미 연료가 떨어져서 비행이 불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나강인이 정확히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 새끼들! 분석비로 내 돈만 처먹고 제대로 알아낸 게 하나도 없어!’

양쪽의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졌다. 이대로 가면 뒤를 당한다.

킬러가 급히 몸을 비틀었다.

킬러가 사용하는 하드타입 윙슈트는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레저용으로 쓸 수 없다. 그건 비행용이 아니라 단거리 비상탈출용으로 킬러가 따로 주문해 만든 장비다.

그런데 변형 윙슈트는 비행 안정성이 낮아서 몸을 비틀면 비행 궤도가 급격히 뒤틀린다.

킬러의 비행 방향이 불규칙한 방향으로 연달아 꺾였다.

나강인이 킬러를 스치고 지나갔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요격 실패! 적이 뒤에 있습니다!

킬러가 공중에서 겨우 균형을 잡았다. 그는 방금 한 방에 당할 뻔했다는 걸 안다.

‘상관없어! 어쨌든 피했어! 이제 내 차례야!’

그는 차 이사가 세계 최고라고 평가한 킬러다. 전투 센스가 남달랐다.

킬러가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앞날개의 손잡이를 놓았다.

변형 윙슈트의 앞날개는 어깨와 몸통에 붙어 있었다. 양쪽 날개의 움직임을 동기화하면 왼팔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제어가 가능했다.

킬러가 공중에서 날개를 움직여 활강 속도를 늦추며 권총을 뽑았다.

‘저놈이 나보다 빨라서 추격을 따돌릴 수 없으면, 격추하면 돼!’

킬러는 저격소총만 잘 쏘는 게 아니다. 권총도 잘 쏜다. 땅 위에서는 날아가는 새를 권총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명중률이 높았다.

킬러가 공중에서 나강인을 조준했다. 공중에서는 자세가 불안정해서 조준이 쉽지 않은데도 총구가 나강인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AI 전지인이 고속음성으로 보고했다.

-적이 조준합니다!

드래곤 윙은 나강인의 신경 신호를 증폭해 날개의 각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제어한다.

AI 전지인이 비행보조장치 역할을 대신했다. 그러면 손발을 움직이는 것처럼 빠르고 자유롭게 날개의 각도를 바꿀 수 있다.

나강인이 날개를 재빨리 비틀었다. 소형 제트엔진 네 개는 여전히 가동 중이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급선회했다.

킬러가 나강인을 조준하려 했다. 그런데 권총 총구가 움직이는 것보다 나강인의 선회 속도가 더 빨랐다.

킬러의 윙슈트는 공중에서 방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장비가 아니다. 그런데도 킬러는 몸을 수평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는 나강인의 위치를 계속 확인하며 팔을 뒤로 뻗었다. 총구가 다시 나강인을 향했다.

‘조금만 더!’

AI 전지인은 적이 지금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계산해서 선을 그었다. 그 선이 나강인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나강인이 엔진 출력을 높였다. 그의 선회 속도가 더 빨라졌다. 총구의 방향이 다시 멀어졌다.

킬러가 이를 악물며 팔을 뒤로 젖혔다. 그런데도 킬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선회하는 나강인을 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나강인의 비행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엔진에서 나오는 불꽃이 더 커진 게 보였다.

‘너무 빨라! 조준할 수가 없어!’

킬러는 사격의 베테랑이다. 그래서 조준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허공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봤자 명중할 리 없다는 걸 아주 잘 안다. 오히려 그 반동으로 겨우 유지하는 자세가 무너질 수도 있다.

‘기회는 한 번밖에 없어. 정확히 조준하고 쏴야 해!’

킬러가 팔을 뒤로 더 젖혔다. 어깨에서 관절이 비틀리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도 나강인의 선회 속도가 너무 빨라서 조준할 수가 없었다.

"제기랄!"

킬러는 아래로 떨어지는 중이다. 네 장의 날개 덕분에 천천히 떨어지는 중이지만, 자세가 무너지면 순식간에 추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대로 빙글빙글 돌기만 해도 결국 추락하는 건 마찬가지다.

킬러가 갑자기 다리를 크게 움직였다. 뒷날개의 방향이 바뀌면서 몸이 휙 돌아갔다.

추락을 각오하고 움직인 대가를 얻었다. 드디어 나강인이 권총 조준선 안에 들어왔다.

‘잡았다!’

킬러가 나강인을 정확히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AI 전지인이 고속음성으로 경고했다.

-조준 당했습니다! 적 사격!

나강인이 양쪽 날개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비틀었다. 양쪽 날개의 엔진이 반대 방향으로 힘을 쏟아냈다.

나강인의 몸이 공중에서 휙 뒤집혔다.

