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 분석
미국 군인과 연구원, CIA 요원 등이 회의실에 모였다. 미국 정부의 다른 부서에서도 몇 명이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실의 대형 스크린에는 월드컵대교 앞 한강 공중전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인터넷에 공개된 영상 몇 개가 나온 후에, 미군 특수부대 요원이 말했다.
"참석 인원이 많이 늘었군요. 상황을 아는 분도 계시고 오늘 처음 듣는 분도 계시겠지만, 드래곤 윙은 우리가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보던 장비입니다."
특수부대 요원이 이번에는 드라마 바보의 사랑 스태프가 촬영한 한강 전투 영상을 재생했다. 그건 인터넷에 공개된 저화질이 아니라 방송국에서 사용한 고화질 영상이었다.
미군 요원이 수면 위를 비행하는 드래곤 윙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이 영상을 정밀 분석한 결과 날개의 형상이 기존과 약간 다르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신형 드래곤 윙입니다. 구형보다 항속거리가 늘고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화면에 나강인이 고도를 높여 다리 위로 올라가는 영상이 나왔다.
"구형은 비행 중에 고도가 천천히 떨어졌습니다만, 신형은 엔진의 추력이 강해서 위쪽으로도 비행할 수 있습니다. 이 영상 속에서 상승한 높이는."
화면이 바뀌었다. 통상적인 기지의 철조망, 호화 저택에 설치된 높은 담장, 중요 시설의 감시탑 등과 월드컵대교 상판의 높이가 비교되었다.
"거의 모든 적 시설의 벽을 넘을 수 있으며."
화면이 이번에는 나강인이 비행한 거리와 참호로 이루어진 방어선의 평균 폭을 비교했다.
"대부분의 적 방어선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질문이 나왔다.
"날개의 형상이 조금 바뀐 것만으로 그런 효과가 난 겁니까?"
"아닙니다. 엔진이 바뀌었습니다."
화면에 엔진 사진이 나왔다. 이번 사진은 엔진만 따로 근접 촬영한 것이었다.
"이건 오메가테크에서 소형미사일용으로 개발한 엔진입니다. 이 사진도 오메가테크에서 받았죠. 신형 드래곤 윙에는 이 엔진이 적용됐습니다."
"어? 오메가테크는 우리 미국의 회사잖습니까? 미사일 부품의 수출은 누가 허락한 겁니까?"
"이건 오메가테크에서 자체적으로 개발만 했을 뿐 정식으로 생산하는 엔진은 아닙니다. 전력화된 미사일에 탑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직 개발 중인 엔진이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성능은 보시다시피 훌륭합니다. 양산에 성공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요."
"미국에서 개발 중인 엔진이 왜 한국에 있습니까?"
"드래곤 윙의 제작자와 오메가테크의 사장 스칼렛 켈리가 친분이 꽤 깊습니다."
질문한 사람도 연구원이라 스칼렛 켈리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드래곤 윙의 제작자와 켈리가 비슷한 분야의 공학자라서요?"
이번에는 CIA 요원이 대답했다.
"저 사람이 스칼렛 켈리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게 계기가 됐습니다. 그 후에 가까워진 이유는 확인하진 못했습니다."
다른 참석자가 그 사건이 뭔지 깨달았다.
"아. 스칼렛 켈리가 한국에서 납치당할 뻔한 그 사건…. 어? 그럼 저 사람이 그때 그 사람입니까? 국제 용병 자칼의 부대를 혼자 전멸시키고 인질을 모두 안전하게 구출했다던…."
"예. 그 사람입니다. 그런 실력자니까 저렇게 잘 날아다니는 거겠죠."
특수부대 요원이 설명을 계속했다.
"그의 탁월한 전투 센스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영상이 바뀌었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비행하며 킬러를 잡는 영상이 나왔다. 킬러가 쏘는 권총을 나강인이 고속 회피기동으로 피하는 영상이 나올 때는 몇 명이 감탄했다.
"캬아."
회의 참석자 중 한 명이 말했다.
"이미 본 영상이지만, 저 부분에서는 정말 박수를 안 칠 수가 없군요."
미군 특수부대 요원이 말했다.
"우리 쪽에서는 구형 드래곤 윙도 특수전 임무에 제한적으로 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더 우수한 신형이 나왔습니다."
화면에 숲에서 이동하는 특수부대와 헬리콥터를 이용한 공중강습 침투 부대의 모습이 나왔다.
"드래곤 윙은 날개를 접으면 백팩 형태로 변합니다. 지상으로 조용히 침투할 때 쓰기 좋지요.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비행이 가능했으니까, 헬기에서 점프할 때도 쓸 수 있을 겁니다."
"특수전 헬기가 적 점령지에서 호버링을 할 필요가 없군요."
