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90화 (390/411)

390. 코브라

코브라 공격헬기 한 대가 최근에 정비창에서 완전분해검사 및 복원 수리를 받고 경기도에 있는 시설로 옮겨졌다.

그 헬기 앞에서 조종사가 실실 웃었다.

"흐흐. 저는 이제 드라마 촬영장에 배우들 만나러 갑니다."

"거기 가면 김유찬 싸인 꼭 받아 와."

"김유찬 팬이셨어요?"

"아니. 우리 딸이 김유찬 팬이야."

"그럼 다른 배우 싸인은 필요 없으시고요?"

"나는 그, 알레이나 민이 그렇게 괜찮더라고."

"이야아. 배우 취향이 국제적이시네."

"놀리냐?"

조종사는 콧노래를 부르며 조종석에 올라갔다.

"그럼 갔다 오겠습니다."

"테스트 비행 겸해서 가는 거야. 놀러 가는 거 아니다."

"예이. 공식적으로는 이것도 일이죠. 매일 이런 일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

조종사가 코브라 헬기를 조종해 드라마가 촬영 중인 쪽으로 날아갔다.

미사일을 장착하지 않고 비행하니 헬기의 움직임이 가벼웠다. 조종사가 콧노래를 불렀다.

"아~. 나는 지금 배우 만나러 간다."

그러면서 날아가는데 무전이 들어왔다. 목적지에서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니, 방해되지 않게 조금 떨어진 곳에 착륙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아…. 배우들 앞에서 멋지게 착륙하고 조종석에서 내리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기는 했지만 지시를 받았으면 따라야 한다. 그는 새로 지정된 좌표를 확인했다. 방향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원래 비행경로로 가다가 중간에 착륙하면 된다.

넓은 공터에 임시 헬기 착륙장이라는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 있었다. 그 옆에 승합차도 한 대 서 있었다.

"출연하기 전까지는 여기서 대기하라는 거네."

조종사가 공터 한복판에 코브라 헬기를 착륙시켰다.

차 이사가 선글라스를 쓰고 헬기 쪽으로 걸어왔다. 조종사도 엔진을 완전히 끈 후에 헬기에서 내렸다.

조종사가 먼저 물었다.

"방송국에서 오신 분이시죠?"

"예. 그렇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하. 뭘요. 저도 그 드라마 참 좋아합니다."

차 이사가 코브라 헬기의 무장 상태를 살펴보며 말했다.

"미사일은 없군요."

"미사일이 장착됐으면 제가 드라마 촬영장에 몰고 오지 못합니다. 하하하."

"로켓 발사기는 있는데…."

코브라 헬기의 양쪽 날개에는 여러 발의 소형 로켓이 들어가는 원통형 발사 장비가 달려 있었다.

"하이드라 로켓이 없군요."

"무기가 달려 있으면 여기로 날아올 수 없다니까요?"

차 이사가 혀를 찼다.

"쯧. 그럼 벌컨포탄은요?"

조종사가 답답해했다.

"당연히 없지요. 무장한 상태로 방송 촬영을 하자고 하면 허가가 날 리 있습니까?"

"전투 헬기이지만 비무장이라….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차 이사가 주머니에서 권총을 쓱 꺼냈다.

조종사는 화들짝 놀랐다.

"뭐, 뭡니까! 그거 모형 권총이지요? 방송국 소품이지요? 장난치는 거지요?"

차 이사가 주머니에서 예비 탄창을 꺼내 보여주었다. 조종사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실탄이 들어 있었다.

조종사는 권총이 진짜라는 걸 깨달았다. 그가 침을 꼴깍 삼키고 말했다.

"선생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 헬기는 중고차가 아니라서 몰래 팔지도 못합니다. 장착된 무기가 아무것도 없어서 민간 헬기보다 쓸모도 없어요. 그리고 혹시 선생님이 간첩…이면, 저거 몰고 휴전선 넘어가려고 하는 순간 격추됩니다."

"말이 많은 놈이군. 닥치고 차에 타라."

조종사는 무기가 없다. 권총을 든 사람을 상대로 맨손으로 싸우긴 어렵다.

조종사가 바짝 긴장하며 차로 걸어갔다. 차 이사가 뒤에서 말했다.

"자연스럽게 걸어라. 목격자는 없지만, 혹시 누가 보더라도 의심하지 않게."

조종사가 코브라 공격헬기를 힐끗 보았다.

저 헬기에는 지금은 미사일은커녕 벌컨포 탄약 한 발도 안 들어 있다. 탄약이 없는 총의 공격력이 쇠파이프보다 나을 게 없듯이, 비무장 코브라 헬기의 공격력도 일반 헬기와 차이가 없다.

‘저 헬기를 탈취해 봤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텐데….’

조종사가 저항을 포기하고 차로 가서 조수석에 앉았다. 그런데 그가 조수석에 앉자마자 차 이사가 조종사의 어깨에 주사기를 꽂았다.

"컥!"

조종사는 순식간에 정신을 잃었다.

