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401화 (397/411)

401. 특별편 방송

최진욱 피디가 말했다.

"미공개 영상은 모두 우리 드라마 특별편에서 공개할 겁니다. 국민의 알 권리는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보도국장이 성질을 부렸다.

"그걸 왜 드라마국에서 하는데! 그건 우리 일이야!"

"우리 드라마를 찍을 때 촬영된 거니까요."

"그러니까 우리 뉴스에서…."

"제가 드라마처럼 아주 멋지게 잘 만들어보려고요."

보도국장은 이런 식으로 해서는 최진욱이 영상을 내놓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최진욱은 보도국 소속이 아니다. 소속이 다르면 국장 자리로 압력을 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보도국장이 더 높은 사람을 팔았다.

"진짜 이렇게 나올 거야? 사장님이 이번 보도에 관심이 얼마나 많으신지 몰라?"

"아…. 사장님이…."

갑자기 편집실 문이 벌컥 열리며 드라마국장이 들어왔다.

"누가 우리 최 피디 일하는 데 방해하는 거야!"

"아니, 방해가 아니라 협조 좀 해달라는 거지!"

"내가 지금 사장님이랑 담판 짓고 왔다. 미공개 영상은 내일 바보의 사랑 특별편에서 공개하기로 했어!"

보도국장이 화를 벌컥 냈다.

"진짜 이렇게 나올 거야? 우리랑 해보자는 거야? 오늘 당장 뉴스에서 바보의 사랑에 고춧가루 뿌려줄까? 어?"

"그 난리를 겪고 살아난 우리 최 피디 팀에게 고춧가루를 뿌리게?"

"우리 애들이 그런 거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피해자도 욕먹게 되는 마술 한번 보여줘?"

"최 피디가 특별편 편집하던 거 아직 못 봤지?"

"영상 받아서 봤으면 내가 왜 이러겠냐?"

"그거 나가면 우리 애들이 진짜 죽다 살아난 거를 시청자들이 다 알 텐데, 뉴스팀이 욕을 퍼먹으면 김 국장 자리가 참 편안하겠다?"

보도국장은 미공개 영상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정도야?"

"어. 그 정도야."

보도국장이 바로 방법을 바꾸었다. 채찍은 휘둘러봤자 씨도 먹히지 않았다.

"좀 도와주라. 우리도 이 기회에 뉴스 방송들 사이에서 주도권 좀 꽉 쥐어보자. 뉴스는 역시 KMTV 뉴스. 그런 말 좀 들어보자고."

드라마국장이 최진욱에게 물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뭐 좀 줄 거 없어?"

최진욱이 미리 준비해둔 USB 메모리를 꺼내 보도국장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여기 짧은 영상이 두 개 있는데요. 내일 밤에 우리 특별편이 나갈 때까지 이거로 참으시죠."

"뭐야? 미리 준비해둔 거야? 야. 최 피디. 이런 게 있으면 처음부터 줬어야지."

"그러면 더 많이 달라고 하실 거잖아요."

"이 새끼가 이제 보니까 나를 조련…. 아니다. 야. 고맙다. 대신에 내일 드라마 특별편 방송 나간 후에는 영상 다 넘겨야 한다?"

"그럼요. 다른 방송국에는 없는 고품질 영상으로 싹 다 넘기겠습니다. 저희 드라마 홍보나 많이 해주십시오."

"홍보는, 새끼야. 지금 너희 드라마 이름을 모르는 국민이 없는데 뭘 더 해? 그냥 드라마 찍을 때 우리 애들이나 갖다 써."

***

이튿날 밤에 최진욱이 조연출과 편집한 드라마 ‘바보의 사랑’ 특별편이 방송됐다.

특별편에는 코브라 헬기가 옥상의 김유찬을 향해 벌컨포를 쏘는 장면이 생생하게 나왔다. 그 영상은 뉴스에 잠깐 나온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았다.

김유찬이 공격받기 시작할 때는 촬영을 위해 배치한 카메라가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덕분에 김유찬을 향해 날아가는 철갑탄의 모습이 다양한 각도로 TV에 나왔다.

