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 특별편 방송 II
연기를 뿜으며 도망치는 코브라 헬기와 천천히 추격하는 드래곤 윙의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두 기체가 점점 멀어졌다.
그 영상은 오래 보여줄 게 없었다. 화면은 다시 옥상으로 바뀌었다.
옥상은 축제 분위기였다. 스태프와 배우들이 승리의 춤을 추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다.
최진욱은 다른 스태프들의 영상은 다 방송으로 내보냈다. 그런데 그와 도주희가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던 모습은 편집으로 빼버렸다.
김유찬이 난간에 올라가 하늘을 날겠다고 설친 부분은 반쯤만 날렸다. 김유찬이 멋있게 나온 부분은 잘 편집해서 살리고, 맛이 좀 간 부분은 적당히 잘라냈다.
잘라낸 것 중에 편집만 잘하면 괜찮은 게 있었다. 그런 건 다시 살렸다.
-와아. 축제다. 축제.
-저게 말로만 듣던 승리의 춤이구나.
-북이 있었으면 북도 쳤을 듯.
-김유찬은 난간 위까지 올라가네. 진짜 겁이 없다.
-그러니까 코브라 헬기가 막 쏘는데도 당당하게 서 있었겠지요.
전투가 완전히 끝난 후에는 경찰과 군, 구급차 등이 도착하는 모습이 나왔다.
공격헬기가 근처를 지나가거나, 하늘 높은 곳에서 전투기가 비행하는 모습도 빼먹지 않고 보여주었다.
그 후에는 현장을 정리하는 모습, 사람들이 줄을 서서 치료받는 모습 등으로 화면을 채웠다. 부상자를 태우고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나, 긴장한 얼굴로 경계근무에 나선 병사들이 방송에 나왔다.
-저기 출동한 병사들은 진짜 좋은 추억이 생겼겠다.
-쟤들 표정 심각한 거 안 보여요? 실전에 투입됐는데 추억은 무슨.
-그래도 평생 술안주는 생겼잖아요.
-전투가 다 끝난 후에 도착한 거라 그 정도는 아니겠죠.
현장 정리와 후속 조치 영상도 슬슬 마무리됐다. 사람들은 이제 특별편이 끝날 때가 됐다는 걸 깨달았다.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입니다.
-진짜 영화보다 더 손에 땀을 쥐고 봤습니다.
-실제 상황이니까요.
-저런데도 아무도 안 죽었다면서요? 와. 그것도 대단하네요.
-오늘 진짜 쩔었다.
특별편 방송의 마지막은 김유찬이 맡았다. 그가 바보의 사랑 주인공이 쓰는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저희 제작진 중에 다친 분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충분히 치료받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김유찬이 시청자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번 주와 다음 주, 2주 동안 바보의 사랑은 방송되지 않습니다. 시청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기다려주시면 꼭 돌아오겠습니다."
-이건 기다려야지!
-이걸 결방한다고 욕하는 사람 있으면 인간성에 문제 있는 거죠.
-기다릴게요!
드라마 ‘바보의 사랑’ 특별편 방송이 끝났다.
최진욱은 화면에서 광고가 나오는 걸 보며 말했다.
"어때? 끝내주게 나왔지?
도주희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최 피디. 영화 찍어도 되겠는데?"
최진욱이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치며 실실 웃었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할 수 있다니까?"
"이 정도면 본편 시청률은 걱정할 필요 없겠지?"
"당연하지. 이렇게까지 보여줬는데, 시청자들이 2주 정도 못 기다리겠어? 전에는 재방송으로 보던 사람들도 본방사수 할걸?"
"고생했어. 시간이 좀 생겼으니까 최 피디도 좀 쉬어."
"내가 쉬어도 될까?"
"그렇게 계속 일하면 죽어. 좀 쉬어야 돼."
최진욱이 활짝 웃었다.
"그럼 오늘은 좋은 곳에 가서 기분 좋게 술이나 마시자. 축하 파티 겸해서."
"최 피디 다쳤잖아. 술 마셔도 돼?"
"이거 긁힌 거야. 긁힌 거. 다 나았어."
"시끄러우니까 그냥 밥이나 먹자. 다른 사람들도 다 불러서."
"부른다고 몇 명이나 오겠냐. 다들 병원에 갔거나 피곤에 쩔어 있는데. 그냥 우리끼리만 먹어."
***
특별편의 시청률은 이전에 방송된 드라마 본편보다 높게 나왔다.
KMTV 방송국은 기존 뉴스에 공개되지 않은 영상이 특별편에 많이 나온다는 걸 적극적으로 알렸다. 그런 홍보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했다.
그래서 특별편을 기다렸다가 본 사람이 많았다.
방송이 끝난 후에 특별편 이야기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왔다.
-다큐멘터리 비슷하게 진행됐는데도 진짜 손에 땀을 쥐면서 봤습니다.
-실화니까요. 그것도 엊그제 터진 사건이고요. 액션 영화보다 더 실감 나더라고요.
-영상을 사건이 터질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잘 찍었던데요.
-알고 있었다고요? 역시 방송국 놈들이 범인이군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드래곤 윙 파일럿은 누구랍니까?
