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87화 (387/411)

387. 김석명

총기분석 전문가인 팀장이 월드컵대교에서 인상을 썼다.

"여기 증거가 어디 있어?"

팀원은 당황했다.

"네? 이쪽에 총알에 맞은 흔적들이 있잖습니까? 거기다 합수부에서 보내준 자료도 있고, 증거로 제출된 권총에, 저쪽 현장에서 발견한 탄피까지 있는데요?"

"그게 저기서 여기로 권총을 쐈다는 증거다?"

"당연하죠."

팀장이 손가락을 들어 하늘공원 경사면에서 난간까지 허공에 선을 그었다.

"야. 저기서 누가 권총을 쏴서 여기 있는 사람을 아예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치자. 그걸 살인의 증거라고 법정에 내놓으면 어떻게 될 거 같냐?"

"네?"

"증거로 못 써먹어. 피고의 변호사는 말이 안 된다고 증언해줄 전문가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우리는 재현이 불가능하거든."

"하지만 진짜로 이렇게 명확한 증…. 결과물들이 있는데요?"

"이건 원래 말이 안 된다니까?"

"말은 안 되는데, 됐는데요?"

팀장도 안다. 그가 아는 지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데, 그렇다고 이곳이 조작된 현장처럼 보이진 않았다.

팀장이 하늘공원을 보며 말했다.

"정말로 저기서 권총으로 여기를 쐈다면 말이야. 사람의 사격술이 아니란 소리야."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사격 고수겠죠."

"그런 사격 고수가 진짜로 존재하면 올림픽에 나가야 하는 거 아냐? 메달을 아주 쓸어담을 텐데."

"그러게요. 어? 혹시 진짜 사격 금메달리스트인 거 아닐까요?"

"어…. 그런가?"

***

이튿날, 삼선 국회의원 김석명이 그의 집무실에서 어제 창고에서의 일을 분석했다.

"차 이사가 왜 자기가 직접 나강인을 처리하겠다고 했을까? 언제나 뒤에서 남을 시켜서 일을 꾸미는 놈인데."

이유는 짐작이 갔다.

"이제 일을 시킬 부하도 없고, 실력이 더 좋은 킬러도 찾을 수 없는 거겠지."

창고에서의 일을 생각하니 입에서 욕이 나왔다.

"그런 처지인 놈이, 하필 킬러가 저격할 때 나를 불러? 그때 나강인이 죽었으면 창고에서 나를 쏘고 외국으로 튀려던 거겠지?"

증거는 없다. 차 이사가 정말로 그런 의도였는지, 아니면 김석명이 넘겨짚고 오해한 건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래도 의심이 갔다.

"차 이사는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내가 얼굴 한번 보자고 해도 그렇게 빼다가, 갑자기 나를 만나준 걸 보면 뻔해."

그는 어제 차 이사와 헤어지자마자 영등포 비밀 거점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차 이사를 찍은 동영상을 보관했다.

그가 촬영에 사용한 건 스마트폰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소형 카메라도 아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정보기관 요원이 있다. 그 요원을 통해 스파이들이 쓰는 카메라를 입수해 사용했다.

그는 그 영상을 영등포의 비밀 거점에만 보관했다. 집은 물론이고 국회나 지역구 사무실에도 가져가지 않았다.

영상에는 그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 영상이 공개되면 김석명도 같이 망한다. 그 영상의 존재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한다.

하지만 차 이사는 영상의 존재를 알아야 한다.

"차 이사의 모습이 찍힌 영상이 있다는 걸 알아야, 나한테 함부로 못 굴지. 그 정보는 슬쩍 흘리면 알아서 눈치채겠지."

김석명이 실실 웃었다.

"차 이사. 이제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 거야."

집무실 문이 갑자기 벌컥 열리며 보좌관이 들어왔다.

"의원님!"

김석명이 짜증을 냈다.

"너 이 새끼. 노크할 줄 몰라?"

보좌관이 창백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말입니다. 의원님."

"얼굴은 또 왜 그래? 귀신이라도 봤…."

김석명이 심각해졌다.

"무슨 일이야? 뭐가 터졌어?"

보좌관이 문을 닫은 후에 다가와 작은 소리로 보고했다.

"경찰에서 저를 내사하고 있답니다."

김석명이 화를 벌컥 냈다.

"뭐? 너 이 새끼.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그게 아니라, 의원님이 알아보라고 시키신…."

"어?"

"나강인의 촬영 스케줄 말입니다. 그것 때문입니다."

"아…. 그걸 경찰이 왜?"

"그 정보를 왜, 언제 어디서 누구를 통해 입수했는지, 어디 쓰려고 했는지 궁금해한다고…."

찔리는 게 많은 김석명이 일부러 화를 더 냈다.

"너는 일 처리를 어떻게 했는데 그런 걸 들켜! 지역구로 내려가고 싶어?"

"제 탓이 아니라 월드컵대교 사건 때문입니다."

"어?"

