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91화 (391/411)

391. FIGHT!

박순기의 차가 나강인의 옆으로 달려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차에서 박순기와 팀원이 뛰어내렸다.

"나 사범님! 어쩌시려고요?"

나강인이 드래곤 윙의 날개를 반쯤 펴서 엔진을 설치하며 대답했다.

"하늘에서 싸워야죠."

"코브라 헬기를 상대로요? 헉! 드래곤 윙에 공대공 미사일도 있습니까?"

"그런 불법 무기가 있을 리가요."

"그, 그렇죠? 그럼 어떻게 싸우신다는 겁니까?"

나강인이 박순기에게 물었다.

"무기 가진 거 있습니까?"

"권총만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예."

한국에서는 형사가 승용차 트렁크에 자동소총을 보관하지는 않는다.

"저놈과 싸우려면 무기가 필요합니다. 권총을 빌려주시죠."

박순기는 나강인의 사격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안다. 지금은 총기 규정을 따질 때가 아니다.

그가 얼른 권총을 넘겨주며 걱정했다.

"나 사범님. 코브라 공격 헬기는 방탄입니다. 권총으로는 절대로 못 잡습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공중에서 권총을 쏘면서 저놈을 내가 있는 쪽으로 유인할 겁니다. 저놈이 옥상을 향해 다시 사격하면 배우들과 촬영팀은 다 죽습니다."

"아…."

***

차 이사가 코브라 공격헬기를 공중에 띄워놓고 상가 건물 옥상을 확인했다.

그는 가면을 쓴 김유찬이 나강인이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김유찬을 향해 벌컨포를 갈겼다.

그런데 20mm 철갑탄의 발사 반동이 그의 예상보다 거셌다. 첫발은 조준이 정확하지 않아 빗나갔다. 게다가 사격 반동으로 코브라 헬기가 흔들리는 바람에 그 후부터는 철갑탄이 여기저기로 튀었다.

김유찬 주변에 있던 촬영용 장비 상당수가 철갑탄에 맞아 박살 났다. 그중에는 특수촬영용 연막탄과 연막 제어장치도 있었다.

최진욱 피디는 CG 외에도 다양한 특수효과용 소품을 옥상에 준비했다. 그중에는 연막탄도 있었다.

그런데 코브라 헬기가 발사한 철갑탄에 제어장치가 부서지면서 옥상에 설치한 특수촬영용 연막탄이 모조리 터졌다.

차 이사가 연기로 뒤덮인 옥상을 보며 말했다.

"해치웠나?"

철갑탄의 잔량이 충분하면 그냥 건물이 부서질 때까지 옥상을 향해 쏘면 된다.

하지만 그가 밀수한 20mm 철갑탄은 수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짧은 전투를 치를 수는 있는 양이지만, 난사하면 순식간에 바닥난다.

그러니 김유찬의 위치를 확인해야 다시 쏠 수 있다.

차 이사가 헬기를 조금 움직여 옥상의 유일한 출입구를 확인했다.

연막탄은 모두 김유찬이 있는 곳 근처에서 터졌다. 뒤쪽 촬영팀이나 옥상 출입구는 훤히 보였다. 옥상 출입구는 빗나간 철갑탄에 맞아 무너져 있었다.

차 이사가 촬영팀을 확인했다. 바닥에 엎드린 사람, 장비 뒤에 숨은 사람,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로 코브라 헬기를 보고 있는 사람 등등이 보였다.

"저놈들은 거리가 좀 있어서 살았나?"

김유찬은 옥상 끝에 서 있다가 공격당했다. 촬영팀은 옥상 출입구보다도 뒤쪽에 있었다.

촬영용 연막탄이 연기를 뿜어낸 시간은 짧았다. 옥상에 남아 있던 연기는 코브라 헬기가 일으키는 강력한 바람을 맞아 순식간에 사라졌다.

김유찬이 처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의 주변 옥상 바닥은 철갑탄에 맞아 구멍이 뻥뻥 뚫려 있었다. 그런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전부 다 빗나가다니. 운이 좋은 놈이군."

김유찬은 드라마 주인공이 쓰는 가면을 쓰고 촬영하던 중이다. 옥상 촬영 스케줄의 앞부분은 김유찬이 연기한다. 나강인은 뒷부분인 실제 액션 촬영에서 김유찬의 대역을 맡는다.

그런 상황을 모르고 간단한 스케줄 표만 훔쳐보면, 지금 나강인이 액션을 촬영하는 중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차 이사는 김유찬을 나강인으로 착각했다.

***

김유찬은 공격헬기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남들 눈에는 당당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지금 겁을 잔뜩 먹은 상태였다.

그는 도망을 치지 않은 게 아니다. 주변이 뻥뻥 터져나가는데 어디로 뛰어야 하는지 몰라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왜지? 왜 날 쏜 거지? 사생팬인가? 요즘 사생팬은 코브라 헬기를 타고 오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오늘 촬영에 사용한 특수효과용 연막탄은 몸에 해롭지 않은 연기를 내뿜었다.

