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95화 (395/411)

395. 추적자 II

차 이사가 사이드미러를 확인했다.

그가 지금 달리는 도로는 평소에도 차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뒤쪽에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앞쪽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지금쯤 헬기가 추락한 북한강이나 뒤지고 있겠지."

그는 차의 속도를 줄여 거의 정지했다가 도로 옆의 좁은 비포장도로로 들어갔다.

그 좁은 길은 산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차를 몰고 그 길을 따라 계속 들어가자 포장도로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 전원주택이 한 채 있었다. 유리창에는 커튼이 쳐져 있어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차 이사가 차를 전원주택 앞마당에 세웠다.

그가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곳으로 오면서 공군 전투기가 하늘을 날던 걸 떠올렸다.

"조만간 항공기까지 동원해 수색하겠지만, 쓸데없는 짓이지."

그가 차체를 손으로 만졌다. 자동차용 페인트가 아니라 얇은 비닐이 만져졌다.

그가 앞쪽에서 손으로 얇은 비닐의 끝을 잡고 뒤쪽으로 걸어가며 쭉 벗겼다.

포스트잇처럼 약한 접착력을 가진 그 비닐은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벗겨졌다.

그는 차의 주변을 돌며 비닐을 몇 장 더 떼어냈다. 차의 색이 검은색에서 밝은 회색으로 변했다.

그는 차 지붕의 비닐까지 다 벗겨내고 번호판에 붙여둔 얇은 아크릴판도 뗐다.

이제 차 번호도 바뀌었다.

그는 차 주변을 한 바퀴 더 돌면서 실수로 떼지 않은 비닐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런 건 없었다.

이제 그가 범행에 사용한 차는, 차종만 같을 뿐 차체의 색과 번호는 완전히 다른 차가 되어 있었다.

"완벽해."

그는 떼어낸 비닐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은 평범했다. 소파가 있고 TV가 있었다.

그가 안방 문을 열었다.

안방은 평범하지 않았다.

침대는 없었다.

대신에 커다란 조립식 책상과 대형 모니터 여러 대가 있었다. 그 모니터 중 두 대에는 전원주택 외부를 감시하는 CCTV 영상이 분할화면으로 떠 있었다.

그가 책상에 앉아 CCTV부터 확인했다. 수상한 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숨을 내쉬었다.

"후우. 완전히 따돌리긴 했는데…."

기분은 좋지 않았다. 직접 나서서 승부수를 던졌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차 이사가 뉴스를 검색했다. 인터넷에 오늘 사건에 관한 기사들이 주르륵 보였다.

"속보는 떴는데."

코브라 헬기가 사람들이 있는 건물에 대놓고 벌컨포를 쏜 사건이 터졌다. 단순 총기 사고만 터져도 뉴스에 난다. 그 정도면 초대형 사건이다.

지금 현장에는 경찰과 군대가 출동했다. 하늘에는 공격헬기와 전투기가 날아다녔다.

당연히 기자들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속보도 중구난방으로 떴다.

그런데 대부분의 속보는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었다. 내용이 있는 기사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추측이나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 듣고 쓴 것이었다.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톱스타 김유찬. 피격당해 생사 불분명!]

그건 속보만 뜨고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 그 기사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강한 속보가 연달아 올라왔다.

[김유찬 사망!]

[애도의 물결이 인터넷에 줄을 이어.]

[김유찬. 그는 누구인가.]

[톱스타 김유찬. 하늘의 별이 되다.]

차 이사가 그 기사를 보며 말했다.

"내가 쏜 게 다 빗나간 건 아니었나 보군."

***

사건 현장은 경찰과 군 병력이 통제하는 중이다.

허가받은 정부 관계자나 의료진 외에는 현장 출입이 허가되지 않았다. 기자가 아무리 기자증을 들이밀어도 소용없었다.

기자 중에는 현장에 몰래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 배치된 병력이 워낙 많았다. 특히 군 병사들은 이번 사건이 간첩의 짓일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은 상태였다.

사건의 실체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차 이사의 짓이라는 정보는 전달됐지만, 군 수뇌부는 다른 가능성도 모두 고려하고 대비했다.

현장에 배치된 병사들은 그 경고를 듣고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그런 병사들에게는 기자들의 기자증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억지로 뚫고 들어가려다가 총구가 겨누어지는 걸 보고 도망친 기자도 있었다.

기자들은 현장에 들어가 상황을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

부상자들은 많이 다친 순서대로 구급차에 실려 현장을 떠났다. 일부 기자들은 그 구급차를 따라갔다. 그들은 병원은 여기처럼 철저히 관리되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

김유찬은 아직 현장에 있었다. 다친 곳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전투의 흥분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히어로가 된 것처럼 날뛰었다.