-그건 안 나오던데요.
-방송국도 모르는 듯.
-알아도 모르는척하겠죠. 딱 보니까 비밀요원이던데.
-비밀요원이 아니라 사제 히어로일 겁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 민간인이 그런 걸 어떻게 만듭니까?
-정부에서 만들었으면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어요.
-기업 연구소에서 드래곤 윙을 만들었으면 비밀 유지가 되고요?
-그럼 누가 혼자 만들었나?
-그건 더 말이 안 되죠.
드래곤 윙 파일럿의 정체에 관해서는 여러 게시판에서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나강인의 이름이 적힌 댓글은 하나도 없었다.
특별편의 시청률은 본방보다 높았다. VOD 다시보기로 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그 다시보기 영상을 미국 펜타곤 회의실에서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군 특수부대 대령이 말했다.
"영상에서 보셨다시피, 드래곤 윙이 지난번보다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이제는 공격헬기와 공중전이 가능해졌습니다."
비밀회의 참석자 중 한 명이 말했다.
"저 날개는 볼 때마다 성능이 좋아지는군요. 어떻게 된 겁니까?"
대령이 대답했다.
"보조연료탱크가 추가됐습니다."
"그게 그렇게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였습니까?"
"날개가 개발 중인 프로토타입이 아니라 완전히 완성된 상태라면, 연료탱크를 추가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저 비행 슈트는 등장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뚝딱 완성까지…."
다른 사람이 물었다.
"그래서 전투력은요? 저 영상에서는 상당히 힘들게 싸우는데요."
회의 참석자들이 일제히 그 질문을 한 사람을 돌아보았다. 그 사람이 당황해서 물었다.
"왜 다들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봅니까?"
대령이 설명했다.
"권총으로 싸웠으니까 전투가 힘들어 보인 겁니다. 기관총만 있었어도 공중전의 양상은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다른 참석자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사람이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기관총을 쏘는 거, 그거 로망인데 말이죠."
대령이 말했다.
"개인 취향은 나중에 이야기하시죠. 지금은 회의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요."
또 다른 참석자가 물었다.
"저런 공중기동을 우리 파일럿이 할 수는 있는 겁니까?"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단순 비행까지입니다. 저런 급격한 기동을 하려면 비행보조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보통 사람이 저렇게 비행하면 곧장 추락할 겁니다."
"역시 비행보조시스템은 필수군요. 그런데 그 시스템은 나강인에게 맡기면 만들 수 있을 거라면서요? 작업은 진행하고 있습니까?"
이번에는 CIA 요원이 대답했다.
"직접 접촉을 고려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면 한국 정보기관이 반발할 겁니다. 쉽지는 않은 문제입니다."
"아니, 당신네가 언제부터 다른 나라 기관의 반발 같은 걸 신경 썼다고…."
"개발자가 돈이나 압력이 통하지 않는 사람인 데다가, 한국 정부와 관계가 좋습니다."
"그래도 공작을 잘만 하면…."
"무리해서 접근했다가 틀어지면 우리 손해가 너무 큽니다. 개발자가 앞으로 만들 수 있는 게 비행보조장치 하나는 아닐 테니까요."
***
드라마 바보의 사랑의 방송일은 2주가 밀렸다.
코브라 헬기의 습격으로 다친 사람이 많았다. 심각한 부상자는 없지만 촬영팀 상당수가 치료를 받아야 했다.
옥상 세트장도 무너졌다. 장소를 다시 섭외해서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장소 섭외부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바보의 사랑 제작진은 휴가를 며칠 받았다. 그 시간에 병원도 다니고 좀 쉬면서 재충전도 해야 한다.
배우들도 촬영 일정이 연기됐다. 제작진이 다 휴가를 가서 당장은 찍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상당수의 배우가 외부 스케줄을 가지고 있었다. 바보의 사랑 촬영 일정이 2주나 밀리면서 배우들의 스케줄에 문제가 생겼다.
이튿날 최진욱이 기획사 매니저를 만났다.
매니저가 물었다.
"많이 피곤해보이십니다."
"특별편도 방송했으니까 이틀 정도는 푹 쉴 수 있을 줄 알고 어제 늦게까지 놀았습니다. 이렇게 곧바로 출근해야 할 줄 모르고요."
"최 피디님도 다치셨다고 들었는데, 도 작가님이랑 계셨나 봅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하하. 그거야 뭐 뻔하니까…."
최진욱이 툴툴댔다.
"내가 너무 단조로운 삶을 살았나?"
"아니, 그건 아니고요."
매니저가 얼른 달력을 펼쳐 보이며 말을 돌렸다.
"아. 스케줄 조정 말인데요. 저희 배우가 이때 중요한 행사가 있습니다. 촬영 스케줄이 2주가 밀리면 이 행사와 겹칠 것 같은데, 조정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배우 한 명의 스케줄을 조정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런 배우가 많았다.
"아니, 다들 왜 이렇게 스케줄들이 많이 생겼지? 왜 다들 조정해달라고 하지?"
"혹시 저희 배우 말고도 이런 요청이…."
