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 사냥의 시간
코브라 헬기의 엔진은 완전히 정지하지는 않았다. 검은색 연기가 쏟아지고 불꽃도 튀었지만 메인 로터가 돌아가기는 했다.
하지만 엔진 출력은 뚝뚝 떨어졌다.
차 이사가 조종하는 코브라 헬기는 미사일이나 로켓도 안 달려 있고 벌컨포용 20mm 철갑탄도 거의 다 소모했다. 조종사도 한 명뿐이다. 그만큼 가벼웠다.
덕분에 한순간에 추락하는 꼴은 겨우 면했다. 하지만 계속 공중에 떠 있을 수 있을 정도의 출력은 나오지 않았다.
코브라 헬기가 천천히 추락했다.
차 이사가 계기판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버텨! 버티라고 이 기계 새끼야!"
그런다고 기계가 말을 알아듣지는 못한다. 화염에 휩싸였을 때는 트러블이 생긴 엔진이 저절로 회복됐지만, 이번에는 엔진 손상이 너무 컸다.
차 이사도 그걸 깨달았다.
‘이런 고물로는 싸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항복한 건 아니다. 그가 조종간을 앞으로 밀었다.
‘여기를 벗어나야 해.’
이곳에 추락하면 설사 살아남는다 해도 곧바로 체포될 게 뻔했다.
코브라 헬기가 털털거리며 앞쪽으로 날아갔다. 고도는 계속해서 조금씩 떨어졌다.
차 이사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강인이 천천히 선회하는 모습이 슬쩍 보였다. 그런데 비행 속도가 느렸다. 드래곤의 윙의 엔진도 이제는 불꽃을 뿜어내지 않았다.
"저놈은 이미 너무 오래 날았어! 이제 연료가 없어! 빠져나갈 수 있어!"
***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적이 도망칩니다.
"추격해야지."
-남은 연료가 얼마 없습니다.
나강인은 이제 권총이 없다. 탄창이 텅 빈 권총은 들고만 있어도 그 무게 때문에 연료를 잡아먹는다. 그래서 던져버렸다.
엔진 출력도 활강만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었다. 고도가 조금씩 떨어졌다.
차 이사의 공격헬기도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저놈보다 먼저 떨어지지만 않으면 돼."
-알겠습니다.
나강인이 도망치는 차 이사를 날개를 쫙 펴고 활강으로 천천히 날면서 추격했다.
***
박순기는 코브라 헬기의 엔진에서 검은색 연기가 쏟아져 나올 때 환성을 질렀다.
"잡았다! 해낼 줄 알았어!"
동료가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공격헬기는 권총으로 못 잡는다더니?"
"나만 그랬냐? 너도 그렇게 생각했잖아."
엔진을 당한 코브라 헬기가 전장을 이탈해 도망쳤다.
박순기가 헬기를 손으로 가리켰다.
"어? 저 새끼 튄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그 뒤를 천천히 쫓아갔다.
박순기가 급히 차에 탔다.
"우리도 쫓아가자!"
그의 동료가 얼른 조수석에 타면서 말했다.
"우리 권총부터 회수해야 해!"
"지금 권총이 중요하냐!"
"그거 잃어버리면 시말서로 안 끝나!"
"징계할 테면 하라고 해! 우리가 지금 탄약이 다 떨어진 권총이나 줍자고 저놈을…."
동료가 탄창을 하나 보여주었다.
"나 예비 탄창 가져왔다."
"권총부터 회수하고 쫓아가자."
박순기가 권총이 떨어진 곳으로 차를 몰았다.
***
톱스타 김유찬이 코브라 헬기가 털털거리며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잡았다!"
뒤에서 최진욱 피디가 두 팔을 번쩍 들고 환성을 질렀다.
"해치웠다!"
드라마 촬영팀이 카메라로 지금 상황을 찍고 있었다. 그중에는 김유찬을 향한 카메라도 있었다.
김유찬이 뒤로 돌아서서 두 주먹을 하늘 높이 뻗으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 이겼다!"
최진욱이 말했다.
"김유찬 씨가 이긴 건 아니…."
"우리가 이겼다!"
"맞다!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다!"
***
도망치던 코브라 헬기는 결국 북한강에 추락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드래곤 윙의 연료가 바닥났습니다. 착륙해야 합니다.
연료가 없으면 강물 위를 비행할 수 없다.
나강인이 날개를 쭉 펴고 강변에 착륙했다. 착륙한 후에는 날개를 반쯤 접었다. 어차피 다시 이륙할 연료는 없다.
그가 강을 보았다. 강에 추락한 코브라 헬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박순기가 차를 타고 달려와 강변에 급정지했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권총을 들었다.
박순기는 이곳에 오면서 동료의 예비 탄창에서 탄약을 나눠 받았다. 그의 권총 탄창에는 탄약이 반쯤 차 있었다.
"나 사범님. 어떻게 됐습니까?"
나강인이 한강을 가리켰다.
"저기 추락했습니다. 코브라 헬기는 강물에 완전히 가라앉았고요."