그러다 지금은 흥분이 가라앉고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그가 군용 대형 텐트의 간이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내가 남들 다 보는 데서 무슨 짓을 한 거지? 잠깐 돌았었나?"

그가 주변을 슬쩍 보았다. 그를 힐끗거리는 사람들의 눈빛이 평소와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어쩐지 거리를 살짝 두는 느낌도 받았다.

"아. 쪽팔려. 내가 진짜 왜 남들 앞에서 그랬지?"

미국 팝스타 알레이나 민이 김유찬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김유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유찬 씨가 죽었대요."

김유찬이 도로 물었다.

"내가 죽었어요?"

알레이나가 스마트폰에 뜬 기사를 보여주었다.

"봐요. 죽었대요. 이미 기사 떴어요."

"그럼 난 뭐지? 잘생긴 유령인가?"

"어머. 무서워라."

김유찬의 스마트폰은 옥상에 뒀다가 박살 났다. 그가 알레이나의 스마트폰을 빌려 인터넷을 검색했다.

"내가 피격당했다는 기사를 누가 추측으로 썼네요. 기사가 아까 상황하고 하나도 안 맞아요."

그 기사만 잘못된 게 아니다.

"그 기사를 보고 부풀린 기사가 많이 나왔어요. 그러다 사망설이 떴고요. 그런 기사가 여럿 따라서 나오니까 내 사망이 확정됐네요."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복사를 하나보다."

"미국은 안 이러죠?"

"미국은 뭐 다른 줄 알아요? 거기도 이런 기사는 의심하면서 봐야 해요. 한국이 더 심한 것 같긴 하지만."

김유찬이 인터넷을 조금 더 검색했다.

기사는 가짜지만 팬들의 애도는 진짜였다.

-천사보다 잘생긴 유찬 오빠. 그곳에서는 행복하세요.

-영원히 기억할게요!

팬이 통곡하는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진짜, 흑, 이건 아니야!

김유찬이 그 영상을 보며 말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려줘야겠네."

"팬들에게요?"

"먼저 우리 누나한테요."

김유찬이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평소에 스마트폰의 연락처 목록을 이용해 전화를 건다.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SNS에 사진을 올려야겠어요. 그래야 주변 사람들이 내가 죽었다고 착각하고 누나한테 알려주는 사고가 안 나죠. 우리 누나는 놀라면 안 돼요."

그런데 이 스마트폰은 그의 것이 아니다.

"아. SNS가 아니라 팬카페에 올려야겠다. 이 폰으로 그래도 될까요?"

알레이나가 옆에 앉았다.

"그래요. 나도 내 SNS에 올릴 테니까."

"나랑 같이 셀카를 찍게요?"

"김유찬 씨의 누나가 지금 미국에 있다면서요? 나 미국 스타예요. 내 SNS에 올리면 주변 사람들이 더 빨리 볼 거예요."

"아. 그렇겠네요."

"그리고 이러다 나까지 죽었다고 기사가 뜰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멀쩡한 모습을 같이 올리자고요. 그럼 두 배로 빨리 퍼지겠죠."

"찬성입니다."

김유찬과 알레이나가 자세를 잡았다. 김유찬이 스마트폰의 촬영 버튼을 눌렀다.

***

인터넷에 두 사람의 사진이 공개됐다. 그 사진이 빠르게 퍼졌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그 사진이 올라왔다.

댓글이 붙었다.

-죽었다매!

-너는 어떻게 죽기를 바라냐!

-오해이십니다. 놀라서 그런 거예요.

그 와중에도 칭찬이 붙었다.

-머리가 다 헝클어지고 옷이 찢어졌는데도 잘생겼다. 역시 김유찬.

-근데 머리와 옷 상태를 보면 위험하긴 했나 봐요.

-죽은 건 아니지만, 죽다 살아났나 봅니다.

다른 걸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왜 김유찬이 알레이나 민하고 같이 셀카를 찍었지? 둘이 무슨 사이지?

-사귀나?

-안돼! 유찬 오빠가 너무 아까워요!

-세계적인 인지도로 따지면 알레이나 민이 아깝겠지. 미국 팝스타에 할리우드 영화배우인데.

-여긴 한국입니다만? 유찬 오빠가 아까운 거 맞음.

반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알레이나 민도 바보의 사랑에 가끔 출연하잖아요. 오늘 촬영하러 현장에 갔겠죠.

-이 사진은 알레이나 민의 SNS에도 올라왔습니다.

-아! 둘 다 살아있다는 걸 널리 알리는 거네요.

누군가는 어색한 부분을 찾아내기도 했다.

-김유찬은 전쟁터에서 싸우다 온 사람 분위기인데, 알레이나 민은 상태가 너무 좋은데요? 아주 혼자 반짝반짝 빛나네요.

