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86화 (386/411)

386. 차 이사

나강인이 난지한강공원에서 하늘공원 경사면에 있던 킬러와 싸운 건 영상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 전투를 알아본 사람도 김유찬밖에 없다.

월드컵대교에서 저격한 킬러와 장거리에서 교전할 때 찍은 영상은 있다. 그런데 그 영상에도 교전하는 장면은 제대로 찍혀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때 총소리를 듣고 대피했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나마 존재하는 영상에는 대피한 사람들의 모습이 주로 나왔다.

월드컵대교 쪽이 잠깐 찍힌 영상이 있긴 있는데, 킬러의 모습은 영상을 확대해야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중전은 달랐다. 나강인이 한강 수면 위를 날아갈 때부터 영상이 존재했다.

나강인과 킬러가 공중에서 싸운 모습을 촬영한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인터넷에 공개된 영상을 본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킬러의 날개도 그럴듯하긴 한데, 엔진 달린 기계 날개는 아예 미래에서 가져온 수준이네요.

-용산 사건 때 사진을 누가 분석한 거 보니까, 모형비행기용 엔진을 썼답니다. 현재 기술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번엔 그때랑 엔진 모양이 다르다던데요? 출력도 다르고요.

-더 좋은 엔진을 썼나 보죠. 어쨌든 만들 수는 있습니다.

-당연히 만들 수야 있겠죠. 실물이 저렇게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다른 곳에서는 못 만드나요?

제작 기술 이야기만 나온 게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이건 사람이 개인용 비행 슈트를 타고 싸운 세계 최초의 전투입니다.

-맞아요. 우리는 역사의 한순간을 보고 있는 겁니다.

-에이. 역사의 한순간까지 나올 정도는 아니죠.

-공수부대 수천 명이 낙하산이 아니라 저 날개를 쫙 펼치고 날아온다고 생각해보세요. 당하는 쪽에서는 얼마나 무섭겠어요?

-미군도 그렇게 대규모로 운용할 돈은 없어요. 저 날개가 얼마나 비싼데요.

-가격을 아시나 봐요?

-당연히 합리적인 추측을 했죠.

-네. 다음 방구석 전문가.

-그런 기밀을 아는 사람이 여기 글을 쓸 리 없습니다.

영상 속에서 나강인은 금속 날개와 제트엔진으로 불꽃을 쏟아내며 날아다녔다. 특히 킬러의 사격을 회피기동으로 피하는 모습이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다.

-쩐다!

-쩌네.

-날개가 쩌는 겁니까? 그걸 조종하는 사람이 쩌는 겁니까?

-둘 다 쩔죠. 총 쏘는 걸 보고 피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우리 편이 이긴 거죠?

-당연하죠.

-여러분! 이제 히어로에게 망토의 시대는 갔습니다. 이제는 개인 비행 슈트의 은색 날개와 제트엔진의 시대입니다!

둘 중 누가 악당이고 누가 히어로인지는 현장에서 바로 밝혀졌다.

공중전에서 패배한 쪽은 경찰들이 수갑을 채워 끌고 갔다.

그런데 나강인은 사람들에게 인사까지 하고 여유 있게 차를 타고 떠났다.

목격자들이 찍은 여러 버전의 전투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그건 모두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이다.

그런데 뉴스에 나온 것 중에는 다른 게 있었다.

TV에서 아나운서가 말했다.

-지금부터 보실 것은 저희가 단독 입수한 당시 전투 영상입니다.

KMTV 뉴스가 공개한 영상에는 나강인이 한강 수면 위를 날아가다가 다리 위까지 수직으로 상승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그건 드라마 바보의 사랑 스태프가 현장에서 인터넷 개인방송으로 이미 내보냈던 영상이다.

스태프의 스마트폰에서 원본 영상을 복사해 방송한 것이라 화질은 뉴스 화면이 인터넷 버전보다 훨씬 좋았다. 하지만 단독 입수라고 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진짜 단독 영상은 최진욱 피디가 조연출을 시켜 방송용 카메라로 찍은 공중전 영상이었다. 그 영상이 이어서 나왔다.

카메라의 광학 확대 기능을 최대로 써서 찍기는 했지만, 거리가 먼 한강 건너편에서 찍는 바람에 화질은 방송용치고는 나쁜 편이었다.

대신에 좋은 카메라로 멀리서 찍었기 때문에 아주 안정적인 구도의 화면이 나왔다.

인터넷에 공개된 스마트폰 영상은 모두 화면이 심하게 흔들렸다. 전투 장면이 아예 화면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KMTV의 영상은 카메라가 안정적으로 움직여서 스마트폰 영상보다 훨씬 보기 편했다. 놓친 장면도 없었다.

공중전 영상이 모두 나오고 나서 아나운서가 말했다.

-이 영상은 우리 KMTV의 드라마 바보의 사랑 제작진이 현장에서 촬영했습니다.

다른 방송국이 제보로 받은 스마트폰 영상을 보여줄 때, KMTV만 혼자 좋은 영상을 독점해 방송했다.

