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 김유찬
나강인은 총권도 수련생 박순기의 차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박순기가 말했다.
"드래곤 윙의 연료가 정말 아슬아슬했나 봅니다. 공중에서 싸우다가 연료가 바닥났으면 추락하실 뻔했습니다."
"추락 안 하게 계산하면서 비행한 겁니다."
"네? 다리에서 뛰어내리실 때부터요?"
"아니요. 한강 위를 날 때부터요. 처음부터 연비가 제일 잘 나오는 각도를 계산해서 날았으니까요."
"와…. 그게 실시간으로 계산이 되세요?"
"되더라고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계산은 제가 했습니다.
나강인이 박순기에게 물었다.
"수첩하고 펜 있지요?"
"글로브박스에 있습니다. 나 사범님이 언제라도 쓰실 수 있게 따로 챙겨놨죠."
나강인이 조수석 앞에 있는 서랍을 열었다. 수첩이 아니라 노트가 들어있었다. 볼펜도 빨강, 파랑, 검정의 삼색 펜이었다.
그는 새 노트를 펼치고 그림을 그렸다.
박순기가 노트를 힐끗 보며 물었다.
"이 주변 모습이네요?"
"현장 조사에 도움이 됐으면 해서요."
나강인이 한강 다리와 공원 등을 선만 사용해서 쭉쭉 그렸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는 AI 전지인이 손의 움직임을 보조한다. 그런데 그건 원래 정찰 작전 후에 적진의 상황과 적의 위치를 그리는 스킬이다.
그 스킬이 원래 목적으로 사용됐다. 나강인이 순식간에 난지한강공원이나 하늘공원, 월드컵대교를 디테일한 부분까지 그렸다.
차가 신호등에 걸렸을 때 박순기가 그림을 보며 감탄했다.
"와…. 색만 안 칠했지, 현장을 진짜 정확하게 스케치하시네요? 이건 무슨 화풍인가요?"
"음…. 이 화풍은 하이퍼리얼리즘에 가까운데…."
AI 전지인이 말했다.
-요원님. 정찰 자료 작성 스킬로 너무 약을 파시는 거 아닙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그린 겁니다. 사진 대신에요."
나강인이 방금 그린 그림에 X표를 추가하며 설명했다.
"여기가 킬러가 처음 저격한 위치입니다. 이 킬러는 다른 킬러가 미끼로 쓰려고 고용했습니다."
"잔챙이군요."
"실력을 보면 잔챙이는 아닙니다. 다른 킬러에게 속아서 미끼로 이용되기는 했는데, 조사해 보면 이놈도 전적이 꽤 화려할 겁니다."
그가 점선으로 화살표를 그리고 동그라미를 추가했다.
"경사면에서 열심히 굴렀으면, 여기까지는 굴러갔을 겁니다."
박순기가 얼른 지도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었다.
"하늘공원 쪽으로도 체포팀이 갔습니다. 그 팀에 이 자료를 보내겠습니다."
"놈이 처음 사격한 곳에 총기 가방이나 탄피 같은 것들이 있을 겁니다. 그놈은 아래로 구르면서 도망쳤기 때문에 그런 걸 하나도 못 숨겼거든요."
"증거물까지 있군요."
"그중에 9mm 탄피 몇 발은 제가 쏜 겁니다만."
"아. 평소처럼 권총을 빼앗아서 여기 있던 놈에게 쏜 거군요?"
"아니요. 다리 통로에 있는 놈에게 쐈습니다."
"네? 여기 다리가 어디 있다고…."
"월드컵대교요. 메인 킬러가 거기 있어서요."
박순기가 웃었다.
"하하하. 그런다고 권총탄이 거기까지 날아가겠습니까?"
어차피 조사하면 다 나온다. 나강인은 굳이 설명하지 않고 지도에 표시를 추가했다.
"메인 킬러는 이쯤에 무기를 버렸습니다. 한강에 던졌으니까 찾으려면 잠수부를 동원해야 할 겁니다."