-김유찬 혼자 싸웠나?

-싸우는 건 하늘을 날아다니는 히어로가 혼자 싸웠죠.

-그런데 김유찬만 왜 저래요?

-기사가 제대로 안 뜨니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 죽겠네요.

김유찬의 현재 상태에 관한 건 기사가 별로 없었다. 기자가 그가 있는 곳까지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전투가 있었는지는 기사가 나왔다. 부상자를 따라 병원에 간 기자 중에 인터뷰에 성공한 사람이 있었다.

-하늘을 나는 히어로가 코브라 헬기를 격추했다더라고요.

-공격헬기를? 그거 방탄인데? 미사일이라도 쐈나?

-권총으로 잡았대요.

-뻥 치시네.

-기사 떴거든요?

-김유찬도 죽었다고 기사 떴는데 멀쩡히 살아있잖아요.

-아. 그러네요.

-그래서 그 권총 마스터 히어로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걸 왜 여기서 물어요? 그걸 알 만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여기 글을 쓸 리가요.

***

나강인이 한적한 도로를 지나가다가 차를 세웠다.

박순기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차 이사의 자동차가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차 이사를 찾아내 원거리에서 미행하던 중이다.

박순기가 제안했다.

"이 도로는 한적하니까 CCTV로 여기를 지나간 차를 찾으면 될 겁니다. 제가 CCTV 담당자와 통화하겠습니다."

박순기는 경찰 교통 CCTV 담당자와 수시로 연락하면서 원거리 미행을 지원했다.

나강인이 말했다.

"오면서 봤는데, 이 도로에는 CCTV가 없더군요. 차 이사는 일부러 이 길로 간 겁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CCTV가 없는 구간이 많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다시 찾아내서 미행했잖습니까?"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박순기가 차를 주먹으로 쳤다.

"놓쳤군요. 젠장! 역시 차 이사 이 새끼는 도망을 진짜 잘 칩니다."

"놓쳤다고는 안 했습니다."

"네? 완전히 사라졌다면서요. 어떻게 찾으시게요?"

나강인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수시로 확인했다. AI 전지인이 그 지도 정보를 수집해 인근 지역 전체 지도를 만들었다.

-차 이사는 이 도로 2km 구간에서 사라졌습니다. 이 구간을 정상적으로 주행해 벗어났다면 꼬리가 보였어야 합니다.

나강인이 스마트폰의 지도를 확대했다. 사잇길들이 나타났다. 인근에 있는 주택, 창고, 비닐하우스도 조금 보였다.

AI 전지인이 그 정보를 홀로그램 지도에 추가했다.

"차 이사는 이 도로 2km 구간 어딘가에서 옆으로 샜습니다. 거꾸로 돌아가면서 거기가 어딘지 찾아야지요."

박순기가 휴대폰을 들었다.

"지원팀이 대기 중입니다. 와서 같이 수색하라고 할까요?"

"대놓고 수색하면 안 됩니다. 차 이사가 모르게 놈을 찾아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

나강인은 박순기와 도로를 거꾸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차를 타지 않고 두 다리로 걸어갔다.

1km는 보통 사람이 평지에서 15분이면 걸을 수 있다. 2km를 다 지나가려면 30분이 걸린다.

두 사람이 걷는 속도는 그것보다는 빨랐다.

나강인은 걸어가면서 도로 옆을 살폈다.

조금 전에 이 도로를 지나갈 때도 주변을 보긴 했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걸으면서 확인하면 차로 지나가면서 본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나강인이 5분쯤 걸은 후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도로 옆 샛길을 가리켰다.

"차가 들어간 흔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알아보신 겁니까?"

"차바퀴 자국이 흐릿하게 남아있는데, 오래되지 않은 겁니다."

박순기가 물었다.

"그런 게 그냥 보면 구별이 되세요? 무슨 전설의 사냥꾼 같은 겁니까?"

"내가 눈이 좋아서."

-제 정찰 정보 분석 능력이 좋은 겁니다.

나강인이 주변을 쓱 훑었다. 사설 CCTV는 보이지 않았다.

"이 샛길로 들어가서 안쪽을 확인해야겠습니다."

두 사람은 샛길로 들어갔다.

그 비포장도로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박순기는 옆구리에 찬 권총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들이 안으로 어느 정도 들어가자 공터가 나왔다. 그 공터에 승합차가 한 대 서 있었다.

박순기가 물었다.

"우리가 미행하던 차와는 색이 다른데요?"

"차종은 같습니다."

"아! 벌써 차의 색을 바꿨군요. 역시 꼼꼼한 놈입니다."

근처 숲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박순기가 권총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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