차 이사가 승합차 뒷문을 열었다.

차 안에 코브라 헬기에 쓸 수 있는 20mm 벌컨포 탄약 상자가 있었다.

그건 미군이 과거에 외국 분쟁지역에서 철수할 때 버리고 간 탄약이다. 차 이사가 그 탄약을 한국으로 밀수했다.

그는 차를 코브라 헬기 바로 옆으로 몰았다. 그런 후에 차에서 탄약을 꺼내며 말했다.

"기다려라. 나강인. 너는 오늘 내가 직접 죽일 테니까."

***

최진욱 피디가 말했다.

"유찬 씨. 준비하시죠. 본격적인 액션에 들어가기 전에 유찬 씨부터 찍어야 합니다."

상가 건물 내부와 외부 촬영은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됐다. 이제 상가 건물 옥상의 촬영이 시작됐다.

배우 몇 명이 적 역할로 나섰다.

본격적인 액션은 나중에 나강인이 다시 찍는다. 지금은 김유찬이 옥상에서 뛰거나 전투 도중에 대사를 말하는 부분만 먼저 찍는 중이다.

김유찬이 가면을 쓰고 옥상에 서서 맞은편을 보며 말했다.

"칫. 함정인가."

그가 다음 대사를 말하려고 했다. 갑자기 촬영팀이 몰려 있는 곳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최진욱 피디가 화를 벌컥 냈다.

"컷! 누가 촬영하는데 휴대폰을 켜놨어! 누구야! 당장 여기서 꺼…."

도주희 작가가 사과했다.

"미안. 이게 왜 켜졌지? 꺼놓은 줄 알았는데."

"꺼. 휴대폰을 끄면 되지."

도주희가 휴대폰을 아예 껐다. 최진욱이 다른 스태프들에게 말했다.

"누구 또 켜놓은 사람 있으면 다 꺼요. 진동 무음 인정 안 합니다."

휴대폰을 무음으로 놓고 있던 사람들이 전원을 완전히 껐다.

최진욱이 김유찬에게 말했다.

"유찬 씨. 미안한데 옥상에 와서 뛰는 부분부터 다시 갑시다. 이게 한 번에 쭉 따라가면서 찍다가 막판에 확대해야 해서요."

"그런데 피디님. 이 카메라 구도는 강인 씨 스타일이네요?"

"최진욱 나강인 퓨전 스타일이라고 해줘요. 베이스는 강인 씨 스타일인데 표현하는 방법에는 내 스타일도 들어 있으니까."

옥상이 다시 세팅됐다. 김유찬이 달리다가 부딪힌 물건도 제자리에 놓고, 카메라도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다시 옥상에서 달리는 장면이 시작됐다. 김유찬이 옥상 끝으로 달려갔다. 카메라가 그런 그를 쫓아갔다.

김유찬이 옥상 끝에서 뒤로 돌아섰다.

그런데 그가 대사를 말하려고 할 때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최진욱이 그쪽을 보았다. 코브라 헬기가 한 대 날아오고 있었다.

"아니, 하필 지금 이 순간에 오면…."

김유찬이 말했다.

"다시 찍으면 되죠."

"그래야겠죠?"

도주희가 시계를 확인했다.

"헬기가 예정보다 빨리 오네?"

최진욱이 자랑했다.

"내가 촬영 전에 테스트하게 좀 일찍 보내달라고 했더니, 국방부 홍보담당관님이 최대한 힘써보겠다고 했거든. 그래서 벌써 오나 보다. 도 작가. 내가 이렇게 능력이 있는 남자다."

"오구. 오구. 잘했다."

"으흐흐흐. 오늘 진짜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강인은 상가 건물 밖에서 날아오는 코브라 헬기를 보았다.

알레이나가 옆에서 감탄했다.

"와아. 저 헬기 되게 날씬하게 생겼다."

"코브라 공격 헬기다. 정비창에서 최근에 전체적으로 수리한 걸 오늘 촬영을 위해 특별히 빌렸다더라."

"헬기 옆에 달린 저 원통은 뭐야? 미사일이야?"

"로켓 발사기인데, 로켓은 안 들어 있을걸? 민간 촬영장에 무장하고 올 리가 없으니까."

"아쉽다. 미사일이 있었으면 더 멋있었을 텐데."

도주희도 날아오는 헬기를 보며 같은 걸 물었다.

"왜 헬기에 대전차 미사일이 안 보여?"

최진욱이 대답했다.

"말해봤는데 절대로 안 된대."

"그럼 저 원통에 로켓은 들어 있어?"

"아니. 저거 발사기도 빈 통이야."

"미사일이 없으면 디테일이 떨어지잖아."

"촬영하다가 실수로라도 미사일이 발사되면 우리 다 죽는다고 안 된대. 미사일은 CG로 만들어서 붙이래."

"아…. 그것도 CG로 할 수 있어? 작업 더 오래 걸리는 거 아냐?"

"우리에겐 강인 씨가 있잖아. 강인 씨가 도와주기만 하면 어떻게든 해결돼."