"어…. 강변에 가까운 쪽이긴 하지만 그래도 찾는 게 쉽진 않겠네요."
나강인이 이번에는 한강 위에 표시를 추가했다.
"여기서 권총을 떨어뜨렸죠."
"네? 거기는 다리가 없는데요?"
"공중전 도중에 떨어뜨렸으니까요."
"아…. 거기는 너무 깊어서 찾기 어려울 텐데."
"강변에 있던 사람들이 찍은 사진이나 영상에 권총이 빠진 위치가 기록되어 있을 겁니다."
"꼭 찾아야겠네요."
영상이 공개되면 나중에 민간인 잠수부가 개인적으로 그곳을 수색해 권총을 찾아낼 수도 있다.
그 잠수부가 찾아낸 권총을 공개하면 경찰이 욕을 먹고, 신고하지 않으면 불법무기 소지자가 한 명 생긴다.
박순기가 물었다.
"나 사범님. 일단 저희 쪽으로 가서 상황을 정리하실 거지요?"
"그 전에 강 건너 난지한강공원으로 먼저 가야죠."
"거기에 잡을 놈이 또 있습니까?"
"촬영팀이 있습니다. 제가 계속 안 보이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가서 얼굴은 보여줘야지요."
"아! 중간에 차만 바꿔 타고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
최진욱 피디는 흥분했다.
"공중전 다 찍었지?"
조연출이 방송용 카메라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찍긴 찍었는데요. 줌을 최대로 당겨도 확대에 한계가 있던데요? 화질이 좀 애매합니다."
"한강 이쪽에서 공중전을 했으면 영상이 더 잘 나왔을 텐데 아쉽다."
조연출이 물었다.
"그런데 최 피디님. 이 영상을 왜 굳이 찍으라고 하신 거죠? 우리 드라마에는 쓰지도 못하는데."
"보도국에 팔려고. 방송용 카메라로 찍은 건 우리밖에 없잖아. 아무리 멀리서 찍었어도 영상의 느낌이 스마트폰보다는 낫겠지."
조연출이 눈을 껌뻑였다.
"네? 이걸로 돈을 버시게요?"
"보도국에서 우리한테 돈을 왜 줘?"
"판다면서요?"
"이거 주고 우리 드라마 촬영할 때 협조를 받겠다는 말이지. 뉴스 나가는 장면을 진짜 기자와 아나운서 데려와서 찍으려고."
"아!"
"이런 게 꿀팁 아니겠냐? 배워둬."
"넵!"
최진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우리 촬영은…."
경찰은 지금 하늘공원 경사면은 물론이고 난지한강공원도 조사하는 중이다.
조연출이 경찰들을 보며 최진욱에게 물었다.
"촬영에 방해되니까 비켜달라고 하면 안 해주겠죠?"
"촬영 접으라고 하겠지. 아. 일정이 바쁜데 상황이 도와주지를 않네."
‘바보의 사랑’ 촬영은 중단됐다.
경찰이 현장을 조사하는데 그 옆에서 드라마를 찍을 수는 없다.
게다가 차를 타고 멀리 도망간 배우들도 있었다. 스태프 중에도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이 많았다.
촬영을 포기한 최진욱이 스태프들에게 말했다.
"장비 잃어버리지 말고 확실히 챙기세요. 다들 놀라셨을 테니까 장비만 챙기고 철수하겠습니다. 스케줄을 다시 조정해야 하는데…. 아. 큰일 났네. 어떻게 조정하지?"
최진욱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강인 씨는 어디 갔어? 우리 드라마는 강인 씨 스케줄이 제일 중요한데."
***
주연 배우 김유찬은 오늘 코앞으로 저격수의 총탄이 지나가는 걸 경험했다. 나강인이 저격을 피하는 것도 봤다.
소음기가 달린 개조 저격소총의 소리가 워낙 작아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그때도 김유찬은 하늘공원 경사면에서 나강인과 킬러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드래곤 윙이 한강을 날아가는 것도 보았다.