"맞습니다. 적당한 고도로 비행하는 헬기에서 뛰어내린 후에, 날개를 펴고 날아가 덮치면 됩니다. 아직 데이터가 없어 확실하진 않지만, 고공 침투 능력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며 한마디씩 했다.
"개인 비행 슈트를 장착한 공중강습 특수전 부대라…. 진짜 보고 싶군요."
"실전에 쓸 수 없어도 만들고 싶은 장비인데, 저 정도면 이미 실전 테스트까지 한 거잖습니까?"
"엔진을 우리 미국 회사가 만들었으니 더 잘됐군요."
"당장 만듭시다."
특수부대 요원이 말했다.
"중요한 문제가 있어서 아직은 무리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겁니까?"
"저희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저 날개로 하늘을 날려면 최첨단 비행보조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없습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저렇게 잘 나는데요?"
"저 사람의 전투 센스는 최고 중의 최고입니다. 저건 저 사람이라서 가능한 겁니다. 일반 병사는 저렇게 날 수 없습니다."
"그럼 비행보조시스템을 만들면 되잖습니까?"
"그 시스템의 개발이 가능한지 알아보려면 실물 드래곤 윙이 있어야 하는데, 구할 수가 없습니다. 구형과 신형 모두 제작자만 가지고 있습니다."
"제작자가 누구입니까?"
특수부대 요원이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입니다."
"예?"
"여러분은 지금 자기가 만든 날개로 하늘을 날면서 싸우는 제작자를 보고 계십니다."
"아…."
이번에는 CIA 요원이 나섰다.
"우리는 저 사람이 비행보조시스템을 개발할 능력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예? 혼자서는 어렵지 않을까요?"
"저 사람은 전투력만 높은 게 아닙니다. 기계공학과 구조역학, 지질, 화학 등 다양한 공학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전문가입니다. 또한 해커들 사이에서 악마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IT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아니, 무슨 한 사람이 그걸 다…."
"저희 판단으로는, 저 사람은 자기가 만든 날개에 맞는 비행보조시스템을 만들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 만든 겁니까?"
"본인에게는 필요가 없으니까 안 만들었겠죠. 이미 잘 날잖습니까?"
사람들이 영상을 보았다. 나강인이 공중 고속기동으로 총탄을 피하며 킬러를 잡았다.
"아…. 저 사람한테는 진짜 필요가 없겠네요."
다른 부서에서 온 사람이 물었다.
"그러면 저 사람을 여기로 불러서 비행보조시스템 개발을 맡기면 되잖습니까?"
"어렵습니다. 저 사람은 이전에도 화장품회사에서 제품 개발을 의뢰했는데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데려올 수도 없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요청했는데도 한국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네? 할리우드라니요?"
"영화 무술감독과 컴퓨터 그래픽 기획 전문가로 유명합니다."
"아니, 한 명이 도대체 몇 개나 잘하는 겁니까?"
"다 잘합니다."
다른 참석자가 손을 들었다.
"거절할 수 없는 금액을 개발비로 제시하시죠. 얼마면 되겠습니까?"
CIA 요원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우리 분석팀이 그러더군요.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
AI 전지인이 말했다.
-어디 하늘에서 돈이라도 안 떨어지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황이 변해서 우리 임무도 조정했으니까, 예산도 다시 책정해야겠다."
-어떤 임무든 예산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알바라도 하십시오.
"네가 비행보조시스템만 만들 수 있었어도 드래곤 윙을 양산했을 거야. 그러면 알바를 할 필요도 없이 돈을 긁어모았겠지."
-초기 메모리에 설계도가 없습니다. 포기하십시오.
"있긴 있잖아."
-그건 2082년의 전쟁터에서 구할 수 있는 부품을 조합하는 설계도입니다. 지금 시대에는 그 부품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잡담하다 보니 어느새 촬영장에 도착했다. 나강인이 차에서 내려 최진욱 피디를 찾아갔다. 오늘 촬영 계획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최진욱 피디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강인 씨! 도와주세요!"
"지금 도와주고 있습니다만?"
"우리 CG가!"
"옥상에 공격헬기가 등장하는 장면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아뇨. 그건 잘 되고 있습니다. 스케치대로 만들었더니 작업이 굉장히 빨라졌다더군요."
"그럴 겁니다. 그 스케치는 최적화에 중점을 두고 그렸으니까요."
"이번에 드래곤 윙도 드라마에 쓰려고 하는데!"
"누가 그걸 빌려준다고 했으면 사기꾼이니까 얼른 신고하세요."
드래곤 윙은 나강인만 가지고 있다.
"내가 진짜 꼭 빌리려고 했는데!"
도주희가 옆에서 말했다.
"이제 드래곤 윙이 없는 결말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국방부에서는 협찬해줄 수 없다잖아요."
"어…. 당연히 국방부는 안 된다고 하겠죠."
드래곤 윙은 국군의 장비가 아니라 나강인의 개인 장비다.