"어제 월드컵대교 공중전 사건이 워낙 컸잖습니까? 하필 그날 그곳에서 그 드라마가 촬영 중이었고요. 그래서 경찰이 그 드라마와 관련된 사람들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감히 내 보좌관을 의심해? 이건 감히 나를 의심…."

김석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혹시 나를 의심하나?"

보좌관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의원님. 제가 저지른 모든 불법적인 일은 다 의원님을 위해 한 겁니다. 아시죠?"

평소에는 불법을 좀 저질러도 탈이 나지 않았다. 문제가 생겨도 삼선 국회의원 김석명의 보좌관이란 타이틀로 덮을 수 있었다. 보좌관 선에서 덮지 못할 정도로 일이 커져도 김석명이 나서면 해결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이 커도 너무 컸다. 그래서 불안했다.

"제가 의원님을 위해 충성을 다 하는 거 아시지요?"

김석명이 혀를 찼다.

"쯧. 경찰의 내사 대상자가 너 혼자인 건 아니지?"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됐어. 그 드라마 촬영 스케줄을 아는 놈이 어디 한둘이야? 그냥 저인망식으로 다 훑으면서 하나 걸리기만 바라는 거겠지. 별일 없을 거야."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경찰 쪽 우리 라인 이야기로는, 처음에는 대상자가 많았는데 지금은 몇 명으로 압축됐다고…."

김석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진짜야?"

"예. 확실하답니다."

"그 새끼는 내가 빽을 그렇게 써줘서 승진시켰으면 일을 제대로 해야지! 도대체 하는 일이 뭐야? 그런 건 미리 말해줘야 대비하잖아!"

"그게, 수사 규모가 확대되면서 자기도 오늘 알게 됐다고, 그래서 연락한 거라고…."

"젠장!"

"저기, 의원님."

"왜!"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제 월드컵대교 사건이랑 의원님은 아무 관계도 없는 거지요? 그렇지요?"

나강인이 용병 여섯 명에게 한적한 길에서 습격당했을 때는 드라마 촬영장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청부업자들이 드라마 촬영장 임시 주차장에서 폭탄을 이용한 차량 폭파를 시도했을 때는 기사가 제대로 뜨지 않았다. 폭탄은 터지지 않았고 경찰에서는 그 정보를 숨겼기 때문이다.

두 번 다 보좌관이 알아온 나강인의 촬영 스케줄을 이용한 습격이었지만, 의심은 할 수 있어도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보좌관이 난지한강공원 촬영 스케줄을 알아갔더니, 그 공원 드라마 촬영장 앞에서 사건이 터졌다.

게다가 보좌관은 나강인이 용산에서 드래곤 윙으로 활약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이번에도 드래곤 윙이 출동했다.

보좌관도 이제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

"제가 알아온 나강인에 관한 정보로 의원님이 어제 그 일을 하신 건 아니지요?"

김석명이 화를 냈다.

"이 새끼가 지금 누굴 의심해? 내가 국제 용병이나 킬러랑 아는 사이겠냐? 어?"

"하긴. 그런 쪽으로는 모르시죠. 전 그냥 놀라서…."

"듣기 싫으니까 나가!"

보좌관은 쫓겨나듯이 집무실을 나갔다.

김석명은 의자를 뒤로 돌렸다. 창밖으로 국회 앞마당과 여의도 빌딩들이 보였다. 그는 평생 이 모습을 보면서 살 줄 알았다. 나중에 풍경이 바뀐다면 정부청사 장관실 창문 밖이나 청와대 앞마당이 보일 줄 알았다.

그가 여의도 풍경을 잠시 멍하니 보다가 욕을 했다.

"제기랄.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발을 빼고 싶었는데."

차 이사가 망하면 김석명도 망하기 때문에 발을 뺄 수가 없었다.

그는 조금 전까지는 차 이사의 영상을 손에 넣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걸 공개하면 김석명도 같이 끝장이 난다. 그 영상은 협박용으로만 써야 한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면 경찰의 수사망이 더 좁혀올 것 같았다. 지금까지 벌인 일이 너무 커서 제대로 걸리면 삼선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

"젠장. 안 되겠어. 차 이사를 다시 만나서 대책을 세워야겠어."

***

최진욱 피디가 국방부 홍보담당관을 만났다.

"저희 드라마에 공격헬기를 협찬해주시기로 한 거 말입니다. 어떻게 됐는지…."

"아. 그거요? 오늘 회의에서 지원하기로 결정됐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기종은 아…."

"코브라 헬기입니다."

"네? 아파치가 더 좋은데…."

홍보담당관이 피식 웃었다.

"최 피디님. 협찬받으면서 너무 비싼 걸 원하는 거 아닙니까? 아파치는 우리 군 공격헬기 전력의 핵심인데요."

"아니, 그래도…."

"아파치는 안 됩니다. 포기하세요."

최진욱이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국산 신형 공격헬기는요? 국산 공격헬기니까 홍보용으로 딱 좋잖습니까?"

"그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우리 군의 최신 무기를 드라마에서 자세히 공개하는 건 좀 그렇다는 의견이 있어서요."