보도국장이 최진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피디! 진짜 고마워! 지금 국내 방송 그 어떤 곳도 우리보다 좋은 영상이 없어!

"흐흐. 국내만요?"

-당연히 외국에서도 영상 사용 요청이 계속 들어오지. 오늘 하루는 우리가 꿀을 빨다가 내일 허락해주려고.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애사심이 이렇게 넘칩니다. 그런데 제 부탁은…."

-우리 애들 데려다가 뉴스 장면 찍고 싶다고 했지? 맘대로 데려가서 팍팍 찍어. 뉴스 스튜디오도 빌려줄 테니까 대놓고 써!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후에 최진욱이 실실 웃었다.

"이제 우리 드라마 뉴스 장면은 배우 출연료가 공짜구나. 뉴스 스튜디오 세트 만들 비용도 안 들겠어. 이번에 아낀 돈으로 CG를 보강하자."

옆에서 도주희 작가가 물었다.

"출연료를 주긴 하잖아."

"아나운서나 기자한테 수당이 몇만 원쯤 나가긴 하지. 근데 그 정도면 공짜나 마찬가지잖아. 잘나가는 기자랑 아나운서들을 쓸 건데."

도주희가 최진욱을 보며 말했다.

"근데 최 피디는 총소리가 막 들리는 현장에 있었는데도 겁이 안나? 이번 일을 너무 좋아하는데?"

"도 작가. 내가 말이야. 군대에서 특수부대에 있을 때 간첩 잡으면서 이런 전투를 많이…."

"최 피디 이등병 때 내가 면회 갔던 거 잊었어? 특수부대? 어디서 약을 팔아?"

"아. 그랬지."

***

차 이사는 킬러가 실패했다는 걸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로 말했다.

"실패했나. 후우."

삼선 국회의원 김석명이 말했다.

"차 이사. 이번엔 확실히 죽일 거라고 했…."

차 이사가 갑자기 몸을 앞으로 숙여 탁자 위의 술병과 술잔을 손으로 쓸어버리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그러고도 화가 계속 치밀어서 탁자를 뒤엎었다.

"세계 최고의 킬러라며!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며! 그런데 왜! 내가 의뢰했을 때 실패하냐고!"

삼선 국회의원 김석명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실패해서 다행이다.’

나강인을 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게 아니다.

김석명이 화를 내며 창고를 돌아다니는 차 이사를 쓱 보았다.

‘실패했다는 걸 부하가 보고하거나 누가 알려준 게 아니라, 차 이사가 직접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알았단 말이지.’

그게 의미하는 건 하나다.

‘차 이사는 적어도 국내에서는 나 외에는 끈이 다 떨어진 상태란 소리야.’

이제 김석명이 소파에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오늘 이후로는 차 이사는 나를 제거할 수 없어. 이 창고에서 나가기만 하면, 내가 죽으면 차 이사의 정체가 자동으로 공개되게 조치할 테니까.’

여유가 생긴 김석명이 차 이사에게 제안했다.

"차 이사. 그러니까 이쯤에서 손을 떼고 외국으로 나가라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하와이로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다 차 이사가 권총을 뽑으면 좋을 게 없어서 참았다.

차 이사는 외국으로 나가라는 말만으로도 으르렁댔다.

"의원님. 나보고 나강인에게서 도망치라는 겁니까?"

"이삼 년만 외국에서 조용히 지내면 지금까지 일어난 일은 다 장기 미제 사건이 될 겁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사라지고, 수사본부가 만들어져도 그때쯤이면 해체되겠지요. 그러면 모든 사람이 행복하잖습니까?"

차 이사의 눈빛까지 날카로워졌다.

"나강인을 죽이기 전에는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만?"

김석명이 얼른 두 손을 흔들었다.

"거 정말 고집이 대단하시네. 알았어요. 알았어."

그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물었다.

"그럼 다음에는 어떤 방법을 쓸 겁니까?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습니다."

앞으로 돕지 않겠다고 하면 김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그가 먼저 돕겠다고 나섰다.

‘이래야 차 이사가 나한테 매달리지.’

김석명이 자랑했다.

"나 삼선 국회의원 김석명입니다. 차 이사를 도와줄 권력을 가진 사람이란 말이지요. 하하하."

"나강인은 남에게 맡겨서는 죽일 수 없는 놈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차 이사가 말했다.

"내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어? 지, 직접이요?"

***

나강인은 박순기와 합수부를 방문했다.

관할 경찰서로 가면 기자들의 눈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부러 다른 곳으로 갔다.

합수부 형사가 말했다.

"선생님이 여기로 오셨으니, 이번 사건도 합수부는 발을 뺄 수가 없겠습니다."

"어…. 뭐 좀 도와드릴 일이라도?"

형사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킬러를 두 놈이나 잡으셨는데 그놈들이 다 국제 킬러라면서요? 그놈들을 털면 저희도 챙기는 게 쏠쏠하게 있겠죠."