김유찬이 혼잣말을 했다.
"역시 저 하늘을 나는 히어로가 강인 씨였구나."
신은하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고 다가왔다가 그 말을 듣고 얼른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댔다.
"쉿. 유찬 오빠. 눈치챘으면 조용히 해요."
"너도 알고 있었어?"
"드래곤 윙의 주인이요? 당연한 거 아녜요?"
"강인 씨가 총알을 피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신은하가 자랑했다.
"당연하죠. 나쁜 놈이 권총을 쏘면 복도 벽을 옆으로 밟고 다니면서 피하는 거 많이 봤어요."
"이번에는 권총이 아니던데."
"네?"
김유찬도 자랑할 게 생겼다.
"강인 씨가 나랑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옆으로 휙 움직였거든? 진짜 영점일 초 후에 총알이 핑하고 내 앞을 지나가더라."
"영점일 초요? 그게 계산이 돼요?"
"되겠냐? 거의 동시였다는 뜻이지."
신은하가 김유찬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피는 안 나는데…. 어디 맞은 데 없죠?"
"당연…. 어? 그 총탄이 조금만 빗나갔어도 내가 맞을 수 있었구나!"
김유찬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 방탄조끼라도 사서 입고 다녀야 하나? 안 되는데. 내가 그러고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텐데."
신은하가 허리를 톡톡 두드리며 자랑했다.
"그래서 난 요즘 이걸 입어요."
"이거라니?"
그녀가 허리 쪽 옷을 슬쩍 들춰서 안쪽을 보여주었다. 속옷이 아니라 다른 게 보였다.
"어? 그건…."
김유찬은 신은하가 예전에 화살을 맞고도 멀쩡했던 걸 안다. 그때는 좋은 방검복을 입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게 총알도 막아줘?"
"물론이죠. 유찬 오빠는 이런 거 없죠?"
"어디서 파냐?"
신은하가 옷을 내리며 설명했다.
"철인기공에서 파는데 개인은 못 사요. 각국 정부나 특정 기업만 살 수 있어요."
"그런 걸 넌 어떻게 구했어?"
그녀가 씩 웃으며 자랑했다.
"난 강인 오빠한테 선물 받았죠. 이거 강인 오빠가 나를 위해서 한 땀 한 땀 직접 만든 거예요."
"나는!"
"나만 줬거든요? 우리가 보통 사이가 아니잖아요. 오호호호!"
"너만 강인 씨랑 친하냐? 나도 친해. 그리고 방금 나 총 맞을 뻔했어. 나도 그거 받고 싶다!"
***
나강인은 박순기와 함께 난지한강공원으로 돌아왔다. 그런 후에 김유찬부터 만났다.
김유찬이 엄지를 세웠다.
"강인 씨. 총알을 피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와. 그냥 이리저리 뛰는 것도 아니고 스나이퍼가 쏠 때만 휙 움직여서 피하던데요?"
"그걸 또 본 사람은요?"
"스나이퍼가 소음총을 쏠 땐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랐어요. 권총 소리가 들린 후부터는 다들 도망치기 바빴고요."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를 안 했나 보네요?"
김유찬이 씩 웃었다.
"강인 씨가 그런 놈들과 싸우는 걸 내가 처음 본 게 아니잖아요."
김유찬은 나강인이 낙귀 해적단을 박살 낼 때 그곳에 있었다. 이보라 납치 사건 때는 같이 구출하러 가기도 했다.
그는 언론에 나강인이 그 일을 해결했다는 건 알리지 않았다. 나강인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유찬이 말했다.
"나만 알고 있으려고 했는데, 은하도 눈치챘더라고요."
"은하야 뭐."
"흐흐. 오늘 사건도 내 컬렉션에만 추가해야지."
"컬렉션이요?"
김유찬이 씩 웃었다.
"강인 씨가 활약한 사건 기사들을 따로 모아놨거든요. 나도 같이 싸운 사건들은 그때 입은 옷이나 소품도 따로 챙겨놨어요."