"예? 국산 무기를 홍보해도 부족할 판에 그걸 왜 숨기려는 겁니까?"

"이쪽이 원래 보안에 민감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반대하셔서요."

"뉴스에서 보면 군 보안사고는 뻥뻥 터지던데요?"

홍보담당관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500MD 쓰고 싶으신가 보다. 회의에서 그거면 되지 않냐는 분도 계셨었는데."

500MD는 크기가 작고 낡은 경헬기다. 최진욱이 얼른 손을 흔들었다.

"아뇨. 그건 아닌데요. 그런데 국산 공격헬기가 보안에 민감해서 안 되면 코브라는 왜 되는 겁니까?"

"그거야 뭐, 워낙 오래 썼으니까요. 더 털릴 정보가 없어요."

"그쵸. 코브라는 오래 썼죠. 월남전 때부터 쓰던 거 아닙니까? 드라마에 쓰기엔 너무 낡았는데요."

"어허. 우리 군이 운용하는 코브라는 그때 모델과는 껍데기만 비슷하지 성능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코브라가 워낙 날렵하게 생겨서 화면발도 잘 받을 겁니다."

"그림이 잘 나오려면 육중한 헬기가 필요합니다."

홍보담당관이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코브라는 이번에 정비창에서 오버홀을 받은 기체가 하나 있어서, 그걸 빌려드리는 겁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진짜로 500MD나 UH-1이 나갈 수도 있었어요."

"예? UH-1이 아직도 날아다닙니까?"

"군대에서는 이제 안 쓰죠. 그래도 비행 가능한 기체가 있기는 있습니다."

"와…. 그건 좀."

"어쨌든, 현장에서 임무 수행 중인 기체를 빌려드릴 순 없잖습니까? 그냥 정비창에 있는 코브라를 받으시죠."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최진욱도 더 조를 수는 없었다. 어쨌든 경헬기나 수송헬기보다는 공격헬기가 그림이 잘 나온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추가로 CG를 발라서라도 최대한 멋있게 찍겠습니다."

"우리 와이프가 바보의 사랑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제가 그래서 힘 많이 썼습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그런데…."

오늘 최진욱의 방문 목적은 하나가 더 있다.

"드래곤 윙은…."

"그게 왜요?"

"힘쓰시는 김에 협찬 진짜 안 될까요? 이번에 한강 공중전을 우리 제작진이 현장에서 봤잖습니까? 우리 도주희 작가가 그걸 보고 완전히 푹 빠졌습니다. 대본도 벌써 뜯어고치고 있어요."

홍보담당관이 한숨을 푹 쉬었다.

"휴우. 최 피디님. 그런 요청을 제가 몇 군데에서 받는 줄 아십니까?"

"네? 메트로폴리스 헌터 외에도 드래곤 윙을 빌려달라는 곳이 더 있습니까?"

"국내 영화사나 드라마 제작사, CF 제작사, 심지어 방송국 예능팀에서도 좀 빌려달랍니다."

"아니, 그걸 왜 예능팀에서…."

"국내만 그런 줄 아십니까? 외국에서도 문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 거절하셨겠네요?"

"당연히 거절했죠. 그랬더니!"

홍보담당관이 화를 냈다.

"그거 그냥 좀 빌려주라는 압력이 사방에서 들어와요! 윗분들만 그러는 줄 압니까? 국회의원도 전화하고, 도지사도 전화하고!"

"그, 그래요?"

"전부터 이야기하던 최 피디님이니까 지금 만나드리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자는 건 다 거절했어요!"

최진욱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고생이 참 많으십니다."

홍보담당관이 입에서 불을 뿜었다.

"아니, 기밀 장비를 왜 빌려달라는 거지? 그게 진짜 빌릴 수 있는 건 줄 아나?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나한테 그냥 빌려주라는 사람들은 뭔데? 나는 아직 그 요원 소속이 어디인지조차 모르는데!"

***

최진욱이 국방부에서 돌아와 도주희를 만났다.

도주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빌려준대?"

"일단 코브라 헬기는 빌렸다."

"응? 아파치 빌려온다더니?"

최진욱이 이야기를 조금 부풀렸다.

"수송헬기 준다는 걸 내가 잘 설득해서 코브라를 빌린 거야."

"알았어. 그럼 드래곤 윙은?"

"어…."

"안 된대?"

"내가 오늘 국방부 홍보담당관님이 하소연하는 거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들어주다가 왔다. 국내외 수많은 곳에서 그거 좀 빌려달라고 연락이 오고 빽까지 써대서, 홍보담당관님이 아주 죽으려고 하더라."

"와…. 그 정도야?"

"너만 드래곤 윙을 보고 반한 게 아니더라고."

도주희가 잠깐 생각했다. 협찬은 불가능하다는 건 알았다. 그렇다고 드라마에서 빼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 CG로 가자."

"그러려면 나강인 씨한테 최적화 모델링을 부탁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걸?"

"내가 미인계라도 써볼까?"

"도 작가. 미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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