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 추적자
사람들이 톱스타 김유찬을 위험한 옥상 난간에서 끌어내려 건물 밖으로 데려갔다.
최진욱 피디도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늘 드라마 촬영은 옥상에서만 한 게 아니다. 건물 내부에서도 찍었고, 건물 밖에서 찍은 장면도 많았다.
최진욱은 스태프가 가져다 놓은 간이 의자 중 하나에 앉았다.
"후우. 옥상에서는 흥분해서 몰랐는데 내려오니까 진이 다 빠지네."
현장에는 경찰과 군대만 온 게 아니다. 구급차도 속속 도착했다.
구조대원들이 다친 사람들의 상처를 확인했다.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최진욱이 말했다.
"그 난리가 났는데 아무도 안 죽은 게 진짜 다행이다."
조금 크게 다친 사람들은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모든 부상자를 한 번에 병원에 보내기엔 구급차가 모자랐다.
부상이 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구급차와 함께 온 의사가 남아서 간단한 치료를 해주었다. 군 의무대에서 나온 군의관도 있었다.
최진욱은 민간 병원 의사 쪽에 줄을 섰다.
도주희가 같이 줄을 서며 물었다.
"군의관 쪽이 기다리는 줄이 짧은데 왜 여기에 서 있어?"
"내가 옛날에 군대에 있을 때는 말이야. 의무대에 찾아가면 군의관이 바르는 연고는 딱 한 종류만 주고, 먹는 약이 필요할 때는 까만 알약이랑 하얀 알약 딱 두 종류만 주더라."
"응? 모든 병에 같은 약을 줘?"
"그 의무대는 무좀부터 피부병까지 모두 같은 연고만 줬어. 내가 그 기억이 트라우마가 돼서 의무대는 좀 그러네? 그러니 난 민간 의사 쪽에 서야겠어."
"아…. 나도 여기 서야지."
"넌 다친 곳이 없잖아."
"파스라도 얻어볼까 하고."
의사가 최진욱의 허리에 붕대를 감아주며 말했다.
"지금은 응급조치만 한 거니까 병원에 꼭 가서 치료하세요."
"예. 고맙습니다."
최진욱은 허리에 붕대를 감은 상태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어구구. 아프다."
조연출도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가 다가와 물었다.
"최 피디님."
"너도 다쳤지?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아픈 사람은 서 있는 거 아니야."
조연출이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우리 드라마 마감 맞추려면 빨리 촬영해야 하는데 이제 어쩌죠?"
최진욱이 현장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이 전쟁터에서 촬영이 가능하겠냐? 세트장 터졌지. 장비 터졌지. 스태프들은 다쳤지. 결정적으로."
최진욱이 김유찬을 가리켰다.
김유찬은 건물 밖으로 나와서도 큰 소리로 웃으며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찢어진 상의 사이로 금속색 드래곤 플레이트가 보였다.
"으하하하! 내가 바로 언브레이커블 스틸 히어로맨이다! 다음엔 나도 날개를 가질 거다!"
최진욱 피디가 김유찬을 보며 말했다.
"우리 주연 배우가 맛이 갔잖아. 바보의 사랑 주인공이 진짜 바보가 됐어."
"그럼 이번 주 방송은…."
최진욱이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진짜 우리 높은 시청률이 아까워서 방송 빵꾸는 안 내려고 했는데, 어쩌겠냐? 이번 주는 결방해야지. 방법이 없어."
조연출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아. 그럼 저희 좀 쉬는 건가요? 다들 많이 다치고 지쳤으니까, 몸도 치료하고 체력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긴 하죠. 저는 이게 얼마 만에 쉬는 건지 정말."
"응? 무슨 소리야? 너도 쉬다니?"
"네?"
"다른 사람들은 다 쉬어도 너랑 나는 쉬면 안 되지."
"왜…."
"결방한다고 방송에 아무것도 안 내보내면 되겠냐? 기존 촬영본 모아서 특별편 만들어야 할 거 아냐."
조연출은 당황했다.
"아니, 그…."
최진욱이 조연출의 어깨를 툭 쳤다.
"어쩌겠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
"최 피디님. 저 다쳤는데요?"
"나도 다쳤다."
"저 피 나는데요?"
"나도 피 나."
최진욱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발신자를 확인했다. 보도국장이었다.
그가 공손히 전화를 받았다.
"네. 국장님."
보도국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최 피디! 죽은 사람은 없지?
"죽지는 않았는데, 다친 사람은 많습니다. 상태가 심각한 사람도 있고요."
-응? 중상자는 없다고 들었는데?
"몸을 많이 다쳐야만 중상인가요?"
최진욱이 김유찬을 슬쩍 보았다.
"충격으로 머리가 헤까닥 할 수도 있잖습니까?"
-어? 스태프 중에 미친 사람이 있어? 누군데?
최진욱은 상대가 보도국장이라는 걸 떠올렸다.
‘톱스타가 맛이 갔다고 하면 당장 뉴스에 내보내겠지? 그것도 더 부풀려서 완전히 미쳤다고 할지도 몰라.’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주연 배우의 상태를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다.