"어떤 놈인지 몰라도, 땅에 추락했으면 제가 체포했을 텐데…."
"차 이사가 조종했습니다."
"예? 차 이사라는 걸 어떻게 아십니까?"
"공중에서 봤습니다."
공중전 도중에 헬기 조종석에 있는 조종사의 얼굴을 보았다. 헬멧과 고글을 쓰고 있어서 얼굴 위쪽은 알아볼 수 없었다. 볼 수 있는 건 코와 입, 턱 정도였다.
AI 전지인이 그때 본 모습을 분석했다.
-조종사의 모습이 차 이사의 몽타주와 유사합니다.
나강인이 조종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인상을 썼다.
문제가 있었다.
"차동석 사장님처럼 생겼던데."
공중전 도중에 스치면서 본 데다가 얼굴 일부만 본 것뿐이라 확실하지는 않았다.
경찰은 차 이사의 몽타주가 피시방 사장 차동석이 변장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차동석은 차 이사를 향한 수사망이 좁혀지자 스스로 휴대폰을 끄고 사라졌다.
그런데 실물로 본 차 이사는 몽타주로 봤을 때보다 더 차동석이 변장한 것처럼 보였다.
코브라 헬기의 조종사가 차 이사라는 말에 박순기가 침을 꼴깍 삼키고 물었다.
"죽었을까요?"
나강인이 북한강을 보며 대답했다.
"차 이사가 어떤 놈인데 물에 빠졌다고 죽겠습니까? 필사적으로 여기까지 날아온 건, 한강을 통해 탈출할 방법이 있다는 뜻입니다."
"한강을요?"
"수영을 잘하던지, 아니면 산소호흡기라도 챙겨놨던지. 뭔가 있겠죠."
박순기가 한강 쪽으로 권총을 겨누며 물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지요?"
"멀리는 못 갔을 겁니다. 추적해서 잡아야죠."
AI 전지인이 말했다.
-정찰 스킬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적의 이동 흔적을 찾겠습니다.
박순기가 얼른 제안했다.
"그럼 우리랑 같이 가시죠! 우리는 추적할 차량도 있고 권총도 있고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무전기도 있습니다. 공군을 부를까요?"
"지원은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차 이사는 지금부터 조용히 추적할 거니까."
"네?"
"그동안은 차 이사가 어딘가를 공격하면 우리는 방어하거나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제 상황이 변했습니다. 차 이사를 만났으니까요."
"이제 우리가 공격할 차례인가요?"
"물론이죠. 지금부터는 사냥의 시간입니다. 다만."
나강인이 드래곤 윙에서 엔진을 분리했다.
"차 이사가 우리를 따돌렸다고 착각하게 해야 합니다."
***
드라마 바보의 사랑 스태프들이 옥상에서 환성을 질렀다.
"우리가 이겼어!"
서로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최진욱과 도주희는 손을 마주 잡고 옥상에서 빙빙 돌았다.
"하하하. 살았다!"
"호호호! 죽는 줄 알았어!"
"장가도 못 가보고 죽는 줄 알았다고! 으하하하!"
"응. 못 가! 포기해! 오호호호!"
"도망치라고 했는데 내가 걱정돼서 남은 거 맞지? 아하하하!"
"응. 아니야. 오호호호!"
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옥상처럼 직접 공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촬영팀보다는 충격을 덜 받았다.
지상에 있던 스태프와 배우들은 촬영팀이 걱정돼서 옥상으로 올라왔다. 무너진 옥상 출입구의 잔해는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치워져 있었다.
그런데 옥상에 올라온 사람들은 그곳에 있는 촬영팀을 보고 당황했다.
"다들 미쳤네?"
촬영팀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날뛰고 있었다.
"여기 무슨 축제 현장이야?"
"술이라도 취한 거 같은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야. 옥상 부서진 거 봐라. 여기는 진짜 폭격이라도 맞은 것 같다."
상가 건물 옥상 바닥은 20mm 철갑탄에 맞아 마치 포탄이 떨어진 것처럼 여기저기가 부서져 있었다.
"폭격 맞은 거 맞지. 코브라 헬기가 벌컨포로 갈겼잖아. 사망자가 없는 게 기적이다."
먼저 대피한 사람들을 통해 부상자는 있어도 사망자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옥상 상태가 이 지경인 줄은 몰랐다.
옥상에 설치한 조명이나 장비는 상당수가 박살 났다. 세트장에 설치한 여러 소품도 찢기고 부서졌다.
"그러네. 여긴 완전히 전쟁터네. 그래서 다들 맛이 갔구나."
"아드레날린이나 엔돌핀에 취했나?"
같이 올라온 배우가 말했다.
"그래도 진정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뭘 알아야 진정시키죠. 119가 올 때까지 기다립시다."
"다른 사람들도 문제지만, 김유찬 씨는 지금 상태가…."
김유찬은 옥상 끝에 서서 나강인과 공격 헬기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두 팔을 좌우로 활짝 펼쳤다. 그러면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살아있다!"
스태프가 말했다.