최진욱 피디는 출연배우의 건강을 생각해서 비싼 특수 연막탄을 사용했다. 그래서 연막 속에 갇혀 있었는데도 기침을 하지는 않았다.

김유찬은 겁도 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이 안 돼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연기가 사라지고 나자 코브라 헬기가 여전히 그의 앞에 떡 버티고 있는 게 보였다.

벌컨포가 김유찬을 정확히 조준했다. 김유찬은 얼어붙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

차 이사가 김유찬을 정조준했다. 고개만 돌리면 벌컨포가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조준은 쉬웠다.

차 이사가 히죽 웃었다.

"역시 나강인. 벌컨포 앞에서도 그렇게 서 있구나. 배짱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철갑탄이 빗나가는 건 처음 한 번뿐이다."

그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이번에는 사격 시 반동 제어도 신경 써주지. 이 거리에서 쏘면 빗나가지 않아. 넌 오늘 죽…."

갑자기 날카로운 제트엔진 소리도 들렸다.

차 이사가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렸다. 나강인이 드래곤 윙을 펼치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날개에서 네 개의 불꽃이 쏟아졌다.

***

김유찬도 드래곤 윙의 엔진 소리를 들었다. 그를 조준하던 벌컨포가 옆으로 휙 돌아가는 것도 보였다.

그가 손을 가슴에 얹었다.

"휴우. 총구가 다른 쪽으로 돌아갔…."

옆으로 향했던 총구가 다시 김유찬 쪽으로 휙 돌아왔다.

"으악!"

***

차 이사가 옥상으로 고개를 돌려 목표를 다시 확인했다. 가면을 쓴 김유찬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저놈은 나강인이 아니야! 진짜 배우였어! 나강인이라면 멍청하게 서 있을 리가 없어!"

서 있는 게 아니라 반격을 위해 뛰어다녀야 정상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는 누가 진짜 나강인인지 깨달았다.

김유찬은 그의 목표가 아니다. 김유찬에게 낭비할 탄약도 없다.

차 이사가 공중에 떠 있던 코브라 헬기의 방향을 나강인 쪽으로 돌렸다.

"나강인. 하늘로 올라오면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공격헬기가 왜 하늘의 악마인지 가르쳐주지!"

헬멧 조준기에 날개를 펼치고 비행하는 나강인이 포착됐다.

"죽어라!"

차 이사가 방아쇠를 당겼다. 3열 총신이 회전하며 20mm 철갑탄이 나강인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

나강인의 AR 렌즈에 경고 표시가 주르륵 떴다. AI 전지인이 고속음성으로 보고했다.

-적 총신 회전! 쏩니다!

코브라 헬기에 장착된 벌컨포는 발사하기 직전에 총신이 회전한다. 총신이 회전하자마자 철갑탄이 발사되지만, 그 사이에 아주 약간의 지연시간이 있었다.

AI 전지인이 그 짧은 순간을 포착했다. 철갑탄이 어떤 궤도로 날아올지도 예측했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날개 두 개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비틀며 고속회피기동을 펼쳤다.

첫 번째 철갑탄은 AI 전지인의 예상한 궤도로 날아갔다. 그건 어렵지 않게 피했다.

그런데 두 번째 철갑탄부터 궤도가 조금 바뀌었다. 발사 반동으로 코브라 헬기가 흔들리는 바람에 조준이 정확하지 않았다.

AI 전지인이 실시간으로 새로운 궤도를 예측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나강인이 그 정보에 직감까지 더해 공중에서 급격히 회전했다.

철갑탄 열 발이 나강인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 이사는 탄약을 아끼기 위해 처음부터 짧게 끊어 쐈다.

AI 전지인이 재빨리 보고했다.

-피했습니다!

나강인이 빠른 속도로 비행하며 옥상을 확인했다.

"유찬 씨는!"

-김유찬은 살아있습니다!

"그럼 이제 내 차례지!"

나강인은 양손에 권총을 쥐고 있다.

그는 공중에서 고속으로 비행하면서 코브라 헬기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AI 전지인이 조준을 보조했다.

권총 두 자루에서 발사된 9mm 총탄 두 발이 헬기의 동체를 정확히 때렸다.

하지만 권총탄의 힘으로는 방탄 처리된 동체를 뚫을 수 없었다. 총탄이 튕겨 나갔다.

-도탄 됐습니다!

나강인이 이번에는 조종석을 향해 사격했다.

차 이사는 권총탄이 조종석을 때리는 순간 움찔했다가, 방탄유리가 막아냈다는 걸 깨닫고 실실 웃었다.

"흐흐흐. 권총 따위로는 나를 죽일 수 없어! 오늘 죽는 건 너다!"

차 이사가 다시 발사 버튼을 짧게 눌렀다. 철갑탄 몇 발이 나강인을 향해 날아갔다.

나강인이 날개를 꺾으며 방향을 크게 비틀었다. 철갑탄이 나강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

김유찬은 옥상에서 나강인과 코브라 헬기의 공중전을 지켜보았다.