"아뇨. 말이 그렇다는 거죠. 진짜로 미쳤을 리가 있나요? 사람들이 피는 좀 나는데, 죽을 것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바빠서 이만 끊겠습…."
보도국장이 다급히 외쳤다.
-야! 최 피디! 잠깐!
"네."
-드라마를 찍는 도중에 사건이 터졌잖아!
"그랬죠. 그래서 촬영팀이 많이 다친 거니까요."
-그러면 사건 당시 상황을 카메라로 찍었겠네?
"예?"
-월드컵대교 공중전 때도 최 피디 팀이 영상을 기가 막히게 찍었잖아. 지금은 사건 당사자니까 당연히 그때보다 더 잘 찍었을 거 아냐?
"어…."
-그거 좀 넘겨줘! 우리가 특종 내보내게!
최진욱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잠깐. 이거….’
그가 순식간에 생각을 정리하고 대답했다.
"어…. 우리 카메라가 폭격을 맞아서 멀쩡한 게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죽다 살아나서요."
-그러면 빨리 확인 좀 해줘! 급해!
최진욱이 손을 머리에 댔다.
"으으…. 제가 지금 피를 많이 흘려서요. 나중에 통화하시죠. 너무 기대는 마시고요."
-그, 그래? 알았어.
최진욱이 전화를 끊었다.
조연출이 옆에서 물었다.
"최 피디님. 피는 허리에서 났는데, 왜 머리를 손으로 누르세요?"
"아. 그렇지. 허리였지."
도주희가 파스 한 장 못 얻고 터덜터덜 걸어와 옆에 앉았다. 그녀가 물었다.
"왜? 많이 아파?"
"아니. 허리는 스친 거라니까."
"그럼 방금 그 통화는 뭐야?"
"보도국장님이 우리가 오늘 찍은 영상을 달라잖아. 그래서 전화 빨리 끊으려고 그런 거야."
최진욱이 조연출에게 물었다.
"나도 카메라 한 대 잡고 찍기는 했는데, 다른 카메라들도 찍은 게 많겠지?"
"당연하죠. 카메라가 전부 다 돌아가고 있을 때 공격당했으니까요. 다양한 각도로 찍혔을 겁니다. 부서진 카메라들도 운이 좋으면 영상이 일부는 남아있을 거고, 안 부서진 카메라는 끝까지 다 찍혔겠죠."
"크으. 카메라가 파편에 맞는 순간의 영상도 있겠네. 편집만 잘하면 참 멋지게 나오겠어."
"진짜 그렇겠네요."
"우리가 공격당할 때만이 아니라 그 코브라 새끼를 때려잡는 모습도 잘 찍혔을 테고."
"공중전은 카메라 잡은 사람들은 전부 다 찍었겠죠. 한두 대가 찍은 게 아닐 걸요?"
"흐흐흐."
최진욱이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방송 결방될 때 대신 방송할 특별편 말이야. 오늘 찍은 전투 영상을 팍팍 집어넣어서 만들어야겠다."
"네? 그래도 됩니까?"
"안될 건 뭐야? 우리가 찍은 건데. 특별편 시청률이 본편보다 더 높게 나올걸?"
"와…."
"그러면 두 주쯤 본방이 밀려도 시청률이 안 떨어질 거야. 오히려 더 높아질지도 몰라."
조연출이 걱정했다.
"우리 방송이 두 주나 밀리면, 방송국의 다음 작품 편성이 꼬일 텐데요. 그 문제는 어떻게…."
"시청률만 높으면 그런 문제는 다 해결돼. 이 바닥은 시청률 높은 놈이 왕이야."
도주희가 옆에서 물었다.
"그런데 방금 보도국장님이 오늘 사건 영상 달라고 했다며. 뉴스로 다 나간 영상을 특별편에 넣는다고 해서 시청률이 그렇게 잘 나올까?"
최진욱 피디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뉴스로 다 나가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으응?"
"보도국에는 적당한 영상 몇 개만 골라서 보내야지. 진짜 엑기스는 우리 특별편에만 내보낼 거야."
"보도국장님이 알면 화내지 않으실까?"
"다른 방송국에는 그런 영상조차 안 주잖아. 같은 방송국이라서 특별히 주는 건데 화내면 안 되지."
조연출도 방송국 직원이다. 그가 말했다.
"보도국장님은 만족 안 하실 것 같은데요."
"하긴 그렇지? 사람 욕심이라는 게 자기 손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렇죠. 최 피디님에게 압력을 가해서 영상을 다 받아가려고 하겠죠."
"그래도 안 줄 건데?"
"네?"
최진욱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뭐 어때. 내가 보도국 소속도 아니고 보도국장님도 내 직속상관이 아닌데. 우리 국장님이 알아서 막아주시겠지."
그가 조연출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옥상에 올라가서 카메라 영상부터 빨리 싹 다 회수하자. 영상이 외부로 유출 안 되게 내가 직접 관리하겠어."
***
차 이사는 헬리콥터를 일부러 강에 추락시켰다.