"하긴. CG 최적화의 신이라고 했으니까."

도주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말이야. 왜 헬기가 처음부터 여기로 날아오는 거야? 저쪽 공터에 착륙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러게. 우리한테 인사하러 오나?"

"어머. 아주 예의가 바른 조종사네."

나강인이 인상을 살짝 썼다.

"이상한데?"

알레이나가 물었다.

"뭐가?"

"왜 공터가 아니라 촬영장 방향으로 바로 날아가지?"

"응? 촬영하러 왔으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헬기를 착륙시켜놓고 오늘 어떻게 찍을지를 먼저 협의해야지. 조종사는 대본을 받은 적이 없으니까."

나강인이 최진욱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좀 물어봐야겠다."

옥상 촬영팀은 모두 휴대폰을 꺼놓고 있었다. 그래서 최진욱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강인이 다시 코브라 헬기를 보았다.

"찜찜한데…."

그가 이번에는 박순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순기는 즉시 전화를 받았다.

-촬영장 근처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코브라 헬기 날아오는 거 보고 있지요?"

-물론이죠. 아주 잘 보입니다.

"저 헬기 비행 스케줄이 어떻게 됩니까?"

-어…. 군부대 쪽 스케줄은 저도 잘….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요원님. 헬기의 비행이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야? 기체 결함이야?"

-아닙니다. 조종사의 실력 문제입니다.

항공단 전투 조종사이든 정비창의 시험 비행 조종사이든, 공격헬기를 조종하는 사람의 비행 스킬이 어설플 리가 없다.

나강인이 휴대폰에 대고 외쳤다.

"젠장! 순기 씨! 지원요청하고 당장 이쪽으로 와요!"

박순기는 무슨 일인지 묻거나 따지지 않았다.

-당장 가겠습니다!

***

톱스타 김유찬이 상가 건물 옥상에서 가면을 쓴 채로 코브라 헬기를 돌아보았다.

공격헬기가 건물 앞쪽으로 날아와 공중에서 정지했다. 메인 로터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회전했다. 코브라 헬기는 김유찬의 정면에 떠 있었다.

김유찬이 조종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야아. 공격헬기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까 진짜 있어 보이네."

코브라헬기의 앞에는 총열 3개짜리 20mm 벌컨포가 달려 있다. 그 벌컨포가 김유찬을 향해 쓱 움직였다.

김유찬이 웃으면서 손을 계속 흔들었다.

"하하하. 조종사가 손 대신에 기관포로 인사하나 보다."

코브라 헬기의 총열 3개가 위잉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김유찬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갑자기 기관포에서 철갑탄이 발사됐다.

코브라 헬기의 20mm 철갑탄은 장갑차를 관통할 정도로 위력이 강하다. 사람이 맞으면 관통이 아니라 신체 일부가 사라진다.

철갑탄이 김유찬을 스치고 지나가 옥상 바닥을 때렸다. 콘크리트로 만든 바닥이 터졌다.

벌컨포는 연발로 쏘는 무기다. 20mm 철갑탄이 김유찬을 향해 쏟아졌다.

옥상 콘크리트가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펑펑 부서져 나갔다. 빗나간 철갑탄 몇 발이 옥상에 설치한 세트장과 장비를 박살 냈다. 조명도 날아가고, 특수효과 발생장치도 폭발했다.

상가 옥상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나강인은 이미 주차장을 향해 뛰고 있었다.

"저놈은 나를 죽이러 온 거야!"

AI 전지인이 말했다.

-적 공격헬기는 요원님이 아니라 촬영장을 향해 사격했습니다.

"유찬 씨가 가면을 쓰고 촬영 중이잖아! 나인 줄 알았겠지!"

AI 전지인이 다급한 음성으로 보고했다.

-김유찬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나강인이 차를 향해 달리며 코브라 헬기를 돌아보았다. 헬기는 사격을 멈추고 옥상 앞 공중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벌컨포의 방향은 여전히 옥상 쪽이었다.

"저걸 조종하는 놈은 베테랑 조종사가 아니라며! 초보자가 사격하면 거리가 가까워도 빗나갈 수 있어!"

-적이 사격할 때 기체의 움직임이 안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방금 공격이 빗나갔을 확률은?"

-정보가 부족해 계산할 수 없습니다.

"유찬 씨의 상태는?"

-옥상의 장비들이 파괴되며 연기와 분진이 심하게 발생했습니다. 김유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어 생존 확률을 계산할 수 없습니다.

"놈의 시선을 내 쪽으로 돌려야 해!"

김유찬이 운이 좋으면 아직 안 죽었을 수 있다. 하지만 옥상의 연기가 사라지고 코브라 헬기가 재사격하면 생존 확률은 희박해진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방공호 수준의 엄폐물이 없는 지상에서 전투 헬기의 공격을 받으면, 아무리 요원님이라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나강인이 그의 차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는 재빨리 트렁크를 열었다. 배낭 형태로 접혀 있는 드래곤 윙이 보였다.

"알아! 그러니까 나도 하늘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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