코브라 헬기가 벌컨포를 쏘면 나강인이 고속 회피기동으로 피했다. 나강인이 권총으로 반격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김유찬은 드래곤 윙을 누가 만들었는지 안다.

"강인 씨? 나를 구하려고 싸우는 거야?"

옥상 구석에서 최진욱 피디가 소리를 질렀다.

"유찬 씨! 이쪽으로 도망쳐요! 저 새끼가 유찬 씨를 죽이려고 하잖아요!"

김유찬이 공중전을 보며 말했다.

"난 괜찮아요."

그가 손을 얼굴에 댔다. 촬영용 가면이 만져졌다. 그가 다시 공중전을 보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내가 목표가 아니었어. 적이 나를 강인 씨로 착각한 거야.’

"난 여기 있을 테니까 여러분만 피해요."

"도대체 왜요!"

"난 괜찮으니까 어서 가시라니까요."

"아니, 가고 싶기는 한데, 갈 수가 없어요. 옥상 출입구가 무너져서."

"아…."

"어서 이리 오라니까요? 거기 있다가 다쳐요."

김유찬이 물었다.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있죠?"

"누가 이런 상황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 없…."

카메라 중 한 대를 맡은 스태프가 말했다.

"제가 찍고 있는데요?"

"그, 그래? 자, 잘했어!"

최진욱은 겁이 났다.

20mm 철갑탄에 맞은 옥상은 여기저기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었다. 그는 처음 공격을 받았을 때 미사일 폭격이라도 받은 줄 알았다.

최진욱은 이 옥상에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부서진 출입구는 잔해만 대충 치우면 사람이 지나갈 수 있다. 그는 지상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그런데 김유찬이 옥상을 떠나지 않았다. 스태프 중에는 아예 카메라를 들고 공중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이 드라마의 책임자인 최진욱은 그 사람들을 남겨두고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외쳤다.

"대피하고 싶은 사람은 빨리 가! 저기 무너진 것만 힘을 합쳐서 치우고 아래로 내려가라고!"

그가 뒤로 돌아보았다.

"도 작가도 같이 도망쳐!"

도주희가 물었다.

"최 피디는?"

"나는 선장이잖아! 내가 마지막에 내려가야지!"

그가 옆에 떨어져 있는 카메라를 들었다.

그는 공중전이 아니라 옥상 끝에 서서 그 전투를 보는 김유찬을 촬영했다.

김유찬의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다.

"역시 주인공이다. 영화처럼 멋있네."

김유찬의 뒷모습은 마치 치열한 전투를 치른 전사처럼 보였다. 그 전사가 부서진 옥상에서 하늘을 배경으로 공중전을 보고 있었다.

욕심이 났다.

"오늘 찍은 걸 우리 드라마에 그대로 쓰면 방심위에서 징계 때릴까?"

고민은 짧았다.

"징계 때리면 받지 뭐. 오늘 여기서 안 죽고 살아남으면 그거 하나 못 받을까."

***

알레이나는 같이 잡담하던 나강인이 갑자기 주차장으로 뛰어갈 때는 왜 그러는지 몰랐다. 그런데 잠시 후에 코브라 헬기가 옥상을 향해 사격했다.

그녀는 나강인이 습격을 미리 눈치채고 혼자 도망치는 줄 알았다.

그녀가 나강인을 따라 뛰어가며 외쳤다.

"야! 나도 데려가!"

하이힐을 신은 상태로는 나강인이 뛰는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혼자만 도망치는 남자인 줄 몰랐…."

그녀는 소리를 지르다가 나강인이 차의 운전석이 아니라 트렁크를 여는 모습을 보았다.

도망치려면 운전석에 타야 한다.

"도망치려는 게 아니었어?"

그녀가 뛰는 걸 멈추었다. 그 후에 본 모습은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나강인이 트렁크에서 금속 가방을 꺼내 등에 붙였다. 그 가방이 갑자기 날개로 변했다.

그 날개가 뭔지는 그녀도 안다. 인터넷에서도 보고 뉴스에서도 봤는데 모를 수가 없다.

"히어로의 날개? 저걸 왜 광돌이가…."

나강인이 날개에 엔진을 달고, 박순기에게서 권총도 받았다. 그런 후에 임시 주차장에서 이륙했다.

코브라 헬기도 나강인을 발견하고 방향을 틀어 사격했다. 그때부터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다.

알레이나는 하늘에서 고속으로 비행하며 싸우는 나강인의 모습을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카이 나이트가 광돌이였어. 우리 옆집에 하늘을 나는 기사가 살아. 세상에!"

나강인이 권총을 발사할 때마다 코브라 헬기의 동체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녀는 헬기가 총에 맞으면 당연히 큰 타격을 입는 줄 알았다.

그녀가 주먹을 위로 쭉 뻗으며 외쳤다.

"잘한다! 더 쏴! 박살 내 버려!"

***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권총탄이 적의 장갑을 전혀 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빨도 안 들어갑니다!

"알아!"

-기관총만 있었어도!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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