그는 조종석을 빠져나온 후에 한강 물속을 잠수로 이동했다. 미리 챙겨둔 특수작전용 소형 공기통 덕분에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 필요는 없었다.
그는 공기를 거의 다 소모할 때쯤에 강변으로 올라왔다.
"후우."
그가 장비를 강물에 던져버리고 땅 위를 걸었다.
"제기랄. 어떻게 권총으로 공격헬기를 격추하지? 그건 불가능한데 도대체 어떻게!"
그는 나강인에게 코브라 헬기를 격추할 수단이 없는 줄 알았다. 반면에 그는 20mm 벌컨포가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이길 줄 알고 싸웠다.
그런데 정작 추락한 건 나강인이 아니라 차 이사였다.
그가 젖은 몸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쪽에 세워둔 차가 보였다. 아까 헬기를 빼앗을 때 사용한 차였다.
그가 주변을 경계하며 차로 걸어갔다.
조수석에는 원래 조종사가 아직도 기절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차 이사가 조종사를 보며 혀를 찼다.
"쯧. 이놈을 목격자 역할로 써먹으려고 했는데."
그는 공격헬기로 나강인을 죽인 후에 상황을 조작하려 했다.
그의 계획에서 이 조종사는 목격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 자기도 모르게 그가 설계한 판에서 움직이는 말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죽이지 않고 약을 써서 기절시켰다.
그런데 그 계획에는 전제 조건이 하나 있었다. 먼저 나강인을 공격헬기로 확실히 죽여야 했다.
이미 전제 조건이 실패했다. 원래 계획은 쓸 수 없다.
차 이사가 조종사를 조수석에서 끌어냈다. 조종사가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살려두면 나중에라도 목격자 역할을 어느 정도는 하겠지."
차 이사가 조종사를 근처 풀숲으로 끌고 가 숨겼다. 그런 후에 차를 출발시켰다.
"나강인. 다음에는 오늘 같은 실수는 없을 거다. 그때는 확실히 죽여버리겠다."
***
차 이사가 떠나고 잠시 후에 박순기의 차가 그곳에 도착했다.
나강인이 차에서 내렸다.
박순기가 물었다.
"나 사범님. 여기는 왜…."
"군에서 보내준 레이더 추적 기록을 보면 코브라 헬기를 빼앗긴 장소는 건너편이 아니라 강 이쪽에 있는 공터입니다."
"그렇죠. 거기는 수사팀이 이미 갔죠."
"그때 차 이사가 강 이쪽에 있었으니까, 탈출 수단도 강 이쪽에 있을 겁니다. 차 이사가 소형 공기통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강물의 유속을 고려하면 아무리 멀리 가도 이쯤에서는 땅으로 올라와야죠."
-그걸 제가 계산했습니다.
"그래서 이쪽 강변으로 사람이 올라온 흔적을 쭉 찾으면서 여기까지 이동했는데."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제가 물에 젖은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누워 있는 사람도 찾았습니다.
AR 렌즈에 풀숲 사이에 누워 있는 사람의 홀로그램 윤곽선이 나타났다.
"여기에 누가 강에서 올라와 뭔가를 끌고 간 흔적이 보여서 내렸더니, 사람이 있네요."
나강인이 풀숲에서 기절한 조종사에게 다가가 상태부터 확인했다.
"살아있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살아있습니다. 심장 박동도 안정적입니다.
"왜 기절한 거야?"
-특별한 외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약품 냄새가 납니다. 마취약에 당해 기절한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차 이사의 얼굴을 봤을 거야. 그런데 안 죽였단 말이지. 마취약을 썼다는 건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 없었다는 건데…."
박순기가 스마트폰을 켜고 전달받은 사진과 얼굴을 비교했다.
"코브라 헬기의 원래 조종사입니다. 차 이사와 조종사가 내통한 건 아닌가 봅니다."
"속아서 착륙지를 변경했다가 기습을 당했겠지요."
"그런가 봅니다. 그런데 나 사범님. 이 사람 혹시…."
"살아있습니다. 마취약에 당해 기절한 겁니다."
"휴우. 다행이네요. 구급차부터 부르겠습니다."
나강인이 일어나 주변을 조사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차량의 바퀴 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박순기가 구급차를 부른 후에 조종사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며 물었다.
"그런데 차 이사는 조종사를 왜 살려뒀을까요? 차 이사가 사람 목숨을 귀하게 여길 리는 없는데, 목격자를 제거하지 않고 남겨둔 게 이상합니다."
"목격자가 필요해서 남겨둔 겁니다."
"예?"
"오늘 차 이사를 확실히 본 사람이 필요했을 겁니다. 조종사는 차 이사에게 헬기를 탈취당한 당사자니까 증인으로는 최고죠."
"왜 일부러 얼굴을 본 사람을 남겨둔 걸까요?"
"차 이사가 죽었다고 확인해줄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요."
"네? 죽다니요?"
나강인이 차 이사가 남긴 흔적을 보았다. 물기가 남아있었다.
"놈이 이곳을 떠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가면서 이야기하죠. 제 추적 스킬이 우수하긴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차 이사를 쫓아가기 어렵습니다."
"아! 얼른 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