"아니, 그걸 왜…."
"나도 히어로가 꿈이라서? 흐흐. 아!"
김유찬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 날개, 강인 씨가 만든 거면 나한테도 하나만 팔아요."
나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비행보조장치 없어서 함부로 날면 추락해서 죽어요."
"그럼 한강이나 바다 위에서만 날면 되죠."
"그거 입고 강에 추락하면 무게 때문에 바로 가라앉아요. 탈출에 실패하면 죽어요."
"물에서 벗는 연습을 할게요."
"아무리 물이라도 고속으로 떨어지면 죽어요."
나강인이 죽는다는 말을 세 번이나 했는데도 김유찬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도 진짜 날고 싶은데."
나강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상 연습 단계를 통과하면 그때 고려해봅시다."
"어? 연습 과정이 있어요?"
나강인이 경찰들과 이야기 중인 박순기를 슬쩍 가리켰다.
"순기 씨가 연습 중인데, 아직 갈 길이 멀죠."
"흐흐. 날개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또 있군요. 저분이랑 같이 훈련받으면 되겠네요."
"나중에 체육관에 오던가요."
둘이 이야기하는데 신은하가 다가왔다. 그녀는 나강인의 몸부터 위아래로 살폈다.
"안 다쳤지?"
"봤잖아."
"산전수전으로 부족해서 이젠 아주 공중전도 하더라?"
"스나이퍼가 좀 쏘더라. 그런 놈을 놓치면 골치 아파질 것 같아서 잠깐 날았다."
"진짜 내가 걱정…. 어? 잠깐. 옷에 구멍 그거 뭐야? 총 맞았어?"
미끼 킬러를 잡다가 메인 킬러의 저격에 한 발 맞긴 했다.
"드래곤 플레이트를 입고 있어서 괜찮아."
"그래도…."
"너도 항상 입고 다니지?"
"당연하지. 당분간 조심하라고 해서 촬영할 때도 입어."
김유찬이 얼른 항의했다.
"강인 씨. 나는!"
"뭘요?"
"수제 방탄복을 은하만 주고!"
"어…. 은하는 나랑 다니다가 위험한 일을 자주 겪었으니까 보호 장비가 필요해요."
"난 방금 총 맞을 뻔했는데! 스나이퍼가 실력이 조금만 부족했어도 그 총알을 내가 맞을 수도 있었는데!"
"어…."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김유찬은 요원님과 체형이 비슷합니다. 양산형이 맞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체형에 맞는 양산형 모델이 있는지 검사는 해줄게요. 사이즈가 맞으면 철인기공에 이야기해줄 테니까 돈 주고 사요."
김유찬은 가격은 묻지도 않았다. 그가 신은하를 보며 자랑했다.
"흐흐. 은하야. 봤냐? 나도 이제 드래곤 플레이트를 산다?"
신은하가 씩 웃었다.
"어머어. 유찬 오빠. 방금 들었잖아요. 몸에 맞는 양산형 모델이 있으면 사라고. 내 건 강인 오빠가 내 몸에 맞춰서 만들어줬어요. 그러니까 내 건 맞춤옷이고, 유찬 오빠가 사는 건 기성복이거든요?"
"다른 거야?"
"당연하죠. 방어력이 달라요."
김유찬이 나강인을 휙 돌아보았다.
"강인 씨! 나도 맞춤옷 입을 줄 아는데!"
"어…. 일단 측정부터 해보고요."
김유찬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예에!"
신은하가 나강인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다 끝난 거야? 나쁜 놈들은 다 잡았어?"
"아니. 진짜로 잡아야 할 놈이 남아있는데."
그가 촬영 현장을 보았다. 오늘 스케줄도 차 이사에게 유출됐다. 그걸 조사하면 용의자의 수를 더 줄일 수 있다.
차 이사가 고용한 킬러도 잡았다. 그놈을 조사하면 추가 정보가 나온다.
"정보가 계속 수집되고 있으니까, 곧 잡을 수 있어."
"곧?"
나강인이 말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