총탄이 나강인을 스치고 지나갔다. 빗나간 총탄은 한강에 꽂혔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나선 궤도를 타며 킬러를 향해 날아갔다.

강변에서 공중전을 보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총을 쐈다!"

"피했어!"

"뭘 어떻게 한 거야?"

"공중회피기동?"

킬러는 경악했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총탄을 그렇게 쉽게 피할 줄은 몰랐다.

두 번은 쏠 기회가 없었다. 방금 사격이 그의 승부수였다.

급격한 방향전환에 사격 반동까지 더해지면서 킬러의 자세가 완전히 무너졌다. 하드타입 윙슈트의 통제가 불가능해졌다.

"젠자앙!"

킬러가 중심을 회복하려고 발버둥 쳤다.

나강인이 엔진의 출력을 높였다. 얼마 남지 않은 연료를 쏟아부으며 위로 올라갔다가, 몸을 뒤집으며 아래로 내리꽂혔다.

드래곤 윙의 날개 끝이 하드타입 윙슈트의 날개를 때렸다. 킬러의 오른쪽 날개 두 개가 박살 났다. 부서진 파편이 킬러의 손을 때렸다.

킬러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강으로 추락했다.

나강인이 공중을 선회한 후에 떨어지는 킬러를 뒤에서 다시 덮쳤다. 킬러가 권총을 쥔 팔을 뒤로 뻗었다.

나강인이 그 팔부터 덥석 잡고 뒤로 꺾었다.

"끄악!"

권총이 손에서 빠져나가 한강에 떨어졌다.

나강인은 공중에서 킬러의 다른 팔도 붙잡아 등 뒤로 꺾었다.

그는 킬러를 붙잡은 상태로 한강 강변으로 날아갔다. 그쪽에도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등이 있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연료가 바닥났습니다. 이번에 착륙하면 다시 이륙할 연료가 없습니다.

"주유소라도 찾아볼까?"

-농담이시죠?

"당연하지."

나강인이 강변까지 활강한 후에 킬러를 툭 던졌다. 킬러는 공중 3m쯤에서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나강인이 킬러의 앞에 가볍게 착륙했다.

연료는 엔진을 돌리는 데 쓴다. 인공 근육의 동력원은 따로 있다. 연료가 떨어져도 날개는 움직일 수 있다.

나강인이 날개를 접었다. 아직 엔진이 장착된 상태라 완전히 접지는 않았지만 폭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킬러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권총은 한강에 빠뜨렸다. 그가 단검을 뽑으며 후회했다.

"젠장. 이런 의뢰는 받지 않았어야 했는데."

타깃이 드래곤 윙의 주인이라는 건 몰랐다.

그렇지만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건 알았다. 그래도 의뢰를 받았다.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을 제안받았다.

그는 미끼 킬러를 동원해 함정을 팠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총알 한 발이면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나강인이 그의 저격을 눈으로 보고 피했다. 한 발 맞기는 했지만 드래곤 플레이트를 뚫지 못했다.

킬러의 눈이 강변에 있는 사람들을 훑었다.

‘아이를 인질로 잡으면 탈출할 수 있….’

나강인이 킬러에게 성큼 다가가며 말했다.

"눈알 굴리는 거 봐라."

킬러가 반사적으로 나강인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빨랐다. 움직임도 예리했다.

그는 저격소총과 권총만 잘 다루는 게 아니다. 단검 격투 능력도 대단한 수준이다. 차 이사가 괜히 세계 최고의 킬러라고 말한 게 아니다.

나강인이 킬러의 공격을 슬쩍 피했다. 킬러의 칼날이 바깥으로 빗나갔다가 다시 안쪽으로 날아왔다.

나강인이 그 손을 쳐냈다. 적의 손이 바깥쪽으로 튕겨 나갔다.

나강인이 적의 목을 툭 쳤다.

"켁!"

나강인이 킬러의 다리도 걷어차 엎어트린 후에, 두 팔을 등 뒤로 꺾었다.

"이놈을 묶으려면 끈이…."

-이미 기절했습니다.

"맷집이 뭐 이렇게 약해?"

-공중에서 잡아채 두 팔을 꺾고, 3m 높이에서 땅으로 내팽개치셨습니다. 그때 이미 정상 상태가 아니었는데, 다시 목을 치고 다리도 차서 바닥에 엎어버리셨습니다. 그때 얼굴을 바닥에 처박았습니다. 기절할 수도 있지요.

"아. 그러네."

나강인이 일어났다.

이쪽에는 산책하거나 운동하러 온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들이 놀란 눈으로 나강인을 보고 있었다.

나강인이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헬멧을 쓰고 있어서 얼굴이 노출되지는 않았다.

"이제 튀자."

-요원님. 연료가 없습니다.