"저렇게 소리 지르는 거 제가 옥상에 올라오고 나서 벌써 세 번째 보는 겁니다."
다른 스태프가 그 말을 받았다.
"김유찬 씨가 받은 충격이 제일 크지 않을까? 바닥에 구멍 뚫린 거 보면 집중공격을 받았는데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 같은데."
"김유찬 씨는 찢어진 옷 속에 뭔가 입고 있는데? 저게 뭐지?"
"전에 청평에서 봤는데 신은하 씨도 옷 속에 저런 거 입고 있더라. 스타들만 입는 명품인가?"
***
나강인이 말했다.
"드래곤 플레이트가 유찬 씨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는데."
나강인은 김유찬의 상태가 궁금했다. 전투 도중에 슬쩍 보긴 했는데, 살아있다는 건 알지만 부상 정도는 파악하지 못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현재 버전의 드래곤 플레이트의 방어력으로는 20mm 철갑탄을 못 막습니다.
"살아는 있더라."
-직격을 피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습니다.
"옥상이 부서지면서 파편이 많이 튀었을 텐데."
-파편 정도는 현재 버전으로도 막았을 겁니다.
박순기의 동료는 촬영팀이 있는 현장으로 돌아갔다. 박순기가 그 팀원과 통화한 후에 그곳 상황을 설명했다.
"차 이사가 김유찬 씨에게만 사격한 덕분에 스태프들은 무사하답니다. 진짜 다행입니다."
"김유찬 씨는요?"
"다친 곳은 없어 보인다는데…."
"다행이군요."
박순기가 살짝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PTSD가 좀 이상한 방향으로 온 것 같다고…."
"어떻게요?"
"옥상 난간에 올라가서 자기가 불사신이라고, 더 쏴보라고 소리 지르는 걸 사람들이 뜯어말리고 있답니다."
***
김유찬이 옥상 난간에 올라가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강하다! 나는 죽지 않는다! 으아아아아!"
옥상에 올라온 스태프와 배우들이 깜짝 놀라 달라붙었다.
"잡아! 여기서 떨어지면 진짜 죽어!"
"이 사람 평소에는 안 그러더니 왜 이래?"
"지금 자기가 히어로인 줄 압니다!"
"으아아! 김유찬 씨가 몸을 앞으로 기울입니다!"
"빨리 이쪽으로 끌어내려!"
***
나강인이 말했다.
"어…. 그러니까 맛이…."
박순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갔답니다."
"다친 곳이 없는지 제대로 확인해야겠는데요? 머리를 맞았을 수도 있습니다."
"머리는 괜찮습니다. 옷은 좀 찢어져 있는데, 속에 입은 금속 보호복이 파편을 막아냈답니다."
박순기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나 사범님. 그거 드래곤 플레이트죠?"
"그렇…죠."
"저는요? 저는 와이번 팔뚝보호대밖에 없는데?"
"어…. 유찬 씨는 난지한강공원에서 저하고 있다가 저격수한테 당할 뻔해서 만들어준 겁니다."
"저도 그거 입을 줄 압니다. 이렇게 위험한 작전도 같이 뛰고 있고요."
나강인이 말했다.
"이번 일 끝나고 하나 만들어줄 테니까 지금은 차 이사 추적에 집중합시다."
"아싸아! 옙!"
***
최진욱 피디는 김유찬이 소리를 질러대는 걸 보고 같이 흥분해서 날뛰었다. 그러다 김유찬이 난간 위에서 하늘을 나는 자세로 몸을 기울이는 걸 보고 정신을 차렸다.
"어? 아니, 저러다 큰일 나는데. 유찬 씨가 완전히 맛이 갔…."
이제야 그의 눈에도 현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공들여 만든 옥상 촬영 세트가 박살 났다. 여기 상황은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촬영 세트를 다시 설치하는 건 무리였다. 설치할 시간도 부족하고, 옥상 바닥도 부서진 곳이 너무 많았다.
장비도 많이 파손됐다.
그는 카메라를 확인했다. 옥상에 설치한 여러 대의 카메라 중에 철갑탄에 직접 맞은 건 없었다. 그런데 이리저리 날아온 파편에 맞은 게 많았다.
드라마 촬영용 카메라의 절반이 고장 났다.
스태프들도 생명에 지장이 없다뿐이지 파편에 맞아 여기저기 다쳤다. 피가 나는 스태프도 여러 명 있었다.
도주희도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최진욱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머! 최 피디! 피 난다!"
최진욱이 옆구리를 만져보았다.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스친 거야."
"병원 가야지!"
그가 도주희의 몸을 살펴보며 물었다.
"도 작가는 괜찮아? 피는 안 나는데…."
"정신 차리고 나니까 온몸이 누가 때린 것처럼 아파."
***
경찰차와 군 차량이 현장에 도착했다. 무장한 병력이 계속 늘어났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에는 군 공격헬기 편대가 날아와 주변을 경계했다.
알레이나 민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해맑게 웃었다.
"와! 전투기다!"
공군 전투기 편대가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