최진욱이 힘을 빡 주고 편집한 장면에서는 철갑탄이 김유찬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모습이 천천히 재생됐다. 최진욱은 여러 방향에서 찍은 그 모습을 모두 보여주었다.

철갑탄에 부서진 소품이나 콘크리트의 파편이 날아와 김유찬을 때리는 장면도 나왔다. 파편에 맞을 때마다 옷이 찢겨나갔는데도 김유찬은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 그런 파편에 카메라가 맞으며 화면이 휙 돌아갔다. 넘어진 카메라에 옥상에 홀로 서 있는 김유찬이 찍혔다.

특수효과용 연막이 옥상에 퍼졌다. 김유찬이 연막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김유찬이 죽었거나 크게 다쳤으면 그 영상은 방송에 나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김유찬이 괜찮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그 영상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드라마 관련 커뮤니티 게시판에 댓글이 실시간으로 붙었다.

-김유찬 죽었어?

-안 죽었어!

-김유찬 함부로 죽이지 마!

-저 정도면 죽어야 정상인데….

-뉴스에서 안 죽었다고 했어!

특수효과용 연막이 옥상을 뒤덮었다. 코브라 헬기가 건물 앞쪽에서 천천히 호버링했다.

최진욱은 김유찬이 공격당할 때 찍은 촬영본들을 모두 사용해 편집본을 만들었다. 그래서 실제 상황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그 장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편집의 마술을 부려도, 전투 영상만으로 특별편 한 시간을 채울 수는 없다. 다른 게 필요했다.

김유찬이 연막 속으로 사라진 후에 배우와 스태프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스태프들이 말했다.

-당연히 김유찬 씨가 죽었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폭격을 당했는데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런데 연기가 사라지니까 진짜 히어로 같은 모습으로 짜잔 하고 나타나는 거예요.

화면이 다시 당시 상황으로 바뀌었다.

옥상을 뒤덮던 특수효과용 연막이 서서히 사라졌다.

김유찬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저걸 사네.

-아니, 저기서 어떻게 살지?

-피한 거야?

-총알이 날아와도 움직이지도 않던데?

김유찬은 그때 겁을 먹어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최진욱이 편집을 워낙 잘해서 사람들의 눈에는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역시 김유찬! 저 당당한 모습을 보라!

-포스 쩐다!

-바보의 사랑 주인공이 현실로 튀어나온 거 같아.

화면이 다시 바뀌며 김유찬 단독 인터뷰가 나왔다. 그는 영상 속에서 입었던 찢어진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당연히 위험했죠. 20mm 철갑탄이 바로 옆을 날아갈 때의 느낌, 살벌하죠. 옥상 바닥을 뻥뻥 뚫던 그 많은 철갑탄을 한 발만 맞아도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김유찬이 드라마 주인공용 가면을 얼굴에 쓰며 씩 웃었다.

"악당과 마주 보고 서 있다가 도망치긴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놈을 계속 노려봤죠. 그리고 그때, 드래곤 윙이 나타났습니다."

김유찬이 손을 옆으로 뻗었다.

화면이 전환됐다. 나강인과 코브라 헬기의 공중 전투가 시작됐다. 나강인은 헬멧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다.

-싸운다!

-어? 저것도 뉴스에서 못 본 장면인데?

-오늘 특별편 부제목이 ‘그것을 보여준다’입니다.

-진짜 제대로 보여주네!

-그런데 전술 비행 슈트가 저렇게 대단한 거였어요? 공격헬기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데?

-여러분. 슈트가 쩌는 게 아닙니다. 조종사가 쩌는 겁니다.

-슈트랑 조종사 둘 다 쩌는 듯.

공중 전투 도중에 철갑탄이 상가 건물 중간으로 날아오는 장면도 나왔다. 그 철갑탄이 상가의 아래쪽을 뚫고 들어갔다.

곧바로 화면이 전환됐다.

그 상가 건물은 지역 대형 슈퍼마켓이 사용했다. 당시에 촬영팀이 실내에 설치해놓은 카메라 중에 촬영이 끝난 후에도 계속 돌아가던 게 하나 있었다.