그런데 이번 사건은 합수부가 전담하는 게 아니다. 전투가 벌어진 지역 경찰서 세 곳과 광역수사대 형사가 찾아와 상황설명을 들었다.

그중에 마포서에서 온 형사는 예전에 유나린 박사가 인질로 붙잡혔을 때 나강인을 본 사람이다.

형사가 웃었다.

"전에 뵈었을 때는 그래도 하늘을 날지는 않으셨는데요. 이젠 뭐…. 하하하."

"장비를 좀 보강했거든요."

"제가 행글라이딩에 취미가 있어서 여쭤보는 건데요. 그 날개를 혹시 민간에서 살 방법이…."

"없습니다."

***

나강인은 진술을 마친 후에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박순기가 같이 나오며 싱글벙글 웃었다.

나강인이 물었다.

"왜 그렇게 좋아합니까?"

"흐흐. 드래곤 윙이 업그레이드되더니 진짜 전투기처럼 날아다녔으니까요. 한강에서 다리 위로 쑥 올라가는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자리에서 수직으로 상승한 건 아닙니다. 그러면 연료를 너무 많이 먹으니까요. 한강 위를 날면서 충분히 가속했다가 그 힘으로 위로 올라간 겁니다."

"어쨌든 가능은 하다는 거잖습니까? 흐흐흐. 제가 훈련을 마치고 테스트도 통과하면 만들어주기로 하신 드래곤 윙 말입니다. 진짜 기대됩니다. 저도 신형으로 만들어주실 거죠?"

"작업 시간은 구형이나 신형이나 비슷하니까 상관없습니다만."

"아싸아!"

"신형은 엔진이 비싼데요."

"네?"

"오메가테크에서 개발한 엔진이라 많이 비쌉니다."

"RC 모형비행기용 제트엔진도 개당 몇백은 한다면서요? 그것보다 더 비싼가요?"

"가격이 자릿수가 다르죠. 이건 소형 미사일에 들어가는 건데."

미사일은 원래 비싼 무기다.

세상에는 복제품 RPG처럼 저렴한 로켓도 있지만, 정품 미제 미사일은 가격의 단위가 다르다. 최신형 미사일은 더 비싸다. 그런 비싼 미사일의 엔진도 당연히 비싸다.

박순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무리 비싸도 정부 예산을 받으면 살 수는 있다.

그런데 그는 드래곤 윙을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었다.

그가 통장 잔고를 떠올렸다. 공무원 월급으로 미사일 엔진을 네 개나 사는 건 무리였다.

"어…. 저는 그럼 구형으로…. 하, 하하. 신형 사려면 적금부터 들어야겠네요."

***

한강공원 전투 현장을 경찰 과학수사대가 조사했다. 국과수와 다른 기관 여러 곳에서도 사람이 나와서 조사에 참여했다.

총기분석 전문가인 팀장이 총탄에 맞은 난간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기 하늘공원 경사면에서 권총을 쐈는데 그게 여기 맞았다?"

팀장이 하늘공원 쪽을 조사할 때 다리에 먼저 와서 정보를 수집한 팀원이 대답했다.

"그렇죠."

"그게 가능해?"

"영상에 나온 킬러의 위치하고 비교해 보면 일이 미터는 빗나갔는데, 그 정도는 가능하겠죠."

팀장이 하늘공원을 가리켰다.

"넌 저기서 여기까지 그렇게 쏠 수 있냐?"

팀원이 두 손을 들어 총을 겨누는 시늉을 했다.

"정확히 맞힌 것도 아니고 대충 근처에 떨어진 건데, 이쯤이야 뭐."

"너 지금 그 자세는 소총이잖아. 이건 권총으로 쏜 거고."

"어…. 그건 그렇죠."

팀장이 손으로 포물선을 그렸다.

"권총을 이 거리에서 정조준하고 쏘면, 총알이 날아오다가 아래로 떨어져."

그는 권총을 위로 드는 시늉을 했다.

"권총탄이 저기서 여기까지 날아오려면 오조준을 해야 해. 총구를 위로 들어서 쏴야 한다고."

팀원이 물었다.

"그러면 표적이 안 보일 텐데 조준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합니까?"

"당연히 못 하지."

"네?"

팀장이 손을 상하좌우로 움직여 보였다.

"좌우로 권총을 움직인 경우는 타깃이 보이긴 해. 하지만 권총을 위쪽으로 들면 조준할 방법이 없어. 타깃이 안 보이니까 감으로 쏴야지."

권총탄에 맞은 자국은 이미 팀원이 표시해놓았다. 그런데 그런 자국이 하나가 아니었다.

"저 거리에서 표적을 보지도 않고 감으로 쏜 권총탄이, 우연히 한 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여러 발이 비슷한 위치에 떨어져? 최대 유효사거리의 열두 배를? 이건 불가능해."

"그렇게 말씀하셔도…."

팀원이 권총탄에 맞은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실제로 증거가 이렇게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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