"많습니다. 엄청 많아요. 전화도 오고, 이메일도 오고, 매니저님처럼 직접 찾아온다는 분도 많아요."
최진욱이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배우가 만족하는 스케줄 조정은 불가능했다.
최진욱이 배를 쨌다.
"스케줄 때문에 우리 드라마를 못 찍겠다는 분이 계시면 미리 말씀하시죠. 배역을 아예 빼 드릴 테니까."
"예?"
"교통사고로 빼도 되고, 외국 유학이나 출장으로 빼도 되고, 그냥 슬그머니 빼도 되고. 내가 도 작가한테 말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빼 드릴 테니까 말씀만 하시라고요."
매니저는 당황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배우들의 스케줄이 늘어난 건 지금 출연 중인 드라마 ‘바보의 사랑’이 잘나가기 때문이다. 이번 공격헬기 사건이 터진 후에는 배우들을 찾는 곳이 더 많아졌다.
소속사들은 이 기회에 한 몫 단단히 챙기고 싶어 했다. 그래서 스케줄을 많이 잡았다가, 방송이 2주나 연기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행사 때문에 드라마 촬영에서 빠지는 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짓이다.
매니저가 두 손을 들었다.
"아유. 우리가 양보해야죠. 행사 스케줄을 조정하겠습니다. 안 되면 행사를 포기하더라도 바보의 사랑에는 꼭 출연해야죠. 하하하. 아. 여기 홍삼 엑기스 스틱이 있는데 좀 드십시오."
"아니, 이런 게 왜 가방에서 나오세요? 마침 딱 필요했는데."
"저도 항상 필요해서요. 하하하."
***
최진욱은 CG 업체도 찾아갔다.
"오늘은 쉴 줄 알고 어제 그렇게 놀았는데, 진짜 힘들어 죽겠다."
드라마 CG를 맡은 팀의 팀장이 모니터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스케줄에 여유가 생겨서, 저희가 드래곤 윙의 디테일을 높였습니다."
"네? 강인 씨가 모델링 해준 걸 안 쓰고요?"
"당연히 그걸 써야지요. 그런데 그건 최적화를 위해서 좀 생략된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특별편 영상을 보고 빠진 것들을 채워 넣었습니다. 하하하."
"그러면 안 어색하던가요?"
"어색하기는요. 아주 그냥 딱딱 맞던데요? 너무 잘 맞아서 그분이 실물을 보고 모델링 작업을 한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에이. 설마요. 하하."
"그만큼 잘 만들었다는 말이죠. 하하하."
***
최진욱이 방송국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어우. 죽겠네. 20대 때는 밤새도록 마시고 출근해도 할만했는데, 이젠 안 되는구나."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는 그에게 주연 배우 김유찬이 찾아왔다.
"최 피디님."
"어? 김유찬 씨. 오늘은 좀 쉬시지 왜…."
김유찬은 매니저도 없이 혼자 찾아와 말했다.
"부탁이 있습니다."
김유찬은 평소에는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진욱은 가벼운 마음으로 말했다.
"어이구. 우리 주연 배우님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드려야지. 뭔데요? 누구 꽂아드릴까요? 단역 정도라면 가능한데요."
"그런 게 아니라."
"농담입니다. 스케줄만 확 바뀌는 거 아니면 뭐든 말해요. 다 들어줄 테니까."
"휴가를 좀 쓰려고 합니다."
최진욱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뭘 그런 걸 부탁하고 그래요? 나도 내일은 쉴 생각입니다. 유찬 씨 촬영은 모래부터 하면 되겠네."
"며칠 걸릴 겁니다."
"네?"
김유찬은 이 드라마를 이끄는 주인공이다. 그가 없으면 드라마가 진행되지 않는다.
최진욱은 걱정이 들었다.
‘유찬 씨는 코브라 헬기의 집중사격을 당했는데….’
다행히 철갑탄이 모두 빗나가 살아남았다.
‘그 후에 유찬 씨가 보여준 모습이 이상하긴 했지. 진짜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러나?’
"혹시 무슨 일이 있…."
"미국에 가야 해서요."
"어? 갑자기요? 미국에는 왜…. 혹시 할리우드?"
"아니요. 집안일입니다."
"김유찬 씨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이잖아요. 집안일을 왜 미국에서…."
김유찬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며칠만 더 쉬겠습니다."
최진욱은 고민했다. 촬영장에 김유찬이 없으면 생기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김유찬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였다.
‘진짜 거기서 살아남고 나서 무슨 문제가 생겼나?’
스케줄만 신경 쓰다가 김유찬이 진짜로 미쳐버리면 이 드라마는 결방이 아니라 종방을 해야 한다.
"어…. 갔다 와요. 며칠 더 쉰다고 무슨 일 나겠어요? 유찬 씨가 안 나오는 장면부터 먼저 찍어놓으면 되니까."
같은 장소의 촬영을 두 번에 나눠서 하면 제작 기간도 길어지고 제작비도 그만큼 더 들어간다.
"제작비야 내가 회사에서 더 뜯어내면 되니까 그렇게 해요. 하, 하하."