"어?"

-다시 이륙할 연료가 없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보조 연료통을 만들어서 달걸."

-지금 후회해봤자 늦었습니다.

"그러게."

갑자기 구경하던 사람 중 하나가 두 손을 번쩍 들며 소리를 질렀다.

"히어로다!"

다른 사람들도 손을 들고 환성을 질렀다.

"우와아!"

"끝내준다!"

사람들은 나강인이 누구와 싸웠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나강인이 같은 편이라는 건 안다.

‘나쁜 놈이니까 잡았겠지!’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블로거 박난정이 휴대폰을 들고 다가오며 외쳤다.

"팬이에요! 같이 셀카 찍어주세요!"

***

강 반대편 난지한강공원에서 최진욱 피디가 조연출에게 물었다.

"계속 찍고 있지?"

처음 총소리가 들렸을 때는 스태프들이 카메라를 놓고 대피했다. 그때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스태프만 있었다.

최진욱 피디는 한강 수면을 날아가는 나강인을 보자마자 조연출을 시켜 카메라를 가져오게 했다.

"공중전부터 계속 찍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멀어요!"

"줌을 최대한 당겨서 찍어!"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 근데 피디님. 저 단막극 밀어주는 거 맞죠?"

"어? 어…."

"카메라가 손에서 미끄러지려고 합니다!"

"당연히 내가 팍팍 밀어준다! 나한테 권한은 없지만."

"네?"

***

사람들이 환성을 지르며 나강인에게 다가갔다.

나강인은 난감했다.

"곤란한데."

박난정은 이미 나강인의 옆에 서서 셀카를 찍고 있었다.

어차피 헬멧 덕분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나강인은 그녀를 굳이 밀어내지는 않았다. 셀카를 못 찍게 하면 앞에서 찍을 테니 밀어내봤자 의미가 없다.

게다가 그녀와 셀카를 찍는 동안은 다른 사람들이 예의상 접근하지 않았다.

박난정이 욕심을 부렸다.

"헬멧 벗고 찍어주시면 안 돼요?"

"응. 안돼요."

다른 사람들도 나강인과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강인이 기다리던 경찰차 몇 대가 곧바로 현장에 도착했다.

박순기도 승용차에 경광등을 올려놓고 달려왔다.

나강인이 박난정에게 물었다.

"그 에코백 나 줄 수 있어요?"

하얀 천으로 만든 그 에코백은 돈을 주고 산 게 아니라 카페에서 행사 상품으로 받았다.

"네? 이걸요? 왜요?"

"사진 같이 찍은 값으로?"

"아! 네!"

박난정이 얼른 에코백에 들어있는 짐을 꺼냈다. 작은 것들을 담는 파우치도 있어서 몇 개만 꺼내면 됐다.

나강인이 날개에서 엔진을 하나씩 분리해 에코백에 넣었다. 아직 온도가 높아서 그냥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엔진을 다 분리하자마자 펼쳐져 있던 날개가 스르륵 접혀 하드케이스 백팩처럼 변했다.

박순기가 나강인에게 달려왔다.

그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걸 보고 호칭을 바꾸었다.

"요원님!"

나강인이 킬러를 가리켰다.

"하늘공원 경사면에 있던 스나이퍼는 미끼이고, 저놈이 진짜 킬러입니다."

박순기와 같이 온 경찰들이 킬러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다른 경찰들은 현장을 통제했다. 하지만 통제가 원활하게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강인의 곁으로 다가오고 싶어 했다.

나강인이 박순기에게 말했다.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습니다."

"드래곤 윙으로 멋지게 날아가시려는 거지요?"

"못 납니다."

"네?"

"연료가 떨어져서."

"아…."

상황을 깨달은 박순기가 그의 차를 가리켰다.

"제 차에 타시죠."

나강인은 박순기와 함께 그의 차에 올라탔다. 그 차의 위에는 부착식 경광등이 붙어 있었다.

사람들이 옆으로 움직여 길을 터주었다. 오늘 나강인이 그들을 구한 건 아니지만, 누군가는 구했을 거라고 다들 생각했다. 그래서 박수를 치거나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이 많았다.

박난정은 방금 나강인과 셀카를 찍었다. 여기서 셀카를 찍은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그녀는 즉시 그녀의 SNS에 그 사진을 올렸다.

[히어로와 한 컷. 한강 전투 직후에 찍은 따끈따끈한 사진입니다. 전투 동영상과 자세한 사연은 제 블로그에.]

그녀가 사진을 보며 활짝 웃었다.

"우리 동네 히어로 때도 블로그에 올린 사진으로 꿀 빨았는데, 오늘은 새로운 히어로님이 싸우시는 동영상이 있으니까 너튜브도 구독자가 팍팍 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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