그 카메라에 철갑탄이 슈퍼마켓 내부를 관통하고 지나가는 장면이 잡혔다.

과자 봉지 수백 개가 터지면서 과자가 눈보라처럼 날아다녔다. 그 모습이 느린 화면으로 천천히 방송됐다.

-와아….

-영화 찍었냐?

-드라마를 찍긴 했죠.

-특수효과로 처리한 거 같네요.

방송에는 촬영용 카메라로 찍은 영상만 나온 게 아니었다. 최진욱 PD는 건물 내부 CCTV에 찍힌 영상도 적절하게 조합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익숙하게 보던 상품 진열대나 전시용 냉장고가 터져나가는 걸 보면서, 그때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를 실감했다.

-와…. 나 며칠 전에 저 마트에 갔었는데, 내가 아는 곳이 펑펑 터져나가는 거 보니까 몸에 소름이 돋는다.

-김유찬은 진짜 위험했겠구나.

-그 와중에 영상 멋있게 뽑은 거 보소.

공중 전투 시간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래도 카메라가 여러 대 사용된 덕분에,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을 적당한 효과와 함께 편집해서 보여주면 방송 시간을 꽤 많이 채울 수 있다.

그래도 남는 시간은 인터뷰로 채웠다. 배우나 스태프만이 아니라 무기 전문가도 방송에 나왔다.

전문가는 코브라 헬기가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 설명했다. 그 설명에 맞춰 자료화면이 나왔다.

최진욱 피디는 자료화면 영상 중에서 헬기가 공중에서 사격하고, 장갑차가 뻥뻥 뚫리는 것을 골라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김유찬이 저런 걸 피한 거야?

-피한 건 아니고 벌컨포탄이 알아서 빗나갔음.

-총알조차 알아서 피해 가는 유찬 오빠.

-그건 에바고요.

김유찬이 옥상에서 공격당한 장면은 여러 대의 카메라 영상을 교차해서 보여주고, 옥상이 파괴되는 모습도 적당히 섞어 만들었다.

그런데 그때 김유찬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래서 그 영상은 멋도 있고 긴장감도 있지만, 정적인 느낌이 조금 있었다.

공중 전투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드래곤 윙과 코브라 헬기는 삼차원 공간에서 고속으로 움직이며 치열하게 공격을 주고받았다.

옥상이 공격당할 때 카메라의 절반이 파손됐지만, 촬영팀은 남은 카메라 몇 대로 공중전을 끝까지 촬영했다.

최진욱이 모든 카메라의 영상을 낭비하지 않고 편집의 마술에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속도감이 넘치는 공중전이 실제보다 몇 배나 길게 이어졌다.

-와아!

-진짜 쩐다!

최진욱 피디는 슬로우모션도 자주 활용했다. 나강인이 20mm 철갑탄을 공중회피기동으로 피할 때는 슬로우모션에 영상 확대까지 사용했다.

-저걸 피했어!

-총탄을 보고 피한 거야?

-쏘려는 방향을 보고 미리 피했겠죠.

-그게 됩니까?

-되네요.

철갑탄이 나강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갈 때는 정지 화면을 사용했다.

이 특별편의 진행은 주인공인 톱스타 김유찬이 맡았다. 정지 영상에 철갑탄과 나강인 사이의 거리가 선과 그래프, 숫자로 표시됐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김유찬이 정지 화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간격이 보이십니까? 정말 간발의 차이였습니다. 0.1초만 늦었어도 격추될 뻔했죠."

커뮤니티 게시판에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맞으면 위험하겠죠?

-죽습니다.

-용산 사건 때 보니까 저 날개 방탄이던데, 그러면 살 수도 있잖아요.

-아니요. 죽어요. 장갑차를 잡는 철갑탄에 맞으면 사람이 어떻게 삽니까? 대포에 맞은 것과 똑같은데.

김유찬이 말했다.