"그래서 CG로라도 넣으려고요. 방송 일정에 맞추려면 CG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데, 제가 듣기로는 강인 씨가 CG 최적화 전문가라면서요? 도와주세요."
"음…."
최진욱이 말했다.
"CG 제작업체에 최적화 자문만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제가 추가 예산을 받아다가 자문료를 팍팍 드릴 테니까…."
AI 전지인이 끼어들었다.
-요원님. CG 최적화는 제 전문분야입니다. 드래곤 윙의 설계도도 가지고 있습니다. 설계도를 보고 그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건 꿀알바입니다. 얼른 챙기십시오.
나강인이 말했다.
"모델링 정도는 도와드리죠."
"으하하. 고맙습니다! 그럼 오늘 촬영이 끝나면 바로 가시죠!"
"어디를요?"
"CG 업체요. 저희가 시간이 없어서."
***
그날 낮 촬영은 나강인이 맡은 액션이 마지막이었다. 장소를 옮겨서 밤에 야간 촬영을 또 해야 하지만 그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있었다.
최진욱이 그 시간을 이용해 나강인과 함께 CG 업체를 방문했다.
그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CG 업체 사장이 마중 나왔다. 그는 나강인을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하하하."
"저를요?"
"지난번에 보내주신 CG 최적화 스케치를 보고 정말 감탄했습니다. 저희가 그걸 기반으로 작업했더니, 얼마나 최적화를 깊게 고려하고 그리신 건지 알겠더군요."
"어, 그거야 뭐."
AI 전지인이 자랑했다.
-제가 원래 CG를 많이 잘합니다.
사장이 물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런 분이 계시다는 말을 못 들었는데, 혹시 외국 어디서 활동하셨는지…."
AI 전지인이 말했다.
-지구연합 전략특수군입니다.
"들어도 모르실 겁니다."
***
나강인은 ‘바보의 사랑’의 CG를 맡은 팀을 만났다. 팀원들이 나강인을 보며 기대에 차서 눈을 반짝였다.
‘어떤 식으로 하는지 배울 수 있을까?’
‘작업하는 방식을 보면 뭐라도 하나 얻을 수 있겠지.’
‘질문하고 싶다.’
팀장이 먼저 현재까지 작업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세트장은 저층 상가 건물 옥상에 만들었잖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배경에 빌딩을 깔아서 서울 시내 한복판의 고층빌딩 옥상으로 보이게 했죠."
최진욱 피디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이 장면은 김유찬 씨가 적의 함정에 빠져 옥상에서 궁지에 몰렸을 때입니다."
"예. 여기서 공격헬기가 김유찬 씨 뒤에서 짠하고 등장해야죠."
"이게 적의 함정을 다시 공격헬기로 카운터 치는 장면이거든요."
"최 피디님. 대단하시던데요. 저희가 이 일을 하다 보면 남들은 잘해야 병력수송헬기 정도 빌리던데, 진짜로 코브라 공격헬기를 빌리실 줄이야."
최진욱이 자랑했다.
"제가 섭외력이 좀 됩니다. 하하하."
팀장이 설명했다.
"공격헬기가 기관포를 쏘는 장면은 CG로 처리해야죠. 그건 이미 만들어놨는데, 나중에 헬기 영상이 나오면 그때 붙이겠습니다. 그리고 기관포에 맞아서 터지는 쪽은."
팀장이 모니터에 작업 중인 CG를 새로 띄웠다.
나강인이 저번에 스케치해준 것들이 CG로 만들어져 있었다. 20mm 철갑탄이 날아가는 모습이나 옥상의 사물이 폭발하는 장면 등이 CG로 처리되어 있었다.
팀장이 씩 웃으며 물었다.
"어떠십니까?"
AI 전지인이 말했다.
-겨우 이렇게밖에 못했다니, 실망입니다.
최진욱은 활짝 웃었다.
"잘하셨네요. 제가 생각했던 그대로입니다."
"하하하. 지난번에 보내주신 스케치 덕분에 이 작업은 거의 완성됐습니다."
최진욱이 물었다.
"그러면 드래곤 윙 작업도 금방 들어가실 수 있겠네요?"
"물론이죠. 드래곤 윙도 완벽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팀장이 나강인을 보며 말했다.
"최적화 모델링이 필요합니다. 시간만 많으면 저희가 할 수 있는데, 아시다시피 제작 일정이…."
나강인이 말했다.
"그러려고 왔습니다."
팀장이 얼른 손짓했다. 팀원이 스케치북과 컬러 펜 세트를 가져왔다.
팀장이 설명했다.
"이걸 쓰신다고 해서 저희가 똑같은 걸 준비했습니다."
"저번에는 시간과 장비가 없어서 스케치만 한 겁니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PC로 작업했으면 하는데요."
"그래 주시면 저희야 좋지요! 이쪽 장비를 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