"드래곤 윙 파일럿의 무기는 보다시피 권총입니다. 전문가들은 기관총만 있었어도 이 공중전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을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권총으로도 박빙의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다 말입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나강인이 보조연료탱크 두 개를 투하했다.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주는 영상에서 보조연료탱크가 나강인의 몸에서 느릿하게 떨어져 나왔다.

-맞았나?

-어디 고장 난 거 아냐?

코브라 헬기는 보조연료탱크를 무시하고 나강인을 추격했다. 보조연료탱크가 코브라헬기와 가까워졌을 때 나강인이 권총으로 사격했다.

총탄까지는 영상에 나오지 않았지만, 권총을 발사하는 건 보였다. 최 피디는 그 장면을 확대 영상부터 느린 영상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여줬다.

그 직후에 보조연료탱크 두 개가 동시에 폭발했다. 공중에서 화염이 터져 나와 코브라 헬기를 완전히 뒤덮었다.

사람들이 환성을 지르며 댓글을 썼다.

-해치웠다!

-저렇게 이겼구나!

-맛이 어떠냐!

해치우지 못했다. 잠시 후에 그 화염을 뚫고 코브라헬기가 다시 나타났다. 출력이 잠깐 떨어졌던 엔진도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

-왜 안 부서져?

-괴물이냐!

-저런 걸 어떻게 이기냐고!

이번에는 다른 카메라로 찍은 편집 영상이 나왔다.

나강인은 보조연료탱크를 터트리자마자 드래곤 윙의 엔진 네 개를 가속했다. 그는 나선을 그리며 고속으로 비행해 코브라 헬기의 뒤를 잡았다.

-어?

-일부러 노렸구나!

코브라 헬기는 나강인의 위치를 찾느라 잠시 공중에 떠 있었다.

그런 헬기의 엔진 배기구를 향해 나강인이 쌍권총을 난사했다. 반자동 권총인데도 방아쇠를 당기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치 기관단총으로 갈기는 것처럼 보였다.

나강인은 순식간에 탄창에 남은 총탄을 다 쏟아냈다.

코브라 헬기의 엔진 배기구에서 불꽃과 함께 검은 연기가 쏟아졌다.

사람들이 다시 환성을 질렀다.

-잡았다아아!

-이번엔 진짜 해치웠어!

-와아! 권총으로 코브라 헬기를 잡았다는 기사가 헛소리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어!

-저게 잡히네.

나강인이 공중에서 권총 두 자루를 툭 던졌다. 나강인은 공중에 떠 있고 권총만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포스 지린다.

화면이 이번에는 옥상에 있는 김유찬으로 바뀌었다. 김유찬이 뒤로 돌아서서 두 주먹을 위로 뻗으며 이겼다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나왔다. 촬영팀이 흥분해서 같이 함성을 질렀다.

-캬아. 김유찬 진짜 멋있네.

-저기서 저 전투를 찍은 사람들도 장난 아니다. 드라마 촬영팀이 아니라 종군기자인 줄 알았네.

전문가들이 나와서 공중전 영상을 분석했다.

항공역학 전문가가 말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움직임입니다."

김유찬이 질문했다.

"그러면 드래곤 윙은 쉽게 만들 수 있는 날개라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아니죠. 저런 고기동 개인 비행 슈트를 만들려면 예산을 쏟아붓고 시행착오도 많이 거쳐야 하는데, 어느 회사가 그러겠습니까? 저런 성능의 날개를 개발한 기업이나 연구소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요. 실물이 저렇게 존재하잖습니까?"

"그래서 저도 이해가 안 됩니다. 수십 년 뒤라면 모를까, 저런 날개가 왜 벌써 나왔을까요?"

전투기 조종사도 말했다.

"제가 조종하면 저럴 수 있냐고요? 하하하. 저는 죽고 싶지 않아서요."

김유찬이 씩 웃으며 물었다.

"목숨을 걸면 할 수 있으신가요?"

"하늘을 천천히 비행하는 건 할 수 있겠죠. 마치 행글라이더처럼요. 그런데 저런 격렬한 공중전은 무리입니다. 저건 그냥, 조종사가 대단한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